Archive for 2월 2012
서론: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도복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인 (7000 men, who have not bowed the knee to the image of Baal)

이 마지막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 인을 위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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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렘20:7-9).
내가 잠잠하고 있기에는 내 가슴 속에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간절하므로, 또 듣든지 아니 듣든지 고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고 고하지 아니하면 그 피값을 내 손에서 찾으리라 하였습니다 (겔3:11, 20).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그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겔33:2-6).
또 이는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고전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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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므로 필연적으로 나에게 쏟아질 비난과 욕설 그리고 돌팔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과감히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이 험난한 고난의 길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리라 (요일4:18, 겔3:9).
그 누구 하나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사람 한 사람도 세상에 없을지라도 나는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하나님을 위한 나의 열심을(왕상19:10) 외면할 수는 없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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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라고” 했을 때에 모세가 6 번이나 사양하고 거절하였습니다 (출3:11, 4:1, 10, 13, 6:12, 30).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화를 내시며 강압적으로 모세를 애굽에 보내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의 학대로부터 구원하라고 명령하실 때에 모세가 가지 아니하겠다고 사양하며 “다른 보낼만할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하나님께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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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세가 가지 아니하겠다고 했는지 아십니까?
바로가 자기의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뿐만이 아니라 바로의 신하들 심지어는 모세의 민족, 이스라엘 사람들까지도 모세를 잘 믿으려 하지 않고 나중에는 원망하고 미워하며 대적을 여러번 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고 까지 아니하였습니까? (출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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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 바로는 누구입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한 그 바로(Pharaoh)는 출애굽 당시에만 있었고 지금 시대에는 없는 것일까요?
그러면 우리 신약시대의 바로는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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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6000 년 역사가 다 마치고 7000년 째 접어들어선 이 무렵, 우주의(the Universe) 종말이 먼발치에 와 있고 그 종말이 오고 나면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째의 천년대인 새 천년, New Millennium 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12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 복음의 진리로 회복할 때가 이제는 되었다고 나는 굳게 믿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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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대에 이 타락하고 진리가 변질된 기독교 내에서 그래도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진리를 찿는 사람들 스스로가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단12:10) 온 정성을 다하여 (신4:29, 6:5) 하나님을 섬기고 영원한 의에(righteousness) 이르기를 소원하며 영생의 면류관을 받고자 애쓰고 노력하는 자들이 있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출19:4)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의 날개 아래로(시91:4, 마23:37) 인도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여러분들을 초대하는 바입니다. (슥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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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인
오랜 엘리야의 가뭄에서(눅4:25-26) 살아남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살아남은 자들(겔5:12-13),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000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19:17-18).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여호와가 말하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칠천인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11:3-5).
이스라엘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사10:22, 롬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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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긍휼을 받은 자들이(롬9:15) 모인 새예루살렘 장자들의 총회에(히12:23) 여러분들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슥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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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에 바울사도가 언급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인’ 이란 구약의 아합왕 시대의 사람들 만 지칭할까요?
아니면 바울사도가 로마서에 언급할 당시 그 시대의 초대교회 성도들도 해당이 될까요?
지금 성령시대 말세의 때에도 존재할까요?
21 세기의 우리 시대에 그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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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바알은 누구입니까?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렇게 끈질기게 섬기던 이방신 바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구약시대에 만 존재할까요, 아니면 지금 신약시대에도 존재를 할까요?
지금 우리시대의 바알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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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인이란 글자 그대로(literally) 수량적인(quantity), 숫자적인(numerically) 7000명일까요?
그러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인이란 무슨 뜻일까요?
그 7000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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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인 순종
태초에, 저 먼 옛날에 아담이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까요?
당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 즉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법을 어기고 불순종하였기에 저주를 받고 쫓겨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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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하나님과 세운 언약을(호6:7) 어기고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창1:26) 지음을 받은 고귀한 존재에서 저주를 받고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얼굴에 땀이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 흙으로 돌아가는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였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창2:17)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고 한 뱀의 거짓말을 믿고 속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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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에도 선악과가 존재할까요?
과연 존재한다면 무엇이 선악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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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와를 거짓말로 속이고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범죄하게 만든 뱀은 누구일까요?
(마23:33)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셨는데 지금 말세시대의 뱀들은 누구일까요?
그 뱀들은 초대교회 예수님 시대에만 존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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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서 원하시는 가장 큰 요구가 무엇일까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학자들마다 목사들마다 교인들마다 각각 다른 대답을 할 수가 있겠지요.
어떤 이는 믿음이라고 하겠고 어떤 이는 사랑이라고 하겠고 어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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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도 사랑도 다 중요하지만 바로 하나님 명령에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을 하다 보면 믿음과 사랑은 그 말씀 안에 다 있으니 우리가 사랑도 하고 믿음도 더욱 강해지는 것이겠지요.
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순종은 인간의 생각이나 관습, 유전등을 완전히 배제한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아담에게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르고 먹고들 있는지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잘 살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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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가 먹은 선악과는 보기에 흉측하고 미련하여 먹고 싶지 않은 과일이었읍니까?
아니지요.
오히려 하와가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창3:6)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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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왜 망하였습니까?
사울은 성령이 충만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삼상10:10, 11:6).
그러나 단 2 번의 불순종으로(삼상13:9-14, 15:9-23) 성령이 그에게서 영원히 떠나가고 만 것입니다.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삼상15:22).
사울왕은 자기의 생각으로 하나님에게 더 잘 제사를 드리려고 불순종하며 좋은 짐승들과 아각왕을 살려두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사울왕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한 것처럼 지금 우리들도 우리의 생각대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히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좋은 짐승들을 살려두어 좋고 실한 제물로 하나님께 더 잘 제사 드리려 한 사울왕의 의도와 생각이 참으로 합리적이고도 영리하였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말렉 족속의 살아 숨쉬는 모든 사람과 육축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사울왕은 영원히 멸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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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혜사 성령시대 말세지말의 우리 시대에도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울왕처럼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사람의 생각과 논리로 하나님이 명령한 법과 규례를 위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거나 또는 그 외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 지키거나 성경에 쓰여 있는 진리의 말씀 외에 사람의 생각으로 더하거나 빼거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는 않고 있는지 잘 따져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4: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12:3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계22:18-19)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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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유전들과 교리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과 법을 어기며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죄와 우(愚)를 범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고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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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막7:6-9, 7:13).
위 구절에서 보듯이 우리가 우리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면 아니되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또 분명히 많은 분들이 반문하기를 왜 우리가 우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하는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아라.
구체적인 예는 차차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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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을 칭찬하셨을까요?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키었음이라 하시니라 (창26:5).
시대적으로 출애굽 당시 모세 율법이 생겨났던 시점보다 약 600 년 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명과 법이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은 모세 시대부터 예수 그리스도 탄생까지 구약시대 때 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나서부터 바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밝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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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명과 율법이 무엇이었을까요?
예,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주창조 기념일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범죄한 아담과 하와처럼 선악과를 먹고 있지는 않은지 안식일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들을 잘 살피고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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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왜 하나님이 그다지 사랑하시고 그의 왕위를 영원히 세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대하7:17, 왕상3:14,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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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명
그러면 또 어떤분들은 율례와 규례는 구약시대의 산물이지 신약시대에 무슨 하나님의 율례와 법이 있느냐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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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15:9).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19:17).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버리는도다,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막7:8-9,13).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14:2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5:2-3).
위 구절들에서 보니 예수님께서 분명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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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분명 그 계명이란 십계명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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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에 와서도 하나님의 십계명은 구약시대의 십계명하고 전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 율법을 잊었으니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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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식이란 무엇입니까?
분명 세상의 인간지식과는 다른 (고전1:19-20, 눅10:21, 사29:14) 우리가 천국을 가기 위하여 꼭 알아야 되는 지식이겠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을 알지 못하면 망한다 했습니다.
제사장이 되지 못한다 하였으니 목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신약시대의 일반 성도들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이라 했으니 (벧전2:9), 우리가 올바른 하나님의 지식을 모르면 진실한 예배(제사)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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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약시대는 만인 제사장 시대입니다.
누구나 예수 믿고 성령 받으면 다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벧전2:9)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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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여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이 성을 사하리라 (렘5:1).
그 옛날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인들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였듯이,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세에 참믿음을 보겠느냐 하셨듯이 지금도 진리를 찾는 사람들은 아주 아주 드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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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찾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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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
우리는 예수를 믿는데 있어서 우리의 임의대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법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법대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1).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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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었는데 분명 무슨 법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 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믿고 행동한 사람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라고 말씀하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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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희랍어 성경 원문 – anomian – ἀνομίαν – lawlessness (Web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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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예수님이 언급하신 그 법은 무엇일까요?
구약의 613조 율법은 다 폐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법이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법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한 계명과 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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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식이란(호4:1, 빌3:8)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며,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가를 알게 하여주는 지식입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딤후2:5).
이와 같이 불법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예수 믿는다는 우리 신자들은 심각하게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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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교회나 왔다갔다 하면서 성경에 있는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들의 뜻을 정확하게 알려고 하지도 않은채 다들 건성으로 대충 믿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의(義)를 온전히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분명히 예수님은 불법을 행한 자들은 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13: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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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복음과 다른 지금의 기독교 교리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신조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야 합니까?
여러분들은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예수를 믿습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입니까?
아니면 목사들이나 부흥강사들이 하는 설교나 신학자들이 가르치는 신학입니까?
각 교파의 신학자들 마다 달리 주장하는 성경교리와 신학자들의 조직신학입니까?
어떠한 것이 우선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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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목사들의 설교라도 하겠고 또 어떤 분들은 본인이 속해있는 교파의 신학(神學)이라고 하겠지요.
좀더 지혜와 총명이 있는 분들은 성경에 쓰여있는 말씀의 내용이 우선이다 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에 목사들의 설교나 교파들의 신학이 성경의 내용과 다르거나 그 가르침이 성경말씀과 상반(相反) 된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판단하고 처신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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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대다수의 많은 분들이 목사들의 설교나 신학이 성경말씀과 다른 점이 있는가?
다 같은 하나님 말씀아닌가?
다 같이 예수 믿으라는 복음인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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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경우에 따라서는 같을 수도 있고 아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2000년 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 우리가 예수 잘 믿으면 천국 간다.
하나님 말씀 잘 듣고 순종하며 선하게 살면 천당 간다.
이와 같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간단하면서도 또 다 같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믿는 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하나님 말씀인지 계명인지 법인지 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순종하고 섬기는 것인지 우리가 따지고 연구해 보면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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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는 정확하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진리의 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예수님의 12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알아서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지시와 영감으로 적어 놓은 내용들 즉 그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열두 사도들을 직접 가르치셨고 열두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마28:19-20)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우리가 가감없이 지켜야 한다는 논리와 교리에 대하여는 여러분 모두가 동감하며 또 찬성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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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초대교회의 예수님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해 보겠습니다.
예수님 인자시대 이후 12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초대교회의 교리는 어떠한 것이며 그 때의 예수 그리스도 말씀의 진리는 지금 말세 때의 기독교 교리와 어떠한 점이 다른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이 전한 교리가 왜 중요하며 또 그 교리가 신약시대 2000년을 지나면서 어떻게 변하여 부패하고 변질 되었는지에 대하여 탐구해 보겠습니다.
카톨릭교회의 실체와 그 구교에서 떨어져 나와 초대교회의 교리로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하여 형성된 지금의 개신교(개신교)의 실체는 어떠한가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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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여러분들은 초대교회의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님의 복음을 그리스도의 진리를 (고후11:10) 올바르게 알고 있나 올바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나 한번 면밀히 검토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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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인 카톨릭 교회의 정체와 개신교
우리가 잘 알다시피 현재의 개신교는 구교에서 분리되어 나왔습니다.
우리 개신교가 왜 종교개혁을 하고 Catholic Church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와 구교의 신앙하고는 다른 신앙을 추구하였습니까?
카톨릭이 성경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성경의 하나님 말씀과는 거리가 먼 거짓 복음으로 교리를 삼았기 때문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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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은 일반 신도들에게는 성경을 읽는 것 조차 금하였으며 어느 누가 성경 한 페이지라도 읽은 것이 발각되면 즉시 잡아서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또 여러가지의 가증한 조각상의 우상들, 마리아의 형상, 예수의 형상, 구약 선지자들의 형상, 교황들의 형상 그리고 담벼락에 그려 놓은 각종 우상의 그림들을 보십시요.
너절하고 유치한 우상들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만들어 성당 안에다 비치하여 놓고 지금까지도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우상들의 형상이나 그림들이 불교의 우상들과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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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카톨릭이 지나간 세기들에 인류에게 갖은 잔인하고 추악한 짓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사람도 수천만 명을 고문 학살하고 심지어는 면죄부까지 팔아가며 악의 극치를 이루었지 아니하였습니까?
현재 독재국가들에서 행하는 모든 고문기법이 다 천주교에서 그 신자들에게 행하였던 고문기술을 배운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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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교가 예수교인데 그 교인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교회가 예수를 섬기는 종교입니까?
그것은 필경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인간 도살하는 도살신(屠殺神)의 종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읽으라고 주신 성경을 못 읽게 하고 읽으면 잡아서 죽이는 그러한 교회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입니까?
그리하여 여러 종교개혁자들이 카톨릭은 성경의 내용대로 믿는 참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가 아닌 것을 깨닫고 우리 기독교의 신앙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초대교회의 참다운 교리로 돌이키자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초대교회의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며 개혁한 것 아닙니까?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이야 우리 모두가 다 아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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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가 지난날 카톨릭교회가 인류에게 행한 잔인하고도 가증한 피의 역사를 아시는 분들은 다 분노하고 그 추악한 종교인 구교를 미워하고 배척하실 것입니다.
지각있는 여러 성직자들이 저 강력하고 무서운 마귀의(evil) 조직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여 몇백 년의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인류 역사학적으로 수도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며 종교개혁을 하여 여러 개신교회의 교단들이 생기지 아니했습니까?
카톨릭이 얼마나 사악하고 잔인한 거짓 종교인지는 인류역사적으로 다 기록되어 있고 또 여러분들도 밝히 알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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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러한 악령의 종교에서 빠져나와서 성경의 초대교회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개신교가 과연 돌아갔다고 여러분들은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개신교가 과연 초대교회의 교리로 성경의 가르침으로 완전히 돌아갔을까요?
정말로 개신교는 완전히 초대교회 교리로 성경 말씀대로 돌아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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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많은 분들이 개신교는 성경의 교리대로 완전히 돌아갔다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성경을 깊히 읽고 기독교 신앙교리에 대하여 진지하고 엄격하게 따지고 연구하는 소수의 신자들은 개신교의 교리가 성경에 있는 내용과 다른 것이 많이 있다.
잘못되어있는 점들이 많이 있다, 개신교가 많이 부패해 있다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왜 저 많은 교파들은 같은 기독교 내에서 존재를 하며, 교파들마다 서로 다른 교리와 해석을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과 회의를 느끼는 분들이 아주 소수이겠지만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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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떤 분들은 카톨릭이 왜 악한 종교 교회인가 카톨릭도 예수 믿는 교회이고 거기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는데 라고 강하게 불만하며 반문할 것입니다,
그렇게 의문하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이 글이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분들은 지난 2000년의 기독교사를 공부하시고 카톨릭의 교리와 신학은 어떠한 것인지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들은 이글의 제 1장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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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에서 어긋난 일부 잘못된 개신교 교리
나는 이 글에서 여러분에게 종교개혁 이후로 지금의 개신교가 카톨릭 교회의 거짓 교리에서 성경의 교리대로 돌아간 부분도 많이 있기는 한데 그 핵심적인 부문에 있어서는 여전히 카톨릭 교회와 똑같이 비성경적이며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진리와 다른 비진리가 여러가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또 개신교의 여러가지 교리들이 초대교회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 많이 변질이 되었고 부패하였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교리와 성경해석이 어떻게 잘못되어 있고, 개신교의 교리 중 어떠한 교리들이 초대교회의 진리에서 벗어나 변질이 되었는가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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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개신교 교회 지도자들이나 목사들이 가르치고 설교하는 내용들 중에서 어떠한 점들이 잘못되어 있는지 밝혀내겠습니다.
기독교가 예수님 제자들의 초대교회 시대를 지나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등장하면서 중세시대를 지나 종교개혁 시기를 거치어 현재의 개신교가 여러 교파로 발전하면서 어떠한 경로로 부패하고 변질이 되었는가를 논하여 보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전세계의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설교하는 내용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차차 성경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그러자면 성경의 구절들을 인용해야 하고 비교분석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현재 전세계 교회의 목사들이 행하는 성경해석과 가르침들 중에서 그 일부분이 성경에서 어긋나서 잘못된 엉터리 성경해석과 거짓 가르침을 지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올바른 진리와 비교하여 그들의 교리와 신학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비교하고 또 유심히 연구한다면 현재 개신교에서 가르치고 행하는 교리들과 교회 유전들 중에서 초대교회의 교리와 교회 유전들과 다른 점들을 많이 발견하고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또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분노와 거부감이 불일듯 일어나서 그야말로 머리뚜껑이 열려서 내가 서술하는 글의 내용을 자세히 주의깊고 진지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분노가 심한 분들은 욕설을 하면서 이 글의 내용은 이단이고 이 글을 쓴 너는 마귀다 사탄이다 라고 질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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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급하게 처음부터 너무 강하고도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등한시 하지 마시고 차근차근히 다 읽어 보시고 이 글 안에 인용되어 있는 성경구절들을 잘 찿아보면서 깊히 연구하고 난 후에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은 있고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많이 있는데, 예수는 믿고 싶어서 교회에 나가보니 여러가지로 실망을 많이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현재 교회들 안에서 행하여지고 일어나는 여러가지의 가증한 현상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과연 이렇게 추악해야 하는 것인지 하고 많은 회의와 분노를 느끼어(겔 9:4) 자기 혼자서 집에서 저 혼자 예배를 보고 혼자 신앙을 추구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남은자들이(롬 9:27)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혹 그러한 분들이 이 글을 만난다면 더욱 더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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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복음으로 돌이키는 제 2의 종교개혁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역이 모두 마치고 마지막 장(章)으로 들어가는 이 7000 년대, 새 천년이 시작하는 이 무렵 하나님이 약속하신 늦은비, 봄비의 장마비를(겔34:26), 소낙비를(슥10:1) 속히 부어주셔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의 구원의 역사가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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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때에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이 다른 때보다 5 배나 강하게 역사하신다 했습니다.
이제 얼마 아니가서 우리 인류에게 초대교회 때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보다 훨씬 더 강하게 하나님 능력을 부여 받은 수많은 선지자들과 사역자들이 출현할 것이고, 초대교회보다 더 많은 더 강한 표적과 기적들이 일어나며 종교개혁 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수도 없이 갈라지고 제각각 수도 없이 많은 교파들과 교리들로 난무한 바벨탑같은 이 혼돈하고 타락하고 변질된 기독교를 개혁하여 초대교회의 참복음으로 참진리로 하나의 교회로 개혁하고 통일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머지않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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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 예수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키라고 만드신 법을, 예수 그리스도가 12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초대교회의 복음을 성경에 쓰여저 있는 진리대로 온전히 회복시키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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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종교개혁 제 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한국교회 제 2의 종교개혁 해야 제 2의 종교개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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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 바벨론의 후예인 이라크가 온전히 멸망하는 예언
내가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여러분들의 피값을 내 손에서 (복음사역하는 손) 찾는다 하였읍니다.
또 새 천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늦은비(latter rain) 봄비의 성령의 장마비가(겔 34:26) 곧 내릴 이 즈음 이 시기에 우리의 갈 길은 바쁘기만 합니다.
어서 기름부음을 받은 능력있는 하나님의 일꾼들, 은사자(선지자)들이 많이 출현하여 이 변질되고 타락하여 태양신(바알신)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기독교를 종교개혁 하여서 초대교회의 교리로 진리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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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 바벨론의 후예인 현세의 이라크가 고레스의 (미국 대통령 George Bush) 군대에게 두 번이나 대패를 하고 Sadam Hussein 이(新 느부갓네살) 석유 판 돈으로 이룩하여 놓았던 현대의 바벨론 제국을 하늘 끝에서 온 미국 군대가(사 13:5) 무참하게 부수어 폐허로 만들어 놓은 시점에 우리가 와 있습니다.
육적 바벨론 후예들을 하나님이 벌하시고 다시는 한 국가와 민족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게 멸하시었습니다.
앞으로 이라크는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의 시아파와 수니파 종파들의 세력들 간에 분쟁으로 인한 종교적인 내전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보다도 국가와 사회가 훨씬 더 참혹하게 파괴될 것입니다.
옛 바벨론의 육적 후예인 이라크는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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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점에서 내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영적(靈的) 바벨론이(계17:5,18:2-3) 아직 때가 이르지는 아니하였으나 무너질 날이(계18:8-20)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아 과감하게 pen 을 들었습니다.
또 영적 예루살렘 회복의 때는 가까와 오고, 초대교회의 진리의 복음이 회복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는 한 엘리사의 제자로서(왕하 2:3) 예수 믿고 천국을 가려고 갈망하는 여러분들에게 몇가지 중요한 성경상의 교리들을 알려줄 것이 있어 부득불 펜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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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여러분들에 대한 나의 편지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message 라 생각하시고 인용되어 있는 성경구절들을 잘 찾아보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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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다음 장 제 1장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거나 이 블로그 페이지에난에 있는 제1장으로 이동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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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사도복음 선교회’ 에서 설교한 설교 모음집이 있습니다.
제 1 장: 초대교회 복음의 진리에서 멀어져 변질되고 부패한 기독교
바벨론 (Babylon)

바벨탑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17:5)에 기록되어 있는 바벨론이 무엇인지를, 무엇을 상징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바벨론이 비밀이라 하였으니 어떠한 비밀이 그 바벨론이란 이름 안에 숨기어져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기독교가 많이 타락하고 부패하였습니다.
현재 전세계 기독교에서 가르치고 믿고 행하는 교리와 교회 유전들을 예수님 당시의 초대교회와 비교하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 말씀에서 벗어나 많이 변질되고 부패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현상은 구교인 카톨릭에서나 신교인 개신교에서나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원조는 바벨론 종교이다.
우리가 카톨릭과 불교를 연구하고 비교하면 두 종교가 사촌지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두 종교가 여러가지 면에서 매우 흡사합니다.
너절하게 조각상이나 벽화를 우상숭배하는 것도 그렇고 카톨릭에서 쓰는 성물(聖物)이 절간의 중들이 쓰는 것과 같은 것들도 여럿 있으며 또 두 종교가 다 그 성직자들은 결혼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여러가지 성물들 중에 대표적인 것이 불교에서 중들이 염불 외울 때 쓰는 염주가 카톨릭 교도들의 Rosary 그리고 이슬람 교도들이 사용하는 Tesbih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세 종교가 다 근원이 고대 바벨론 종교에서 파생되었고 또 각각 자생하면서 발전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우상숭배 종교들, 귀신숭배 종교들은 다 근원지가 바벨론 왕국으로 그 초대왕이 니므롯(창10:8-9) 이었습니다.
인류가 노아홍수 이후로 방주가 머무른 아라랏산 기슭에서 부터 유브라데스강 유역을 따라가면서 남쪽으로 이동하였는데 그들이 함족을 중심으로 시날평야에서 수메르인들의 문명을 형성하면서 니므롯이 바벨론 왕국을 세우고 여러 도시들을(창10:10-12) 건설하였습니다.
인류문명을 최초로 일으키고 문명사회를 이룩한 Sumer인들은 함(Ham)족이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들 함족이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과 대항하려고 바벨탑을 쌓았는데 그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사방으로 흩어질 때에 그 니므롯왕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우상종교인 바벨론 종교도 같이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들 중 야벳족속들과 셈족속들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옛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그 바벨론의 우상종교가 불신(火神), 태양신인 Mithra 종교로 발전을 하였고 그 Mithra(미트라)신이 인도로 전파되어 힌두교로 발전을 하였는데 잘 알다시피 불교는 힌두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 불교가 중국등지로 전파되면서 전 동양의 정신세계를 지난 천 몇백 년 이상의 오랜 세월 동안 지배하게 되면서 전 동양을 우상숭배 사상으로 물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로 니므롯이 갑자기 처절하게 비명횡사한 후에 함족인 수메르인들이 셈족들에 의하여 바벨론 지역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함족들이 바벨론 지방에서 쫓겨난 후에 함의 아들 구스가 함족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이동하여 아프리카 대륙으로 들어갔는데 그 일부가 이집트에 정착할 때에 바벨론 종교가 애굽의 다신(多神)중 으뜸신인 태양신으로 발전하여 Amun Re 신 등이 되었읍니다.
야벳족속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그 바벨론 종교가 발전하여 희랍의 여러 다신교를 형성하였읍니다.
또 셈족과 함족 일부가 바벨론 지역에서 서쪽인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이동하여서 다신 중 으뜸인 바알신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수천 년 간 그렇게 끈질기게 숭배하던 신(神) 바알신이 된 것입니다.
니므롯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가 전 세계로 퍼지었는데 그 바벨론의 우상종교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이나 민족문화에 맞게 조금씩 변형되기도 하고 각 민족언어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바뀌기도 하였습니다.
또 여러개의 신들로 확산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다신들 중에서 니므롯의 부인과 아들도 후세 사람들이 우상으로 숭배를 하였습니다.
그 니므롯 부인의 우상숭배가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들이 섬겼던 아세라 여신이고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하늘의 여신이며(렘7:18, 44:17) 카톨릭에서 숭배하는 성모 마리아입니다.
아래에는 니므롯과 바벨론 종교에 관한 링크들이 있습니다.
니므롯과 바벨론 종교 (1) (동영상 강의) 강력 추천함 꼭 보시기 바랍니다
니므롯과 바벨론 종교 (2) (동영상 강의) 강추 꼭 보시기 바랍니다
니므롯과 바벨론 종교 (3) (동영상 강의) 강추 꼭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 | 카톨릭(천주교)와 불교의 공통점들
천주교와 불교의 공통점들 같은 점이 많은 불교와 천주교
바벨론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그리하여 노아홍수 이후로 니므롯의 바벨탑 시대부터 지금 바로 지금 21세기 우리 시대까지 세상 모든 민족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데 그 형태나 이름은 각 지방의 언어에 따라 조금씩 다 달라도 그 근본과 영적 의미는 다 같은 바벨론 종교입니다.
그래서 그 바벨론이 모든 우상숭배와 귀신숭배의 영적 대표자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서 (계17:5)에서 바벨론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한 것입니다.
그러한 바벨론 종교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이 중동지방을 침략하고 지배할 때에 페르시아에서 발전한 Mithra신이 다시 중동지방으로 역(逆)수출되어서 어머니 나라인 바벨론과 앗시리아에도 들어가서 종교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었습니다.
그러던 Mithra신이 다신교 종교의 로마제국 시대에는 로마 군인들의 수호신(守護神)으로 정치가들과 군인들 사회에서 으뜸신으로 자리를 잡아가다가 콘스탄틴 황제 때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하면서 Mithra 신 숭배자인 콘스탄틴과 태양신(Mithra, Apollo) 숭배자들인 로마제국의 지배세력들에 의하여 교묘하고도 은밀하게 바벨론 종교 교리를 예수교에 집어넣어서 천주교를 그 속내용이 바벨론 종교와 똑같은 우상 숭배하는 태양신 종교, 바알신 종교로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카톨릭은 바벨론 종교, 태양신 숭배하는 이방종교이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어떠한 종교인지 그 정체와 내막을 밝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로마 카톨릭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교인지 확실하게 그 교리와 교회 유전들을 조사하고 연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장(chapter)에서 왜 카톨릭이 태양신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인지를 자세하게 그 유래된 역사적인 사실들과 내막을 파헤치면서 밝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카톨릭의 모든 교리와 유전들을 살피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 내용들과 비교하고 또 조사와 연구를 하면 카톨릭은 성경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입니다.
성경을 기독교인들이 소유하거나 읽지 못하게 하였으며 라틴어 외에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카톨릭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종교 교리와 교회 유전들이 성경에 쓰어 있는 교리나 내용과 전혀 다른 것들이기에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으면 즉시 잡아서 고문하고 죽였던 것입니다.
지나간 세기들에서 카톨릭이 많은 기독교인들을 살해하였는데 역사가들이 말하기를 약 6000만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을 살육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것이지요.
사오백년 전에 저 사악한 바벨론 종교, 태양신 숭배하는 이방 종교인 카톨릭을 타파하고 예수를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의 진리대로 인도하고자, 또 초대교회의 교리로 돌아가고자 하여 여러 종교 개혁자들이 카톨릭을 배척하고 종교개혁을 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를 중심으로 하여 쯔빙글리, 칼빈, 웨슬리등 여러 지각있는 성직자들이 저 강력하고 무서운 사탄의 조직 로마 카톨릭교회에 (the Roman Catholic Church) 대항하여 몇백 년의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인류 역사학적으로 수 백만도 더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며 종교개혁을 하여 여러 개신교회의 교단들이 생기지 아니했습니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등이 생겨났지요.
카톨릭이 얼마나 사악한 거짓 종교인지는 인류 역사적으로 다 기록이 되어 있고 또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세기들에서 카톨릭이 인류에게 자행한 악행과 잔혹한 범죄는 굳이 기독교 종교사나 기독교 변천사를 공부 안하여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중고등 학교 세계사에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세계에 수억 명의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악독하고 잔인하였던 거짓 종교를 믿고 추종하는지 참으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악령의 종교에서 빠져나와서 성경의 초대교회 열두사도들이 전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개신교가 과연 온전히 돌아갔다고 여러분들은 생각하십니까?
아래에는 천주교가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가 아니라 태양신을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라는 것을 말하여 주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수록하였으니 참고로 읽어보세요.
비밀이라 큰 성 바벨론
로마 카톨릭의 기원 바벨론의 종교 -1 바벨론의 종교 – 2 카톨릭과 바벨론 종교
현대판 바벨론 신비 종교 – 천주교 기독신앙과 미트라교의 통합 카톨릭은 음녀의 종교
로마 천주교와 바벨론 종교의 ‘여신 숭배 사상’ 로마 카톨릭 주의의 정체
바벨론 종교를 계승한 로마 카톨릭 사단의 회 로마 카톨릭 카톨릭의 태양신 숭배 행태
로마 카톨릭 = 미트라교 + 조로아스터교 영향 받은 기독교 = 황제를 위한 종교
로마 천주교와 바벨론 종교의 ‘여신 숭배사상’ 바벨론 종교를 행하는 이단, 사이비
기독교에 들어온 이교주의를 아십니까? 미트라 태양신과 카톨릭 (National Geographic 동영상)
Babylon Mystery Religion – Ralph Woodrow
The Two Babylons by Alexander Hislop
Alexander Hislop – The Two Babylons (유명한 책)
The Two Babylons From Wikipedia
The book BABYLON MYSTERY RELIGION from Ralph Woodrow
구교인 카톨릭의 정체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이다.
서기 313년에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칙령에 의하여 생겨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정식으로 세상에 등장하면서부터 12사도들의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진리의 참교회는 그 세력이 점차 쇠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서기 688년 경에 12사도들이 전한 사도복음의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교회는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 로마카톨릭 교회가 기독교 세계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읍니다.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엡2:2)
로마 카톨릭 교회가 멸망한 서로마 제국을 영적으로 대신 역할하면서 지난간 세월 1000년 이상을 종교, 정치, 문화, 사회등 전방위로 그 힘을 휘두르며 절대 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엄청난 영적 해악을 우리 인류에게 끼쳤던 것입니다.
서기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였으나 그 무너진 육적인 로마제국이 로마 카톨릭 교회라는 영적 존재로 둔갑하면서 그 영향력을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톨릭교회는 때와 법을 변개하고 저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하며, 서기 321에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일요일 휴업령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바꾸어 요지부동의 교회 유전으로 만들어 놓고 우리 인류에게 갖은 추잡한 우상숭배를 하게 만든 니므롯의 바벨론 종교입니다.
서기 1200년 경부터 서기 1800년 경까지 약 600 년 동안 카톨릭 종교재판 (inquisito) 때에 6000만명 이상의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살육하였습니다.
기실 예수교를 탄압하며 성도들을 학살하였던 로마제국 황제들과 똑같이 오히려 비교도 안될만큼 엄청나게 더 많은 숫자의 예수교 신자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종교재판 기간에만 6000만명이고 초대교회 때부터 학살한 숫자을 더하면 훨신 더 많은 사람들이 카톨릭에 의해 살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천 만명의 초대교회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카톨릭이 살육한 모든 사람들의 숫자가 일 억명도 훨씬 넘을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하나의 단일 종교가 그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살육한 예가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유일합니다.
카톨릭교회가 지난 세기들에서 자행한 인류살생과 온갖 악하고 추악한 범죄와 비리들 그리고 그 교황들과 사제들의 난잡한 성범죄들은 다 인류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많은 역사적인 증거와 자료와 서적들이 있으므로 이 세상 아무도 부인할 수 없고 또 여러분들도 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카톨릭 교회사를 기술한 많은 문헌들과 역사적 자료들을 보면 쉽게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 자료들과 문헌들을 보면 지나간 세기들에서 카톨릭교회가 자행한 비리와 범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무도하고 추악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제국과 로마카톨릭의 조직이 얼마나 강한지는 (단2:40)에 예언으로 나와 있습니다.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빧을 것이며.
지금도 카톨릭이 온 인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밝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래의 링크는 교황이 루시퍼를 찬양하는 동영상
바티칸 부활절 철야미사의 충격] / 카톨릭 교황이 루시퍼를 칭송하는 영창(한글자막)
태양신을 상징하는 석탑, Obelisk
카톨릭이 태양신 숭배하는 종교인지를 가장 단적으로 상징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로마 Vatican City 에 여러개가 있는 obelisk 입니다.
그 obelisk 들 모두가 수천 년 전에 애굽 사람들이 만들어 이집트 Karnak 의 태양신 “Re” 신전 앞이나 태양신 도시인 Heliopolis 의 태양신 신전에 설치하여 세워놓았던 것을 로마 황제들과 카톨릭 교황들이 수백, 천 몇백년 전에 그 크고 무거운 obelisk들을 배로 육지로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아프리카 대륙 이집트 태양신전에서 운반하여 이탈리아 반도 로마 바티칸시에 가져다 세워놓았읍니다.
베드로사원 앞에 있는 바티칸 광장 가운데에도 있고 카톨릭의 모태 성당인 성 요한 라테란 성당 앞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진이나 비디오로 자주 보는 바티칸시 베드로 광장 중앙에 서있는 석탑이 바로 수천년 전에 이집트인들이 만들었던, 이집트 태양신 신전에 있었던 obelisk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잘 해보세요.
어떻게 예수를 믿는다는 종교의 교회가 태양신을 상징하는 조각우상인 obelisk를, 니므롯의 남근을 상징하는 돌우상 석탑을 교회 앞에다 세워놓을 수 있습니까?
그것도 애굽의 최고 신인 태양신 Ra신전에 있었던 것을.
그러한 태양신을 상징하는 돌우상을 교회 앞에 세워놓는 종교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입니까?
십계명 중에 두번째 계명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카톨릭은 하나님의 십계명 중 두번째 계명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2 번째 계명인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지 말라”를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헛맹세를 하지말라”로 바꾸었습니다.
십계명도 제멋대로 카톨릭 입맛에 맞게 내용과 순서도 바꾸고 하면서 하나님의 헌법을 유린하고 훼손시켰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무슨 이유로 카톨릭 교회가 그 무거운 태양신을 상징하는 애굽의 태양신 신전앞에 있었던 돌석탑 obelisk 들을 로마 카톨릭 본산인 성 요한 라테란 성당 앞에와 베드로 광장 중앙에 세워놓았는지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예, 바로 카톨릭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Obelisk는 태양빛을 상징하기도 하고 남근(男根)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그 옛날 인류 최대의 정력가인 고대 인류의 영웅 니므롯의 남근을 여자들이 그리워하고 사모하며 숭배하던 것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아래에 로마시에 있는 obelisk 석탑에 관한 링크가 있으니 클릭하여서 참고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obelisk 석탑의 사진들이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 위키백과 List of Obelisks in Rome
오벨리스크 석탑의 정체 / 바알신 숭배 로마에 있는 obelisks / PBS TV 방송국






카톨릭을 탄생시킨 로마황제 콘스탄틴
인류를 멸망의 구덩이로 집어였는데 제일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틴 대제입니다.
저가 그 당시 끊임없이 핍박당하던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함으로 많은 기독교 역사가들이 저를 칭찬하고 있으나 사실 내막을 알고 보면 그 자가 예수교의 숭배대상을 예수 그리스도에서 태양신으로 바꾸어 놓는데 초석을(foundation) 놓은 자입니다.
그 자는 당시 미트라 태양신(Mithra)을 숭배하는 자였었는데 태양신 종교와 바벨론 종교를 예수교에 접목시키어 천주교(Catholic Church)를 탄생시킨 자입니다.
온 인류를 우상숭배로 망하게 하는 일에 일등공신입니다.
그러한 엄청난 내막을 알지 못하는 개신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설교시간에 가끔씩 콘스탄틴 황제를 칭송하는 행태가 정말로 슬픈 비극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콘스탄틴이 태양신 숭배자인 것하고 우리 개신교 신자들하고 무슨 관련이 있느냐?
예,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깊게 관련이 있습니다.
태양신의 유래
태양신은 고대 인류가 어느 민족 사회에서나 숭배하던 신입니다.
낮을 환하게 밝히는 태양빛과 식물을 자라게 하여 인간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태양빛은 미개하였던 고대 사람들에게 강렬한 신의 존재였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지고 나서 얼마 후에 하나님의 진노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바밸론 탑 기획자, 고대 인류의 영웅 니므롯이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서 태양이 되었는데 인류의 삶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기 위하여 태양빛으로 환생하였다는 신화가 전해 내려오면서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바벨론탑이 무너진 후 얼마 후에 진노한 하나님이 니므롯을 처참하게 쳐서 죽였는데 니므롯이 죽은 후 그들의 살아있던 전설, 인류의 영웅 니므롯의 죽음을 사람들은 아주 많이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영웅 니므롯을 죽인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워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들에 있었던 맹수와 자연의 재해로 부터 보호하고 안식처를 제공하였으며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희대미문의 영웅 니므롯, 그 사모하던 영웅이 인류의 삶을 위하여 태양빛으로 환생하여 사람들에게 비추니 신으로 숭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숭배하고 사랑하였던 그 니므롯이 죽어 하늘로 올라가서 태양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사람들에게 퍼지고 전승되면서 태양은 니므롯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는 특히 유럽과 중동지방에서 태양을 섬기고 기리는 날이 생겨났는데 그 날이 바로 일요일, Sun-day 입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사람들이 태양을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무적의 태양” 이라고 불렀는데 라틴어로는 Sol Invictus , 영어로는 Invincible Sun 혹은 Unconquered Sun 이라고 합니다.
그 무적의 태양은 니므롯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이길 수 없는 니므롯을 가리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니므롯을 이길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진노로 죽은 니므롯이 하늘로 올라가 태양으로 다시 환생하였으니 하나님도 니므롯을 이길 수 없고 영원히 죽지 않고 정복될 수 없는 니므롯의 태양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 신의 이름이 Invincible Sun 이 된 것입니다.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신(神), 무적의 태양신이라고 사람들이 불렀던 것입니다.
아래에는 그 무적의 태양, Sol Invictus 에 관한 링크들이 있습니다.





미트라 태양신, Sol Invictus



인류가 우상숭배를 시작하게 된 동기와 시기
인류역사상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나서 우주를 창조하신 신인 하나님외에 다른 신이나 대상을 사람들이 섬기고 숭배하는 우상숭배는 니므롯 때부터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사상이나 종교가 없었습니다.
단순히 사람들이 타고난 본성이 악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섬기려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모든 악하고 추한 탐욕을 채우려고 갖은 악한 짓을 다 부리면서 살았습니다.
특히 노아홍수 이전의 인간사회는 오늘날과 같이 인간사회의 법 질서와 도덕과 규범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로 강한 자가 약한 자들을 강탈하는 양육강식의 무자비한 정글 법칙의 사회였습니다.
성도덕이란 존재하지 않던 시대라 자기 가족들 간에 성행위와 결혼은 일반적인 것이었고, 기후도 따듯하였던 지구환경 탓에 옷도 잘 입고 다니지 아니 하였습니다.
집에서 옷 안입고 나체로 일상생활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당시의 여자들은 오늘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예쁘고 아름다웠는데 강한 남자들이 가지고 싶은 여자들을 힘으로 무한정 거느리고 살던 사회였습니다.
당시 인간 평균 수명이 800년 900년 하던 시대이므로 인간의 육체 조건과 상태가 지금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였으며 모든 신체 구조와 세포가 지금 사람들보다는 10배는 더 강하였던 것입니다.
노아홍수 이후로도 벨렉시대 바벨론탑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인간 평균수명이 400-500년이었습니다.
바벨탑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수명이 사오백 년이었습니다.
바벨탑사건으로 진노한 하나님이 사람의 수명을 200년 이하로 줄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니므롯이 100세 전후에 바벨탑을 쌓았는데 당시 인간 연령이 400-500살이었으니 지금 사람으로 보면 30세 전후의 청년이었으며 육체의 힘도 보통사람들의 몇배였다고 하니 아마 지금 사람의 10배도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두뇌는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초인적의 천재였습니다.
고대 인류의 영웅 ‘니므롯’
니므롯은 노아홍수 이후로 인류에게 엄청난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니므롯은 당시 인류 최대의 천재로서 수학에 능통한 과학자이고 발명가였습니다.
고대 최초 인류 문명이 유프라데스강 유역에 발생한 Sumer 문명이었는데 그 ‘수메르’ 인류문명의 창립자이며 바벨론 왕국을 건설한 인류 최초의 왕이었습니다.
인류 최초로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며 당시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았던 맹수와 들짐승들로 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외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도시 외곽으로 성벽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아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 산에서 내려와 다른 방향으로 가서 집단 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사람들과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다른 곳으로 가서 정착하였던 이방인들이 ‘수메르’ 지역의 풍부한 식량과 물산을 탐내어 끊임없이 침략하였었는데 니므롯은 모든 침력자들을 물리치고 다 때려 부수고 ‘수메르’ 사람들을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더 나아가서 이웃 나라들과 부족들을 그의 힘과 지략으로 다 무너뜨리고 메소포타미아 전 지역을 다 정복하고 여러 도시들을 건설하였고 하나의 통일 왕국을 건설하였는데 그것이 인류 최초의 왕국이었으며 그 이름이 바벨론 왕국 ( Babylonia ) 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도 인정하셨던 강한 전사요(mighty warrior) 군인이었던 것입니다.
농사를 과학적이고 조직적으로 짓는 방법도 니므롯이 연구하고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니므롯은 그외에도 여러가지로 인류에게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모든 ‘수메르’ 문명이 다 그의 신적인 두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류 최초로 들짐승을 사냥하여 육식하는 것을 가르치고 동물의 고기를 사람들에게 식량으로 먹게한 사람입니다.
들짐승들을 길들이고 가축으로 기르게 하였습니다.
야생의 말을 길들여 사람이 타고 다니게 하였으며 전쟁할 때는 엄청난 속도와 위력을 발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다 초식을 하였는데 니므롯이 처음으로 동물을 잡아 불에 구어 먹는 것을 가르치고 보급을 하니 농산물로 부족하고 단조로웠던 식량을 풍성하게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창10:8-9)에서 니므롯을 낳았으니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mighty warrior, mighty one) 그가 여호와 앞에 특이한 사냥군이(mighty hunter) 되었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육식 맛을 알게 되니 초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양한 음식문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불로 생고기를 구워서 요리하고 맛을 내는 방법도 니므롯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생고기를 굽고 요리하는 불, 밤에 추위로 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따듯하게 하는 불 그리고 캄캄한 밤을 밝혀주는 불이 니므롯의 것이라 생각하여 불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니므롯은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초인의 재질을 가진 자였습니다.
지능도 모든 분야에서 팔방미인으로 천재였으며 신체도 크고 강인하였으며 그 욱체의 힘이 보통 사람보다 몇배가 강하였습니다.
그는 철인(鐵人)의 경지를 넘어서 신(神)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니므롯 살아 생전에 이미 니므롯을 신으로 숭배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니므롯에 대한 인기와 숭배는 과히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김일성이를 신으로 숭배하던 북한 사회와 북한 백성들의 김일성 신격화 숭배와는 그 본질에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이는 전부가 날조된 거짓 신화를 바탕으로 김일성이가 인위적으로 강압적으로 국민들이게 심어준 우상숭배였으나, 니므롯의 우상숭배는 실제적인 니므롯의 인류에 대한 공헌과 업적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난 우상숭배였던 것입니다.
김일성이는 한국전쟁을 일으켜 수백만명의 죽음을 초래한 동족상잔의 살인자이고 온 북한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 압제한 폭군이 었으나 니므롯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보호하였던 위대한 인류의 영웅이였던 것입니다.
아래에는 니므롯과 바벨론 종교 동영상 강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니므롯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절대적인 인기와 숭배를 받었던 니므롯은 그 마음에 교만이 차기 시작하고 그 교만이 극에 달하니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비기고 동등하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결국에는 자기가 하나님과 비교하여 못하지 않다고 착각하면서 노아홍수로 인류를 멸망케 한 하나님에게 대한 심한 원한과 반감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대적을 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는 하나님과 대항을 하겠다고 사람들을 동원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사람들도 니므롯과 같은 생각으로 동조하면서 바벨론탑을 쌓는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같이 하나님이 언어혼잡을 일으켜 바벨탑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벨탑 붕괴 이후로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이동을 하였는데 그 때에 니므롯을 숭배하는 태양신 종교도 같이 가지고 떠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각 지역마다 나라와 문명을 이루었는데 그들의 종교는 주로 자연을 숭배하는 샤마니즘의 원시종교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으뜸신은 거의가 다 니므롯을 숭배하는 태양신 또는 불신이었습니다.
아래에 니므롯에 관한 internet site들을 수록하였으니 링크를 클릭하여 참고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니므롯 / Jewish 백과. 니므롯 / Wikipedia 백과. 바알신 / Wiki 백과
니므롯 그는 누구인가? / Bible 백과. 니므롯 / Catholic 백과.
니므롯과 바벨탑 / Israel History. 바벨론 / Wiki 백과. 바벨탑 / Wiki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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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므롯




페르시아에서 발달한 태양신 Mithra
당시 태양신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으뜸신으로 사람들이 모시었습니다.
이집트의 태양신과 페르시아의 불신이 대표적인데 심지어는 중남미 멕시코나 페루의 원주민들도 태양신을 최고의 으뜸신으로 숭배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카톨릭 교회에 제일 많이 영향을 준 태양신은 페르시아에서 발달한 Mitra신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태양신 종교들 중에서 미트라신이 니므롯의 모습(image)과 영감을 제일 잘 재현하였기 때문입니다.
옛 로마제국 지역이나 서아시아나 이란 지방에서 많이 발견된 미트라신의 조각상이나 벽화들을 보면 생전의 니므롯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몸집이 크고 강인하며 얼굴이 잘 생긴 청년의 상은 니므롯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Mithra신 숭배종교는 바벨론에서 니므롯을 숭배하던 우상종교가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하여서 4000년경 전 인도-이란의 불의 신 또는 태양신이 되었습니다.
‘미트라’신이 세월이 가면서 인도에서는 힌두교로 발전하며 여러 다신교를 형성하였고 옛 페르시아 지방에서는 절대적인 불신, 태양신으로 군림하며 후일 조로아스터교의 모체가 되기도 하였읍니다.
기원전 300경에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 후 미트라 종교는 희랍 군인들에 의하여 소아시아와 중동 지방으로 전파가 되어 한동안 소아시아 지방의 최대 종교로 발전하였는데 로마제국이 소아시아와 중동지역 전체를 정복하고 통합한 후 주로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로마제국 전 지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아래에 무적의 태양 링크와 image가 있습니다.





니므롯의 무적의 태양, Sol Invictus 그리고 Mithra
미트라 신은 기원후 1세기부터 서기 300년초 콘스탄틴 황제가 등장할 때까지 로마 제국의 최대 종교로 거의 모든 로마의 정치 세력가들과 군인들의 수호신이였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이 전설에 나오는 초인적인 군인(軍人, mighty warrior) 니므롯을 그들의 수호신으로 숭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천하무적인 니므롯의 신 곧 미트라를 로마 군인들은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전장에서 모든 외적들의 위험으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신 Mithra, 니므롯을 그 무적의 태양을 Sol Invictus 를 절대적인 수호신으로 로마 군인들은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Maxentius 군대와 밀비우스 다리에서 전투할 때에 그 무적의 태양이 하늘에 십자가상으로 나타나서 콘스탄틴을 도와서 승리를 하였다고 믿고나서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제국 국교로 공인하면서 그 무적의 태양은 전 로마제국의 수호신이 된 것입니다.
그 무적의 태양이 ‘예수’ 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로마 카톨릭이라는 종교 안에 은밀히 숨어서 공식적으로 하나님과 대적을 하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으면서 하나님에게 대적하다가 죽임을 당하여 다 이루지 못한 하나님과의 영적 전쟁을 니므롯이 죽고 나서도 카톨릭과 개신교 안에 들어와 지금도 인류를 속이며 하나님과 대적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은밀하고도 엄청난 비밀 아닙니까?
이러한 엄청난 Mystery 이기에 (계17:5)에서 비밀이라 한 것입니다.
아래에는 미트라교와 미트라의 동상과 벽화들이 있습니다.








미트라 신전의 벽화에서 발견된 미트라상
미트라신 종교와 예수교
그 미트라신 종교가 예수교와 기본적인 교리에서 비슷하거나 흡사한 부분이 여러 개가 있었고 또 미트라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출신 배경이 유사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콘스탄틴과 그의 지지세력인 모든 로마의 정치가들과 부호들, 군인들의 후원아래 로마제국이 예수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로마제국의 지배종교인 미트라교를 예수교에 그대로 전수하게 하였습니다.
미트라교 교리 중 몇 가지 교리가 예수교와 비슷하므로 종교의 신 이름만 Mithra에서 예수로 살짝 바꾸었던 것입니다.
바벨론 종교에서 유래한 삼위일체 교리 – 아버지인 니므롯, 아들인 담무스와 어머니인 아스타롯 여신.
카톨릭의 성모 마리아 여신이 남자와 육체관계 없이 아들을 낳았는데 예수이며 그 예수의 아버지가 니므롯입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바벨론종교의 삼위일체설을 예수교에 집어넣어서 거짓 예수교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껍데기 허울은 예수 이름을 내세워 예수교처럼 꾸몄는데 그 안에 속알맹이는 완전한 바벨론 종교이고 미트라의 태양신 종교입니다.
그러한 카톨릭 교회의 속알맹이 바벨론 종교 교리 중에서도 개신교가 핵심적인 여러 바벨론 교리들을 전승하여 믿고 행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카톨릭이 우상숭배 하는 종교다 비성경적인 거짓 종교다 하여 카톨릭과 대항하고 힘겹게 싸워서 떨어져 나온 개신교가 그 카톨릭의 핵심 바벨론 종교 교리들을 성경적인 검증과 여과없이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도 개신교 교인들이 열심히 믿고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mystery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미트라신의 출신배경이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하며 또 그 미트라 종교의 교리가 예수교와 비슷한 것이 있는지.
그리하여 예수교의 교리의 내용을 태양신인 미트라 종교의 교리로 바꾸는데 아주 자연스럽고도 쉽게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17:5)에서 비밀이라(뮈스테리온 -희, 남이 알수 없게 되어있는 사실) 큰 바벨론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Mithra교가 예수교에 그대로 접목하여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지켜오던 태양신을 섬기던 날의 일요일 숭배과 미트라신 생일을 기념하는 12월 25일 그리고 니므롯의 부인 Ishtar 여신의 부활절을 교인들에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천주교의 모든 교리와 유전은 미트라 종교와 똑같습니다.
그 천주교의 모든 속내용은 Mithra 교리와 그외 여러가지 바벨론 종교의 교리가 종합적으로 섞인 바벨론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와 불교는 그 둘의 근본이 같은 것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사촌지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천주교에서 갈라선 개신교는 성모 마리아 숭배같은 여러가지 바벨론 교리와 유전은 버렸는데 Mithra신의 날 이라고 하여 Mithra교인들이 부르던 “주의 날(Lord’s day)” 의 일요일 숭배와 태양신 생일인 12월 25일과 Ishtar 여신의 부활절은 버리지 않고 그대로 전승하여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십계명 중 하나를 사람의 계명으로 바꾸어 불법을 행한 자들로 만들어 온 인류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과 진실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아래에 참고가 되는 사이트들을 링크로 적어 놓았으니 읽어 보시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로마 미트라교(태양신 교)의 제일(祭日)이었던 일요일(Sunday)이 기독교에 유입된 역사
무적의 태양신 생일 / 위키 백과
이방종교의 영향을 받은 기덕교의 절기들 크리스마스의 역사적인 유래
크리스마스와 12월 25일 – 역사 속에서 위조된 어두운 이면들
기독교와 미트라 종교 / 위키피디아 백과, 미트라 종교 / 카톨릭 백과사전,
미트라 종교와 기독교 / Truth to Be Known, 미트라신종교, 미트라신의 비밀,
12월 25일은 Mithra 신의 생일 Mithra / 네이버 백과 Mithra 교와 초대교회
Jesus as Sun throughout the History
이슬람은 로마 카톨릭의 작품
서기 300년 초부터 서유럽과 동유럽 지역에서는 로마황제 콘스탄틴으로 부터 생겨난 카톨릭에 의하여 초대교회의 믿음과 교리는 서서히 시간을 두고 바벨론 종교로 완전히 변하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슬람교는 7세기에 로마 카톨릭이 초대교회 교리를 신봉하는 교인들을 말살하기 위하여 날조하여 만들어 낸 거짓 종교인데 니므롯의 부인 세미라미스를 여신에서 (달신, moon god) 남신으로 바꾸어 숭배하는 또 하나의 바벨론 종교입니다.
7세기 초에 로마 카톨릭은 거의 전 서유럽과 동로마 제국 지역을 바벨론 종교화 하여 자기 세력으로 정복하였는데 유독히 일부 터키지방과 중동지역 그리고 특히 북아프리카에 있었던 초기 기독교인들을 로마 카톡릭의 태양신 교리와 세력으로 포섭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당시 그 지역에서 신앙생활 하던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12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 복음에 충실하여 바티칸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예배일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방 그리스정교 교회와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방 그리스정교와 그 세력 안에 있는 동남부 유럽과 그외 여러 지역들에 바티칸이 힘을 뻗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터키지역과 중동지역,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초대교회의 신앙을 지키던 초대교회 기독교 인들을 카톨릭의 바벨론종교 교리로 개종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티칸이 제일 미워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여겼던 기독교인들이 바로 중동지역 일부와 북아프리카의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특히 북아프리카에 있었던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로마카톨릭에 의하여 성경의 하나님 말씀이 바벨론 종교의 이방신 숭배로 변질된 교리를 배척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12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 복음을 충실하게 지키었던 참 그리스도인들(True Christians)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고심끝에 바티칸에서 한가지 계락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아랍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강력한 새로운 바벨론 종교를 창시하여 야만적인 아랍사람들을 충동하여 라이벌인 숙적 그리스 정교를 무력화시키고 초대교회 기독교인들과 유태인들을 말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티칸이 예루살렘을 소유하는 것이였습니다.
카톨릭 수녀였던 아라비아 여인 카디자를 통하여 마호멧트라는 거짓 선지자를 만들어내고 Islam교라는 달신(세미라미스, 아세라 여신)의 종교를 창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서히 살육, 약탈과 방화 그리고 전쟁에 능숙한 이슬람 무력에 의해, 저 무식하고 무자비한 아랍사람들에 의하여 북아프리카, 중동지역, 그리스와 일부 동유럽과 페르시아와 중앙 아시아는 참혹하게 초토화되었습니다.
저 들나귀와 같은 (창16:12) 무식하고 야만적인 무지막지한 이스마엘 자손들의 힘을 이용하여 엄청난 숫자의 초대교회 교인들과 유태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하고 동방교회 세력을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카톨릭이 이슬람교를 이용하여 초기 기독교인들과 동방정교회 일부를 이슬람교의 무력으로 무참히 궤멸시켰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카톨릭이 계획하였던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계획은 수세기에 걸쳐서 실현되었습니다.
서서히 Islam교의 무자비한 전사들에 의하여 초대교회의 신앙을 지키던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거의 다 학살을 당하고 일부 살아 남은 교인들은 공포에 떨며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바티칸과의 계약을 위반한 이슬람 세력을 응징과 보복하려고 바티칸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남은 초대교회 교인들과 유태인들을 또 무참하게 살육합니다.
그리하여 서기 서기 600년대 말경 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진리의 복음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합니다.
서기 1900년대 중반까지 1260년간 이 땅위에 완전 영적 가뭄이 들어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바벨론 종교의 우상숭배가 온 인류를 지배하게 됩니다.
아래에는 이슬람 종교의 기원과 정체를 밝혀주는 참고 자료들
이슬람교의 기원과 정체 (특강) / 노우호 목사
How The Catholics Created Islam By Walter Veith
이슬람은 태양신교, 이슬람은 로마카톨릭이 만들었다
이슬람과 로마카톨릭의 여신숭배
바티칸이 만든 종교 … 이슬람
초대교회의 진리에서 변질되어 바벨론 종교의 바알신 우상숭배로 탈바꿈해버린 천주교와 개신교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리스도 복음이 로마제국의 방대한 지역으로 퍼지면서 교회가 세워지었고 또 여러 민족들에게 여러 민족의 언어들로 전파되었고 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14사도들, 선지자들, 장로들, 교회 감독들, 교사들 – 엡4:11) 있었지만 다 한 하나님 안에서 한 교리로 한 성령으로 한 교파를 이루어 부흥을 하였습니다.
그 초대교회는 어느 한 사람이 교회 전체를 운영하고 통솔하고 군림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12 사도들을 중심으로 많은 수의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로 구성이 되어서 한 성령 안에서 서로가 화합하고 교제하며 연합하고 도우면서 전도사역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열악하였던 환경과 원시적인 운송수단에도 불구하고 12 사도들의 복음은, 초대교회의 복음은 전혀 변질되거나 부패하지 아니하고 로마제국의 모든 지역으로 똑같은 하나의 교리로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여러 교파들로 나누어지지도 아니하였고 하나의 교파로 하나의 교리로 부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주가 되시어서 각 지역의 교회들마다 성직자들마다 성도들마다 다 똑같은 하나의 교리로, 똑같은 성경해석으로 구원역사를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처럼 수백, 수천개의 교파로 나누어져 제각각 교파마다 다른 교리와 성경해석을 하는 혼란하고 무질서한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예외적으로 모세를 대적한 고라당처럼 당을 짓고 12사도복음 교회에서 나갔던 사람들은 적 그리스도가(요일2:18,19) 되어서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고 다시는 장자들의 총회에(히12:23) 들어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성령충만하였던 일곱집사(행6:5) 중 하나인 니콜라(계2:7, 2:15) 였습니다.
그리고 그 초대교회에서 당을 짓고 나가서 진리교회를 대적하였던 적그리스도의 배도자들은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으며 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세력도 크게 자라지 못하고 금방금방 소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진리의 사도복음은 로마 카톨릭이 등장할 때까지 약 삼백년 동안 그 세력이 날로 부흥하여(행2:27, 12:24)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무서운 로마 황제들의 핍박과 학살 그리고 맹렬한 유대인들의 시기 속에서도 전혀 굴하지 아니하고 날로 세력이 왕성하여(행24:5, 28:30-31) 하루에 제자가 3000명(행2:41) 5000명(행4:4)으로 늘면서 부흥하였습니다.
그러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느 시점부터 그러니까 서기 300년 초부터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히 변질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법을 바꾸어 가며 (살전2:3-4, 2:7-8) 로마 카톨릭이 서기 300년 초부터 세상에 등장하면서 바벨론 종교로 즉 바알신을 섬기는 종교로 변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알신 숭배하는 카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개신교가 바알신 숭배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알게 모르게 바알신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에 바알신에 관한 링크들
혼돈의 개신교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3,4,7-12).
위 구절들에 나오는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은 로마 카톨릭의 교황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독교 교회사를 잘 살펴보면 개신교가 탄생한 유래를 누구나 다 쉽게 명확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 개신교의 유래는 다 아는 역사적인 사실이라 자세히 서술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오백 년 전에 저 사악한 이방종교 카톨릭(바벨론 종교)에서 빠져나와서 예수를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성경말씀의 진리대로 인도하고자 또 초대교회의 교리로 돌아가고자 하여 여러 지각있는 성직자들이 저 강력하고 무서운 사탄의 조직 로마카톨릭에 대항하여 몇백 년의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인류 역사학적으로 수백 만 수천 만 명이 목숨을 잃어가며 종교개혁을 하여 여러 개신교회의 교단들이 생기지 아니했습니까?
마틴 루터를 중심으로 여러 성직자들이 구교를 개혁하여 신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신교가 또 여러 개신교 교파들로 나누어져 발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개신교 신학자들이 기독교의 신앙과 교리를 새롭게 정립하고 발전시키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정의가 사탄의 악을 이기고 승리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개신교는 이방종교인 구교에서 떨어져 나와서 초대교회의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교리로 돌아갔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공하였다고 모든 개신교 교인들이 다들 믿고 있는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개신교는 초대교회의 진리로 돌아갔으며 우리 개신교인들은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개신교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몇 가지 초대교회와 분명히 뚜렷하게 다른 이상한 점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한 교파의 교회로 그리고 한 교리로 성장하고 부흥하였습니다. (엡4:3-6)
그러나 개신교회는 수백 개 수천 개의 교파로 나누어져 있고 교리도 교파마다 제각각 달리 주장하여서 그 교리들 자체가 정말로 혼잡하고 어지럽습니다.
어느 개신교 신학자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개신교 내에 약 15,000개의 교파가 있다고 합니다.
또 초대교회와 달리 서로 대립과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한 교파 안에서도 또 수십 혹은 수백개의 교단으로 다시 갈라져 있습니다.
한국 장로교만 하여도 그 교파 안에 150개의 독립된 교단들이 따로 있습니다.
크게 나누어 로마카톨릭과 희랍정교회의 두 파로 구성된 구교보다도 여러 가지로 그 양상이 오히려 더 많이 많이 어지럽습니다.
좀 점잖치 못한 표현을 하자면 “개신교, 정말로 엉망진창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는 초대교회의 모습이나 상태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라 했는데 개신교가 이렇게 난잡하고 어지러워서야 되겠는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분명히 성경에는 교회(골1:18)가 하나이고 말씀이 하나이라(엡4:4-6) 했는데 어찌하여 지금의 개신교는 교회와 말씀이 수백, 수천, 수만개로 분열되어 있는가?
수백, 수천 개의 교파로 나누어져 아우성치는 개신교는 확연히 초대교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고 이것은 분명 무엇이 잘못되어도 아주 많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초대교회와 그 모습이 달라도 너무도 많이 다른데, 어느 교파가 진짜이고 어떤 교파의 교리가 진리인지 왜 이렇게 많은 교파가 필요한가 왜 개신교는 하나의 교파로 뭉치고 통합하지 않고 분열하는가?
혼돈의 세계 그 자체가 아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거나 의문을 가지고 알고 싶어하거나 연구하는 개신교인이 안타깝게도 지금 이 세상에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 때를 보십시요.
다 하나의 교리로 하나의 교파 안에서 사역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였지 오늘과 같이 수백, 수천 개의 교파와 교단이 난립하며 서로 다른 교리들을 주장하며 서로 저희들끼리 비난하고 다투며 아우성치는 것이 아니었지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고 법의 하나님입니다.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지요.
이것은 분명히 바벨탑 그 자체입니다.
바벨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언어혼잡이라 하였지요?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한없이 혼잡한 지금의 기독교는 (계17:5)에 나오는 바벨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카톨릭의 교리와 유전을 그대로 이어받은 개신교
그리고 개신교 교리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보다 더 큰 문제가 있는데 그 개신교 교파들에서 가르치고 주장하는 신학과 교리와 성경해석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초대교회의 교리와 여러가지로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어떻게 다르냐구요?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내가 보기에는 똑같은데 무슨 헛소리냐?”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더 깊이 연구해 보니 개신교 교파들에서 믿고 행하는 교리와 교회유전이 카톨릭의 그것들과 같다는데 있습니다.
어떠한 것들이 똑같으냐?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개신교는 카톨릭처럼 조각우상 숭배도 안 하고 성모마리아 숭배도 안 하고 신부의 고해성사도 없으며 미사도 드리지 않으며 성경도 자유롭게 읽게하는 등 여러가지로 카톨릭이 행하는 가증한 것들에서 다 돌이켜 성경대로 예수를 믿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냐?
무슨 헛소리는 하는 것인가?
당신, 너 자다가 잠꼬대 하는 것인가?
그러나 깊히 파고 들어가 보면 그 핵심적인 교리들이 카톨릭과 같으며 겉보기에는 그 껍데기는 카톨릭의 온갖 가증한 악에서 돌이켜 초대교회 교리로 돌아간 것 같은데 여전히 그 알맹이는 카톨릭과 똑같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개신교의 겉 껍데기는 카톨릭과 확연히 다른데 그 알맹이 속살은 카톨릭과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옛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렇게 끈질기게 섬기던 바알신을 우리 개신교 교인들이 모르고 천주교인들처럼 섬기며 영적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바벨론신인 바알신이 우리는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바알신은 니므롯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니므롯이 죽고나서 무슨 신이 되었다고 하였지요?
예, 태양신이었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끈질기게 바알신을 섬기므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로 말미암아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멸망하여 그 열 지파의 민족 자체가 역사 속에서 소멸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남왕국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솔로몬왕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고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도시를 불태워 폐허로 만들고 대다수의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가서 70년 간 예루살렘과 온 유다 땅이 황폐하기까지 그렇게 끈질기게 유대인들이 숭배하던 신, 바알신.
그 바알신이 누구인지 우리는 밝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또 이 글을 읽는 대다수 사람들이 바알신이란 수천년 전 옛날 구약시대에 있었던 신이지 지금 신약시대에 무슨 바알신이 있는가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지금 신약시대에도 바알신이 존재한다면 그러면 지금 신약시대의 바알신은 무엇인가, 누구인가?
그리고 또 많은 분들이 구약시대에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전에 중동지방의 민족들이 섬기던 그 바알신이 지금 신약시대의 우리들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
또 천주교는 그 정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또 위에서 언급한 데살로니가 후서의 불법의 사람은 흔히들 로마 카톨릭 교황이라고 한다고 하지만 우리 개신교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개신교는 전혀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역정을 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종교학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깊히 파헤치면 바벨론종교가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하고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셋의 존재 안에 내용적으로 같은 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하여 카톨릭으로부터 분리되었는데 그 카톨릭의 핵심교리와 유전들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습니다.
겉모양은 서로 다른 것 같은데 속알맹이는 같습니다.
어떻게 같으냐구요?
카톨릭에서 행하는 바벨론 종교의 유전과 유물들
그러한 개신교가 영적으로 또 내막적으로 구교의 교리를 그대로 많이 이어받고 또 현재의 기독교계가 그 카톨릭보다 더 악한 것이 구교가 하지 아니하였던 악령들의 역사가(계18:2) 많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Sun-day)마다 예배당에 나아가서 다른 예수(고후11:4), 다른 하나님에게 예배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Mithra신 생일날에 예수가 나신 날이라고 카톨릭에서 4세기 이후로 천주교 교리에 도입하여 속인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일년에 한번 씩 전 세계 온 기독교인들이 난리법석을 떨어대고 있습니다.
카톨릭이 바벨론 여신(女神) Ishtar를 기념하느라 만든 부활절(Easter)에 전세계 개신교회들마다 난리법석을 떠니 과연 이 개신교는(the Protestant Church)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교인가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인가?
우리는 심각하게 연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유대인의 절기와 날짜와 기후를 따지어 계산하면 예수가 나신 날은 10월 초입니다.
(눅2:8)에,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이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가 나신날 목동들이 들에서 양들을 방목하며 밤에 양들과 같이 들판에서 자기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지방의 12월 25일은 한 겨울이고 양들을 들판에 방목하는 계절이 아닙니다.
(눅2:8)에서 처럼 밤에 양들과 목동들이 들판에 있으면 다 얼어죽는 계절입니다.
모든 가축들은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방목을 그치고 다 우리로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일년 중 태양빛이 제일 짧고 약한 동지를 3일 지난 12월 25에 그 죽었던 태양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여 유래된 태양신 생일을 즉 미트라신의 생일을 태양신 종교인 카톨릭이 도입한 인간의 유전을 개신교에서 그대로 전승하여 일년에 한 번씩 난리법석을 떠는 개신교회들 참으로 딱하고 측은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주교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면서 천주교에서 종교개혁을 하고 빠져나왔다고 하는 행태란 안타깝기가 그지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이 지금의 천문학이나 물리학이나 어떠한 인간의 과학으로도 얼마나 크고 넓은지 어떻게 탄생했고 구성이 되어 있고 움직이는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고 수치로 계산할 수도 없는 그러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난 날도 없고 아비도 없는 영원 전부터 계신 절대적인 신이십니다.
전지전능한 신이시요 Absolute God입니다.
Dios Omnipotent요 el shadai입니다.
그까짓 한 여인의 몸에서 상징적으로 태어난 날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며 또 예수가 한 여인의 몸에서 이 땅위에 난 날을 기념하고 종교절기로 지키라고 한 기록과 구절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그 날이 만약 중요하다면 하나님이 그 절기를 지키라고 반드시 성경 어디에나 한 구절이라도 명령을 하시었을 터이고 또 초대교회 예수의 사도들과 교인들이 지켰어야 하는데 그러한 기록과 흔적은 서기 400년대까지 성경 안에서나 밖에서나 세상 아무데도 없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교황 율리우스가 서기 350년에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공표하고 처음으로 카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카톨릭이 서기 4세기 경에 교리로 도입하여 지키기 시작한 태양신의 생일을 왜 개신교인들이 지켜야합니까?
그것도 10월초가 아닌 12월 25일 미트라 태양신 생일날에 개신교인들이 천주교인들처럼 지켜야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사람의 유전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의 유전과 교리로 이 기독교를 사탄이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Christmas 말고도 카톨릭에서 만든 유전을 개신교에서 많이 따라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영어로 Easter인데 바벨론 여신 Ishtar의 기념일이고 그 Easter의 어원 자체가 Ishtar에서 온 것입니다.
두 단어의 발음도 비슷하지요.
옛 바밸론 왕국에 느브갓네살이 성문입구에 세웠던 인류역사적으로 유명한 고고학적 유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Ishtar Gate 입니다.
Ishtar, 즉 바벨론 여신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그 Ishtar여신이 니므롯의 부인이였는데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끈질기게 섬기던 아세라 여신이었으며 후일에 카톨릭이 숭배하는 성모 마리아입니다.
아래에 크리스마스와 태양신의 날 일요일에 관한 site들의 링크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로마 미트라교(태양신 교)의 제일(祭日)이었던 일요일(Sunday)이 기독교에 유입된 역사
The Origin of Christmas Solstice Celebration, Dies Naltalis Solis Invictus and Mithras
Origin of Christmas – Controversial Roots The History of Christmas
Is 25th December the correct date for celebrating Christmas?
Merry Christmas or Merry Mithras? Solar Deity
Sun Worship and the Sunday Sabbath
Christmas 보다도 더 치명적이고 decisive한 천주교의 유전들을 개신교에서 따라하고 있다.
그까짓 성탄절이나 부활절 같은 것들이야 개신교인들이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겠지요.
설날이나 추석처럼 세상 인간사회의 명절같은 의미로 지킬 수도 있습니다.
뭐 재미로 지킬 수도 있고 또 예수께서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나신 날이라고 기념하는 의미에서 절기로 지킨다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보다 더 중요한 치명적인 천주교의 유전과 교리들이 있는데 여러분들의 영원구원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는 유전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카톨릭이 만든 교리와 유전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유전들입니다.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법을 폐하며 불법을 행하는 무서운 유전들이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를 받는 유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치명적인 천주교의 유전들은 나중에 언급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깊히 그것도 아주 깊히 조사하고 연구하십시요.
연구를 하면서 예수를 믿어야 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가진 자본금을 투자하며 무슨 세상 사업을 할 때에는 치밀하게 여러가지로 조사하고 연구하며 확신이 설 때에만 여러분들의 돈을 그 사업에 투자를 하고 또 그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도 여러분의 시간과 노력을 다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사업은 세상의 어느 사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돈보다도 명에보다도 자식보다도 더 귀중한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조사와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많은 성경상의 조사와 연구와 노력을 하고 난 후에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성경을 많이 통독하여 성경의 내용을 훤하게 알 때까지 많이 읽으세요.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여러분의 영혼사업에 제일 먼저 하여할 투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지식을 (호4:1, 사11:9, 빌3:8, 벧후3:18) 보다 더 쉽고 올바르게 터득할 수 있습니다.
성경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훤하게 알 때까지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목사들이 하는 설교들을 잘 분별하여서 그 중에서 성경적으로 맞는 말과 그리스도의 진리는 마음으로 취(取)하시고 비성경적인 내용의 말과 바리새인의 누룩과 바베론종교의 거짓 교리와 복음은 다 골라내어 배척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기독 교인들을 관찰하여 보면 평생을 교회 다니면서 성경책 한번 통독 안 해보고 예수 믿는 신자들이 대부분입니다.
맨 교회 목사들, 부흥사들이 하는 설교나 듣고 그들이 낸 책들만 읽으면서 정작 신앙의 교과서인 성경책은 한번도 안 읽어본 분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지금 개신교 목사들이 주로 교인들에게 예수 믿기로 마음에 결심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사람은 그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 즉시 성령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개신교에서 이와 같은 비성경적인 엉터리 교리와 영적 거짓말로 비진리를 가르침으로 영적 이스라엘 민족인 개신교 교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벗어나 전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거짓 신앙으로 거짓 교리로 많은 영혼들을 후리어 지옥으로 보내고 또 돈도 빼앗아 가니 예수님이 강도의 소굴이라(막11:7) 하셨습니다.
(요 3:5)에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으로 갈 수 없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성령으로 거듭나는지 그 법칙과 교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이(롬8:2)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니 그러한 엉터리 헛소리로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짜 천국 ticket을 교인들에게 남발하니 그 내용이 비어있는 가짜 천국 ticket을 지니고 열심히 교회생활 하다가 나중에 죽어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보니 예수께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내게서 물러가라 하시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들어가라” 하시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신교가 용에게 권세를 받아 많은 영혼들을 미혹하고 그 짐승(계13:11-12, 용,사탄)으로부터 귀신영을 받아 귀신방언하고 귀신환상들을 많이 보고들 있는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하여 죽게 되었던 것 같았던 첫번째 짐승(계13:1 카톨릭)이 다시 살아나 개신교라는 두번째 짐승(계13:11-12)으로 형태를 바꾸어 그 이전 짐승(구교)보다 더 크고 강하게 보다 더 넓게 역사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개신교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끈질기게 섬기던 이방신 바알신을 여러분들은 잘 아시지요?
그 바알신이 그 당시의 바알신이지 지금 우리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가 반문하시지요?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라 하였습니다.
그 당시 있었던 모든 사건들과 예언들은 반드시 신약시대에 영적으로 다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구약시대의 바알신과 개신교의 바알신
그렇게 끈질기게 유대민족이 섬기던 바알신도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로는 이전에 절하며 섬기던 눈에 보이는 조각상, 바알신 우상들을 유대민족들이 그 전만큼 섬기지 아니 하였습니다.
왜냐고요?
바벨론포로 이전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신을 그토록 끈질기게 섬기었기에 그 무서운 하나님의 진로로 엄청난 재앙과 벌로 혹독하게 멸망을 당하였기에 그들의 눈에 보이는 조각상과 담벼락 벽화의 바알신 우상들은 멀리하였습니다.
바벨론포로 시기 이후로는 그들의 우상숭배의 형태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뀌었는가?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로는 유대민족들이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주로 누구를 섬겼습니까?
사람들의 유전들로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법으로 하나님의 법을 폐하며 갖은 위선과 탐욕으로 바리새인의 거짓 유대교를 만들어 섬겼던 것입니다.
(마15:3-9)에,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었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막7:13)에, 너희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와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바벨론포로 이전에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 우상의 조각상들 앞에서 절하고 심지어는 그들의 자녀들도 불태워 죽이며 제물로 바치던 바알신 숭배가 바벨론 포로시기 이후로는 유대인들이 다른 모습으로 다른 방식으로 우상숭배를 하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 극히 일부가 여전히 바알신을 우상으로 섬기기는 하였으나 거의 모든 유대인들은 조각우상에 절하며 섬기는 눈에 보이는 우상숭배는 멀리하였습니다.
그대신 사람들이 만든 계명과 교훈과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그 내용적으로 바알신을 섬기고 영적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더 이상 우상 앞에서 절하고 섬기는 유치하고도 저속한 우상숭배는 하지 않고 고차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바꾸어 가며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보다 발달한 문명인같이 그 형태를 바꾸어 성경교리와 하나님의 법을 바꿔서 점잖게 고상하게 우상숭배를 하며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것입니다.
개신교의 장로교회, 감리교, 침례교등과 같이 점잖고 고상하게 영적 우상숭배를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신약시대에도 구약시대의 유대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두 시대로 나뉘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방법으로 구약시대와 같이 그 형태를 바꾸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는지 참으로 놀랄 따름입니다.
카톨릭교회의 모든 저속하고 유치한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초대교회 교리로 돌아간 듯 하였는데, 겉보기에는 성경적인 것 같은 그럴듯한 모습으로 둔갑한 개신교가 그 내용면에서는 카톨릭과 똑같은 거짓 교리로 영적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시대 때 바벨론 포로 이전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눈에 보이는 저속하고 유치한 방식의 조각상들의 우상숭배가 신약시대의 카톨릭 교회와 그 형태와 모습이 너무나 같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갖은 위선과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영적 우상을 섬기던 바리새인들의 거짓 유대교가 오늘날 개신교하고 그 형태와 모습이 너무나 똑같은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바벨론 포로 전후로 나누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상숭배를 하였듯이 신약시대에도 영적 이스라엘 민족들이 루터의 종교개혁을 전후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상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이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숭배하던 바알신이 지금의 카톨릭과 똑같으며 바벨론 포로 이후의 바리새인들의 거짓 유대교가 지금의 개신교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 유대교의 주체였던 바리새인들, 예수님이 독사들이라고 지칭하셨던 바리새인들이 지금 개신교 안에서 영적 거짓말로 무지한 교인들을 후리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전 바알신 숭배 = 로마 카톨릭
바벨론 포로 이후 바리새인의 거짓 유대교 = 개신교
그러므로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모든 것이 신약에서 똑같이 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사실 여러 개신교 신학 역사학자들이 카톨릭이 바벨론 종교라는 것을 연구하고 발표해 논 자료들과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개신교가 카톨릭의 속알맹이 교리를 이어받은 카톨릭의 자매(sister)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정작 자기네들이 카톨릭의 하수인 노릇하고 있는지는 모르고들 있습니다.
(겔23장), 오홀라와 오홀리바.
개신교의 부패와 타락상
개신교는 천주교와 달라서 성경대로 하나님을 믿고 있다, 개신교는 초대교회의 복음에서 전혀 변질되거나 부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의 개신교는 변질되거나 부패하지 아니했다고요?
그렇게 믿는 기독교인들이 99% 이상일 것입니다.
혹은 조금 부패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더러는 있겠지요.
지금도 양심이 있고 영적, 육적 이치에 능통하고 지각이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나 목사들이나 교인들은 기독교가 많이 부패하였고 변질되었다고 더러 양심선언도 하고 목사들의 자성(自省)을 촉구하며 기독교잡지나 기독교신문에 가끔 발표를 하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개신교는 그 부패하고 변질된 상태가 아주 심각합니다.
특히 큰 교회들일수록 그 부패하고 타락한 양상이 말할 수 없이 심합니다.
음욕과 탐욕 그리고 명예욕에 사로잡혀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비리와 죄악은 최고조에 달해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으며 여러분들도 다 동감을 하실 것입니다.
요즈음 들어서 한국 개신교 교회들의 추악한 행태가 신문에도 자주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개신교의 타락하고 추락한 행태들의 몇가지 사례들을 참고로 아래에 수록하였으니 링크들을 클릭하여 참고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시사저널 / 한국 개신교의 타락 성직자 돈문제로 타락한 교회들 – 한국판 종교개혁 이뤄져야
개신교의 타락 이제는 사회가 방관하지 않는다 반성없는 한국 개신교는 사탄의 종교일 뿐
개신교 역사상 한국교회 가장 타락 교회 본질 회손하고 영적 타락의 늪으로 / 기독교 연합 신문
추락하는 한국교회 / 위키백과 한국교회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 / 손봉호 교수
제 2의 종교개혁
요즈음 들어 일반 언론이나 기독교 간행물등에서 한국 개신교의 타락상에 관하여 자주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지각있고 양심이 바른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 한탄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인류 기독교 역사상 가장 타락하였다고 합니다.
요즈음 자주 듣는 말이 한국교회,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하였다.
중세의 카톨릭보다 더 타락하였다고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개신교는 저 스스로 자정하는 능력을 상실하였다고 말합니다.
한국 개신교가 가장 타락하였던 중세의 카톨릭보다도 더 타락하였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회학자들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천 이백만이었던 한국 개신교 교인들이 지금은 육백만명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대형 교회의 지도자들의 비리와 일탈 그리고 교회의 제반 타락상을 보고 실망하여 많은 개신교인들이 개신교를 떠났습니다.
더러는 천주교로 개종한 교인들도 이 백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타락하고 부패한 개신교, 바벨론 종교 교리로 변질된 기독교를 원래의 초대교회 복음의 성경진리로 돌이키는 종교개혁을 하여야 한다.
아래는 한국 기독교 타락상에 관한 발표들이 있습니다.
제 2의 종교개력 제 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인과 남은자들
(왕상19:18)에,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롬 11:4-5)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자가 있느니라.
구약에 하나님이 엘리아 선지에게 말씀하신 것을 바울사도가 신약에서 다시 인용하며 거론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인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입니까?
숫자가 정확하게 7000 명입니까?
6999명 + 1명 하여 7000명이란 의미입니까?
그러한 것은 아닌 것 같지요?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러다 보면 대다수의 여러분들은 그 의미가 무엇 그리 중요하냐?
반문하시지요?
바알에게 무릎 꿇는 행위는 무엇이고 또 입을 맞추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사 10:22)에,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롬9:27)에,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와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이 두 구절의 남은 자는 누구를 지칭하며 왜 남은 자만 구원을 얻습니까?
또 바알신은 어떠한 존재가 바알신입니까?
바알신이란 구약 때에만 있었지 지금은 없고 바울사도가 로마서에 기술한 바알신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겠지요?
그러면 신약시대에 왜 바울선생이 구약시대의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바알신에 대하여 언급을 한 것일까요?
부디 여러분들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인이 되시고 이스라엘의 남은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의 복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을 가리키나?
초대교회의 복음과 지금 시대의 복음과는 서로 다른 것인가?
과연 서로 다르다면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
그러면 현재 그 많은 개신교 교회들과 교인들이 믿고 있는 신앙이 초대교회의 진리의 복음이 아니라는 것인가?
이 무슨 멍멍이가 짓어대는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의문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답은 “제 2 장 –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 제 2 장이 있습니다. >>>>>>>>>>>>>>>
제 2 장 –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
제 2 장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
사도복음 (the Gospel of the Apostles)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죄 없으신 창조주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죽음으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3 일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었지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회개하면 죄사함 받고 영원한 정죄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갈 수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간다.
이와 같은 교리는 이상한 사이비 이단 거짓 기독교 교파들이 가르치는 교리들이 아닌 것 외에는 기본적으로 다 어느 기독교파나 다 가르치는 교리이고 또 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잘 믿어야 하는데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이며, 신약시대 즉 보혜사 성령시대에 어떠한 방법으로 예수를 믿어야 우리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법대로 불법을 행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섦기는 것인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법대로, 방식대로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 신앙은 헛 것이요 그 신앙은 그 대상이 예수가 아니고 다른 신, 다른 주, 다른 하나님, 다른 복음(갈1:8-9)이 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마7:23)에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마13:41-42)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두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불법: 희랍어 성경 원문 – anomian – ἀνομίαν – lawlessness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불법의 단어는 모두가 다 ἀνομίαν로 기록되어 있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위 구절들에서 나오는 “너희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예수를 잘 믿지 아니했던 사람들입니까?
그냥 건성으로 일요일에 교회나 왔다갔다 하면서 예배나 드리며 성경 통독 한번 안해보고 대충 믿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니지요, 오히려 그 본인들 자신이 자기네들은 예수를 아주 잘 믿고 선한 행실도 많이 하여 자기네들은 천국가는 것으로 확신하는 자들(마7:22) 아닙니까?
그 구절을 자세히 보니 그 자들이 그 날에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들을줄 알았는데 오히려 책망을 들으니 의아해 하면서 억울하여 예수님께 항의하며 반문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내쫓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것도 “주의 이름으로” 하였지 않습니까?
그들의 생활을 예수님께 바치면서 열심으로 예수 믿었던 사람들 아닙니까?
권능도 많이 행하였다고 했으니 몸 아픈 병자들의 병도 많이 고쳐주었을 것이고 또 여러가지 신기한 이적같은 현상들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것이고 귀신들도 내쫓았는데.
가난한 사람들 구제도 많이 하고 선행도 많이 하였겠지요.
자기 생활을 하나님께 바치며 주를 위하여 많이 활동하고 권능도 행한 열심당원들인데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셔야 하는데 오히려 책망하시며 불법을 행하였다고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러한 열심을 다한 신자들에게 불법을 행하였다고 정죄하셨을까요?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법이 도데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열심히 예수 믿었던 사람들을 모르신다 하고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물러가라고 책망하신 것일까요?
너무나 기가 막히고 황당하고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면 그 쫓겨난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겠습니까?
예수님이 마태 복음서에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내게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예수 믿고 아무리 선하게 살며 봉사활동 하고 선행을 많이 베풀며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법대로 행하지 않으면 불법을 행한 신자들이 되는데, 다 소용이 없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법대로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헛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라고 열심히 예수를 믿었는데.
여러분 이 수수께끼를 잘 풀어야 합니다.
오늘날 지금 이 세상에 그 많은 기독교인들 중에서 이러한 성경상의 난해한 수수께끼들에 관심이 있어서 연구하는 신학자나 목사나 교인들이 있는줄 아십니까?
(마7:21)에, 나더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한 열성분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하나님의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 복음을 알지 못하여 저희들의 생각대로 교회지도자들이 가르쳐준대로 카톨릭의 교리나 유전을 행하며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같은 슬프고 억울한 종말을 맞는 것입니다.
(롬10:2-3)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불법을 행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예를 들어 말씀하시다.
그러면 어떠한 행위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인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 한가지 예를 들자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대신하여 십계명을 폐하며 불법을 행하는 풍습을 (마15:3-9, 막7:7-13)에서 밝히 증거하셨습니다.
사람이 만든 유전이 요지부동의 교리로 계명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자기네들 부모를 봉양하고 집에 모시기 싫어서 생각해 낸 유전이 있었는데 그 것이 부모를 모시는데 드는 비용을 성전에 “고르반”으로 바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양하는 종교적인 의무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즉 무슨 뜻이냐 하면 부모를 집에 모시고 부양할 때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돈을 그 금액만큼 성전에다 일년에 한 번씩 바치고는 그들의 부모를 실제로 “나 몰라라”하고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공인된 풍습이였다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책망하시기를 사람이 만든 계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 부모를 봉양하는 많큼의 금액을 성전에 바친다해도 그 사람이 부모를 부양하는데 대한 십계명의 의무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유대인이 고르반을 성전에 바치고 나서 그의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범하고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막7:13)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실 때에 다섯번 째 계명을 “부모를 공경하라고”만 하였지 고르반으로 바치면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고르반은 성전에 바치는 성물과 헌금을 말합니다.
만약에 지금 말세지말 우리시대에 어떤 교회 다니는 예수교 신자가 5번째 계명을 어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처럼 고르반으로 하나님의 5번째 계명, 부모를 공경하라는 법을 범했다면 그 교인은 십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훗날 예수재림 때에 불법을 행한 자로 정죄를 받고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계명은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의 시대나 지금 바로 21세기 우리 시대에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말세지말에 사는 현재의 우리 기독교인들도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십계명을 폐하면서 불법을 행하고 있지 않는지 잘 살피고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불법인지를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십계명 중에 한 가지라도 범하면 십계명 모두를 다 범하는 것이라고 (약2:10-11)에 성경에 분명하게 나와있습니다.
불법을 행한 자들은 예수께서 구원을 안하신다고 여러번 말씀하셨지요?
법과 질서의 하나님
이와 같이 하나님은 법의 하나님이고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우리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법과 규례들이 무엇인지 우리들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또 순종하고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마7:23)에 나오는 불법을 행한자들이 되어 예수님으로 부터 배척을 받고 내어 쫒김을 받아 울며 이를 가는 불행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버림 받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지상의 어느 나라도 어떠한 사회나 조직도 다 법이 있고 규칙이 있습니다.
특히 국가는 헌법이 있어 그 나라의 정체성을(政體) 또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고 운영하는 일반법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도 하나님이 만드신 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 옛날 태초 때에 하나님이 만드신 법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법을 어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아니했습니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신하고 범죄하여 영원히 죽지 않을 인생이 죽게 되는 것 아닙니까?
(호6:7)에,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그리하여 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를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람의 한 일생을 살도록 만들었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한 세상 살면서 밥세끼 편안하게 먹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항상 쪼들리면서 괴롭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질병에 시달리며 불행한 일생을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아담의 원죄 때문에 우리가 이마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수 있고 (창3:19) 정신과 육체가 다 노동하고 수고하여야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 돈 버는 것이 어디 쉽습니까?
어렵지요?
인생이 그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모든 인생이 다 수고와 슬픔뿐인(시90:10)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큰 거물급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죄얼과 고통을 후세의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법이 (사1:10) 있었고 지금 신약시대에는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법이 (롬7:25) 또 따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 잘 알아서 아담처럼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 자기도 망하여 일생 고생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죄와 우를 범하면 아니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법과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시103:17-18).
이 구절에서 보는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시는 자들은 반드시 그 언약과 법도를 지키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데는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이다
성경은 구 언약과 신 언약, Old Testament and New Testament 입니다.
언약(言約) 즉 그 약속이란 하나님이 명한 법과 계명을 잘 지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언약이란 무슨 뜻입니까?
영어로 covenant 하는데 그 뜻이 formal agreement 로 약속 또는 계약이란 뜻이지요?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잘 지키고 순종하면 영생복락의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구원 못받고 대신 영벌을 받는다는 언약 아닙니까?
그러면 신약시대의 우리 성도들은 무슨 법을 지켜야 하는가?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법은 십계명과 613 조의 율법인데 신약시대의 법은 무엇일까요?
그 법은 십계명과 성령의 법을(롬8:2) 가리킵니다.
우리 신약의 보혜사 성령시대에 우리가 순종해야 할 성령의 법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돌아가시면서 지나간 율법은 폐하였다고 (엡2:15) 하였는데 성령의 법은 또 무슨 말인가?
지금 보혜사 성령시대에도 우리가 법 아래 있는가?
예! 의문이 계속 이어지지요?
예수께서 비유로만 말씀하시었다.
(눅8:10)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함이니라.
(마13:34)에,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0 세부터 33세까지 3년 동안 복음을 전하며 공생애를 하실 때에 왜 모든 말씀을 비유로 하시며 그 예수를 쫒아 다니는 수만 명도(눅 12:1) 더 되는 청중들에게 깨닫지 못하는 설교를 하신 것입니까?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아니했다고 성경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거든요 (마13:34).
이러한 아주 중요하고도 또 중요한 난해한 구절들과 수수께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드물지만 안다고 하여도 그 의미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아무도 중요시 생각하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도 애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위에서의 그 비유의 말씀이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하신 것이지 지금 시대의 우리 기독교 교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모든 설교와 교훈은 그 당시의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하신 것입니다.
(막13:37)에서 보면 예수께서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3 년 동안의 공생애 목적이 예수께서 직접 일반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예수께서 모든 설교를 일반 청중들이 그 영적 뜻을 알 수 없는 비유로 말씀하시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서 3 년 동안 공생애를 하신 목적은 그 3 년 동안 모든 유대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시기 보다는 그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많은 여러 제자들 중에서 특별히 12 제자들을 택하시었습니다.
당시 예수를 좆아다니던 제자들이 수백 명이었습니다
그 12 제자들을 특별히 “사도”라는 직분으로 임명을 하시고 (눅 6:13) 3 년간 집중적으로 많은 이적들의 산체험을 통하여 일상생활을 같이 하시며 복음을 가르치시고 그 12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자들로 교육하고 훈련하신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Mentoring 교육을 12 제자들에게 행하시었던 것입니다.
왜 그리 하시었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3 년은 사도들을 교육하고 양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10:42)에,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누구의 이름으로?
제자의 이름으로.
이 구절에서 냉수 한 그릇이란 목마를 때 마시는 물 한 그릇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비유한 것입니다 (요4:4).
(잠25:25)에, 먼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이 구절의 먼땅은 에덴동산이고 좋은 기별은 복음, 유앙겔리언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사55:1, 계22:17)의 진리말씀을 알고자 하는 자들이고 냉수는 하나님의 말씀 한구절, (요4:10)의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제자의 이름으로 냉수를 준다 하였지요?
(마14:19)에, 예수께서 떡을(말씀)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이 구절에도 예수께서 직접 떡을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통하여 주었지요?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복음전파를 제자들 즉 사도들을 통하여 전도사업을 하신 것입니다.
떡은 성경에서 무슨 영적 의미로 쓰여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지요?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6:50-51),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어떠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었나?
사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apos‘tolos 인데 보내심을 입은 자라는 뜻이고 ‘보내다’와 ‘사람’의 두 단어를 합친 합성어로서 영어의 APOSTLE은 영어에는 그에 적합한 단어가 없으니 그리스말에서 빌려와 음역(音譯)을 하여 만든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의 전권대사(Ambassador)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여러번 자기를 가리켜 보내심을 입은 자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요4:43, 요8:42,요7:28, 마15:24).
예수님 승천하시기 전 택함을 받은 11 사도와 나중 제비뽑아 임명한 맛디아와(행 1:26) 성령이 사도로 임명한 두 사람 바울과 바나바(행 13:2) 도합 14명인데 12사도로 통용하는 것은 12 이란 숫자에 깊은 영적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이 14 사도들 외에는 더 이상 사도라고 임명받은 사람들이 없었으며 이 사도들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하라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마28:18).
즉 너희와 같히 모든 족속을 제자의 반열에 서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11 사도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하시었습니다.
또 11 사도들에게 나의 하는 일을 저희도 할 것이요 또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 했습니다 (요 14:12).
당대의 최대 석학이요 성경 대학자인 바울과 성령이 충만한 바나바는 3 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 성령으로부터 직접 진리교육을 받았습니다 (갈 1:16-18).
당시 초대교회의 original 12사도들은 다 이미 세상을 떠나가고 지금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임명한 그 14 사도들 외에는 사도라고 칭함을 받는 사도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 2의 종교개혁을 하여야 한다.
그러면 이제는 어떠한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가?
이제는 그 초대교회 때의 예수그리스도의 12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사도바울처럼 (갈1:12) 성령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전수받은 선지자들이 이 세상에 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 바삐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이(prophets, ministers) 출연하여 우상숭배로 거짓복음으로 더럽혀진 이 기독교를 성경의 가르침으로 초대교회 사도들의 복음으로 돌려놓는 개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회복시키는 제 2의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 그말입니다.
선지자는 구약시대나 있었던 것이지 신약시대에 와서 무슨 선지자 타령을 하는가?
그러나 우리가 신약성경을 자세히 보면 우리 보혜사 성령시대에도 하나님의 도(the Way of God, 행18:26)에 도통한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행13:1, 행21:10, 고전12:28, 엡4:11).
이번의 종교개혁은 첫번째 마틴루터가 했었던 종교개혁보다 더 크고 강하게 이번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권능을 부여받은 여러 선지자들에 의한 크고 놀라운 기적들이 (miracles) 수반되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참된 개혁입니다.
어떠한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많은 숫자의 복음 사역자들이 할 것입니다.
저 사탄의 속임수로 인한 거짓 종교개혁이 아닙니다.
전번에 있었던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신 참된 개혁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희들 스스로 하였던 개혁이므로 올바른 종교개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카톨릭의 모든 악에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초대교회의 복음 진리로 돌아간 것같은데 결국은 카톨릭의 바벨론 교리와 유전을 버리지 못하고 카톨릭과 똑같은 죄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초대교회의 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은 카톨릭의 하수인이 되버리고 만 것입니다.
루터의 개혁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게 카톨릭의 온갖 가증한 악에서 돌이켜 초대교회의 성경진리로 다 돌아간 것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니 여전히 카톨릭이 행하는 바벨론교리를 그대로 이어받고 구교의 똘만이가 되어서 영적으로 더 무서운 악행을 저지르며 수도 없이 많은 영혼들을 멸망의 구렁으로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전번의 종교개혁은 말짱 도루묵이 되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12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복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나?
성경 본문 안에서 찾는 것이고 성경 본문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깊히 관찰하고 연구하면 그 안에 12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가 부흥사가 신학자가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성경 본문을 많이 읽고 성경 안에 있는 내용을 훤히 알 수 있을 때까지 수십 번 수백 번이라도 성경을 통독하십시요.
성경의 내용을 훤하게 알 때까지 성경을 많이 많이 읽으십시요.
우리가 성경의 내용을 훤히 알아야 그 어느 누구의 성경해석과 신학도 옳고 그른가를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되면 자연히 성경의 본문에서 많은 구절들과 내용이 이해할 수 없고 애매하며 서로 이 구절 저 구절 상충되는 난해한 부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특히 예언서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요한처럼 그 봉하여진 말씀을 알고자 울며 기도하고 애를 쓴다면(계 5:4),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찿는다면(렘 29:13) 봉한 책의 인봉을(사 29:11,12) 떼어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자 많이 기도하세요.
12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어야 그리스도의 진리이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대로 풀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보내심을 입은 즉 지혜의 말씀의 은사나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고전12:8) 받은 선지자들로부터 (행15:32, 엡4:11)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반드시 12사도들이 전한 복음이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봉한 7 인를 뗄 수 있는 선지자들이나 그 선지자들로부터 배운 교사들이(고전 12:28) 가르치는 교리대로 풀어야 하는데 그 선지자들이란 성령의 9 가지 은사 중 지혜의 말씀이나 혹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은사자들을 가리킵니다.
반드시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선지자들, 복수의 사람들, 복음사역자들입니다.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이 직접 그의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전수받은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고전 12:28-31)에서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진리를 선지자에게서 배운 제자들) 그 다음은 능력(기적) 행하는 자들이요(miracle doers)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를 받은 자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를 주셨으니 (엡 4:11).
히브리서에는 (히 3:1) 예수가 우리의 믿는 도의 큰 사도라(Apostle)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그 어떠한 직분보다도 사도들의 직분이 먼저요 으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적 형제가(마13:55) 넷이나 있었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그들이 다 교회의 감독과 장로들이 되어서 복음전파 하는 귀한 사역을 담당하며 예수님으로부터 크게 쓰임을 받았으며 신약성경의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썼지만 사도라는 칭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12 사도들의 맏형이 되시고 예수가 그 12 사도들의 머리가(계 1:5) 되시어서 우리들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가 믿는 도의 교주가 되시며 우리를 친히 성령으로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 12 사도들의 머리가 되시어서 지상에서의 공생에 3 년 동안 친히 일상생활을 같이 기거하시며 가르치시고 12 제자들을 훈련하고 연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는 어떠한 인간들의 교리나 혹 천사들의 교리라도 거짓이요 저주받은 가르침입니다.
(갈1:7-9)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여기서의 “우리”는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사도들을 지칭합니다.
또 (살후 3:6)에는 사도들에게서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떠나라 하였고, (살후 2:15 )에는 사도들에게서 받은 가르침과 유전을 굳게 지키라 하였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사도들의 유전이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이 만든 유전입니까 아니면 천주교가 만든 유전입니까?
아니지요, 12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성경에 쓰여 있는 교리를 말하지요?
우리는 천주교가 만든 유전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또 우리 개신교인들이 모르고 천주교가 만든 유전을 지키고 있는지 잘 따져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들의 유전을 지켜야지 그 유전들을 버리고 천주교의 유전을 따라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천주교에서 빠져나왔다는 개신교인들이 그 천주교의 유전을 따라하면서 짐승의 표나(계16:2) 받아야 하겠습니까?
(고후11:4)에,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사도들)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는 잘 용납하는구나.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고전11:2).
너희가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15:2).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살후2:15).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살후3:4).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고후5:20).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사도들)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8).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4:9).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우리에게서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살후3:6).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를 하나님이 명하신 것 외에 사람이 임으로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성경에 기록하고 후세에 전한 진리의 내용 외에 사람이 더하거나 빼면 아니됩니다.
현재 기독교 교리와 교회 유전들 안에는 사람들이 임으로 더하거나 뺀 거짓 진리와 거짓 교리와 거짓 유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이 명하거나 말씀하신 것 외에 사람들이 추가로 만들어 놓은 교리와 유전은 다 거짓이고 비진리이며 뱀의 거짓말입니다.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 선악과입니다.
뱀이 하와를 거짓말로 속여서 먹게한 선악과와 똑같은, 사람의 영혼을 멸망케하는 비진리요 거짓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이 임으로 가감한 모든 거짓 교리와 유전을 다 골라내어 배척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신4:2)에,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계22:18)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 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다른 복음, 다른 예수와 바리새인의 누룩
복음은 한 복음이어야 하는데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서 벗어나 사도들이 전하지 않은 교리나 유전 또는 성경에 기록되 있지 않은 교리와 사상과 관습과 유전으로 사람이 가감하거나 자기의 생각과 이념을 집어 넣어서 그럴듯하게 짜집기하면 곧 다른 복음이(고후11:4, 갈1:6)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다른 복음에서 예수를 믿으면 우리가 다른 예수(고후11:4)를 섬기거나 다른 영(고후11:4) 즉 귀신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만든 누룩으로 반죽하여 만든 떡은 사도들의 복음에서 변질되어서 사탄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 누룩은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16:6)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마16:12)에,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삼가해야 합니다.
그러한 바리새인의 변질된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양식 즉 선악과입니다.
그러한 선악과를 먹고 여러분들의 영적 살이(flesh) 썩어 영적 문둥이가 되고 장님이 되고 벙어리가 되고 절름발이가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문둥병자를 속량하는 제사의 예식이 여러 곳에 나오지요?
그 구약의 문둥병자들이 그 시대에는 육적 문둥병자를 가르키나 우리시대의 신약시대에는 영적 문둥병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바리새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들이 우리가 살고있는 21세기에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오늘날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어떠한 사람들일까요?
분명 신학을 전공하고 성경지식이 풍부한 일반 교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종교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나 교회지도자들이겠지요.
그러면 과연 그자들이 누구일까요?
양의 탈을 쓴 이리 거짓 목자들이겠지요?
강대상에서 영적 거짓말을 섞어서 설교하는 목사들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문하기를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 다른 모든 교인들이 하는대로 따라하면서 예수를 믿으면 되는 것이지 무얼 그렇게 따지고 여러가지로 어렵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법도 모든 개신교인들이 지키는대로 지키면 되는 것 아닌가?
다수가 하는 것에 진리가 있는 것 아닌가?
수십 억 인구가 믿고 행하는 교리와 사상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이 꼭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찾아서 믿어야 하는 것인가?
현재 전세계적으로 개신교회에서 행하는 교리와 신앙이 12 사도들인 전한 복음이 아니란 말인가?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면 누가 그같이 어려운 예수를 믿겠는가?
그러한 예수는 당신이나 혼자 실컷 믿어라.
“너나 그렇게 실컷 믿으세요” 라고 하겠지요.
당신이 주장하는 ‘사도복음’이 참 진리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증명해 보아라.
그리고 개신교의 어떠 어떠한 점이 12 사도들의 복음과 다른 것인지 확실하게 납득이 가도록 진술해 보아라 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거의 대다수일 것입니다.
예, 차차 증명해 보겠습니다.
좁은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입이다.
(마7:13-1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눅13:2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이 구절에서는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문(門)은 성경에 그 영적 뜻이 사람의 입을 상징합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진리를 가리킵니다.
좁은 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입, 사도들의 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좁은 문을 찾아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 , 12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진리를 찾아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요10:7)에서 예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삸꾼목자들의 넓은 문을 찾지 마시고 양의 좁은 문을 찾기 바랍니다.
흔히들 좁은 문이란 교회를 의미하고 넓은 문이란 세상을 의미한다고 말하지요?
넓게 해석하면 맞는 말이나 보다 올바른 영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을 말합니다.
쉽게 믿는 예수는 많은 사람들이 믿으나 참 진리의 예수는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주 드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이 진실이요 사실이니 어찌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우리 ‘사도복음’의 진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입니다 (고후13:8).
12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아닌 것은 (갈1:8)에 다른 복음이라 했습니다.
참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으로 교육받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입니다.
신약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과 내용들만 우리가 배우고 실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교리와 유전들을 교회가 만든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교리와 유전들을 우리가 따라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밝히 알아서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이 기독교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돌이키는 제 2 의 종교개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가 올바른 진리를 깨달으시고 이제 앞으로 있을 종교개혁에 모두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3 장은 아래에 있는 링크를 클릭하고 읽어 보세요. >>>>>>>>>>>>>>>
제 3 장 – 하나님의 지식
제 3 장 – 하나님의 지식
7 인으로 봉한 성경 (The Bible sealed with 7 seals)
7인으로 완전히 봉한 두루마리 성경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란 (호4:1, 사11:9, 빌3:8, 벧후3:18)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하셨나?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우리 인간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법”은 (롬7:22) 무엇인가?
하나님의 지식을 어떻게 우리가 배울 수 있나?
하나님은 어떻게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가?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 “하나님의 지식”은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지으시고 만물위에 뛰어나게 하셨으며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며 지배하라 하셨습니다 (창1:26-28).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짐승도 같은 흙으로 지었지만 사람은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만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말하였습니다.
아담이 먹지말라는 선악과를 먹었으니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그 아담의 육신을 죽이셨다면 바로 그들의 인생은 끝이 났을 것이고 인류는 소멸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둘의 육체의 생명은 놔두고 코에 불어넣었던 생기만 하나님이 도로 찾아가셨습니다 (전12:7).
그리고 그들의 육체 생명을 유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었을 때 아담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생기가(호흡, Ruach רוּחַ ) 떠났으므로 아담이 영생복락 할 수 있는 영적 생명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 아담 안에 성령이 계셔야 하는데 성령이 떠났으므로 육적 생명은 살아 있었으나 영적 생명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호흡, 생기, 성령, 신, 영은 다 같은 뜻이고 동일한 존재를 가리키는 단어들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은 성령을(Holy Spirit) 말합니다
(요20:22)에,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위 구절의 생기(breath)가 성령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하여 창조하시었고 (사43:21)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영원토록 화목하게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우리 인생이 천사와 같은 신적 존재로 인간의 육체는 영원히 죽지 않았을 것이고 에덴동산에서 영생복락을 누렸을 것입니다.
부활은 죽은 목숨이 다시 산다는 뜻인데 우리 인생들이 회개해서 성령 받으면 그 잃었던 생기를(성령) 다시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계20:6) (계11:11).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요1:18) 또 볼 수도 없는 (요일4:12)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볼 수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신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유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여호와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아담은 영원히 죽지 않을 그의 영육체가 죽게 되며 에덴동산에서 쫒겨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호4:1) 아담의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아담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불행한 우리 인생들이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육간에 고귀하게 지음을 받았던 상태로 우리 인간을 회복하게 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회복하는 종교입니다.
무엇을 회복하냐구요?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실 때 아담의 코로 불어 넣어 주셨던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호흡, 성령을 우리 인간이 회복하는 성령 회복입니다..
예수교는 우리를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에덴동산에 있었던 고귀한 존재, 영생의 영적 존재로 회복시키는 종교입니다.
그 것이 첫째 부활(계20:6) 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하늘에 있는 본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11:16).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 아나니 (고전5:1).
하나님이 그의 성령(神)을 아담의 코로 불어 넣었던 생기(breath of life, ruach ) 즉 성령( Holy Spirit )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했을 때 인간으로부터 떠나갔습니다.
예수교는 (Christianity) 우리가 회개기도 하여서 죄사함 받고 성령세례를 받아서 우리 인간들에서 떠나갔던 성령을 우리 인생들에게 다시 돌아와 임하게 하여 성령회복을 하게 하는 종교입니다.
예수께서 (요3:5)에서 인간의 영혼구원의 길을 말씀하시었고 신약성경 전체에서 성령회복에 관한 지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3:5)에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했습니다.
성경이란 그러한 우리의 성령회복과 영혼구원에 대한 지식을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게 하여 주는 책이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성경 안에 쓰여 있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고 또 그 지식대로 실천을 하여서 영혼구원을 받고 천국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고 천국을 가려면 하나님의 지식을 성경에서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기 위하여 성경을 최대한도로 많이 읽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의 영혼구원의 지식을 알기 위하여 전체적인 성경의 내용과 각 장 구절들의 전후 문맥과 흐름을 훤하게 알기까지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냥 대충 스쳐가며 읽을 것이 아니라 한구절 한구절 정신을 집중하여 정독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의 지식을 성경 안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며 연구해야 합니다.
어떠한 신학자나 어떠한 교파의 신학과 교리나 목사에게 여러분의 영혼을 무방비 상태로 맡기지 마시고 여러분 스스로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현재 기독교 안에는 서로 교리와 뜻이 상반되는 많은 신학과 교리와 성경해석들이 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어지럽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신학이 어떤 교리가 어떤 이론이 성경말씀 내용과 부합을 하는 진리인지 여러분 스스로가 비교연구 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원히 존재할 여러분의 영혼이 어디로 갈 것인지 여러분 자신이 잘 선택을 해야 합니다.
당신의 영혼이 사후에 영생복락으로 가느냐 영벌의 지옥으로 가느냐 하는 중차대한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일부분이 비유의 말씀과 7 인(seal)으로 봉하여져 있다.
성경이란 우리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법을 성경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 역사와 인류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에 관하여 쓰여 있습니다.
거의 전부분의 문장들과 내용이 누구나 읽으면 다 알고 이해하게 쓰여 있습니다.
일반 정통 개신교 교회들에서 많은 하나님의 지식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잘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하나님의 지식은 보편적으로 다 알려져 있습니다.
사이비 기독교 이단 종파들을 제외한 일반 정통 개신교 교단들 안에서는 많은 목사들이 설교할 때 그러한 하나님의 지식을 교인들에게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내용 중 하나님의 인류 구원에 관한 교리에 일부분이 비밀로 가리워져 있어서 그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일부분이 7 인으로 봉하여져 있고 또 적지 않은 구절들과 내용들이 비유의 말씀으로 그 영적 뜻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예언서들에서 그러한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아니했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13: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막4:34).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막4:11-12).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3:16).
(사 29:10-12)에, 대저 여호와께서 깊히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
으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으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책의말이라 (the words of a book that is sealed) 그 것을 글을 아는자 (유식한 자)에
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封,sealed) 못 하
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
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계5:1)에, 내가 보매 보좌의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인(印,seals)으로 봉하였더라(封,sealed).
위의 구절들에 있는 내용과 같이 성경의 일부분은 봉하여져 있고 그 안의 말씀들이 비유로 가리워져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 비유로 설교를 하시고 일반 청중들에게는 그 영적 뜻을 알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성경은 왜 일부분이 일곱 인으로 완전하게 봉하여 (계5:1) 그 안에 있는이면의 영적 뜻을 알 수 없게 되어 있는가?
무슨 이유로 성경을 일곱 인으로 봉하여 그 뜻을 알 수 없게 하시었나?
그 이유는 사탄이 예수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유혹할 때에 반드시 성경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속여서 잘못된 교리로 잘못된 길로 유도하여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의 내용을 가지고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에 성경의 진리를 마귀가 알수 없게 7 인(Seal)으로 완전히 봉해 놓은 것입니다.
성령이 인도하지 않으면 그 봉한 7 인을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감추인 진리를 알 수 없게 되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교 신자들은 열심히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사이비 기독교 이단 종파들이나 정통 개신교의 보편적인 교회들이나 다 그들 안에서 사탄이 하나님과 대적하며 악의 역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또 반문하실 것입니다.
아니! 성경이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게 그 영적 뜻이 봉하여져있다 이말입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나는 도대체 그러한 소리는 금시초문이고 성경이 무슨 봉하여져 있고 그 뜻을 알 수 없게 되어있다니 무슨 해괴한 말인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성경이란 누구든지 읽으면 다 알고 이해하는 것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여라.
예!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의문입니다.
성경 안에 있는 난해한 구절들과 내용들
우리가 성경을 여러번 통독을 하고 한 구절 한 구절 정신을 집중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읽으면 일부 구절들이 내용들이 난해하고 그 의미와 뜻을 풀 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예언서들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다수의 기독교 교인들이 성경을 읽는데 있어서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성경 안에 많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주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성경 안에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그러한 점들에 대하여 전혀 관심도 없고 또 알고 싶어 한다거나 중요시 생각하거나 혹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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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많은 목사들이나 기독교 학자들이 말하기를 성경에 있는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나 난제(難題)들을 알려고 하거나 그 해석을 찾으러 다니면 신앙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신비주의나 사이비 이단교파에 빠지기 쉬우니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들이 흔히 말하기를, 우리가 생선을 먹을 때에 뼈와 지느러미는 먹지 않고 생선의 살고기만 먹는 것처럼 해석하기 어렵고 난해한 구절들과 내용들은 비켜가고 해석하기 용이한 구절들과 내용들만 가지고도 우리가 충분히 기독교의 신앙과 교리와 신학을 세울 수가 있으며 또 교인들에게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있는 그러한 구절들을 반드시 풀어야 하며 또 서로가 그 뜻이 반대이거나 상충(相衝)되는 내용의 구절들을 우리가 풀어 해석하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뜻이 서로 상충하거나 상반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난제(難題)들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성경에 무슨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어디에 있으며 또 뜻이 서로 상충되는 구절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무슨 잠꼬대 같은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라고 할 것입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예를 몇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예 1
(눅14:26)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마19:29)에,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위의 두 구절에서는 자기 가족을 주를 위하여 미워하라 또는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딤전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 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복음서에서는 분명 예수께서 믿음을 위하여는 가족도 미워하고 버리라 하셨는데 바울 사도는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라 하였읍니다.
어느 것이 맞는 말씀이고 진리인가 예수님의 말씀이 맞는가 바울 사도의 말씀이 맞는가?
분명 두 말씀이 다 맞는 진리일 터인데 그 뜻이 서로 상충하지 않은가?
왜 그러한 것인가?
예 2
(고전14:19)에,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14:23)에,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전14:39)에,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위 구절들에서 보는 바와같이 (고전14;19,23)에서는 방언을 자제하라는 듯한 말씀을 하였는데 (고전14:39)에서는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막16:17)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위 구절에서는 믿는 자의 표적이 방언이라고 하였고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받을 때는 반드시 그 받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행 2:4, 10:46, 19:6).
그러면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이 방언을 반드시 해야 합니까?
아니면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입니까?
방언이란 무엇입니까?
대다수 많은 목사들은 방언은 하나님의 은사들 중에 하나이니 꼭 하지 않아도 예수 믿는데 지장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목사들은 방언을 하면 안된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장로교회 목사들과 안식일 교회에서는 초대교회 때에는 성도들이 방언을 하였었는데 그후로는 방언이 폐하였다고들 말합니다.
많은 목사들이 말하기를 방언을 중요시 하거나 강조하면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니 잘못된 이단신앙으로 가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순절 계통의 성령파들은 방언은 성령 받은 표적이니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느 해석의 교리가 맞고 성경의 진리인지?
대다수의 기독 교인들이 아마도 99% 도 더 되는 교인들이 “방언이란 우리가 예수 믿는데 있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예수만 열심히 잘 믿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도 그럴 것입니다.
예 3
(마10:32-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26:74)에,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위의 구절들에서 보면 그리스도를 사람앞에서 부인하면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고 그에 상응한 정죄로 구원을 못 받는 것인데 베드로는 세번이나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고 심지어 맹세까지 하였는데 어찌하여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사도로 복음 전파를 할 수 있었는가?
예 4
구약시대에는 선지자, 왕, 제사장의 직분이 따로 구분이 되어 있었고 한 사람이 세가지 직분을 겸하지 못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사울 왕과 웃시아 왕은 제사장이나 할 수 있는 제사를 직접 드리었다가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진로를 사서 망하였습니다.
웃시아 왕은 이마에 문둥병이 들려서 성전에서 내어쫓기고 죽을 때 열조의 무덤에도 안장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솔로몬은 왕인 동시에 제사도 직접 드렸으며 선지자들이 하는 예언도 하고 하나님과 직접 교통도 하였는데 왜 그럴수 있었는지?
예 5
(마26:52)에,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눅22:36)에,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한 구절에서는 검을 가지지 말라 하셨고 또 나중에 다른 구절에서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사서 가지라 하셨습니다.
이 것이 도데체 무슨 뜻인가 ?
한번은 검을 갖지 말라고 하시고 한번은 검을 가지라 했으니 수수께끼 아닙니까?
예 6
(벧전4:8)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눅12:32)에,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히6:4)에,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히10:26-27)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요일5:16)에,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pray) 하지 않노라.
베드로 사도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였는데 영원히 사함을 못받는 죄들이 있다고 분명히 여러 구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말씀이 맞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라고 하였으니 허다한 죄를 다 용서하지 아니 하시겠는가?
과연 영원히 사함을 못받는 죄가 있겠는가?
예 7
성경의 진리는 장로교회에서 신봉하고 주장하는 칼빈의 예정설입니까 아니면 감리교회에서 주장하는 Arminius 설입니까?
소위 신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칼빈의 예정론의 5대강령 중에 5번째,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인데 하나님이 영원 전에 택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던 안하던 어떠한 믿음생활을 했어도 강하게 참고 기다리며 (堅忍) 구원을 하신다는 이론입니다.
즉 한번 구원받은 성도가 다시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
반면에 아르미니우스 주의의 5번째 강령은 “신앙의 유지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계속 유지할 수 는 없다” 입니다.
즉 한번 구원 받은 성도라도 성경의 하나님 말씀대로 잘 순종하며 신앙생활 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
이 두 이론의 신학적 해석이 정 반대로 갈리는데 어느해석이 맞는지?
이것은 분명 구원론에 관한 교리이고 예수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인데 너무나도 중요한 사항 아닙니까?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구원받고 천국 가려고 믿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구원론은 기독교 교리에서 제일 중요한 교리인데.
어느 이론이 진리이고 진실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우리가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나 그저 아무 교회든지 다니며 예수만 열심히 잘 믿으면 될까요?
과연 예수는 어떻게 믿는 것이 올바로 잘 믿는 것일까요?
예 8
주로 장로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우리가 예배볼 때 꼭 입으로 소리를 내어 되뇌야 합니까?
침례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은 카톨릭이 만든 유물이고 그 내용이 성경과 반대되는 사항들이 몇가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절간의 중들이 불경 읽는 것이나 천주교 성당에서 신부들이 교리문답 되풀이 하는 것처럼 형식적인 것이고 의미 없는 행위와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면 안된다고 하여 저들은 예배 때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습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예배시에 사도신경 암송 안하면 큰 죄 짓는 줄 생각하고 예배 드릴 때 사도신경 암송 안하는 교회는 이단이라고 까지 주장합니다.
그러면 침례교회는 이단 교파입니까?
그러면 어느 교회의 주장이 맞을까요?
예 9
(행2:21)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롬10:9-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요3:5)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행19:2)에,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한 구절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는데 반면에 다른 구절에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 하였습니다.
흔히 목사들이 우리가 주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고백하며 주 이름을 부르고 예수 믿으면 그 즉시로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는 다고 하는데 사도행전에서는 여러 구절들에서 사람이 예수 믿는다고 자동적으로 그 즉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님을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구원을 못받는다 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는 것인지?
단순히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에 믿으면 성령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인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 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흔히 목사들이 가르치기를 예수 믿기 시작하면 즉시 성령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예수 믿으면 무조건 자동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하나?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성령을 받는다라고 가르치는 그 목사들 말을 우리가 아무런 의심과 성경 연구의 노력없이 성경적인 검증 없이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되는가?
그 목사들이 말하는 무조건적인 성령세례가 성경에 쓰여있는 말씀과 부합을 하는가 안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성경에 쓰여 있는 구절들 말씀을 잘 따지고 비교연구 하여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가 살펴보아야 하나?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우리 신도들이 구원을 받는지 못 받는지 천국을 갈 수 있는지 없는지 를 판가름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관한 가장 중요한 예수교의 핵심적인 교리인데 어느 것이 진실이고 진리인가?
목사들의 말인가 아니면 성경 안에 쓰여진 부인할 수 없는 구절들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인가?
많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 중에서 위와 같이 제일 중요하고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교리와 진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교리 중에서 그러한 헷갈리는 알송달송한 문제가 있는 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다 그럴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해석할 수 없는 난해한 구절들과 내용들이 있다.
특히 예언서들 안에 많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 전반에 걸치어 있습니다.그러한 것들이 무엇인지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 1
스가랴서 5 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
5:1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5: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5: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5:4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에바 속의 여인
5: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5:6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5: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5:8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5: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5:10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5:11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위 구절들 안에 나오는 날아다니는 두루마리는 무엇이며 왜 도적의 집에 들어가고 망령되이 맹세하는 집에 들어갑니까?
에바는 무엇이며 그 에바 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은 누구를 가르키며 무엇을 의미합니까?
에바가 시날 땅에 가서 집을 짓는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스가랴서 5장의 전체 문장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정말 알 수 없는 내용들 아닙니까?
명확하게 짝 구절들을 찾아서 믿을 수 있고 납득할 수 있게 세상 어디에 누구 한 사람 시원하게 풀어서 해석하는 사람 있습니까?
이러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어서 정확히 짝 구절들을 찾아서 맞추고 해석을 해야 합니까?
쓸데없이 해석할 필요가 없다.
공연히 해석한다고 잘못 해석하여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
어려운 것은 놔두고 쉬운 것만 다루는 것이 좋다.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을 풀어서 해석 안해도 얼마든지 온전한 신앙과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다.
여러분들 생각도 그렇지요?
예 2
에스겔서 1장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그룹의 형상은 어떻습니까 ?
똑같은 그 그룹의 형상이 요한계시록 4장에도 나오는데 그 그룹 형상의 모양들에 그 무슨 심오한 영적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누가 해석을 할 수 있는지?
그 그룹 형상에서 나오는 사람, 독수리, 소와 사자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날개가 각각 네개, 여섯개가 있고 바퀴와 그 안에 가득한 눈들은 무엇인가?
이러한 성경 안의 난제들을 누가 풀 수 있는지?
그러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지금 세상에서는 아무도 어느 신학자나 목사나 일반 교인이나 이러한 점에 관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는 사람이나 노력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스가랴서에 있는 알 수 없는 예언과 구절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성경 안에는 많은 난제들이 있는데 서로 상충되는 구절들과 내용들이 있습니다.
예 3
여러 가지 수수께끼가 많이 있습니다(삿 14:12, 겔17:2).
(마24:17)에,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이것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그 영적 의미의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지붕이란 기도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행10:9)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하였고.
(신22:8)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구약시대의 (지금도 마찬가지) 유대 지방의 집들은 지붕이 다 평평하여(flat) 지붕을 기도 처소로 사용했습니다.
즉 이 구절의 영적 해석은 목적기도 하는 자가 세상사에 마음이 뺏기어 그 목적기도를 중단하지 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그 목적기도란 무엇입니까?
시편과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난해한 구절들, 도저히 풀어지지 않는 구절들과 서로 상충되어지는 내용들을 어떻게 짝을 맞추어 해석을 하나?
그러한 난해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나?
성경의 난해한 구절들과 난제의 내용들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
위에서 서술한 성경 안에 있는 난해한 구절들과 서로 뜻이 상반되는 난제들은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다 알고 풀어야 하는 과제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섬기기 위하여 반드시 배워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것입니다 .
어떠한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도의 교주이시고 맏사도이시며(히3:1)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이신(엡1:22)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섦기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열두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마24:14) 알기 위하여 꼭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추어진 난해한 구절들의 영적 의미를 몰라도 우리가 예수교의 신앙을 갖고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4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은 모든 말씀을 비유만으로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부분을 누구나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직설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일반 청중들에게 하신 명령과 설교들도 직설법으로 하시며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안에 있는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누구나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어법으로 직설적인 표현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 일부분이 일반 독자들이 해석할 수 없는 난해한 예언들과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난해한 구절들에 영혼구원론에 관한 핵심적인 영적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법을(사1:10, 롬7:25) 올바로 터득하려면 그 난해한 예언들과 구절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배우면 감추어진 진리를 아는데 절대적인 도움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자연히 하나님의 법인 (롬7:22) 십계명과 성령의 법을 (롬8:2) 알게 됩니다.
우리가 computer의 사용법을 배우지 못하여 computer 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컴맹이라 하지요?
영어로는 computer iliterate 라고 합니다.
글자를 쓰고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하여 글씨를 못읽는 사람들을 가리켜 문맹이라고 하지요?
여기서의 컴맹, 문맹의 맹은 한자로 무엇입니까?
보지 못하는 장님, 소경의 맹(盲, blind)이지요?
이와 같이 성경도 그 안에 있는 봉하여져 있는 구절들의 인을 떼지 못하면 우리가 영적 맹인(靈盲)이 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illiterate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요9:39)에서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함이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이사야의 구절을 인용하시며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소경이라고 꾸짓으셨습니다 (마23:26, 요9:40-41).
그랬더니 바리새인들이 무엇이라고 화를 내며 반발하였습니까?
“우리가 소경인가?” 라고 하였지요?
또 (계3:18)에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15:14)에,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우리가 외국어로 쓰여진 책을 읽고 이해하려면 그 나라 언어의 단어들과 문법을 배우고 공부하여야만 가능하겠지요?
성경이 그와 같습니다.
성경은 비밀로 봉하여진 곳이 많기 때문에 단어들의 영적 의미와 그 구절들을 꿰는 문법을 알지 못하면 일곱 인으로 봉하여진 비밀의 뜻을 풀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은 단어마다 그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절들의 내용 속에 감추어진 영적 뜻이 있는데 그것을 축자영감(蓄字靈感)이라 합니다.
즉 성경에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의 영적 의미가 담기어져 있고 그 구절들의 내용 안에 감추어진 심오한 영적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 축자영감설도(verbal inspiration, 逐字靈感說) 신학자들 간에 많이 거론되는 신학의 한 일부분입니다.
“사도복음 교회”가 말하는 축자영감은 逐字靈感說과는 조금 다른 것입니다.
사도복음 교회의 축자영감설은 蓄字靈感입니다.
우리 속담에 “구술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속담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귀하고 좋은 것이라도 잘 다듬고 정리해야 만 값어치가 있는 보배가 된다는 말이지요?
이와 같이 귀하고 좋은 성경말씀도 사방에 흩어져 있는 짝구절들을 찾아서 은혜의 줄로 꿰어야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축자영감의 단어들과 구절들을 서로 맞는 짝들로 찾아서 그 진주구슬 들을 줄로 꿰는 문법으로 풀어서 해석을 해야 난해한 구절들과 일곱 인으로 봉하여진 감추어진 말씀의 비밀을 우리가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또 많은 분들이 반문하기를 그러한 성경상의 난해한 구절들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러한 것들을 몰라도 예수 잘 믿을 수 있고 얼마든지 천국 갈 수 있는데 아니 그러한가?
예, 그러한 생각을 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필자가 주장하는 그 인봉된 성경에 대하여 동감도 할 수 없고 납득도 할 수 없지만은 만에 하나 필자가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라도, 그러한 인봉된 구절들의 영적해석을 우리가 예수 믿는데 꼭 필요합니까 알아야 합니까?
그러한 어려운 내지는 의심스러운 영적해석을 몰라도 예수는 잘 믿을 수 있지 않은가?
예수 믿는 것이 아주 간단한 논리 아닌가?
주일성수 잘 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맡은바 직책을 충실히 하며 모든 이들에게 친절 봉사하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성경말씀 잘 지키며 죄 짓지 아니하고 새벽기도 열심히 나가고 교회목사님 잘 받들고 십일조 잘 내고 열심히 예수 잘 믿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지상에서 복 받고 나중에 천국 가는 것 아닌가?
예, 지극히 맞는 말입니다.
네, 그러한 성경상의 영적 비밀을 몰라도 우리가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믿고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 성령의 9 가지 열매, 그리스도교의 인성교육 등 많은 중요한 예수교의 교리를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우며 많은 하나님의 지식을 터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섦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법을 올바로 지킬 수 없게 되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11:4).
성령의 법을(롬8:2) 모르면 불법을 행하게 되고 불법을 행하면 심판날에 정죄를 받고 영혼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으로 예수를 믿으면 다른 예수를 섬기면서 불법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내게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마7:23).
즉 우리의 구원과 절대적이고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에 우리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불법을 (anomian – ἀνομίαν – lawlessness) 행하지 않기 위하여 알아야 합니다.
열두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알게 되면 그러한 성경의 난제들을 자연히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난해한 예언들은 어떻게 그 짝들을 맞추어 비밀로 감추어진 영적 해석을 하는 것인지 이해를 돕기 위하여 (계11:9)에 있는 구절과 엘리야의 3년 반 가뭄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보겠습니다.
(계11:9)에,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dead bodies)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엘리야가 기도하니 3년 반 동안 땅위에 가뭄이 있었고 또 기도하니 비가 내렸다고 했습니다 (눅:25).
그러면 이 구절들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시체는 무엇이며 사흘 반 동안은 무엇이고 또 장사는(burial)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나옵니다.
여기서 나오는 사흘반 동안은 성경 여러 구절들에 그 짝들이 나오는데 이 구절에 엄청난 인류역사의 비밀이 나옵니다.
그 해답이 엘리야 시대 3년 6개월 동안의 기근입니다.
(눅4:25)에,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해 여섯달을 닫히여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약5:17)에, 엘리야가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단7:25)에,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때와 두때와 반때를 지내리라.
(단9:27)에,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단12:7)에, 강물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기를 반드시 한때 두때 반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러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계8:1)에,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계11:2)에,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11:3)에,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리라.
(계11:11)에,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계12:6)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계12:14)에,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때와 두때와 반때를 양육받으매.
(계13:5)에,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위에 있는 구절들 중에서 및줄이 그어있는 ‘한 때 두 때 반 때’, ‘이레의 절반’, ‘세 해 여섯 달’, ‘삼 년 육 개월’, ‘마흔두 달’, ‘일천이백육십 일’, ‘사흘 반’, ‘삼 일 반’은 다 같은 의미이고 같은 날자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레(week)의 절반과 반 시간은 삼 일 반입니다.
마흔 두 달은 삼 년 육 개월이고 한 때 두 때 반때와 일천이백육십 일도 다 삼 년 반입니다.
3일 반은 성경적으로 환산하면 3년 6개월 즉 1260일을 말하는 데 1260일을 성경적으로 환산하면 1260년이 됩니다.
성경적인 하루는 일 년으로 환산하는데 그 구절들이 (창29:27, 출14:31, 겔4:6)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 구절들에서의 모든 기간들은 1260년(year)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장사(葬事)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롬6:6),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엡4:22),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
그러니까 장사란(berial) 성령세례를 받아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을(요3:3) 의미합니다.
옛 사람이 죽고 성령 받은 새사람이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즉 옛사람의(엡4:22)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계11:9)의 시체는 회개하고 난 후 죽은 옛사람을 말합니다.
시체들을(옛사람) 장사하지 못하게 하니 성령세례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못 받았으니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였으니 영혼구원을 받을 수가 없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9:6)에서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그 날 – 1260년 동안
죽음 – 옛 사람의 죽음
그러니까 서기 688년부터 1948년까지 1260년 동안 회개하고 옛 사람이 죽어야 성령을 받는데 죽음이 사람들을 피하였으니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령 받은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종합적으로 이 구절들의 영적 해석을 하여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rain)로 비유되어 있고(신32:2) 또 비는 성경에 자주 성령으로 비유되어 있는데, 지나간 1260년 기간 동안 이 지구상에 이 땅 위에 영적 비가 내리지 않았던 완전 가뭄의 영적 암흑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엘리야의 삼년 반 가뭄입니다.
기근이란 (암8:11)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 기근이라고 하였지요.
그 영적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 것이 서기 190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 부터입니다.
그 전의 1260년 동안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이 땅 위에 없었습니다.
그 1260년 동안은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던 시기입니다.
태양신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의 카톨릭이 초대교회 진리의 복음을 말살시키고 온 인류를 우상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의 역사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하나님 말씀의 기근이 1260 년 동안 이 지구상에 있었던 것입니다.
서기 600 년대 말경부터 1900 년대 중반까지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았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24:20)에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겨울이 바로 인간에게 영적 구원이 없는 1260년을 가리킵니다.
지리적이나 기후적으로 이스라엘 지방의 겨울은 비가 지금도 내리지 않는 계절입니다.
그러면 그 기간 동안에 살았던 그 많은 인구가 구원을 다 못받았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계9:6),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회개기도 하고 죄사함 받아서 옛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옛 사람이 죽지를 않으니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데 죽음이 사람들을 피하였으니 영혼구원을 받을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홍수 때의 여덟 사람처럼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구원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하십니다.
아무때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 구약시대 때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잘 아시지요?
구약 때의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다른 이방 민족들은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구약 때에는 모든 인류에게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그 1260년 기간 동안에 이 땅 위에 살았던 한국사람들 고구려인 신라인 고려인 조선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퍼져 있었던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없었습니다.
많은 초신자들이 갖는 의문 중에 하나인 수수께끼의 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알고 싶어하기를 “신라시대 조선시대에 살았던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당시에는 한반도에 기독교 교리가 전파가 되지 않아서 그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을 기회가 없었던 것 아닌가?
만약 그 당시에 한반도에도 기독교가 들어왔었더라면 예수 믿고 구원 받을 사람들도 상당히 있었을 터인데 그사람들은 너무 억울하지 않나?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은 분 아닌가?
그 때에도 마음이 선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어 기독교가 전파 되기만 하였으면 예수를 믿을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터인데…… 너무나 아쉽고 억울하다.
그렇게들 생각하는 교인들이 대다수입니다.
그 1260년 기간에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혹 그 기간 동안에 예수교 복음이 전파되었다 해도 성령의 구원사역이 없었던 때이니 복음이 전파되었거나 안 되었거나 어짜피 구원 못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한국 사람들만 해도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또 예수 믿는다는 신자들도 거의 전부가 엉터리로 예수를 믿고 있는데 우리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우리가 무슨 옛날 사람들 걱정하고 신경쓸 계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의 영혼 구원이 먼저이고 또 시급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옛날 사람들 신경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기 1948 년 이후에 살고 있는 지금의 인류는 참으로 복있는 인생들입니다.
그리면 왜 하나님이 그많은 사람들을 인류구원의 역사가 없는 1260의 기간에 태어나게 하셨나?
그 1260년 기간에 이 땅위에 태어나고 죽었던 사람들은 인간세계의 어느 시기에 태어나도 구원을 못받을 사람들이었기에 그 1260년 기간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눅16: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예를 들어 여러분의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죽었던 사람이 다시 세상에 나와서 인간 사후세계의 심판과 지옥에 대하여 간증과 증거를 한다 하여도 그 간증을 듣고도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을 사람은 죄에서 영원히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짜피 구원 못받는 사람들은 어떠한 방법이나 태어나는 시기가 그 사람들에게 별 영향을 못끼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출33:19)에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는 자들이 아니라 (롬9:18)의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강퍅케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왜 지난 세월 1260년 동안 구원의 역사를 아니하셨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다음 기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과 그외 많은 구약의 선지자들 그리고 바울 사도와 그외 초대교회 때 많은 은사자들이 받았던 성령의 지혜의 은사나 혹은 지식의 은사를(고전12:8) 조만간 내가 받거나 어느 누군가가 “지식의 은사”를 받는 성도가 세상에 출현하면 자연히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의 가뭄 126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이 땅위에 다시 역사하시다.
서기 680년말 경부터 서기 1900년 전후까지는 이 지구상에서 방언이(spiritual tongue) 사라졌던 때입니다.
기독교 내에서 1900년 전후까지 초대교회 때에 초대교회 교인들이 하던 방언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언은 초대교회 때에만 있었고 그 후에는 폐하였다고 까지 사람들이 생각을 하였었습니다.
그 사라지고 없었던 방언이 서기 1901년 1월 1일 미국 캔사스주 토페카시에서 벧엘 신학교 학생들이 갖인 기도모임에서 처음으로 1220여년 만에 방언이 그 사람들 입에서 나와 발파(發破)가 되었습니다.
서기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탄에 독립국가를 세우기 수 십년 전에 비로서 방언이 1220여년 만에 지구상에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를 잃고 1900 여년간 세계를 떠돌던 유대민족이 옛 고향땅에 1948 년에 나라를 다시 세우고 독립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이 땅 위에서 구원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신 것입니다.
1260 년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서기 1948 년부터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방언하는 것하고 성령이 역사하는 영혼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성령과 방언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신약시대 즉 보혜사 성령시대에 방언이란 성령세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이 성령활동을 기록한 책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데 바로 맞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을 자세히 살피면 성령세례 받을 때에 방언을 반드시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세한 것은 제 4장, 성령 장(chapter)에서 언급하겠습니다.
방언은 성경상 세가지 종류의 방언이 있습니다.
첫째는 각 민족들이 쓰는 인간의 언어 방언이 (행21:40,계7:9) 있고 성령세례의 방언이 (막16:17, 행19:6) 있고 은사의 방언이 (고전14:14,26) 있습니다.
그러면 또 많은 분들이 묻기를 1200여년만에 지구에 다시 방언이 출현한 서기 1900년에서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도 까지 48년간은 성령없는 방언의 역사였나?
그 답은 다음에 내놓기로 하겠습니다.
7 인으로 봉한 구절들은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 뗄(Open) 수 없다.
여러분들에게 성경에 많은 구절들의 하나님의 말씀이 일곱 인으로 봉하고 감추어져 있다 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앞에서 예로 든 몇 가지 난해한 구절들의 그 영적 비밀의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 구절들의 영적해석도 사람의 지혜나 능력으로는 그 봉한 일곱인을 뗄(open) 수 없는 것입니다.
위에서 몇가지 성경 안에 감추어진 영적비밀의 해석을 짝들을 맞추어 풀어 해석하여 놓은 것을 보니 쉬운 것 같으나 사람의 지혜나 능력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는 짝구절들을 찾아 맞추어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이 그러한 짝 구절들을 찾아내어 맞추고 그럴듯하게 꿰맞추어 해석한 것같기도 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영적해석은 사람의 지혜나 능력으로 알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봉한 것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개봉할 수 없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하고 속이지 못하게 하려고 일곱 인으로 봉하셨습니다.
또 엉터리로 제멋대로 짝들을 맞추고 꿰어서 해석한다면 여호와증인이나 안식일교나 신천지교회처럼 앞뒤 좌우가 엉망이 되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뱀의 거짓말이 되고 선악과가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논술한 엘리야의 3년반 기근에 관한 영적해석을 한 어느 목사나 신학자가 과거에 있었습니까?
또 현재에는 있습니까?
없었지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단 교파들의 특징은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교리와 그 뜻이 반대되는 구절들은 절대로 언급하거나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교리에 필요한 그 뜻이 명확하지 않거나 애매모호한 구절들을 주로 골라 엮어서 해석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과 반대되는 성경구절들을 인용하면 그들의 엉터리 거짓이론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계22:10)에,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이제는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으니 그 인봉을 떼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한 계시록에 있는 예언들은 어떻게 해석하나?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난해한 예언들 중에서 한가지만 예를 들어 풀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대접재앙은(계6:1) 무엇입니까?
여기서의 대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바로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며 특히 그 속이 더러운 목회자들을 가리킵니다.
회칠한 무덤, 겉은 깨끗해 보이나 그 속에는 갖은 더럽고 악한 것들로 가득찬 자들.
그 안에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각종 더럽고 악한 독이(venom) 가득찬 대접을 땅에 쏟으면 요한계시록의 일곱 대접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들의 땅은 무엇입니까?
흙 입니까?
예, 흙은 흙인데 농사짓는 흙입니까?
성경의 흙은 영적으로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각종 더럽고 악한 독(거짓 설교)을 사람들에게 쏟으면 재앙이 되어 사람들의 영혼이 멸망하는 것입니다.
(마 23: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개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였도다 (마23:27).
진노의 일곱 대접을(vials or bowls) 땅에 쏟으라 하더라 (계16:1).
이와 같이 대접, 잔, 그릇 등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vessel)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1).
성령께서 바울을 지칭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vessel)이라(행9:15).
이와 같이 그릇이란 널리 알려지다시피 사람을 가리키지요?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겔2:9,10).
우리가 흔히 성경에 나오는 두루마리는 성경책을 의미한다고 목사들이 말하지요?
그런데 성경은 축복과 구원의 복된 책으로만 알았는데 여기에서 보니 재앙이 가득하다 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그 두루마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여 바르게 가르치지 아니하고 거짓 목자들이 제멋대로 제 생각대로 가감(加減)하여 만들어낸 선악과를 사람들이 먹으면 그 영혼들이 멸망하는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대접재앙이 무슨 흔히들 말하는 백보좌 심판후의 아마겟돈 재앙이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예언들은 거의 모두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보혜사 성령시대에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지 아니하면 전부가 영적 거짓말이 되어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과가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선악과가 되어서 언어혼잡(babel)을 일으키어 그 독사들의 독으로 인류를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그 독사들이 누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까?
바리새인들이였지요.
그러면 그 바리새인들이 오늘날 지금에 와서는 누구들입니까?
여러분 깊히 깊히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는 왜 믿습니까?
세상복 받을려구요 아니면 영생의 복을 받을려구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복 받을려고 믿고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영생복락의 구원을 받을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영생의 복은 받지 못하고 세상복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 하여도 결과적으로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하겠습니까?
세상복이야 불과 몇십 년밖에 더 됩니까?
영생의 복은 영원한 것인데.
영생의 복도 받고 세상복도 받는다면 더할나위 없겠지요.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올바로 믿으면 세상복도 영생의 복도 다 받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미혹할 때 반드시 성경을 가지고 그 성경 안에 있는 구절들과 내용들을 가지고 속입니다.
만약에 성경을 봉하지 아니하고 그냥 open 이 되어 있다면 사탄의 장난과 속임수로 아무도 천국으로 갈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7인 (첫번째 인의 흰말은 참성도 그위에 탄자는 예수 그리스도)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4 가지 말 (Horse)
백마 – 하나님의 말, 승리한 말, 구원 받은 성도들.
붉은 말 – 적그리스도, 사도복음에서 나간 자들 (요일2:18). 타락한 계명성 (사14:12), 범죄한 그룹(Cherub) (겔28:16). 성령모독 죄, 짐짓진 죄, 당짓는 죄를 범하여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할 사람들.
검은 말 – 성령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는 개신교 교인들. 목사 노릇, 성도 노릇은 열심히 하는데 은혜 (성령) 받지 못한 말.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 (계3:1).
청황색 말 – 은혜(성령)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안받은 것 같기도 한 말. 두가지 마음을 품고 우왕좌왕 하는 신도들.
구약의 율법 613조와 모든 story는 다 감추어진 영적 뜻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을 올바로 알려면 성경의 66권에 있는 구절들을 모두 다 해석해야 하는 데 신약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는 12 사도들이 전한 ‘사도복음’을 배워야 다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롬15:4) 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아가서는 엄청난 말씀비밀의 창고이므로 아가서의 난해한 구절들을 다 open 해야 하며 성경에 기술된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 하나하나를 다 풀어야 만 하나님에게서 온 진리입니다.
예를 들면 (출3:2)에서 떨기나무의 불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그 곳에서 모세의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은 영적으로 무슨 뜻이, 어떠한 비밀이 있는가?
형제의 이름을 잇지 않는 자나 친족의 기업을 무르지 않는 자들을 성읍장로들 앞에서 그들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그의 집을 신발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하는 (신25:9, 룻4:8) 것은 무슨 영적 의미가 있는지?
구약에 유대인의 제사 절차와 율법은 지금 신약시대 와서는 영적으로 어떠한 뜻이 있는가?
예를 들면 구약에 요제와 거제 (레23:20,레17:32)가 많이 나오는데 왜 제사장들이 양과 소의 앞다리, 뒷다리를 흔들어 요제로 삼았는가?
또 왜 뒷다리를 높이 들어올려서 거제로 삼았는가?
왜 정한(clean) 짐승은 발굽이 갈라지고 새김질을 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모세 오경에 나오는 율법의 613조가 신약시대 와서는 모두 어떠한 영적 의미와 비밀의 뜻이 있나?
율법의 모든 613조가 우리 신약시대에 와서는 어떻게 영적 의미로 상징하는지 그 이해를 돕기위하여 613조 중 한 가지를 예를 들어서 짝구절들을 찿아서 맞추고 구슬을 꿰는 문법으로 꿰어서 그 영적 뜻을 밝혀 보겠습니다.
“정한 짐승은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의 규례에(레11:2-8)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영적의미를 신약시대의 우리에게 주는 것인가?
발은 성경상에서 복음, 기쁜소식으로 (유앙겔리온) 상징합니다.
신발도 마찬가지의 의미로 상징합니다.
(사52:7)에, 좋은 소식을 갖어오며 평화를 공표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구원을 공표하며 ……..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롬10:15)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엡6:15)에,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그러니까 짐승의 발굽이 둘로 갈라졌다는 의미는 복음이 진리와 비진리로 둘로 나누어 구분이 되었다는 뜻인데 비진리는 먹지 않고 진리만 구분하여 골라 먹는다는 뜻입니다.
짐승들이 먹는 양식의 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상징합니다.
(요10:9)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pasture)을 얻으리라.
새김질한다는 것은 그 복음 중에서 진리의 말씀을 골라 먹고나서는 계속하여 그 말씀을 되새기고 묵상하여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어 우리의 심령에 피와 살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발이 안 갈라졌다는 것은 복음이 진리와 비진리가 서로 혼합이 되어 석은잔과(계18:6, 시75:8) 비빔밥이 되어서 초교파(WCC) 그러니까 예수 믿으라고 하는 어떠한 교리와 가르침들 모두를, 어떤 설교든지 상관없이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다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 신학 저 신학, 이 교리 저 교리, 이 목사 저 목사들의 설교 할 것 없이 그 설교와 가르침이 성경과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으며 아무 것이나 무조건 다 상관없이 다 믿고 따른다는 것이지요.
어느 목사나 부흥강사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에 예수 믿으라고 하는 설교는 그 사람들이 말한 내용이 성경의 교리와 같은지 아니 같은지 따지고 헤아려 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아멘 아멘” 하면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요 얼마전 한국 감리교 신학대학 총장이나 조용기 같이 구원은 어느 종교에도 다 있다 라고 하는 뱀의 거짓말도 있었지요?
낙타나 토끼는 새김질은 하는데 그 발이 굽이 안 갈라진 통발내지는 여러개의 발가락으로 나누어졌으니 거짓 교리나 올바른 교리나 올바른 가르침이나 거짓 가르침이나 할 것 없이 마무 것이나 마구잡이로 잡식으로 막 먹고 되새김질하니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변질되고 잘못된 복음을 아무리 되새긴들 무엇합니까?
초교파들의 교리와 성경해석이 (WCC) 하나의 통으로 생긴 발 내지는 여러개의 발가락으로 된 짐승의 발을 영적으로 의미합니다.
뱀의 거짓말이 섞인 선악과인데 선악과가 섞인 섞은잔인데 바벨론 음녀의 가증한 금잔을 들이키면 그 영혼이 어찌 되겠습니까?
짐승의 고기는 우리 인간의 양식이기도 하고 또 성경상에 영의 양식 즉 하나님의 말씀과 제사와 예배로도 자주 상징합니다.
구약의 율법 613조 중 한 가지를 신약시대의 영적의미로 사도 바울이 해석한 것이 (고전9:9-10, 딤전 5:18)에 나오지요?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딤전5:18).
여기서도 보면 구약시대의 그 613조 중에 하나인 소에 대한 규례인데 그 소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구약시대에서는 실질적인 동물의 소를 가리키나 지금 신약시대에는 복음 전도하는 사역자들을 가리키지요?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모든 율법의 규례와 법이 다 그 안에 영적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마5:17-18)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구약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과 예언들 그리고 613조의 율법은 그 안에 감추어 있는 영적 뜻과 의미가 신약시대에 와서 반드시 똑같은 현상이 영적으로 재현이 된다.
구약에서 한 예언은 신약에서 다 이루어지며 율법의 613조는 신약에 와서도 영적으로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눅16:17)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7-18).
성경 안의 난해한 구절들과 내용을 풀어 해석하는 방법
성경의 올바른 해석이란 여호와 증인이나 한국 과천의 신천지 교회처럼 성경 안에 있는 자기네 교리에 필요한 그 뜻이 애매모호한 몇가지 혹은 수십 가지의 구절들을 엉성하게 마구잡이로 추려내어서 자기네식으로 맞게 되는대로 억지로 꿰맞추어 엉터리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 부분을 체계적으로 논리있게 다루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경의 전체적인 구도와 흐름을 잘 알아야 하는데 마치 Jigsaw puzzle 과 같이 올바르게 그 짝들을 연결하여 짝맞는 구절를을 제자리에 갖다 붙이고 맞추어야 만 큰 그림(진리말씀)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한두 piece(성경구절)라도 아무 데나 갖다 붙이거나 서로 다른 짝들을 잘못 연결하고 꿰며는 Jig saw puzzle의 본래의 그림을(말씀진리) 전혀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짝이 없는 것이 없다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영(성령)이 이것들을 모으셨다 (사34:16).
그 짝들이란 성경 어느 권에 한 구절과 다른 권의 한 구절일 때도 있으며 어느 한 구절과 다른 곳의 여러 구절일 때도 있고 또 그 짝들이 여러 구절들끼리 복수로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짝들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되게 감추어 있는 비밀의 말씀들을 찿아내어 진주구슬을(짝구절들, 마7:6, 마13:45-46, 계21:21) 은혜의 줄로(엡4:3, 호11:4) 꿰어서 그 봉한 것을 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라고 있듯이 서로의 맞는 짝들을 찿아 은혜의 줄로 꿰어야만 올바른 참 영적 해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주구슬은 무엇이고 은혜의 줄로 꿰는 것은 또 무엇인가?
성경은 읽어서 이해하고 그 참 뜻을 깨닫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꿰는 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이 무슨 무슨 궤변인가?
과연 그러한 성경해석 법이 있는 것인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예, 당연합니다
구슬을 꿰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출10:13-15 )의 메뚜기재앙은 (욜1:14)의 메뚜기재앙과 (암7:1-2)의 황충재앙과 (계9:11)의 황충(locust)과 연결된 짝들인데 이 메뚜기는 영적 해석으로 거짓 선지자, 거짓 목자들을 가르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 예언, 거짓 가르침으로 인간의 영혼들을 몰살시키는데, (욜1:4)에는 한 거짓 선지자 무리들이 먹고 남은 것을 또 다른 거짓 선지자들이 먹고 그리고도 조금 남은 것을 또 다른 거짓 무리들이 먹어치우며 싹슬이 하고 있는 현 기독교계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메뚜기들이 지면에 있는 풀과 나무잎과 곡식을 모조리 핥아서 전멸을 시키는데 성경에서 풀과 곡식과 나무들은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출10:13-15)에 나오는 열 가지 재앙 중의 하나가 메뚜기인데 그 메뚜기 재앙이 지금 우리 시대 사람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 당연한 질문입니다.
우리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고 그 메뚜기 뿐만 아니라 출애굽 당시의 모든 열 가지 재앙이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영적으로 내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출애굽 열 가지 재앙들의 짝이 요한계시록에 다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러한 소리를 하는가?
성경에 기록 되어있는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은 그 당시에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인데 그 사건 하나하나가 다 후일에 영적으로 그대로 재현되어 일어날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우리들에게 거울로 혹은 교훈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8:7)에는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쏱아지매 땅의 삼 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1/3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여기에 나오는 땅, 수목, 풀은 다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땅이나 흙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흙으로 빚어 만들었기에 흙으로 비유하는데 성경에 보면 그러한 비유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그런 비유단어들의 영적 의미를 모르면 해석할 수 없는 구절들이 성경에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자주 많은 구절들에서 흙, 땅, 섬들이 나오는데 “땅” 하니까 지구 표면의 땅바닥만 생각을 하니까 올바른 영적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41:1, 5)에,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고 말하라 우리가 서로 재판 자리에 가까이 나아가자.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의 구절들의 섬들은 뭇 인생들을 가리킵니다.
특히 예언서들에는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많이 나오므로 그 구절들의 단어의 이면적인 영적 뜻을 모르면 도저히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황충(메뚜기, 계9:3, 9:18)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거짓 가르침, 선악과) 인하여 사람 1/3이 죽임을 당하더라 하였으니 여기서 말하는 수목과 풀은 사람 즉 예수 믿으려 하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렘5:14 )에,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라.
(시114:4, 사40:6)에, 모든 육체는 풀이라.
계시록의 1/3 이란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이지 세개 중에 하나라는 수학적인 개념의 숫자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많은 부분이 그 영적 뜻이 감추어진 비유와 수수께끼로 되어 있으므로 예수께서도 모든 말씀을 일반 청중들이 깨닫지 못하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지요.
계시록에 나오는 삼분의 일이라는 숫자는 글자 그대로(literally) 셋 중에 하나 즉 0.3333… 혹은 33.333…% 이라는 수학적인 뜻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계시록에 나오는 아라비아 숫자들은 우리 인간이 양적(quantity)으로 세는(count) 수학적인 숫자가 아니라 다 상징적으로 풀어야 하는 감추어진 숫자입니다.
그 유명한 계시록의 숫자, 이마에 인 맞은 구원받은 144,000 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원리들을 모르니 혹자는 구약 때 유대인들 중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이다 (조용기 해석).
어떤 자들은 천국의 지배계급의 숫자이다 (여호와증인 해석).
이만희의 신천지교회는 현재 지상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이다 등등 거짓해석을 하며 제각각 언어혼잡(babel)을 일으켜 자기 해석을 제멋대로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만희는 그러한 숫자 144,000 명을 채워서 자기를 숭배하게 하려고 그 악하고 더러운 무지렁이 뱀의 혀를 놀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사이비 이단 종파들에서 언급하는 144,000은 여호와 증인 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이마에 표는 무엇을 말합니까?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의 표, 계시록에 나오는 144,000 인의 이마의 표는 무엇을 말합니까?
현재 전세계적으로 신학적으로 풀지 못하는 성경의 3대 의문의 수수께끼 중 하나가 바로 가인이 받은 표입니다.
궁금하십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낱말들과 구절들, 역사적인 사건들, 예언서와, 교훈들은 그 모두가 하나님의 지혜로 완전하게 선지자들의 손을 빌려 기록한 것인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똑같은 내용을 두번 세번 반복하여 기록된 것은 그많큼 더 중요하기에 강조하기 위하여 그리한 것이지요.
그들 중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역사 story 들은 반드시 후세에 똑같은 현상과 사건들이 일어날 것을 영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이 너무도 잘 아는 출애굽 이후 40년의 광야생활은 그 영적 의미가 우리들에게 거울로 보여준다 하였지요 (고전10:5-6).
그러므로 우리가 더 깊히 파헤치고 들어가면 깜짝 놀랄 엄청난 사실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무엇인가?
차차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목사들의 설교나 신학자들의 가르침이 성경의 교리와 맞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우리는 목사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성경과 일치하는가 아닌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비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겠습니까?
반드시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을 어느 정도 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느 누구의 설교도 성경해석도 가르침도 교리도 성경의 내용에 비추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나마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설교나 성경해석도 본인이 스스로 어느 정도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필자) 이 글에서 언급하는 모든 말들과 성경해석이 과연 진리이고 성경에 부합되는가 안 되는가도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아무에게나 어떠한 부흥사나 목사나 신학자나 전도사나 그 누구에게나 쉽게 내맡기면 아니됩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설교나 성경해석들이 틀림없는 진리인가 아닌가 우리 자신들이 꼼꼼이 따지고 철저히 연구해야 합니다.
그들의 설교가 성경말씀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확인을 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경 내용을 훤히 알아서 그들의 설교를 성경의 내용과 비교연구 한다면 많은 목사들의 설교가 엉터리 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들의 설교 중에 50%는 저희들이 스스로 만들고 지어낸 내용들이 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음녀의 섞은 잔입니다(계18:6) .
성경진리 40% + 바벨론종교 교리 10% + 바리새인의 누룩 50% = 음녀의 섞은 잔 .
(겔13:3)에 자기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렘23:30), 내 말로 도적질하는 선지자.
(렘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였도다.
(겔13:13),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그러므로 성경 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훤하게 알 때까지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목사들이 하는 설교들을 잘 분별하여서 그 중에서 성경적으로 맞는 말은 취하시고 비성경적인 내용의 말은 다 골라내어 배척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이유로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여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정결한 짐승들은 발굽이 둘로 갈라져 있고 되새김질을 하였습니다.
그 영적해석을 이 장 앞에서 하였지요?
되새김질한다는 것은 그 난잡한 복음들 중에서 진리와 비진리의 말씀을 구별하여 성경적인 진리만 골라 먹어야 하고 먹고난 후에는 계속하여 그 말씀을 되새기고 묵상하여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어 우리의 심령에 피와 살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영원불멸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모든 것보다도 부귀영화보다도 혈육보다도 귀중한 것이 여러분들의 영혼입니다.
그러한 귀하고 하나밖에 없는 여러분의 영혼, 그리고 또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여러분의 영혼구원을 성경적인 검증 없이 그 누구의 성경해석이나 설교나 교리나 가르침에 쉽게 수긍하고 믿어 내맡기면 안 됩니다.
훗날 그러한 여러분의 영혼이 잘못된 교리들로 인하여 구원을 못받고 어두운 밖으로 내어 쫓겨나서 영원한 고통의 지옥형벌에 떨어진다고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너무도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하여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마13:42).
(마13:41)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나님 말씀이 수도 없이, 서로 다른 많은 교리들과 성경해석의 언어들로 혼잡한 바벨론
Babel 즉 바벨이란 낱말의 어원이 무엇인지 다들 아시지요?
언어혼잡.
예!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대언할 때는 혼잡한 바벨론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말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창세기 때에 하나님이 아담과 대화하실 때에 쓰시었던 말, 언어 히브리어 즉 아담과 하와가 사용하였고 에녹과 노아가 사용하였던 고대 히브리어 바로 그것입니다.
노아홍수 이후로 노아와 그 가족들이 퍼트린 언어인데 노아의 장자 셈의 족보를 따라 셈의 네번째 손자인 벨렉시대까지, 바벨탑이 무너진 시기까지 약 100여년간 온 세상의 언어가 다 히브리어였었고 그 후 계속되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까지 전승되어진 언어입니다.
노아가 홍수 이후로 350 년을 더 살며 야곱이 성년이 되기까지 살아 있으면서 그 셈족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이 지나간 세월 행하신 모든 산역사를 증언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흔히 언어학자들이 히브리말은 아람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아람어가 히브리어에서 파생된 것이지요.
그러면 고대에 한 구음이었던 히브리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진리를 말합니다.
다시 영적으로 말하자면 저마다 각각 다른 사람들이 지어낸 사람들의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진리의 말씀,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천국복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를 전해야지 이 사람 저 사람 제각각 중구남방으로 자기들의 심령에서 만들어 낸 사람의 소리로 떠들어 언어혼잡을 일으켜 바벨론 음녀의 가증한 바리새인의 금잔을(요17:4) 마시면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겔13:3)에, 자기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성경 본문들의 많은 수수께끼(삿14:12)들, 의심에 또 의심(히 25:22)을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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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쓰고 있는 이 글의 내용도 성경에 비추어서 맞는 올바른 소리인가 아닌가?
연구하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교회목사 설교가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어떤 신학자의 소리는 성경의 내용과 부합되는가 어떤 부흥사가 부흥회에서 떠들었던 소리는 성경적으로 올바른 소리를 하였는가를 점검하고 따져봐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시대에 유명한 목사들이 주장하며 떠드는 소리가 과연 성경적인가 아닌가 ?
조사하고 연구하십시요.
사탄이 말세에 예수 믿고 천국 가려고 하는 자들을 거짓 교리로 속이는데 반드시 성경을 가지고 속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선지자가 사용하면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의의 쟁기가 되고 악한 거짓 선지자가 이용하면 영혼을 죽이는 흉기가 됩니다.
(삼상 21:9)에,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가지고 가라 다윗이 가로되 그 같은 것이 없으니 내게 주소서.
칼은(히4:12)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인데 골리앗(사탄, 거짓목자)이 사용하면 살육하는 무기(흉기,선악과)가 되고 다윗(참목자, 하나님의 선지자)이 사용하면 영혼을 구하는 생명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진리의 정의
누구든지 자기자신을 깨끗이 하여 하나님께 바치고 기도하며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요8:32)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14:6)에,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16:13)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진리(眞理)란 무엇입니까?
The Truth (veritas, Emet אמת, aletheia Αλήθεια)란 무엇인지 정의(定意)해 보세요.
The definition 을 진술해 보십시요.
진리란 하나님의 입(The Mouth)에서 나오는 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십계명(the Commandments),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법, 예수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 그의 사도들에게서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리입니다.
성령의법이(롬8:2) 진리입니다.
(마28:20)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commanded)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잠 2:6)에,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16).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4: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 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59:21).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렘1:9).
(요17:17)에,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가 흔히 목사들이 설교하는 것을 대언(代言, Prophesy)한다고 하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 사도들의 입에서 나온 말 은사의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교인들에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심령에서 만들어 낸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 (겔13:3).
이와 같이 입이란 단어에는 큰 비밀이 있는데 사람의 인체 중에서도 제일 성(聖)스러운 곳이 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입을 조심해야 하며 입술을 신중하게 놀리어 부정(不淨)하고 사악한 것은 멀리하여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입은 아주 중요한 영적의미가 봉(封)하여져 있습니다.
(요16:13)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목사들이 혹은 어떠한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기름부음이(요일2:27)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7).
누구든지 심령을 깨끗케 하고 (마5:8) 기도하며 구하면 (마7:7) 성령의 은사를 (고전12:8) 받고 그 기름부음이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빌3:8) 기름부음이 (고전12:8, 요일2:27) 가르쳐 주는 것이지 무슨 신학교나 신학자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기름부음을 받고자 기도하며 노력하여 지식의 은사를(고전12:8) 받으면 모든 영계비밀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수도 없이 많은 기름부움을 받은 선지자들이 이 말세지 말에 출현하여 그리스도의 진리를 회복하는 제 2의 종교개혁이 빨리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세에 진리를 믿는 진실한 기독교인이 과연 있겠는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약 22억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22억 인구 중 상당수는 엉터리 기독교 교회가 많이 있는데, 카톨릭교회와 동방정교 교회 그리고 남미의 토속종교와 혼합된 사이비 카톨릭신자들과 개신교 중 통일교와 신천지같은 사이비 이단 종파들을 모두 다 합친 숫자가 22억 명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거론할 가치의 대상이 되는 개신교인들 중에서 보수적인 개신교 종파들을 추리어내서 열심히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잘 살펴 분석해 봅시다.
그 보수적인 개신교인들 중 그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기독교신앙을 자기 일상생활에 반영하여 철두철미하게 믿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신앙을 죽기살기로 지키면서 성경을 한 번 이상 통독하고 성경의 내용을 잘 아는 기독교인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한 10% 정도 될까요?
만일 그숫자가 10% 라 하면 그 10% 가운데서도 자기 인생을 그리스도를 위햐여 죽든지 살든지 철두철미하게 성경의 신앙 대로 일상생활을 살며 성경을 매일 읽고 성경 안에 있는 여러 난해한 구절들과 또 서로 상충돼는 내용들을 알고자 애쓰며 기도하는 자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러면 또 반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데 있어서 꼭 성경의 내용을 잘 알아야 하나?
그러한 성경상의 난해한 구절들을 꼭 알아야 될 필요가 있는가?
그러한 것들을 다 몰라도 예수 잘 믿을 수 있고 얼마든지 천국 갈 수 있는데……
예, 그러한 생각을 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 대부분의 신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성경상의 난해한 구절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또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며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맹목적으로 습관적으로 그저 교회나 왔다 갔다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읽으라고 주신 성경을 통독 한 번 안해보고 교회 목사들 부흥사들 설교나 듣고 감동되어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성경적으로 맞는지 아니 맞는지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알려고도 생각지도 아니하고 그저 “아멘 아멘” 하며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그러한 어리석고 나태한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천국 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천국 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 하였고 (막 10:24-25).
인자가 올 때에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시었지요 (눅 18:8).
노아 홍수 때에 구원 받은 사람들이 몇 명이며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40년 간 유리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 몇 명입니까?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 말씀처럼 올바른 믿음이 과연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과연 예수가 말씀하시는 말세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천국을 갈 수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사탄은 예수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나 비기독교인들을 또 기독교인들까지도 미혹할 때에 무슨 불교경전 등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방종교의 추종자로 만들거나 무신론자로 만들거나 아니면 토속신앙이나 샤마니즘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은 이미 지옥가기로 작정이 되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악령들이 구태어 힘들여서 악의 역사를 행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미 자기네들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구태여 사탄이 힘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사탄의 target 는 오직 예수 믿고 천국 갈려고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천사들과 악령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지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제외된 사람들입니다.
(계11:2)에,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계22:15)에,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예수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마귀의 수하들이기 때문에 이미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고 싶어하는 여러분들에게 악령들이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겠다고 하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갖은 악한 생각과 유혹과 거짓 교리들로 유혹하고 속이어 그 영혼들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영한 불(마 25:41) 지옥으로 갈 때에 될 수 있으면 최대한도로 더 많이 함께 데리고 가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리는 것입니다.
이미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성경을 가지고 거짓교리로 엉터리 성경해석으로 하나님의 법을 바꾸고 십계명을 바꾸고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교리와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 내려오면서 전통이 되어 버린 교회유전들로 망하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그럴듯한 철학과 교훈과 도덕적인 논리의 누룩으로 섞어서 보리떡처럼 반죽하여 사람들의 인분불에(겔4:12) 구어 가지고 선악과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공급하여 그 선악과를 먹은 영혼들을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의 비유 구절들과 예언서를 이용하여 많은 영혼을 후리고 있는 사이비 이단 종파들
그러고 보면 또 많은 분들이 반문하기를 현재 많은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그와 같이 주장하지 않는가?
네 그렇습니다.
현재 많은 사이비 기독교 이단 종파들에서 성경의 비유 구절들과 예언서들을 해석한다고 하면서 많은 선량한 기독교인들을 거짓 복음과 교리로 속이고 유혹하여 그들의 영혼과 삶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이단 종파의 거짓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현재 이만희의 신천지교와 같은 여러 이단 종파들에서 그러한 성경 안에 있는 비유의 말씀과 구절들을 제멋대로 자기네 교리에 맞게 엉터리로 해석하고 가르치며 많은 기독교인들을 사이비 기독교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소위 비유풀이 한다고 하면서 그 이단 교주들을 신으로 섬기게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이비 이단 종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고 그 종파의 교주들을 섬기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완전히 다른 교리이고 이론입니다.
그 이론들 자체가 너무나 저속하고 유치합니다.
왠만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교리가 기독교의 교리가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현재 전세계에 있는 모든 사이비 기독교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와 이론들은 성경에 쓰여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두지 않고 그 교주들이 만들어 낸 교리와 이론을 성경보다 우선시 합니다.
그 교주들이 쓴 책들(경전) 안에 있는 내용과 이론에 절대적인 권위와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네가 주장하는 이론에 도움이 되는 성경에 있는 그 뜻이 애매모호한 그럴듯한 구절들을 몇개 뽑아서 악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네들 교리에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려고 들러리로 이용하는 것 뿐입니다.
사이비 이단의 원조인 로마 카톨릭, 통일교, 안식일교, 안상홍의 하나님 교회, 천부교, 신천지, 몰몬교, 여호와 증인, 워치만 니 등 모든 이단 종교가 다 그들의 경전이 따로 있습니다.
성경은 뒷전이고 그 이단 교회 창교자들이 만든 거짓 이론에 신도들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충성을 합니다.
그들의 종교는 사교(邪敎)입니다.
Heretical sect 또는 Cult 라고 하겠습니다.
몇가지 성경구절들을 이용하여 사기 행각을 벌이는 종교 야바위꾼들입니다.
특히 이만희의 신천지가 그렇습니다.
이만희는 차선녀라는 무당에게서 신내림 받은 무당입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도 못받은 무식한 무지렁이인데 한국에서 최고로 더럽고 사악한 이단 종파들만 골라서 종교생활 하였습니다.
이만희가 그 교주들 특히 유재열 밑에서 갖은 충성을 다하며 신임을 얻고 “장막성전”의 유재열, 문선명, 박태선이와 같은 유명한 성공한 사이비 종교 교주들의 종교운영 수법을 (knowhow) 수십년간 학습하여 습득을 하고 그 비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거짓 이론들을 자기가 개발한 논리와 섞어서 잡탕으로 하나의 새로운 종교이론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의 삶과 영혼을 썩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문선명이나 박태선과 같은 최악의 종교 사기꾼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그 종교의 교주들을 이만희나 이재록이나 문선명 같은 영적 사기꾼들을 숭배하게 하기 위하여 그 교주들이 성경에 있는 구절들을 몇개 이용하여 조잡하게 만들어낸 저질 이론이고 사상입니다.
사이비 이단들이 주장하는 이론들의 특징은 성경 전체를 다루지 않고 극히 성경의 일부분만 인용합니다.
기독교 전문가들이 그들의 교리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모든 이단 종파들의 교리들은 여러 타 이단 종교 이론들을 성경에 있는 내용 일부와 같이 섞어서 엉성하게 엮어 만든 잡탕 이론들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논리적으로 잘 이해가 안되는 유치하고도 저질스러운 이론들이 대분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닌 그 종파 교주들을 신으로 섬기게 하는 사이비 기독교 종파들에서는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사상에 반대되는 많은 성경구절들은 절대로 언급하거나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구절들을 언급하면 그 교주들을 섬기게 하는 교리와 사상을 논리적으로 정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한국에 있는 신흥종교들의 교리를 조사 연구하여 보면 그 이론들이 너무도 질서가 없어서 논리적으로 잘 성립이 안되어 있습니다.
이론들을 엉터리로 억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요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교주들을 우상숭배화 하기 위하여 억지로 만든 교리이니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될 수가 없을 뿐더러 이론의 논리가 체계적으로 설 수가 없지요.
한국에서 번성하였던 모든 사이비 이단 종파들은 그 교리들과 이론이 1940 년대와 1950 년대에 경기도 파주에서 활동하였던 “이스라엘 수도원”의 김백문에게서 전수받은 것들입니다.
문선명, 박태선, 김종규, 유재열, 나운몽, 정명석, 조희성, 이만희, 권신찬, 박옥수, 김기동, 박윤식, 안상홍 등등 기라성 같은 이단 교주들이 다 김백문이가 집필한 “기독교 근본원리” 라는 경전에서 이론과 아이디어를 계승한 것들입니다.
김백문은 한국 토종 사이비 이단 원조인 김성도의 인류의 음란 원조죄와 한국의 모든 추잡한 토종 사이비 이단 이론들을 다 모아서 집대성 한 자입니다.
지옥에서 적그리스도의 수괴 “니므롯”이 큰 공로 훈장을 김백문에게 수여했을 겁니다.
그외 작은 이단 집단을 이루며 교주 노릇하는 조무래기 이단종파들도 다 위에서 열거한 유명한 이단 종교들에서 나와서 가지치기하여 따로 새로운 종파를 창업하고 구멍가게들을 이루며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백문의 이론은 모두가 다 1920년도와 1930 년도에 북한 지방에서 발생한 한국 이단 종교의 원조인 신비주의계 사이비 기독교 소종파들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김성도, 유명화, 황국주, 백남주, 정득은 등등이 있는데 모두가 다 뱀과 하와가 간음을 했다는 간음의 원죄, 신비주의, 피가름, 입신체험 등 무당들이 행하는 무속신앙과 비슷하고 또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 아니면 영생주, 이긴자, 재림주, 감람나무, 보혜사 성령 등이라고 주장하며 수많은 무지몽매한 영혼들을 후렸습니다.
저희들끼리 합쳤다가 또 갈라지기를 계속 반복하면서 교리와 이론도 저희들 끼리 서로 주고받으며 이어받고 또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추가하기도 합니다.
이만희의 이론은 주로 유재열과 김풍일의 것을 이어받고 박태선과 문선명의 것도 조금 추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만희는 그들의 이단 종교 운영 수법과 비법을 배워서 그대로 따라하여 대성공을 하였습니다.
한국 신흥종교의 교리들은 모두가 다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 사상과 별 차이가 없는 우스꽝스러운 것들입니다.
개그맨들이 “개그” 하는 것과 별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 그 허위가 쉽게 드러나는 것을 그 많은 사람들이 믿고 추종을 하니 기가막힐 일입니다.
그 사이비 교주들을 행태를 보면 거짓이고 사기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예수교의 가르침인 사랑과 구제와 선행과 인격수양과 봉사와 헌신과는 정반대의 악한 행태를 보이는 사기꾼들에게 자기들의 인생을 바치고 저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저속하고 유치한 이론들에 세뇌가 되어서 수백 명, 수천, 수만 명씩 몰려다니며 그 교주들에게 물심 양면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은 도데체 어떤 두뇌를 가진 자들인지 신기할 뿐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거의 200만 명이 200여종의 사이비 이단 신흥종교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그 사이비 이단 종파들 중에서 교주가 자신이 재림예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120명 정도 되는데 그들 중 70명 넘는 교주들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충청남도 계룡산에는 자칭 재림예수라고 떠들고 다니는 종교 사기꾼들이 수십명인데 그 중에는 여자도 몇명 있다고 합니다.
여자가 예수가 될 수 있을까요?
이단 사이비 종교들의 특징은 다 똑같습니다.
그 교주들이 신도들을 끊임없이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하나의 왕국을 만들어서 왕과 같은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며 여신도들을 성적 노리개로 삶으며 그 “왕노릇의 재미와 쾌감을” 누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들은 신도들의 돈과 영혼을 갈취하고 물심양면으로 뺏아 가지만 하지 신도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은 절대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경전 안에는 그리스도교의 덕목인 사랑, 인격수양, 봉사, 구제와 선행에 관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신약성경 안에 쓰여 있는 그러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저들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저들의 목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요.
저들의 목적은 오로지 신도들을 영적 노예로 삶아 신도들의 돈과 노동과 성을 착취하는데 있습니다.
저 사이비 거짓 종파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반박하고 깨부술 수 있는 성경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짓 교리와 반대가 되는 의미의 구절들이 성경 안에 많이 있고 우리가 얼마든지 저들의 거짓 교리를 성경적으로 구절들을 인용하며 쉽게 논리 정연하게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저들의 논리가 속임수이고 허위라는 것을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성경을 여러번 통톡하여 성경의 전체 내용을 훤하게 알면 저들이 엉성하게 엮은 어설픈 저질 사기에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본문을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그들의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저질 논리에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단 종파 중에서 최고로 악한 종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안식일파의 안상홍의 “하나님 교회”입니다.
제칠일 예수 재림교에서 갈라져 나온 사교(Cult)인데,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키는 종교이며 안상홍이 천지를 창조하였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사악한 이단 종파입니다.
김백문이의 제자 문선명의 통일교나 박태선이나 신천지의 이만희 보다도 그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더 악한 종자들입니다.
그리고 장길자라는 한 여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있다.
천지창조를 하였다고 가르치는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장길자는 하나님의 아내 여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뒤에서 조종하며 떼돈을 벌며 실속을 챙기는 자가 김주철입니다.
그 옛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렇게 끈질기게 섬기던 니므롯의 바알신을 남신으로 (male god) 숭배하고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를 아세라 여신으로(female god) 숭배하던 바벨론종교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재현한 코미디 같은 저질스러운 거짓 종교입니다.
인류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사악한 종교 사기집단 “일명 안상홍의 증인회(안증회)” (당당 뉴스) Weblink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일반 보편적인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대상을 섦기라고 가르치지는 않지요?
일반 보편적인 기성 기독교 교회 안에서는 바리새인들이 단상에서 성경진리와 바벨론 교리와 바리새인의 누룩이 섞인 엉터리 설교를 하기는 하나 그래도 예수를 섦기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많은 바리새인들, 목사들 중에는 진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섞인 잔을 저희도 마시고 또 교인들에게 마시게 하는 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영적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사이비 이단 종교들에서는 그 종교 교주들을 섦기라고 가르치니 그 사악한 정도가 일반 기성교회들 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훨씬 더 악합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이 반문하기를 이글은 쓴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이 논술하는 난해한 성경구절 비유풀이와 사도복음의 교리는 믿을 수 있는 진리인가?
반드시 필요한 의문입니다.
결론은 본 Website “사도복음 선교회” 전장들의 글 전체를 다 읽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들이 전한 신약성경의 “사도복음”은 오로지 성경만이 유일한 신앙의 교리로 진리로 믿으며 그외에 세상에 어떠한 종교나 사람의 이론을 따르지 않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신 예수 그리스도만 섦기는 교회입니다.
구약 때는 여호와 하나님, 인자시대에는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섦기는 교회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나 천사나 어떠한 피조물도 숭배의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천하 없는 신학자나 어떠한 사람이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성경 안에 없는 이론을 가르쳐도 우리는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사도들) 너희에게 전한 복음 (사도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8-9).
우리가 제일 많이 속고 있는 것이 성령에 관한 교리이다.
성령(Holy Spirit)에 관한 교리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우리 보혜사 성령시대에 제일 중요한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우리 개신교 신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우리의 영혼구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대다수의 많은 개신교 교단들이 성령에 관한 하나님의 지식을 정확히 그리고 올바르게 모르고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성령의 법(롬8:2)이 무엇인지 배워서 잘 알고 깨달아서 올바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어 구원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4 장은 아래에 있는 Link에 있습니다. >>>>>>>>>>>>>>>>>>
제 4 장 – 성령의 법
제 4 장 – 성령의 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의 시대 우리가 살고있는 신약시대는 보혜사 성령시대입니다.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법이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 롬8:2) 무엇인지 밝히 알아야 올바르게 예수를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법을 학습하고 지켜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 자신이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가 우리를 무엇에서 자유롭게 할까요?
예, 바로 우리 인간을 영벌로 정죄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과 613조의 율법을 준행해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의 신약시대에서는 영적 이스라엘 민족인 우리 그리스도의 성도들이 십계명을 지켜야 하고 구약의 613 조의 율법은 폐하여졌으나 그대신 (롬8:2)에 기록된 성령의 법을 준수하여야 영혼구원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1:17), 울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빌1:19),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
현재 전 세계의 기독교가 참다운 진리에 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많은 신자들이 성령에 관하여 정확하게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상관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알지 못하는 성도, 저 스스로 예수 믿는다고는 하나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없이 저 혼자 홀로 다니며 과부와 사생아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인(고후11:2) 예수의 영이 없으니 과부이고 아버지의 영이(갈4:6) 없으니 고아인 것입니다.
(사54:1)에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손을 들어 따먹고 하나님의 법을 어겨 범죄한 이후로 성령은 없이 육체와 혼 그리고 인간의 영만 가지고 태어나는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야 그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떠난 하나님의 영을 다시 우리 사람들에게 돌아올 수 있게 하나 하는 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아담의 코에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 넣으셨던 그 하나님의 호흡인 성령은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즉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아담으로부터 떠났습니다.
그 인간으로부터 떠난 성령이 어떻게 해야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 올 수 있나 하는 하나님의 인류구원 사역의 지식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일반 일요일 교회에서도 성령을 많이 강조하지요.
그러나 그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고 활동을 하시는지 거의 모든 예수교 신자들이 그 성령의 법칙을 모르니 도무지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기독교는 뱀들의 속임수로 다들 속아서 하나님의 법이(사1:10, 롬7:25) 무엇인지 그 성령의 법이(롬8:2) 무엇인지 도무지 교인들이 알지를 못하니 저 시날땅 바벨론성 안에서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진리가 아닌 사람들의 소리로 저마다 제각각 언어혼잡(babel)을 일으키며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수도 없이 변질되고 변형되어 이 사람 저 사람 제멋대로 가감하여 그럴듯하게 짜집기하여서 일요일마다 강대상 단에 서서 진리와 비진리가 마구 섞인 저들이 스스로 만든 엉터리 설교들로 언어혼잡(babel)을 일으키면서 기독교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신)이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성령에 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은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 (창1:2)(개혁개정)
여호와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사11:2)
그러면 다윗이 성령(Holy Spirit)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마22:43).
또 주의 종 우리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행4:25).
위에서 열거한 구절들을 보니 여호와의 영(the Spirit of the Lord)과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그리고 성령(Holy Spirit)은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인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전반적으로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 여호와의 영은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영(롬8:9) 하나님의 영(롬8:14, 고전6:11,8:40,12:12, 고후3:3)과 같은 분(존재)으로서 곧 신약의 성령(Holy Spirit)과 동일한 분이지요.
그 성령이 구약의 하나님의 영이고 여호와의 영이며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과 동일한 분인 것입니다
성령이란 탄생 전 예수이신 구약의 여호와이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령이란 예수께서 승천하신후 재림하시어 세상심판 때까지 보혜사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천지창조를 하신 유일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말합니다.
이러한 성령에 관한 지식은 개신교 신자들이면 보편적으로 다 아는 지식이지요?
성령 모독죄는 영원히 사함을 못받는다.
사실은 성령에 관하여는 글쓰는 자체도 상당히 두렵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blasphemy) 영원히 사함을 못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마12:31-32)에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막3:28-29)에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눅12:10)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함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영원히 사함이 없으므로 우리가 함부로 성령에 대하여 잘못 해석하거나 가르치면 안되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성령의 법도 모르면서 예수 믿을 때 성령 받았다고 가르치고 아무 때나 성령 충만하다고들 흔히 말하는데 그러한 잘못된 하나님의 지식을 경계하고 조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위의 구절들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무엇인지 우리가 밝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어떠한 죄가 어떤 행위가 성령을 모독하는 죄로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며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못받는 것인지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목사들 자신들이 알아야 하고 또 교인들에게도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참! 생각해보내 염려할 필요가 없겠네요.
저 삯꾼목자들은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이니 성령훼방죄도 범할 일이 없겠네요.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영원히 사함을 못받는다 하였으니 우리 성도들이 이러한 죄를 절대로 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저 삯꾼목자들이 성령의 법을 모르니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으니 저희 자신들도 망하고 수도 없이 많은 양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을 때 성령 받는다고 가르치기도 하고 또 “한번 예수 믿기 시작한 신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을 한다” 그리고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고 교인들에게 가르치면서 사람들이, 신학자들이 만든 영적 거짓말로 이 기독교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누룩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행위가 (마23:13-15)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바리새인들이 전세계 방방곡곡 사방으로 휘젓고 다니며 교인수자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러한 바리새인들에게 걸린 교인들은 그 바리새인들 보다도 배나 지옥자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 갈 수 없다.
(요3:5)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 구절에서 보니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였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구원을 받고 천국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어떻게 해야 받는 것인가?
성령을 받고 아니받고는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며 또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으며 또 성령을 받은 본인은 어떠한 확신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흔히들 말하기를 우리가 기도를 하거나 성경공부를 하거나 예배를 보고 나면 성령이 충만해진다 하고 복음성가를 장시간 여럿이서 부르면 성령을 많이 받았다고들 하지요.
그러한 행위들이 성령을 받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흔히 교회 목사들이 말하기를 어느 누구든지 예수 믿기로 결심하기만 하면 그 즉시로 성령이 그 사람에게 들어오고 또 초신자들은 교회 문턱을 넘으면서 성령은 이미 그 사람 안으로 들어와 모든 죄 다 사함 받고 축복 받아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여진다고 (요일1:2)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흔히 목사들이 설교하기를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성령 받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시인하고 (롬10:10) 주의 이름을 부른 자는 구원을 받고 (롬10:13) 그 즉시로 성령이 그 사람에게 들어온다고 목사들이 가르치지요?
과연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결심하면 그 즉시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까?
그렇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있지요?
예수 믿을 때 성령 받는다는 사탄(뱀)의 거짓말
목사들이 흔히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이미 성령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 믿을 때 성령 받았다고 하는 그 사람은 아무런 체험도 없고 확신도 없이 목사들이 말하기를 성령을 받았다고 하니 받았나 보다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냥 아무런 특이한 현상도 없이 맨송맨송하니 본인 스스로가 성령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고 확신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거짓말에 속으면 여러분의 영혼은 구원 받을 길이 영영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을 때 이미 성령을 받았다고 믿고 있으니 회개하고 성령을 따로 또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죽을 때 까지 성령과 동행함이 없는 신앙생활 하면서 남편 없는 여인(사54:1) 으로 열심히 예수 믿다가 몸이 죽자마자 영원한 멸망과 형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 받을 때 반드시 하여야 하는 회개기도를 하지 않으니 어찌 성령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흔히들 예수 믿을 때 성령 받았다 라고 가르치는 것은 전혀 성서적이 아닌 뱀들의 거짓말인 것입니다.
아래의 구절들을 유심히 읽어 보세요.
(행18:24-25)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이 구절에서 보듯이 아볼로는 성경에 도통한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지도자급 성도입니다.
그가 아무리 예수를 잘 믿고 성경에 능통하여 복음을 가르치는 사역자이나 요한의 세례만(물세례) 알 따름이라 하였습니다.
(행18:26)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들 데려다가 주의 도를 더 자세히 가르쳐주었습니다.
성령세례에 관하여는 전혀 모른 사람이었습니다.
(행19:1-7)에,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이 구절들에서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 믿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예수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으니 그들이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
그들이 대답하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세례를 받고 바울이 안수하니 방언도 하고 예언(말씀 대언)도 하였다고 했습니다.
분명 예수 믿는 과정과 성령 받는 과정이 따로 있다는 것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분명히 그 열두 성도들이 예수는 믿었으나 성령은 받지 못하였다고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행8:12, 14-16),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라.
위에 있는 구절에서도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이 전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믿고 주 예수이름으로 세례를(물세례) 받았으나 아직 한사람에게도 성령이 내리지 않았다고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바로 자동으로 성령 받는 것이 아닌 것이 명백하게 들어났습니다.
그러니 개신교 목사들이 가르치는 “예수 믿을 때 성령 받는다” 는 교리와 설교가 비성서적이요 비진리이고 저희들 스스로 만들어낸 새빨간 사탄의 뱀의 바리새인의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행19:2-6)에서 보니 예수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어보니 그사람들이 무어라고 대답했습니까?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도 성령은 따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행19:5-6)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했습니다. (요3:6)
그런데 (행 19:2)를 보니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 알 수 있습니다.
예, 바로 이 부분에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탄의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 가는데 예수 믿는다고 자동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니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성령을 받을 수 있는지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성령을 받을 수 있는가?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야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면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할 과정이 있는데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기도 하여 죄사함을 받는 과정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령이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 오시지 않습니다.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구절에서 밝히 들어나기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은 후에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했습니다.
(행3:19),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행11:18),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눅24:47),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고후7:10),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깨달아 심령을 새롭게 하여 옛 사람의 모든 악업과 악습에서 돌이켜 죄악의 옛 사람은 죽고 구원의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란 우리가 지난 세월 동안에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한 신앙생활을 못하였던 죄, 하나님 법을 몰랐던 죄, 알게모르게 지었던 모는 죄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사람들에게 행하였던 모든 영적육적의 과오와 실수와 잘못을 참회하고 개과천선하여서 남은 생애는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잘 섦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잘 지키며 성경의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게 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진심를 다하여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마음의 다짐과 결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지나간 세월 지은 모든 죄를 다 회개기도 하여 죄사함 받고 성령이 그 사람에게 들어와 죄악의 옛 사람은 죽고 성령 받은 하늘나라의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새 예루살렘이(계21:2)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분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단 냄새가 솔솔 나는데 라고 하겠지요.
죄사함 받지 못하여 죄가 여전히 있는 더러운 영의 사람에게는 성령이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죄사함 받고 죄 없다는 칭의를 (稱義-롬3:24) 받은 죄 없는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의 영혼에만 성령께서 들어 오시어 임재하시는(Presence)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 하는 것은 예수의 분영(分靈)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임재(Presence) 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만물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 우리 영혼 안에 들어오시어 우리 몸과 영혼 속에서 우리와 같이 동행하시며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아담의 원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은 없이 육체와 혼과 사람의 영만 가지고 태어나는 우리들에게 그 생기를(창2:7, breath) 우리의 심령의 코에 불어 넣으시어 성령을 받게 하시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인생들을 다시 에덴동산에 있었던 아담과 하와같은 고귀한 영적 존재로 회복시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것이 첫째 부활(계20:6)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들에게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회개하고 죄사함 받으면 그 죄 없는 깨끗하고 거룩한 심령에 들어오시어 예수께서 임재하시며 (Presence) 영적으로 죽어 있었던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의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째 부활이고(계20:5-6) 그 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하늘에 있는 본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11:16)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 아나니. (고전5:1)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심판 이후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거할 곳은 분명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들이 사는 세계 영생복락의 하늘나라를 말하지요.
거기에는 더웁고 추운 것이 없으며 영원히 늙지도 않고 음식을 먹어도 되고 안먹어도 되는 시공간을 초월한 천사들과 같은 영광의 고귀한 존재로 변하여 하나님과 같이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가장 큰 목적과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습니까?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 복받아 건강하고 범사에 형통하려고 믿습니까?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알고 믿고 있지요.
특히 순복음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요?
순복음교회 교인들은 세상복에 마음이 취해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육간에 하나님 복 받을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 목표는 우리의 몸과 영혼이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늘나라에 가야 하는데 반드시 구원에 이르는 회개(고후7:10)를 하여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인치심을(엡1:13)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회개하여 성령을 받고 (계7:2-4)의 하나님의 인을 맞고 십사만사천인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약시대 즉 보혜사 성령시대에 사는 우리 기독교 신자들은 성령의 법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서 올바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기도 하고 죄사함 받아야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4:17), 예수께서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세례요한도 회개하라고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천국이 가까운 것입니다.
저 옛날 태초에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뱀의 거짓말에 속아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불법을 행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셨습니다.
신학세계에서 흔히들 말하기를 그때의 가죽옷은 우리 인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요 십자가 보혈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요 진리입니다.
그러면 선악과를 먹고 죄지은 아담과 하와가 회개도 하지 아니했는데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일까요?
회개가 없으면 죄사함이 없고 죄사함이 없으면 성령세례가 없는데 성령을 못받으면 구원이(가죽옷) 없는데.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고 심히 부끄러워서 그 죄지은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무화과 나무 잎사귀로 옷을 해서 입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실 때에 심히 두려워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는 아담에게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무화과 나무 잎사귀로 옷을 지어 입은 행위가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그때에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무잎으로 만들어 입는 옷은 몸 전체를 가리는 긴 외투와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신학세계에서 흔히들 그 때의 무화과 나무 잎사귀 옷이 하나님의 생각과 반대가 되는 인간의 잘못된 어리석은 생각과 지혜들이라고 목사들이 가르치는데 그와 정 반대로 오히려 그 진정한 참뜻은 아담과 하와의 회개였던 것입니다.
(겔 47:12)에 잎사귀는 약재료라 하였습니다.
(계 22:2)에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와 같이 잎사귀는 치료하는 약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호6:7) 타락하고 병든 몸과 영혼을 회개기도 하는 약으로 덮어 하나님의 죄사함을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소위 신학세계에서 아무도 풀지 못하는 3대 의문의 하나가 가인의 표라 합니다.
(창4:15)에서 하나님이 가인에게 표를 주셨는데 그 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회개하는 가인에게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의 표를 주신 것입니다.
가인이 회개를 하여도 아주 간절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을 하나님이 중벌을 내려 저주하였을 때에 가인이 하나님께 호소를 하였습니다.
(창4:13-14)에,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성경에는 한두 구절 간략하게 기록이 되어 있으나 가인이 회개할 때에 그의 죄가 너무 중하니 양심의 가책을 받아 견딜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가인이 회개하고 나서 얼마나 겸손하여졌는지 (창4:17)에서 가인이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면서 성(city)을 쌓았는데 그 성의 이름도 자기 이름으로 하지 아니하고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위 구절 (창4:13)의 히브리 원어를 보면 내 죄벌이 히브리어로 “avon“인데 그뜻이 죄(罪)입니다. 벌(罰)이 아니라 죄(罪)입니다. 영어로 sin, iniquity이란 뜻입니다.
히브리 원어에서 번역을 잘 못한 것입니다.
참고로 오역을 잘 설명해주는 사이트를 아래 Link에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My punishment עֲוֺנִ֖י (‘ă·wō·nî) weblink
And Cain said to the Lord, “Is my iniquity too great to bear?
יגוַיֹּ֥אמֶר קַ֖יִן אֶל־יְהֹוָ֑ה גָּד֥וֹל עֲוֹנִ֖י מִנְּשֽׂוֹא:
Most translations have “my punishment is greater than I can bear” for the end of Genesis 4:13.
The Hebrew word translated as “punishment” is “avon,” which means “iniquity” (or, more correctly, crookedness from an Hebraic perspective).
This same word is used hundreds of other times where it is correctly translated as “iniquity.”
The literal rendering of Genesis 4:13 is “great is the burden of my iniquity,” the opposite of how it is generally translated.
성경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표는 세 개가 있습니다.
가인의 표와 (겔9:4)의 탄식하며 우는 자에게 주는 표와 (계7:3-4)의 구원 받은 144,000인의 이마에 인 맞은 표인데 다 하나님의 구원의 표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인과 같이 회개하고 구원의 표를 받아야지 (계16:2)의 짐승의 표, 바벨론의 음녀인 천주교의 표를 받으면 아니되겠습니다.
니므롯의 태양신, 바알신의 표를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일3:12)에,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유1:11)에,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그러면 또 많은 분들이 위 구절들과 같이 가인은 악한 자의 상징이고 대명사인데 무슨 헛소리 하는 것인가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악인의 상징같은 가인도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여 주시고 구원의 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회개하여 죄사함 받고 성령세례 받고 구원의 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인치심으로 (엡1:13) 구원의 표를 받고 십 사만 사천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성도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고전12:3)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롬 8:9)에, 그리스도의 영(Spirit)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
이 구절들에서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고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들 심령에 성령은 없고 그들이 믿는 신앙생활에는 성령의 역사는 하나도 없는데 “주여 주여” 하며 기도하고 주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보았자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헛믿음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7:21)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고.
(마 7:22-23)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성령이 무엇인지 모르니 저희들끼리 매주 모여서 성경공부 하면서 성경의 교훈으로 인간의 철학으로 윤리나 도덕으로 가르치며 생명(성령) 없는 종교를 만들어 내어 저희들끼리 서로 붙어서 남편 없는 과부, 아비 없는 고아가 되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인(고후11:2)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니 과부이고 아버지의 영이(갈4:6) 없으니 고아인 것입니다.
성령의 동행함이 없는 신앙생활, 그러한 신앙이 율법주의 신앙입니다.
성령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성령(예수의 영)의 역사 없이 성경구절의 교훈으로 신앙을 삼아 열심히 선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노력하는 자들.
성령의 임재함 없이 성경말씀과 인류의 도덕과 교훈과 선행의 가르침으로 교리를 삼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자들.
그러한 신앙이 바로 바리새인 신앙이며 율법주의 신앙입니다.
목사들의 설교를 보십시요 성경구절들을 줄줄줄 외우고 인용해 가며 말은 참으로 그럴듯하게 설득력 있고 구수하게 청산유수로 얼마나 잘 합니까?
우리 보혜사 성령시대에는 성령이 각 성도에게 임재하고 역사함으로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영혼구원을 이루는 성령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알지도 못하는 사생아들 끼리 모여서 예배 드리고 설교 듣고 찬송가 부르고 교제하며 밥 먹고 즐거워하며 한 공동체로서 웃고 떠들며 신앙생활, 사회생활 하면서 자기만족을 채우는 것입니다.
일요일마다 예배당에 나가서 바알에게 무릎 꿇고 바알에게 입맞추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령의 역사가 없어 생명이 없고 부활이 없는 엉터리 예수교는 경전의 교훈과 도덕과 선행을 가르치는 유교, 불교, 도교등의 이방종교와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서 성령을 받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야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가 되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Lord)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해산하는 수고가 있어야 성령을 받는다.
(창3:16),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고전4:1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위 구절들의 자식을 낳는다는 영적 의미는 회개하여 죄사함 받고 죄악의 옛 사람은 죽고 성령 받은 새 사람이 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여인네들이 실제로 자식을 출산할 때에 많은 산고를 치루지 않습니까?
영적 출산도 그와 같은 수고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받는 것이 회개하는 노력과 수고 없이 그리 쉽게 받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뼈를 깎는 자기의 반성과 결심을 요구하는 것으로 회개기도 하는 과정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사람에 따라 각각 다 다릅니다.
그 회개기도의 과정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회개기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금방 몇 분만에 죄사함 받고 성령 받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혹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몇 시간이 어떤 사람들은 몇 일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몇 개월의 오랜 기간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이 그 회개하는 사람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죄없다고 칭의(롬5:9) 하시는 과정이 사람에 따라 각각 다 다르다는 말입니다.
자기 마음을 찢는 통회하는 마음과 회개기도 없이 그냥 하나님이 사람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줄 아십니까?
마음으로 믿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즉시 성령 받는다고 목사들이 가르치지요?
그러니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거짓교리에 신자들이 망하는 것을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나팔재앙(계8:2)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반문하기를 우리가 마음속으로 예수 믿을려고 결심할 때 이미 성령은 받았는데 무슨 성령을 또 받으라 하는가.
이단 종파들이 하는 말 아닌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을 때에 우리들의 죄는 이미 다 사해 주셨다는데 왜 회개기도를 해야 하는가.
우리가 예수 잘 믿으면 천국가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는 이미 다 사함을 받았으며, 만일 네가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요3:1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13).
위와 같은 구절들이 있는데 왜 회개기도라는 절차가 필요하며 죄사함을 다시 받아야 하고 왜 성령을 따로 받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가득할 것입니다.
사탄이 바로 위와 같은 구절들을 인용하며 성령 받고 천국 가려고 하는 성도들을 비진리로 거짓 복음으로 유인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들의 죄사함을 위하여 보혈을 흘리셨는데 그 보혈의 죄사함은 우리가 예수 믿기 시작할 때 바로 자동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할 때 주시는 것입니다.
(행8:12, 14-16),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행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위의 구절들을 유심히 살펴보십시요.
사탄이 그의 하수인인 거짓 목자들을 동원하여 거짓 복음으로 요한계시록 8장에 나오는 나팔재앙으로 인류를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그 사탄의 하수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꾸짓으셨던 독사의 무리들 바리새인들이지요? (마23:33)
그 가증한 바리새인들은 우리시대에 누구를 지칭합니까?
바로 일요일마다 강단 위에서 거짓 교리로 설교하는 목사들, 거짓 목자들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입으로 쏟아내어 나팔재앙으로(계8:6-12) 인류를 멸망케하는 독사의 무리들을 말합니다.
회개하고 성령 받아야 비로소 천국백성이 되는데 예수 믿을 때 이미 성령 받았다고 뱀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니 그렇게 믿고 있는 신자들은 성령을 받을 기회는 영원히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조사하고 연구해 보세요.
나팔 부는 것은 무엇이라 했습니까?
(사58:1)에서 목사들이 복음 전하는 소리라고 하였지요.
(계9:13-19)에서 보면 나팔을 불 때에 유브라데스강에 결박해 있던 있던 4 마귀 천사를 풀어주었는데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러 나오는데 이만 만이요, 즉 그 수가 2억 명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와서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는데 그 말들의 힘이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며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그것으로 해하였다고 했습니다.
(사9:15)의 꼬리는 거짓 선지자이고 머리는 장로들을 영적으로 의미합니다.
가증한 바리새인들, 독사의 자식들, 거짓 선지자들의 나팔재앙에 망하지 마시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유황불,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요.
그러니 그러한 엄숙한 회개기도의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예수 믿을 때 이미 자동적으로 성령 받았다고 하는 자체가 바리새인들의 새빨간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러면 또 많은 사람들이 반문하기를 예수님의 11제자들은 그러한 회개과정이 없었는데 예수께서 (요20:22)에서 숨을 내쉬며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인가?
사도행전에서 보면 회개하였다고 하는 구절들도 없는데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요13:10)에서 예수께서 11제자들에게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벌써 다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 정결한 자들이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 받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들이 사도들의 전하는 복음을 듣고 다 이미 그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위 구절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령은 선물이고 성령은 생명 얻는 회개하고 하였습니다.
방언이 성령과 뗄 수없는 관계인 것처럼 회개도 성령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성령 모독죄 – 성령 받은 후에는 더욱더 깨어 기도하며 조심하여야 한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령 받은 이후에는 더욱더 조심하여 죄짓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항상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령 받은 성도가 그 안에 계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면 영원히 사함을 못받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아직 받기 전에 지은 죄는 어떠한 죄도 하나님이 다 용서해주시나 성도가 성령 받은 후 지은 죄는 영원히 사함을 못받는 죄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눅12:10).
둘째는 니콜라처럼 (계2:6, 15) 당을 짓고 12사도복음에서 나가서 적그리스도(요일2:18-19)가 되는 죄.
셋째는 알면서 자꾸 되풀이하며 범하는 짐짓 지는 죄(히6:4-8) (willful sin)입니다.
(히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 하느냐.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후6:16),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회개하여 죄사함 받고 성령을 받은 성도는 그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말할 수 없이 거룩한 존재입니다.
죄사함을 받았으니 죄가 없어 정결하고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니 얼마나 고귀하고 거룩한 존재입니까?
그러한 고귀하고 거룩한 자기 자신이 예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인 것을 망각하고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모독하면서 죄를 범하면 그 안에 계시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되어 영원히 사함을 못받는 것입니다.
(히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 한바 되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죄를 범한즉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하는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자의 당연히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느냐.
(벧후2:20-21), 우리주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사도요한이 말하기를 (요일4:13)에서 우리가 성령 안에 거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했으며.
그러한 현상을 가리켜 성령이 우리와 동행하신다(walk)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일5:16-17)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일5:16-17),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pray)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히12:16-17),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 하라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에서는 장자였는데 팟죽 한 그릇에 그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장자의 명분이란 영적으로 하늘나라의 상속권을 의미합니다.
신약시대에 회개기도 하여 죄사함 받고 성령 받은 성도의 이마에 인 맞은 표를 (계7:3-4) 영적으로 상징합니다.
에서는 하늘나라의 상속권을 팟죽 한그릇에 팔아먹었습니다.
성령모독죄를 범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회개하여 성령을 받으면 첫째 부활이고 그 성령이 하늘나라의 상속권입니다.
그러한 성령을 팟죽 한 그릇, 즉 세상의 재물과 염려에 팔아 치운 에서는 성령모독죄를 범하여 그후에 저가 수없이 많이 회개하였으나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신약시대에도 성령을 받은 성도가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을 무시하고 에서와 같이 세상의 탐욕과 음욕에, 세상의 염려와 근심에 눈이 어두어져 하늘나라 상속권을 팔아먹거나 니콜라(행6:5, 계2:6) 같이 사도들의 복음에서 나와서 ‘사도복음’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가 되면 (요일 2:18-19)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여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못 하였을 때에는 사람이 무슨 죄를 지어도 다 사함 받을 수 있고 또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열려있습니다 (OPEN).
그러나 일단 사람이 한번 성령 받은 이후로는 아주 조심하여야 합니다.
성령 모독 죄나 짐짓진 죄 같은 사함을 못 받는 죄를 범하면 다시는 속죄할 수 있는 제사나 기도가 없기 때문에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완전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빌2:2)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고 하였고
사도 베드로가 (벧후2:20-21)에서 “의의 도를 안 후에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하였으며
사도 요한이 (요일5:16)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하였습니다.
이 구절의 ‘구하라’는 뜻은 그리이스어 원문에서는 ‘기도하라’ pray 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일도 해산의 고통이 따라야 하지만 (창3:16, 요16:21, 계12:2, 갈4:19, 미4:10).
그 해산의 고통을 겪어가며 어렵게 받은 성령을 에서와 같이 망령되이 버리면 영원히 사함을 못받음으로 승리의 면류관을 받기까지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빌2:5) 가지고 성령의 법을 (롬8:2)따라 무한히 노력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나 바울처럼 무한히 노력해야 합니다.
바울과 같은 완전한 의인도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죄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 것입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10:12).
내가 내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고전9:27).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러므로 성령 모독죄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이며 (마7:23)의 불법을 행한 죄 중에서 제일 큰 죄입니다.
불법: anomian – ἀνομίαν – lawlessness (Weblink)
칼빈의 예정론은 비성경적인 사탄의 거짓말
칼빈 신학 중에서 예정론은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뱀의 거짓말 즉 선악과입니다.
하와를 속인 뱀의 거짓말과 똑같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선악과를 먹으면 영원히 구원에서 멀어져 멸망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칼빈의 예정론이 올바른 하나님의 교리라면 바울이 왜 자기 자신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했습니까?
칼빈의 예정론, 성도의 견인과 이중 예정론의 신학이 성경의 말씀과는 완전히 위배되는 사탄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위에서 열거한 여러 구절들에서 명확히 들어났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예정론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구절들을 칼빈 신봉자들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사탄이 “칼빈”이란 큰 왕(王)뱀을 하나 양성해서 수천 만명의 장로교 교인들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장로교회 교인들만이 아니고 다른 교파들의 수많은 수억명의 영혼들이 칼빈의 예정론으로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Arminius 의 신학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아르미니우스의 구원론이 성서적입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 5번째 강령: 믿는 자라고 모두 확실히 견인되는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부터 타락할 가능성도 있다. 즉,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종국에 가서는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
한번 성령을 받고 영혼구원을 받은 성도는 그 자신이 성경말씀대로 죄짓지 않고 얼마나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구원의 상태가 유지가 되고 안되고가 판가름 난다는 뜻입니다.
그에 반하여 칼빈의 예정설은 한번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한 구원이라 주장합니다.
아무리 악하고 더럽게 살아도 구원을 받는답니다.
하나님이 그의 영원한 섭리에 의해 선택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받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잃지 않는다는 성도의 견인.
칼빈의 예정론은 성경의 내용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론입니다. 칼빈의 예정론 5번째 강령 – 성도의 견인.
그러면 하나님이 니콜라는 왜 견인(堅忍)을 안했습니까?
성령이 충만 했던(행6:5) 니콜라가 적그리스도가 되어(계2:6, 15) 사탄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팔아먹은 제자 가롯유다는 또 어떻습니까?
당시에 예수님을 쫓아다니던 수백명도 넘는 많은 추종자들 가운데 특별히 12 사람을 구별하여 제자를 삼을 때에 가롯유다도 심령이 깨끗하고 믿음이 충만하니 제자를 삼은 것 아닙니까?
그러한 가롯유다는 왜 성도의 견인을 못받았을까요?
구약에서 초대 이스라엘 왕 사울은 어떻습니까?
성령이 충만하였던 사울왕이(삼상10:10, 11:6) 왜 하나님의 “성도의 견인”을 못받고 하나님에게서 버림받고 영원히 멸망하였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회개기도한 에서는 (히12:16-17) 왜 하나님이 죄사함 받는 기회를 안 주셨나요?
강하게 참고 오래 기다리시는 하나님께서 왜 에서에게 그렇게 가혹하셨나요?
왜 하나님이 에서에게는 성도의 견인을 안하셨나요?
칼빈의 예정론 신봉자들이여 해명을 해 보세요.
위에서 언급한 두사람과 같이 성도의 견인을 못받고 믿음에서 버림을 받고 구원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이 성경안에 많이 기록이 되있습니다.
(딤전1:19-20)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딤전4:1-2)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5:15)에,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딤후2:16-18)에,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딤후3:4-8)에,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딤후4:10)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이와 같이 칼빈의 예정설은 성경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그 이론 자체가 자기모순에 빠지게되고 논리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칼빈의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堅忍);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성도가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다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
하나님 주권의 절대성 때문에 인간의 행위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수 없으므로 성도견인의 교리에 따라 한번 구원 받은 성도는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
“성도구원의 영원한 보장” 즉 성도가 한번 구원을 받으면 그 구원은 영원히 보장되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결코 중도에서 잃어버리거나 빼앗기거나 스스로 포기할 수 없다.
예정론의 성도의 견인이란 어느 구원 받은 성도가 타락하여 어떠한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그 성도를 구원 상태로 유지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참고 사랑과 인내로 그 성도를 견고하게 붙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행위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영향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이론이 성경말씀의 이론과 부합이 됩니까?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칼빈의 예정론이 진리라면 사도바울이 왜 우리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라 했습니까?
성도의 견인이 있는데 우리 성도들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떨리겠습니까?
이러한 칼빈의 이론이 성경의 이론과 부합이 됩니까?
장로교가 주장하는 칼빈의 예정설은 비성경적이고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다.
예수를 한번 믿은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는 칼빈의 예정설은 성경과 정반대가 되는 사람들이 지어낸 거짓말입니다.
그러한 신학은 비진리이고 다 비성서적이며 사람이 만들어낸 인학(人學)입니다.
그러한 교리를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바람일 뿐입니다.
그 칼빈의 ‘예정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성서적이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는 것이 위의 구절들에서 밝히 들어났습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칼빈의 예정론에서 주장하는 “성도의 견인”.
아! 이 얼마나 듣기에 좋은 소리인가?
귀가 솔깃하지요?
얼마나 우리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 가슴 벅차게 하며 감동을 주는 교리인가?
이 얼마나 좋으시고 고마우신 하나님 아니신가?
평일날에는 하고 싶은 짓 다 하고 일요일에 교회 나가서 예배 한 번 보고 기도 한 번 하면 예수께서 모든 죄 다 사해주시는데.
앞으로 미래에 지을 죄까지도 이미 다 땡겨서 미리 사해 주셨는데.
“성도의 견인“, 즉 한번 구원 받기로 만세 전에 예정된 사람은 그 사람이 예수 믿기 시작한 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떠한 몹쓸 죄를 지어도 어떠한 더럽고 악한 삶을 살아도 다 용서하시고 반드시 죽기 전까지 구원을 하신다는 하나님의 그 신실한 약속.
아! 참말로 사랑이 차고 넘치는 종교 아닙니까?
그러한 칼빈의 조직신학이 정말로 우리 마음을 한없이 뿌듯하게 하고 선민의식을 느끼게 하여 감사와 찬송이 우리 마음에서 절로 나오게 하지 않습니까?
정말 좋으시고 너그러우신 하나님 아니신가.
사랑의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Islam 교의 Allah 신은 무섭고 잔인한 신이라는데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이와 같이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 아니신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 아니겠나.
우리를 기분 좋게 하고 자신감 넘치게 하는 교리 아닙니까?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칼빈의 예정론이 선악과의 나무처럼 여러분이 보기에 사랑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고 은혜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스러운 예정론을 손을 들어 따먹으면 여러분의 영혼은 그 달콤한 선악과에 취해서 세월 가는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예수께서 정죄하시기를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내게서 물러가라” 는 명령을 받고 어두운데로 내어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Calvin” 이라는 거짓 선지자, 거물 왕뱀에게 속아서 신세 망치고 지옥불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되니 얼마나 분하고 원통하겠습니까?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이지요.
영원한 형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을 범하고 죄와 사망의 법을 지켰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행한 불법은 십계명을 범한죄, 성령을 받지 못하고 예수 믿는다고 주장한 죄 그리고 성령을 법을 어기고 사함 못받는 죄를 지은죄입니다.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는 안식일 교파의 엘렌 지 화이트 그리고 여호와 증인의 “무지옥설”이나 다름없는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참고로 안식일을 성일로 지키는 교파가 500개도 더 되는데 그 중에는 침례교, 오순절교등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일을 지키는 한두 교파를 제외하고는 모든 안식일 교파들이 다 지옥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교파들 중 유일하게 지옥이 있다고 가르치는 교파가 중국에서 창시한 “참예수교회”입니다.
성경에 많은 부분에서 지옥에 관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
예수께서 직접 지옥에 대하여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많은 구절들을 다 부인하고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는 “엘렌지 화이트”의 안식일 교파의 비진리 신학과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 모독죄를 부인하는 장로교회의 예정설과 같지 않습니끼?
위에서 열거한 사함 못받는 죄들에 관한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다 부정하고 만세 전에 예정된 사람은 무조건 구원 받는다는 칼빈의 예정설은 칼빈이 만들어낸 사람의 이론이지 하나님의 이론이 아닙니다.
진리는 성경에 쓰여있는 하나님의 이론일 때 진리이지 사람의 이론은 비진리이고 뱀의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거짓말로 하와를 속인 뱀과 똑같은 선악과입니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칼빈의 예정설이 하와를 속인 뱀의 거짓말과 똑같은 것입니다.
(겔18:24)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히10:26-27)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의인이 범죄하면 죽는다는 성경상의 구절들이 위 구절들 외에도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항상 두려움 속에서 떨면서 지키는 신앙을 예정설이라는 거짓말로 속이는 사탄의 선악과를 먹으면 안되겠지요.
만약에 사도바울도 니콜라처럼 (행6:5, 계2:15) 적그리스도가 되었다면 그것도 만세 전에 예정된 것이라고 저 칼빈 주의자들은 주장할 것입니다.
각 사람의 구원은 각 사람 자신이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구원에서 탈락하는 것입니다.
(출32:33)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기독교 신앙이 칼빈신학처럼 그렇게 쉽고 안일한 종교였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칼빈의 구원론은 그 교리와 반대되는 많은 성경의 구절들에 관하여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한 구절들을 언급하면 칼빈의 예정론은 논리적으로 전혀 성립이 안되기 때문이지요.
칼빈의 예정론은 성령 모독죄에 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비성서적인 사람이 만든 거짓말입니다.
사람들이 두서너 가지의 성경구절들을 인용하며 예정설을 주장합니다.
(렘1:5)에 예레미야를 모태에 짓기 전에 택하여 선지자로 예정했다.
(롬9:10-12)에 리브가가 임신 했을 때 하나님이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으며 에서가 야곱을 섬기리라.
위의 두 절들에서 말하는 내용은 각 사람의 구원론에 관한 예언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예정했다는 사역적인 예언이고 에서의 후손들이 야곱의 후손들을 섬긴다는 두민족의 후손들의 장래 운명에 관한 예언입니다.
실제로 살아 생전에 에서라는 사람이 야곱을 상전으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곱이 에서에게 (창33:3)에 일곱 번 땅에 굽히고 절하였습니다.
에서도 장자의 상속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지만 않았어도 자신의 영혼구원에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에서가 망령된 행위로 저 스스로 성령모독죄를 범하고 멸망한 것이지 하나님이 에서의 운명을 미리 정하여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으라 말했습니까?
장자의 상속권을 팔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지요, 에서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장자의 명분을 하찮게 여기고 판죽 한 그룻에 팔은 것 아닙니까?
에서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것 아닙니까?
(열왕13:9-26)에 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떡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돌아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사자에게 찟겨 죽임을 당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면 선지자로 택함 받은 자도 멸망을 하는 것입니다.
(왕상20:35-35)에 한 선지자가 다른 선지자를 때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자기 동료를 때리지 않은 그 선지자는 사자에게 찟겨 죽는 내용의 사례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도 선지자로 택함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멸망하였습니다.
인간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하나님이 어떠한 사람에게 내렸더라도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선지자로 택함을 받고 임명된 사람들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죄를 범하면 그들의 영혼은 멸망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구원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각 사람 스스로의 행동에 따라 자기 자신의 운명을 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구원 받은 상태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심령을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죄짓지 않으려고 무한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롬7:25) 지키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갈5:22) 맺으려고 성령 받기 이전의 모든 탐욕과 음욕을 다 버리고 옛사람의 (엡4:2) 모든 악업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십계명과 성령의 법입니다.
그러다 보면 또 많은 분들이 “그래도 나는 칼빈의 예정설을 믿는다 그것이 더 마음에 들고 쉬우니 나는 칼빈의 신학을 신뢰한다”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분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성령 훼방죄와 사함 못받는 죄에 관하여 알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힘들고 두려운 신앙을 갖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히 믿으십시요.
신앙은 자유 의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강요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 의지를 주어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로만 하시었지 강제로 먹지 못하게 하시지는 안했습니다.
우리가 에스겔서의 여러장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칼빈의 예정설은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겔18:24)에, 만일 의인(義人)이 그 의(義)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나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대표적인 예로 니콜라를 들 수가 있습니다.
(행6:5)에 성령이 충만한 선지자 일곱 집사 증에 한 사람인 니콜라가 나중에 변질되어 적그리스도가 (계2:15) 됩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바르게 예수를 잘 믿다가 타락하여 지옥 가는 교인들을 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히 알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항상 현재가 중요한 것이지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미래는 불확실하지요.
우리가 항상 깨어있어 우리의 현재 신앙을 굳게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의 가르침을 벗어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엉터리 교리를 가지고 제멋대로 제입에서 자기가 만들어낸 사설(私設)이나 지껄이는 것이 바로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서 담 넘어서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이러한 엄청나게 중요한 성령의 법칙을 깨달아 인지해야 하고 또 교인들에게 가르쳐야하는데 저희 자신들도 성령의 법이 도데체 무엇인지 모르니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마23:14)에서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의 앞잡이 칼빈 신학자가 만들어 낸 거짓 교리 “예정설”에서 인용하며 예정설을 주장하는 성경구절들이 몇개 있습니다.
이 구절들에 관하여는 나중에 다시 체계적으로 자세히 토론하겠습니다.
성령의 법과 사망의 법 중에서 양자택일
여러분들에게 두가지 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 법을 택하시겠습니까?
항상 죄 짓지 않으려고 나자신을 돌아보면서 십계명을 지키고 성령 훼방죄나 당 짓는 죄, 짐짓 짓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 자신의 구원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하는 성령의 법을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칼빈의 예정론처럼 나는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어차피 만세전에 택함을 받고 이미 구원 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앙의 온전함을 지키려고 힘들게 노력할 필요도 없고 살아 생전에 하고 싶은 것도 좀 하면서 인생을 즐기다가 늙으막에 열심히 믿어도 된다는, 만세 전에 택함을 받아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는 나중에 죽기 1초 전이라도 다시 회개시키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다는 인자하신 하나님이 천지창조 전에 예정하셨다는 칼빈의 예정구원론을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어느 구원 받은 성도가 타락하여 어떠한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그 성도를 구원 상태로 유지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참고 사랑과 인내로 버리지 않고 그 성도를 견고하게 붙든다는 칼빈의 예정론.
한번 구원 받으면 계속해서 구원 받는다.
한번 선택된 자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야! 참으로 좋고 신실한 하나님.
물론 칼빈의 예정론이 여러분의 마음에 더 와닿고 마음에 들겠지요.
필자인 나 자신도 칼빈의 예정론이 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고 사랑스럽고
바람직하고 믿음직스럽습니다.
뭐, 일요일에 교회에나 한번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나 한번 하면 신실한 하나님이 자비하신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미래에 지을 죄도 지금 다 용서해주시는데 무엇이 걱정이고 무엇이 불안하고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한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 아닌가?
우리의 바람대로 하나님의 구원이 칼빈의 예정론처럼 그렇게 안이하고 수월하게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성령의 법은 칼빈의 예정론과는 정반대로 우리 성도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신앙의 온전함을(Integrity)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지 않고 사람들이 만든 법대로 신앙생활 하는 신자들은 천국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요 사실이니 어찌합니까?
하나님의 영혼구원에 인간이 무슨 용빼는 수나 재주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법대로 순종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칼빈이 신앙의 애송이, 27세 젊은 나이였을 때 만들은 이론, 말장난이나 하고 있는 그러한 엉터리 이론에 수많은 사람들이 취하여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정론과 정반대가 되는 수많은 구절들과 진리의 이론은 다 무시한 뱀의 거짓말, 예정론.
아래 링크들에는 참고가되는 사이트들
칼빈의 예정론의 오류와 병폐(1)_개인구원예정이 있는가?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동영상)
칼빈의 예정론의 오류와 병폐(2)_개인구원예정의 사례가 있는가(창25:19-3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동영싱)
칼빈의 예정론의 오류와 병폐(3) 구원은 영원히 보장되며 안전한가?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칼빈의 예정론의 오류와 병폐(4) 이중예정과 선택은 과연 성경적인가?(롬10:11-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칼빈의 예정론의 오류와 병폐(5) 성도의 견인교리는 진짜일까?(요6:35-37)
계속해서 네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예정론 비판 1) – 박원근 목사
내 구원은 내가 지키는 것이다. ( 예정론 비판 2) – 박원근 목사
(예정론 비판 3) 한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가 – 임마누엘오순절교회(박원근목사)
믿는 성도가 성령을 받을 때는 반드시 방언을 (Spiritual Tongue) 한다.
우리가 흔히 사도행전을 성령의 역사서라고 하는데 아주 정확하게 맞는 말입니다.
많은 구절들에서 믿는 성도가 성령을 받을 때는 반드시 방언을 한다는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불의 혀같은 것이 각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 (행2:2-4).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오니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행10:44-46).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뇨 요한의 세례로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2-6).
(행19:6)에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막16:16-17)에 믿고 세례를(성령세례)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고전14:2).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니 (고전14:22).
위의 구절들을 살펴보니 성령을 받을 때는 반드시 방언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모든 구절들을 특히 사도행전 구절들을 잘 살펴보면 분명 성령이란 절대적인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능으로 물리적인 현상으로 역사하시며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2:33).
이와 같이 성령을 받을 때는 물리적인 현상으로 우리가 보고 듣고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로 회개기도 하여 죄사함을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시는데 방언을 하며 그 자신이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고 확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보고 듣는다고 성경에는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2:33),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로 회개기도 하여 죄사함을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시는데 방언을 하며 그 자신이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고 확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보고 듣는다고 성경에는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또 많은 분들이 당신의 교리는 방언파의 교리냐, 오순절 교회냐 순복음교회냐? 라고 할 것입니다.
방언파도 아니고 오순절파도 아니고 순복음교파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들이 전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진리 교회입니다.
방언은 성령 받은 표적이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니 (고전14:22).
그러면 구원의 표가 무엇인가?
예, 바로 방언이 성령께서 주시는 구원의 표인 것입니다.
(막16:16-17)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이 구절들에서 방언은 성령세례 받은 성도의 표적이라 하였습니다.
세례는 성령세례이고 새 방언은 하늘나라의 말입니다.
이 구절의 새 방언은 회개기도 하여 죄사함 받고 옛 사람은 죽고 성령을 받은 새 사람(엡4:24),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의 하늘나라 언어를 의미합니다.
성경상에 새(new) 라는 낱말은 영적으로 하늘나라의 것을 의미합니다.
(전1:9-10)에,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죄사함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 자신이 (계21:2)의 새 예루살렘 성이 되어서 (계14:3)의 구속함을 입은 십사만 사천인이 되어서 새노래를 즉 새방언으로 하늘나라의 말(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우리의 마음이 변화하여 지나간 세월 옛사람의 모든 악업에서 돌이켜 새사람이 되어서 회개기도 하고 죄사함 받고 그 증표로 하늘나라의 말인 방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방언을 하는데 그들이 다 하늘나라 방언을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거의 대다수가 하는 방언은 하늘나라의 방언이 아니라 마귀 방언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성경에 예루살렘성은 의미가 여러가지가 있는데 실체적인 유대왕국의 수도이고 하나님의 교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 유대민족, 이스라엘 국가라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세례 받고 이마에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인
내가 이마에 인 맞은 자의 수자를 들으니 십사만사천이라 (계7:4).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 쓴 것이 있도다 (계14:1).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자가 없더라 (계14: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생명과를 전하는 올바른 전도자를 만나서 생명과를 먹고 올바로 배우고 깨달아 해산의 고통을 겪는 회개기도를 하고 그 자신의 그릇을 깨끗이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고 약속의 성령을(엡1:13) 선물로 받고 그 이마에 구속의인(印, 약속의 성령)을 받으시고 십사만 사천인이 되어(계7:4) 새 노래를 배워서 하나님께 찬양드리는(계14:3)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 노래는 무엇이라 하였지요? 성령의 방언기도라고 앞에서 서술하였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사43:21).
여기서의 144,000 인은 그 구원 받은 무리의 한사람 또는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수량을(quantity)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144,000 이란 숫자는 수학적인 숫자가 아니라 구원 받은 사람들을 다 통털어 집합적인 개념으로 일컫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만약에 그 144,000인이 수량을 의미하는 숫자라면 인류역사상 구원 받은 성도들의 숫자가 144,000 성도들 밖에 안되겠습니까?
아마도 144,000명의 1000배도 넘는 일억 사천 사백 만명도 더 될 것입니다.
(계5:11)에서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들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하였습니다.
만만은 1억 명을 가리키고 천 천은 백만 명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저 사람들이, 거의 모든 기독교 학자들이 해석하는 144,00인이 단순한 수량의 144,000 명이라는 해석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납득이 가십니까?
계시록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인은 글자 그대로 143,999+1 하여 144,000명이라는 수량의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 영적 의미가 담긴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 영적 의미를 공개하겠습니다.
1 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숫자, 완전의 숫자, 승리의 숫자를 뜻합니다.
4 는 지상에서의 고난과 역경의 숫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400 년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였고 40 년간 광야에서 고난을 겪었습니다.
10 은 완전의 숫자입니다.
0 은 10 과 같은 의미의 수자로 0 이 많이 거듭 될수록 더 강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144,000 인이란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전체적으로 집합적인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언어(言語)에서 일컫는 집합명사와 (Collective Noun) 같은 의미입니다.
144,000은 우리가 지상에서 살 때에 겪는 고난과 고난을 이기고 완전히 승리한 한 명의 사람 또는 그 승리한 모든 사람들의 무리를 집합적인 개념으로 지칭한 것입니다.
4 의 수자가 두번 겹치었으니 계속해서 닥치는 고난들을 믿음과 인내로 다 이긴다는 뜻입니다.
지상에서 모든 고난과 고난을 이기고, 항상 인간의 마음속에서 갈등하는 선과 악의 싸움에서도 선한 생각이 악한 마음을 이기고 또 이기어 완전 승리한 성도 한 사람 또는 그 승리한 모든 성도들을 말합니다.
땅 위에서 신앙생활 할 때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인생살이의 시험과 고난과 시련과 역경을 참고 인내하며 신앙으로 다 이겨내고 승리하여 천국 가는 승리한 성도 한사람 또는 그 모든 승리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계21:17)의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이 144 규빗이라 하였는데 그 의미도 마찬가지로 고난을 이기고 이기고 승리한 교회, 성도를 뜻합니다.
성벽의 두께가 144 규빗이니 고난과 고난을 이긴 성도의 신앙을 뜻합니다.
벽(wall)은 성경상으로 기독교를 의미합니다.
이와같이 계시록에 나와 있는 숫자는 다 그 의미가 감추어져 있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이러한 감추어진 진리를 모르니 144,000 인이 천국의 지배계급 숫자이다 (여호와증인 해석).
구약시대의 구원 받은 유대인의 숫자이다 (조용기 해석), 현재 지상에서의 구원 받은 성도들의 숫자이다 (한국 토종 사이비 이단들 해석) 하면서 자기들이 지어낸 황당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데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이 저 스스로가 만들어낸 엉터리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모르면 가만히 입다물고 있기나 하지 영적으로 한없이 무지한 자들이 거짓말로 떠들어 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만희 같은 종교사기꾼들은 그같은 황당무계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여서 144,000 명이라는 수량의 명수을 채워서 자기에게 충성하게 하고 돈과 마음을 다 바치게 하는데 이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이긴자”는 각 사람의 마음속에서 갈등하는 선과 악의 싸움에서 선한 생각이 악한 마음을 이기고 승리한 성도들, 각 사람이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긴 모든 성도들을 의미하는데, 신천지의 이만희는 자기가 “이긴자” 이며 보혜사라고, 재림한 예수라고 하는 저질 개그맨 코미디같은 종교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엉성하고 저급한 사기극에 수많은 사람들이 현옥되어 돈 뺏기고 가정파탄으로 인생 망치는 현상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참으로 이해불능이고 연구대상이고 또 Mystery 합니다.
그러한 저속하고도 추악한 어처구니 없는 종교 사기꾼, 영적 사기꾼들에게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자기 생활을 전폐하고 충성하는 현상은 왜 일어나고 있는지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 있는 많은 토종 사이비 이단들이 144,000명의 거짓 이론을 가지고 수많은 우매한 영혼들을 속여서 후리고 있습니다.
그 144,000명의 ‘아이디어’는 여호와 증인에게서 배우서 써먹고 있습니다.
불세례의 영적 의미
또 그러다 보니 어떤 분들은 반문할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이 땅위에서 만사형통 한다고 하였는데 무슨 지상의 고난이라는 것이 있는가?
우리가 지상에서 복 받고 범사에 형통하려고 예수 믿는 것 아닌가?
당연히 그런 맛이 있어야 예수를 믿는 마음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지.
아니 그렇습니까?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마3:11)에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 실 것이요.
(눅3:16)에,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것이요.
이 구절들에서 보면 예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불세례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눅12:49)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고전3:13,15)에,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벧전4:12)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계3:18)에,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예수께서 불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불시험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성도들에게 오는 시험이고 고난인데 그 모든 시험과 지상의 고난을 다 참고 인내하며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때도 있고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성도들을 유혹하고 흔드는 시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선한 양심과 죄를 범하고자 하는 악한 마음이 싸워서 선한 마음이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악하고 미련한 생각과 유혹을 이기고 나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롬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계2: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2:11),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1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순복음교회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믿으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만사형통하기만 하고 불시험과 고난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 사람들은 예수께서 주시는 ‘불세례’가 무엇인지 모르니 불세례도 예수께서 주시는 것이니 좋은 것인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불세례가 무엇인지 모르니 쩍하면 말하기를 “불같은 믿음을 달라고 “ 하고 “제단의 불을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라고 합니다.
불이란 성경에 주로 나쁜 의미를 상징합니다.
불이란 하나님의 진노. 벌, 응징, 시험, 고난, 역경을 영적으로 의미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믿는 성도들에게 때때로 찾아오는 고난과 시험인데 일부러 고난을 자초하여 사서 고생을 겪을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눈뜬 장님들이고 무식한자들, 그러니 (사29:11)에서 무식한 자에게 주며 성경을 읽으라고 하니 나는 무식해서 해석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신앙생활에 시험과 고난이 안따른다면 (계7:17, 21:4)에서의 144,000인 성도들에게서 눈물이 나올 일이 없고 하나님 그 눈물을 닦아주실 일이 없습니다.
고난도 없이 항상 형통하고 무사태평인 신자들인데 무슨 눈물이 나오겠습니까?
순복음교회에서 가르치듯이 천국은 따논 당상이고 지상에서 복 받아 돈 잘 벌고 만사형통 한다면 성도들의 눈에서 무슨 눈물이 나올 일이 있으며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겠습니까?
발람과 같은 세상 재물에 눈이 어두운 더러운 영이 가득한 거짓 목자, 탐욕의 늙은 뱀 조 용기 목사.
기복신앙으로 수많은 신자들의 돈을 후리는 가증한 바벨론의 상고, 무수한 신자들을 삼키는 용 느부갓네살 (렘51:34).
지구는 인생들이 천국으로 가기 위한 연단의 장소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이 지구는 인생들이 천국으로 가기 위하여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연단의 장소입니다.
사람의 수명 연수가 80년 이라 한다면 그 기간 동안 겪는 지상에서의 모든 시험과 고난과 좌절을 다 극복하고 이겨내야만 천국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천국에 가는 입학시험에 통과하려면 성경을 교과서로 철저히 학습해야 하고 교과서에 있는 내용대로 열심히 준행하며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 괴롭고 힘든 고난의 80년의 세월을 이겨내면 그 후에 오는 세계는 영생복락의 영원한 무한대의 시간이 지속되므로 우리 성도들은 인내해야 합니다.
(고전3:13,15),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위의 구절에서 공력이 불에 타면 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령 받은 성도가 불시험에 이기지 못하고 지면 많은 세월 쌓아 온 믿음의 노력과 신앙생활의 공력(功力)이 다 무너지고 사라져 해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 의미는 시험과 고난을 인내하고 이기지 못한 성도들은 구원에서 탈락한다는 뜻입니다.
공력이란 각 성도가 그동안 쌓아 왔던 믿음과 노력을 의미하는데 그러한 믿음의 행적을 예수님께서 불세례로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욥처럼 불세례의 시험을 이겨내면 행복한 종말과 상을 받으나 그 불에 타면 해를 받고 (겔18:24)의 내용과 같이 그동안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고 그간의 모든 노력과 공적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3:11)에 예수께서 때때로 성도들에게 주시는 불세례 시험을 욥처럼 견디고 이겨내야 좋은 결말이 옵니다.
그러한 불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믿음에서 떠나 죄악 세상으로 나가면 해를 받고 구원에서 탈락하는 것입니다.
(욥23:10),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사48:10),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슥13:9),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롬5:3-5),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라.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그래서 사도바울은 (롬8:18)에서 말하기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모세는 (시90:10)에서 말하기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야고보 감독은 (약4:14)에서 말하기를,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와 같은 연단의 불세례 시험에서 견디지 못하여 구원에서 추락하는 성도들을 영적 비밀로 잘 묘사한 성경구절이 (계 6장 1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의 별들은 성령 받은 성도들을 가리키는데 대풍에 흔들려 떨어지는 설익은 열매들, 즉 덜 익은 과일들이(성도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대풍의 불세례를 이기지 못하고 믿음의 온전함에서 분리되어 죄악세상으로 떨어진다는 영적 의미입니다.
지구의 자연법칙은 큰 바람이 불어 한 나무가 흔들리면 잘 익은 열매들이 먼저 떨어지고 아직 익지 않은 설익은 열매들은 잘 떨어지지가 않고 나무가지에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잘 익은 과일들은 과일에 붙어 있는 가지가 마르고 약하여 져서 바람에 흔들려 쉽게 나무에서 떨어져 땅으로 추락합니다.
그러나 설익은 과일들은 나무와 연결된 가지들이 오히려 굵고 단단하여 왠만해서는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6:13)에서는 자연의 법칙과는 반대로 설익은 과일들만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의 7 인으로 봉한 감추어진 영적 비밀의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 했으니 (눅3:16) 예수께서 생명의 성령도 주시지만 주기적으로 성령 받은 성도들을 시험하는 불세례를 주십니다.
“열매가 잘 익었다”는 것은 신앙이 성숙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설익었다는 것은 신앙이 미숙하다는 의미입니다.
잘 익은 열매들은 진리의 지식에 통달하고 믿음이 장성하여 인격과 신격이 형성되어 있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의미합니다.
즉 성령의 9가지 열매가 (갈5:22-23) 잘 익은 성도들로서 그러한 불세례가 성도들에게 주어질 때에 그 힘들고 괴로운 시험들을 잘 견디고 시험들이 지나갈 때 까지 기도하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며 신앙의 온전함을(Integrity) 잘 지키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나무에서 그 가지가 끊어져 분리 되지 않고 살아남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잘 익은 열매들은 세상의 탐욕과 음욕의 유혹들도 다 뿌리치고 믿음의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깊이가 없고 진리지식에 덜 숙달이 되어 신격과 인격이 덜 자란 성도들은 설익은 과일이라서 때때로 찾아오는 대풍의 불세례를 이기지 못하고 신앙의 본체에서 그 가지가 끊어지어 땅으로 추락하는 것입니다.
설익은 열매들은 시험이 찾아올 때 하나님의 신실함에 의문을 갖기도 하고 불세례로 괴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행복과 형통함을 주시지 않고 반대로 고난과 좌절을 주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세상의 인간적인 탐욕과 음욕의 유혹의 시험을 뿌리치지 못하고 성경진리의 믿음에서 떠나는 성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불세례를 이기지 못하는 심지가 약한 많은 성도들이 기독교 신앙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불세례를 주어 괴롭게 하여 믿음을 흔들어 떨어뜨리는 하나님을 불신실하다고 생각하여 그런 사랑 없는 하나님은 안믿겠다고 하고 그러한 비상식적인 사도복음의 교리는 싫다하여 쉽고 사랑과 관용이 넘치는 칼빈의 예정론을 주장하는 일반 바벨론 기성교회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고진감내(苦盡甘來)라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다 이기고 나면 달콤한 행복과 보상이 옵니다.
그렇게 시험을 다 이기고 인내한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세상복을 여러배 주시고 나중에는 영생복락의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욥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롬8:18)에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와 같은 감추어진 영적 비밀의 의미를 진리로 해석하는 사람이 사도복음의 진리 외에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바알에게 무릅꿇지 않은 7000인
(왕상19:18, 롬11:4)의 바알에게 무릅 꿇지 않은 7000인도 마찬가지로 수량을 의미하는 숫자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7 이란 영적으로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라는 것을 일반 일요일교회에서도 목사들이 흔히 말하는데 지극히 맞는 말입니다.
10 도 완전이고 0도 완전을 의미하니 7000인이란 6999+1=7000이명이란 수량의 뜻이 아니라 완전을 세번 강조한 절대 완전(Absolute perfect)을 영적으로 의미합니다.
완전한 순종, 완전한 의, 완전한 신앙을 의미하며 개개인의 완전한 한 사람의 성도 또는 완전한 모든 성도를 집합적으로 일컫는 것입니다.
(왕상19:10)에서 엘리야가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라고 할 때에 하나님이 대답하시기를 (왕상19:18)에서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온 세계의 기독교가 바알신 숭배로 더렵혀져 있고 엘리아 시대처럼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을 태양신 숭배하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다 죽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바알에게 무릅 꿇지 아니하고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7000 인이 세상 어디에는 있습니다.
현재 기독교에서 행하여지는 모든 가증한 현상들을 보고 탄식하고 우는(겔9:4) 사람, 성경의 진리를 알려고 열심히 노력하며 일요일 숭배에 회의를 느끼고 십계명을 올바로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바알에게 무릅 꿇지 않는 7000인 입니다.
그러한 가증한 거짓 교리에 자기의 영혼을 내어 맡기지 않고 일요일에 예배당에 나가서 태양신에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않은 7000인 입니다.
성경에서 입을 맞추다는 의미는 영혼의 교류를 의미하는데 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입으로 코로 숨을 쉬는데 영적으로 숨(breath)은 영(spirit)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breath는 성령이고 (창1:7, 겔37:9-10, 요20:22) 사람의 breath는 기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급하신 그 7000인이란 실제로 (왕상18:3-4)에서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가 하나님의 선지자 100인을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여서 아합의 학살하는 손에서 살려낸 선지자 100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00 은 완전한 수자를 의미하는데 아브라함도 100 세에 이삭을 낳은 것입니다 (창21:5).
이삭은 (갈4:28)의 약속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완전한 그리스도의 성도를 의미하는데 아브라함의 신앙이 완전하였을 때에 이삭을 낳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 65:20)에서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에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 라고 한 것입니다.
7000 = 100 = 완전한 신앙의 완전한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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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들이 완전한 성도들이 되기를 요구하십니다.
(신18: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영역-perfect).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레19:2),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벧전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성령 받은 성도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표적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나타나는 표적이 있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니라 (막16:16-18).
사도행전을 잘 살펴 보아도 성령이 그 세례 받는 자에게 강림할 때는 눈에 보이는 표적이 따랐지요? (행2:2-4, 행2:33, 행10:44-46, 행19:2-6).
무슨 표적일까오?
바로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방언, spiritual tongue, 하늘나라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래에는 방언의 역사 Web Link
방언, spiritual rongue방언 (Glossolalia)서기 1900년에 다시 시작한 방언의 역사 Weblink
여호와증인이나 안식일교회나 워치만니교회나 신천지교회나 그 외 여러 기독교 보수 교파들도 장로교회도 감리교회도 성령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니 저희들끼리 모여서 허탄한 풍설(출23:1)과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면서 (엡4:14).
성령이 밝히 말씀 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쫒으리라 하셨으니 (딤전4:1).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사도들)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는 너희가 잘도 용납하는구나 (고후11:4).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가르친 진리의 복음에서 떠나 바리새인들의 거짓 가르침에 귀가 솔깃하여 모두들 진리를 버리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앞 장에서 예수님의 입, 하나님의 입, 사도들의 입을 여러 구절 언급하며 입이라는 단어에 큰 영적비밀이 있다 하였지요?
입이란 영적으로 문(門)이란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입으로 들어가야 하고 예수께서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시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7:13)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입으로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이 구절에서 먹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앞장에서 말했듯이 하나님 말씀을 먹는다고 했지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10:9).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30).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시24:7,9).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출12:7).
모세가 회막에 들어 갈 때에 구름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출33:9-11).
이와 같이 입에서, 문에서 역사를 하시는데 어느 분이 역사를 하시는지 아십니까?
바로 성령께서 역사를 하시는데 사람의 입에서 역사를 하십니다.
조금 지능이 혹 영적으로 발달된 분들은 입에서 행하는 성령의 역사가 무엇 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답이 전혀 상상도 못 하는 구절에 있습니다.
(사6:4)에,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여기서도 보는 바와 같이 성경은 숨기어져 있고 봉하여져 있는 것입니다.
과연 문지방 터가 요동하는 것은 어떠한 현상이며 왜 문지방 터가 요동하였습니까?
예, 창화하는 소리로 인하여 요동하였지요?
창화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예, 찬양하는 소리를 말하지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43:21).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였다는 것은 성령세례 받은 성도의 입에서 하늘나라 언어인 방언이 발파되어 나온다는 뜻입니다.
바로 하늘나라의 언어인 방언의 영기도(靈祈禱)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14:2-3).
새 노래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시40:3).
새 노래란 무엇을 가리킬까요?
바로 방언의 영기도를 가리킵니다.
하늘나라의 말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요?
널리 알려진 바와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였지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사43:21).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시40:3).
성령 받은 표, 방언의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새 예루살렘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계21:2).
성경안의 낱말 중 새(New)라는 형용사는 영적 의미로 하늘나라의 것이라는 축자영감 해석을 앞에서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령의 법은;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3:5).
• 우리 인생들이 영혼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 받은 성도는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을 소멸하게 하면 안된다 (살전5:19).
• 성령 받은 성도는 자신이 영원구원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끊임없이 인격수양하면서 연단하여 스스로 심령을 정결하게 하게 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 성령 받은 성도는 반드시 십계명을 지켜야 하고 (마19:17) 사함 못 받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 영원히 사함을 못 받는 죄는 성령 모독죄 (막3:29), 당을 짓고 적 그리스도가 되는 죄 (요일2:18- 19), 짐짓 진 죄이다 (히10:26).
영원히 사함 못받는 죄를 범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원에서 영원히 탈락된다 (히6:6).
그 사람에게는 살아 생전에 영혼구원의 두번째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으며 사후에도 없다.
• 성도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갈5:22-24) 맺어야 한다.
성령 받은 성도는 의인이므로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 때때로 성도에게 찾아오는 불세례를 이겨내고 신앙의 온전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 항상 기도하며 성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
항상 하나님의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실천해야 한다 (약2:17, 26).
성령 받은 성도는 성경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지상에서의 삶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야 한다.
여러분, 회개하여 죄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모든 악하고 미련한 사람의 생각과 유혹, 때때로 찾아오는 모든 불시험과 지상의 고난을 다 이기고 승리하여 이마에 하나님의 구원의 인침을 받은 십사만사천인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양할 때는 수금과 비파와 퉁소로 찬양을 하였는데 신약시대에는 회개하여 성령 받고 새 노래로 새 방언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제 5 장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
제 5 장 – 생명나무와 그 열매 그리고 선악과는 무엇인가?
제 5 장 생명나무와 그 열매 그리고 선악과는 무엇인가?
생명나무 (the Tree of Life)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말씀으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과가 열리는 나무
.
.
생명나무란 무엇입니까?
분명 그 생명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먹으면 영생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하나님이 동산 동편에 그룹과 화염검을 두어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창3:24).
그리고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았습니다 (창3:23).
여기서의 그룹과 화염검은 누구를 혹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러면 당시 아담이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가 오늘날도 존재할까요?
과연 그 생명나무가 지금도 존재한다면 과연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한 그루의 나무형태인 식물로 존재할까요?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면 오늘날의 생명나무는 어떠한 형태로 존재할까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분명 그 곳에 갈 수만 있다면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겠지요.
그런데 (창3:24)에 그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그룹과 화염검이 지키고 있으니 우리가 그곳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생명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을 먹어야 영생을 하는데 어디로 가면 어떻게 하면 생명나무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있을까요?
한경직 목사 곽선희 목사 김진홍목사 아니면 박태선이나 문선명이나 조용기나 이만희나 이재록이나 Benny Hinn 이나 Billy Graham 한테로 가면 만날까요?
아니면 여러분들이 지금 나가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에게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많은 교인들이 자기들의 교회 담임목사님 한테 가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면 생명나무란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에는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생명나무와 그 열매인 생명과
성경에는 분명 여러 곳에서 생명나무에 대하여 말하고 있읍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실과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케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2).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잠11:30).
지혜는 그 얻는 자에게 생명나무라 (잠13:1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2:7).
지혜는 생명나무라 하였는데 이 지혜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그룹(Chrubim)과 화염검을 두어 지키게 하였으니 우리가 그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시대의 그룹과 화염검은 무엇입니까?
글자 그대로 날개 갖인 천사들과 불타는 칼입니까?
예, 분명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무엇일까요?
감추어진 영적 뜻을 밝히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는데 바로 지혜나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고전12:8) 부여받은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겔28:14)에,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생명나무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고 그 열매인 생명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생명의 말씀을 말합니다.
둘째로 생명나무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3 년간 산교육을 받았던 예수님의 12사도들을 말하는 것이고 또 그 후로 초대교회 때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던 많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지금시대의 생명나무란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전수한 지혜나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선지자나 그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생명나무란 우리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도하는 참복음 사역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룹 천사의 형상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룹(chrub) 천사에 대하여 여러 곳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법궤 위에 있고 (출25:18-22) 솔로몬 성전 여러 곳에 있고 (왕상6:23-35) 에스겔서 1장에 그 그룹의 형상이 자세히 나오는데 4 생물의 얼굴이 사람과, 사자, 독수리, 소의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똑같은 그 그룹의 형상이 계시록 2 장에도 나옵니다.
과연 그 그룹 형상의(icon) 모양은 영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 그룹천사의 얼굴 모습은 사자, 독수리, 사람, 소같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또 날개들과 생물 전체에 가득한 눈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일까?
앞장들에서 그룹형상의 얼굴에 있는 독수리와 소는 그 영적해석이 나왔습니다.
독수리는 성령이고 소는 복음 전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풀이하였지요?
그러니 그룹 천사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날개를 가진 천사들일까요?
목사들이 흔히 말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창조한 하나님이 부리는 영들일까요?
하나님이 부리는 존재는 맞는데 복음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 사역자, 즉 은사 받은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그 그룹 천사들과 (시104:4)의 하나님의 사역자 화염검들이 생명나무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아무도 이러한 난해한 구절들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없고 또 알려고 하는 사람들도 없고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과 내용이 우리시대에 예수 믿는 신앙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러한 어려운 수수께끼들을 몰라도 예수는 잘 믿을 수 있고 천당은 가는데.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러한 어려운 구절들 가지고 그럴듯한 해석을 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위 비유풀이 한다고 하면서 우매한 신자들을 속이는 이단교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만희가 그 대표자 아닌가?
그러면 당신이 주장하는 난해한 구절들의 해석은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가?
또 그러한 해석들이 예수 믿는데 꼭 필요한가 등등 풀리지 않은 의문과 의심이 많을줄로 압니다.
바로 그러한 여러분의 의문, Question 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이세상에는 그러한 의문과 알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신자들이 거의 드문 것입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일요일에 교회나 나가서 예배나 드리고 목사들 설교나 듣고 생전 가야 성경책 한번 통독 안해보면서 성경 안에 어떠한 내용들이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한채 예수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혹 그런 의문과 알고 싶어하는 열망을 가진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 분은 진정한 초대교회의 복음의 진리(truth, veritas, emunah, alethein)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계시록에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계 5:4).
에스겔서에서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는 자의 이마 위에 표하라 하시고 (겔 9:4).
이와 같이 알려고 애쓰며 노력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 봉해져 있는 성경의 인(印, seal)을 떼어주시고 그 이마에 구원의 표를 주실 것입니다.
선악과는 무엇인가?
그러면 생명나무와 반대되는 선악과는 어떠하였습니까?
당시 뱀에게 속아 아담과 하와가 먹고 죽은 그 선악과는 모양이 어떠하였습니까?
보기에 흉측하고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나는 과일이었습니까?
미련하게 생기었습니까?
아니었지요?
오히려 여자가 본즉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한 나무인지라 (창3:6).
그러니까 사탄이 지금 시대에도 우리를 속일 때 무슨 악하고 미련한 방법으로, 아니면 성경이 아닌 다른 이방종교의 경전과 교리를 가지고 속일까요?
아니지요, 반드시 성경을 가지고 성경구절을 인용해 가며 아주 그럴듯한 교리를 개발해 가지고 아담이 먹고 죽은 선악과 나무처럼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교훈이 되고 은혜가 될만큼 그럴듯한 영적 거짓말을 지어내어 여러분들을 속입니다.
이만희나 문선명이 같은 사악한 저질 이단들 뿐만 아니라 장로교회와 같은 보수적이고도 점잖은 개신교 교리에도 천주교의 바벨론 종교의 선악과와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 인간들보다는 모든 지능과 능력이 한 수 위에 있는데 무슨 왠만한 사람이면 금방 알 수 있고 눈치챌 만한 악하고 지저분한 교리나 방법으로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나이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간첩이나 도둑질하는 사람들은 얼굴도 흉악하게 생기고 옷차림도 이상하게 하고 다니는 것처럼 잘못 인식했었지요?
그러나, 실제로 간첩이나 도둑놈들이 자기들의 정체를 들어낼 만큼 표를 내고 다닙니까?
아니지요?
오히려 전혀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그 뱀들이 인류를 속일 때는 지혜롭고 탐스럽게 먹음직 스럽게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류에게 공급을 하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특히 요즈음 말세말 시대에 인류의 문명과 사람들의 지능이 엄청나게 발달한 지금 시대에는 사탄은 반드시 기독교인들을 성경을 가지고 속입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사탄은 우리를 기독교 교리 아닌 다른 종교의 교리나 가르침 혹은 악하고 저속한 이방종교의 유전과 문화로 우리를 예수 못 믿게 하는줄로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고 있지요.
과연 선악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선악과는 오늘날 무엇일까요?
만약 오늘날 존재한다면 어떠한 형태일까요?
한 그루의 식물인 나무형태는 아니겠지요?
그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속인 자가 누구입니까?
뱀이였지요?
그 속이는 뱀은 그 당시에만 있었습니까?
아니지요, 예수님 시대에도 있어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뱀이라 하였는데 그러면 또 예수님 시대만 있었고 지금 우리시대에는 없을까요?
만약에 있다면 누구일까요?
이방종교 믿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예수 믿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일까요?
선악과란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섞인 혼합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경의 하나님 말씀에 사람의 생각과 교훈 그리고 교회의 유전등을 마구 섞어 만든 거짓 하나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 대언할 때에는 성경에 쓰여있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순도 100%의 성경진리이어야 하는데 사람이 제멋대로 가감한 뱀의 거짓말을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앞에서 여러번 언급한 것처럼 예수 믿을 때 성령 받는다, 그리고 예수 믿기 시작하면 앞으로 미래에 우리가 지을 죄도 미리 땡겨서 이미 다 사해 주셨다라고 하는 비성경적인 영적 거짓말을 말합니다.
사람이 듣기에 얼마나 좋은 소리입니까?
보기에 아릅답고 은혜로우며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말씀” 아닙니까?
예수 믿기로 결심만 즉시 성령이 들어오고 앞으로 지을 죄도 이미 다 사해주시고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복을 받으니 이 얼마나 사랑이 넘치고 은혜로운 하나님 아닙니까?
장로교회의 칼빈주의 예정설, 이 얼마나 듣기 좋고 맘에드는 교리입니까?
예수 믿는 성도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고 행하여야 할 계명과 의무는 다 빼먹고 복 받는 것만 초첨을 맞추어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미혹할 때에 무슨 불교경전등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방종교의 추종자로 만들거나 무신론자로 만들거나 아니면 토속신앙의 샤마니즘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 타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은 지옥가기로 작정이 되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악령들이 구태어 힘들여서 악의 역사를 할 필요가 전혀 없읍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알고 또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자들은 이미 사탄의 수하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인데 무슨 악의 역사가 필요하겠습니까?
사탄의 target 는 오직 예수 믿고 천국 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천사들과 악령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지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제외된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예수 믿고 천국 가려는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천사와 악령이 서로 자기네 편으로 만들려고 성도들을 잡아땡기는 것입니다.
(계 11:2)에, 성전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두라고 했습니다.
이미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성경을 가지고 거짓교리로 엉터리 성경해석으로 하나님
의 법을 바꾸고 십계명을 바꾸고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교리들로,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
내려오면서 전통이 되어버린 유전들로 바꾸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그럴듯한 철학과 교훈
과 논리의 누룩으로 보리떡처럼 반죽하여 사람들의 인분불에(바리새인의 누룩) 구어 가지고
(겔4:12) 선악과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공급을 하니 그 선악과를 먹은 영혼들이 멸망하는 것입
니다.
성경에 나오는 나무는 영적으로 사람을 가리킨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나무는 영적으로 사람을 상징한다고 앞에서 여러번 언급하였지요?
우리의 일상대화나 글에서도 사람을 상징적으로 나무로 표현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아주 큰 인물이나 세상적인 거물들을 거목(巨木)이라고 지칭합니다.
수년 전 정주영씨가 사망했을 때 신문기사의 일면에 큰 글자로 “거목이 사라지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에 나오는 생명과와 선악과는 그 당시 에덴동산에서는 실질적인 한 그루 형태의 식물인 나무(tree)였으나, 지금 우리시대에 와서는 한 그루 형태의 식물(植物, tree)이 아니라 바로 인간(人間)을 가리킵니다.
(잠18:21)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이와 같이 열매는 나무에서 생산되는 과일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지금시대의 선악과와 생명과는 종교 지도자들의 입에서, 즉 목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성경해석, 가르침, 설교를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감추어진 말씀의 인봉(印封)을 떼며는 그 해석이 우리가 알지 못하였고 생각하지 못하였던 비유의 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과가 무슨 막연한 상상속의 나무 한 그루에서 나오는 과일이 아닌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그 당시 실제로 동산 가운데에 있었으나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는 종교 지도자들을 가르킵니다.
그러니 그 종교 지도자들의 입에서 목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설교가 여러분의 영적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 있는 난해한 구절들과 난제(難題)들의 해석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설교를 비유로 하시었다 했습니다.
나도 어렸을 때에는 (창 3:24)에 나오는 생명나무와 그 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는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은 동화책에 나오는 상상 속의 먼 옛날의 이야기 같고 마치 달(moon)나라에 있는 계수나무와 토끼 같은 상상 속에 나오는 존재들처럼 생각했었습니다.
현재 거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창 3:24)에 나오는 생명나무를 그렇게 먼 옛날 전설 속에서 존재하였던 한 그루의 나무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 안에 있는 수수께끼와 생명나무의 열매
(삿14:14)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것이 나왔느니라.
이 구절에 있는 삼손의 수수께끼를 잘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배운바와 같이 성경에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라고 했지요?
이 삼손의 수수께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먹은 자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는 뜻이고 강한 자에게서 즉 성령이 강하고 충만한 은사자에게서 선지자에게서 단것(시119:103, 잠16:24)이 즉 달고 오묘한 하나님의 진리말씀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삼손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사자였지요?
(삿14:6-8)에서 삼손이 젊은 사자를 손으로 죽이었는데 며칠 후에 그 사자를 보니 죽은 몸에서 벌꿀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 죽은 사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계5:5) 사자의 죽은 몸에서 꿀이( 잠 24:13, 아 4:11) 즉 인생들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진리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겔1:10, 계4:7)에 나오는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겔3:1-4)에,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내 입에서 달기가 꿀같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계108-11)에,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여러분, 에스겔이나 사도요한처럼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많이 먹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12 사도
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바알신, 태양신 우상숭배로 더렵혀진 이 기독교를
종교개혁하는 진리의 기드온 용사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생명나무를 만나서 그 열매를 먹고 영생하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생명과를 많이 먹어서 여러분 자신들이 그 생명나무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생명과를, 진리의 말씀을 먹게 하여 많은 뭇생명들을 구원하는 참된 하나님의 생명나무가 되
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6 장은 다음 페이지에 있습니다. >>>>>>>>>>>>>>
제 6 장 – 교회 지도자들의 사명
제 6 장 교회 지도자들의 사명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 (the Task that Church Leaders must do)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온 기독교계가 영적 우상숭배로 그 교리들이 변질되고 부패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밝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거짓 교회들 가운데서 진리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이 말세지말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자들이 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을 교인들에게 전하는 것이 교회 지도자들의 사명입니다.
목사들의 설교란 신약시대의 성령의 법(롬8:2), 믿음의 법(롬3:27)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서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교회 목사들의 설교는 그 내용을 사람이 제 임의대로 이것 저것 사람의 교훈과 교리로 만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법(롬3:27)대로 성령의 법(롬8:2)에 맞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그 설교자들에게 직접 그 설교할 말을 가르쳐 준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10:19,20).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눅12:12).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막13:11).
너희에게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눅21:14-15).
목사들이 설교할 때에 성경 한두 구절 읽어 놓고는 그 목사 자신의 해석으로 또 자기가 신학교에서 배운 사람의 학문인 신학자들의 조직신학과 여러가지 인간의 지식으로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 한 두 구절 읽어놓고는 자기가 만들은 맨 사람의 소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뒤범벅으로 섞어 만들어 자기 사설(私說)들이나 늘어놓지 않습니까?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설교집에서 조금, 어느 유명한 부흥강사가 목사가 한 설교 중에서 인용하여서 조금, 또 전에 자기가 느끼고 경험하였던 설교 내용에 적합하고 그럴듯한 예화 조금, 어느 소설책에서 철학책에서 위인전에서 석학책에서 조금, 또 자기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교훈 조금, 여기서 저기서 조금씩 얻어다가 짜집기하여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럴듯하게 멋있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만들어 교훈이 되고 은혜가 되고 감동을 주는 설교(제물)를 하지 않습니까?
네, 그러다 보면 많은 분들은 그런 설교이면 훌륭한 설교 아닌가?
그러한 것이 설교 아닌가 라고 할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은혜가 되며 하나님을 믿어야겠다는 생각과 동기를 부여하는 설교는 훌륭한 설교 아닌가?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고 선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설교나 도덕적인 가르침은 인간의 철학에도 있고 다른 종교들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고 불교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러한 신앙의 동기부여나 교훈이나 도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설교 안에 있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과 법과 일치하여야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
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
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 (사28:10, 13).
어떤 이들은 설교 듣는 교인들이 지루할까봐 양념으로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와 comic 한 말들을 섞어서 교인들을 웃겨가며 하기도 합니다.
그중 어떤 사람은 전문적으로 코메디 부흥설교를 하여 인기가 아주 좋아 돈도 많이 번 사람들이 있지요?
이미 고인이 되신 신영균목사가 대표적인 인물이였지요?
또 많은 부흥사들이 그 목사를 흉내내며 개그맨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장경동 목사 같은 저질 개그맨 목사들도 있습니다.
좀 특색있게 해볼려고 저질스러운 코메디와 익살을 섞어가며 재미있게 설교를 하여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밥벌이 내지는 돈벌이 하는 추악한 목사들도 있습니다.
성경구절은 하나님의 소리인데 설교는 진리와 비진리가 섞인 맨 사람의 소리로 뒤범벅하여 비빔밥처럼 이것 저것 막 섞어서 섞은잔을(계18:6) 만들어 저도 먹고 듣는 사람들에게도 먹게 하여 서로 멸망의 풀무불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럴듯한 사람의 소리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저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23:13).
어떤 유명한 철학자는 이렇게 얘기하고, 어떤 석학자는 저렇게 얘기하고, 역대 유명한 장군들 역사가 과학자 정치가들은 이렇게 저렇게 교훈과 명언들을 남기었는데 우리가 그 교훈과 명언들을 본받아야 하고, 웃으면 건강해지고 오래 살며 화를 내면 건강에 해롭고, 예수 잘 믿으면 영육간에 축복 받아 몸 건강하며 돈 많이 벌고 사업 잘 되고 자식들 공부 잘하여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등등…
매주 금, 토요일만 되면 새롭게 이야기를 꾸미고 만들어 그 설교 내용 준비하느라 하루 종일 머리 싸매가며 이 책 뒤지고 저 책 뒤지고 이 사람 저 사람, 이 목사 저 부흥강사, 이 신학자 저 신학자가 한 말들을 찾아서 인용하여 설교 내용을 엮어서 만듭니다.
또 자기 머리 속에서 성경적이고 교훈이 될만한 성경구절들과 그 해석을 저 나름대로 찾아내서 매끄럽고도 설득력 있게 엮어서 여러가지로 설교내용을 설교시간에 유창하게 열변하려고 꾸며서 만들어야 하니 피곤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합니다.
또 어떤 머리 좋고 유능한 말 잘 하는 말쟁이 목사들은 설교 준비 없이 그 즉석에서 자기 말로 거침없이 사설(私說)을 늘어놓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들은 성경에 쓰여 있는 내용을 저 자신들이 각색을 해서 드라마를 연출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브라함은 비겁한 거짓말쟁이인데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애굽에 있는 물자와 재산이 탐이나 애굽으로 건너갔으며 죽을까봐 두려워 아내인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속여 애굽왕 바로에게 보내어 많은 물자와 재산을 받아 마누라를 팔아먹은 사람이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 똑같은 성경구절 하나 읽어 놓고는 각 교파마다 각 교단마다 각 목사마다 성경해석이 다 다르고 제각각이니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거리가 되는 설교와 해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교파 신학교에서 수학하고 같은 조직신학과 교리를 배운 목사들이 설교시간에 똑같은 성경구절 읽어 놓고는 해석과 가르침은 다르게 제멋대로 제심령에서 나오는 설교를 지껄이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의 떡을 사람의 누룩으로 반죽하여 무지(無知)한 양들에게 공급을 하니 그 쑥물을 (계8:11) 먹은 영혼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혼돈이요 언어혼잡(청11:9)이요 바벨론성(계18:2-4)인 것입니다.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사56:10,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였도다 (렘14:14).
내 말로 도적질하는 선지자 (렘23:30).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니라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겔13:2-7).
그 제사장은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렵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별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겔22:2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15).
이러한 예언들은 구약 당시의 바알신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지금 우리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 당연합니다.
반문하시고 납득할 수가 없다고들 생각하시지요?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겔13:19).
교회목사들이 설교시간에 예배헌금 몇푼 받아낼려고 영적 거짓말을 지어내서 교인들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저 많은 교파들을 보십시요
저마다 제각각 교리가 다 틀리고 같은 교파 안에서도 그 설교하는 목사들마다 똑같은 성경 한 구절 읽어 놓고는 해석은 제멋대로 제마음대로 기독교를 혼돈 속에 빠뜨리고 언어혼잡을 일으키어 바벨론탑을 쌓고 있습니다.
뭐 요한 계시록도 해석하는 것이 이 사람 틀리고 저 사람 다 틀리지요?
성령은 이것이라 하고 저것이라 하고.
복음성가 많이 부르면 성령 충만해진다 하고 방언은 은사의 일종이다 하는 자들도 있고.
어떤 자들은 특히 장로교에서 방언이란 초대교회 때에는 있었는데 지금 시대에는 폐하였다 하고.
심지어 안식일 교파에서는 방언은 개구리 귀신이 떠드는 소리라고 하기까지도 하며.
어떤 순복음교회 목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언소리를 흉내내라고 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순복음 교파에서는 예수 믿으면 건강해지고 물질축복 받아 부자 된다고 하여 예수 믿는 것을 물질축복에 목적을 두고 촛점을 맞추어 기복신앙으로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어 신자들의 돈을 후리어내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들의 생태를 잘 보십시요.
교회와 교회끼리 교파를 막론하고 서로 사업상 경쟁관계에 있으며, 원로목사나 담임목사들은 각 교회마다 절대적인 권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어느 큰 교회들은 왕권과 같은 힘으로 북한의 김일성처럼 세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이루어낸 교회는 자기 개인 재산처럼 운영하며 그 안에서의 각종 금전적인 비리와 여자들과의 스캔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십니까?
추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저 옛날 중세의 카톨릭 교회보다도 영적으로 더 부패하고 타락하였습니다.
교회의 규모가 클수록 그러한 악한 현상이 더 심한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요즈음 한국 교회들에서 많은 추악한 스캔들이 터져나오고. 있지요?
언론에도 자주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잘못 가르치고 설교하는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와 교훈들
현재 목사들이 흔히 가르치고 설교하는 내용 중 잘못된 교리와 성경해석을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믿기로 결심하면 그 즉시로 우리 영혼은 구원을 받았고 성령이 그 즉시로 그 사람에게 임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오늘밤 자다가 죽어도 천국 가고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죽어도 그 즉시 천국 간다고 Billy Graham이 주장하였는데 많은 목사들이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아브라함과 야곱은 거짓말쟁이고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하고.
어떤 가증한 목사들은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모세도 구원 못 받고 지옥 갔다고 떠드는 자들도 있습니다.
요 얼마전 한국 감리교 신학대학 총장처럼 구원은 기독교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다 있다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조용기는 얼마전에 불교모임에 가서 불교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 라고 강연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가증하고 사악한 거짓 목자입니까?
탐욕에 취하여 발람의 술사가 되어 신자들의 영혼과 돈을 후리어내는 용 느브갓네살, 조용기.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미국 하나님성회의 교파에선 우리가 예수 믿기로 한번 결심만 하면 천국 가는 Ticket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고 그 Ticket 안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어 건강 물질축복 등 온갖 축복이 다 있어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 주시며 우리가 죽으면 천국 간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들은 어느 누구나 기독교 복음의 빛을 한번 비추임을 받고 복음이 그 사람에게 전도되기만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 사람이 예수 믿으면서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타락을 하여도 다 용서하시고 죽기 1 초 전에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돌이켜 회개시키어 천국으로 데려간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2000년 전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가 예수 믿고 난 후에 짓는 미래의 죄도 당겨서 이미 다 사해 놓았다고 가르치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칼빈의 예정론이 그렇게 주장을 하지요?
특히 장로교에서 그렇게 주장하지요?
듣는 사람들의 입맛에 꼭 맞는 소리만 마음에 너무 와닿는 소리만 하는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듣기에 좋은 소리입니까?
얼마나 우리에게 가슴 벅차게 감동을 주는 교리입니까?
평일날에는 하고 싶은 짓 다 하고 일요일에 교회 나가서 예배 한 번 보고 기도 한 번 하면 예수께서 다 사해주시는데, 사랑이 차고 넘치는 종교 아닙니까?
그러한 조직신학이 우리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 선민의식을 느끼게 하여 감사와 찬송이 우리 마음에서 절로 나오게 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비성서적이고 성경의 내용과 반대되는 비진리의 거짓말을 한도 없이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도 없이 이 사람 저 목사 저 교파 이 교파 이 신학자 저 신학자마다 성경해석이 제각각이고, 그러한 양상을 지적하면 해석과 교리는 다 틀려고 한 하나님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섦기는 것이니 믿는 교리가 좀 틀리다 해도 한 예수를 믿으니 천국은 간다 라고들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방만한 해석이 더 발전이 되면 자유신학이라고 하여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는 헛소리로 말씀의 진리(truth)를 왜곡하여 심지어는 우주와 천지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저절로 (누가 만든것이 아닌) 생겨나 있었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천주교도 같은 하나님 믿는 교이니 거기에도 구원이 있다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은 예수재림 이후에 백보좌 심판이 있고나서 천년 동안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자들을 위하여 정해진 무서운 고통의 세월이다.
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혼잡한 것입니다.
거기가 바로 바벨론성(계17:5)이요 애굽이라고도 하고 소돔이라고도 하는 곳입니다.
뭐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정도로 천태만상으로 엉망진창입니다.
정말 속된 말로 “개판 오분 전 입니다”.
그러한 바벨론 상품을 우매한 신자들에게 팔아서 엄청난 치부를 하고 큰 교회 목사들은 돈방석, 금방석에 앉아서 호의호식 하고 있습니다.
발람의 술사들이 되어서 사악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들의 잘못된 가르침들 중 예를 한가지 더 들어보겠습니다.
요즈음 한국에 여러 유명한 목사들이 공공연히 자기네들이 죽으면 장례를 매장(埋葬)으로 아니하고 화장(火葬)으로 할 것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들 중 대표적으로 유명한 목사 곽선희 목사가 있습니다.
이유는 한국국토가 협소하니 국가시책에 협조하는 의미라 하고 또 화장을 하면 썩을 육신이 타서 이 세상에서 없어지니 깨끗하다고들 합니다.
또 교인들에게도 화장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예수 믿는 성도들이 매장을 해야 합니까 화장을 해야 합니까?
여러분들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매장을 해야 한다고요 아니면 화장을 해야 한다고요 아무 것이나 상관없다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예수만 잘 믿으면 된다?
과연 화장하는 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까?
소위 목사라 하는 자들이 신학대학에서 수년 간 신학공부도 하고 평신도들 보다는 성경책도 많이 읽었을 것이고 목회생활 하며 두루 주워들은 것도 많이 있을 터인데 성경적으로 한없이 무식한 생각과 행동을 하며 교인들에게도 가르치니 참 가증하고 또 어처구니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 신구약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성경 어느 곳에 어느 구절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화장을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화장하였습니까?
화장이란 인도문화에서 불교문화에서 행하는 가증한 행위인데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절대로 하면 아니되는 행위입니다.
몰렉에게 시신을 내어주는 바알신 숭배자들이 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이방인들의 의식입니다.
도대체 성경을 내용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 기독교 안에서 화장을 하라고 교인들에게 목사들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 정말로 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까 아니면 바알신(Baal)의 교회입니까?
이와 같은 성경적으로 가증한 의식과 행위를 저 목사들이 저지르고들 있습니다.
도대체 성경지식의 기본이 전혀 안되있고 성경적으로 무식(無識)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창3:19)에,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으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와 같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육신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라고 분명히 말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며 흙이 아닌 불타버린 연기로 여러분들의 분신이 한줌의 재로 없어진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천사들이 구름 위에서 나팔 불 때에 천사들이 구원 받고 잠자는 성도들의 이름을 부를 때에 당신의 이름이 불리워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어기고 저희들 스스로 암몬과 모압족속들이 행하는 가증한 행위를 저지르며 몰렉에게 자기 영혼을 바치는 가증한 자들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화장을 하였습니까?
예수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그 어느누구도 이스라엘 민족 모두가 다 매장을 하였습니다.
(고전15:51-53)에, 너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시간에 홀현이 다 변화하리니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입겠고.
(살전5:23)에, 너희의 영과 혼과 몸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4:16-17)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리니.
(신29:4)에,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사42:19)에, 소경이 누구냐 내종(거짓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사56:10)에,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그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소경이고 2000년 전에 예수님이 꾸짓으셨던 뱀, 독사들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하는 기도와 사명
(삼상12:23)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겔4:4-6)에,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 구십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이와 같이 교회 지도자들이란 때로는 교인들이 진 죄를 담당하기도 하고 교인들을 위하여 밤낮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간에 보면 목사들이 맛있는 음식이나 좇아다니며 먹는 것이나 밝히고 쓸데없이 교회예산 낭비하며 세계여행이나 다니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golf를 수시로 치러다니는 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골프 끝나고 나서 저희들끼리 회식하면서 몰래 술판을 벌리는 목사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다 삵군 목자들이고 바리새인들입니다.
중들이 가발 쓰고 룸싸롱 다니는 것과 같지요.
명진 스님도 몇년 전에 룸싸롱 갔던 것 언론에 여러번 보도되었었지요?
그러한 자들이 바로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저희보다 배가 더 지옥의 자식이 되게하는 자들입니다.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저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못가게 합니다.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마23:16)
탐욕의 땡초들이 염불에는 관심없고 제밥에만 눈이 쏠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7)
그들 안에는 온갖 탐심과 음욕으로 가득찬 자들입니다.
목사들이란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7).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히 1:2-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4 )
나를 보는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 12:46).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9).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아담을 부르시고(창 3:9) 범죄하고 회개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어(창 3:21) 그 멸망할 영혼들을 구원 하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마므리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창 18:1-2) 이시고.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 인에게 보이신 하나님(출 24:9-11).
그 구약의 하나님이 바로 세상에 탄생하시기 전 예수입니다.
(요1:18, 요일4:12)에서는 하나님은 본 사람도 없고 사람이 볼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구약성경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진 하나님이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유일신의 종교이지 하나님 아버지 신이 따로 있고 예수의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합니다 (출3:13-14).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가 아니라 예수입니다.
(요5:43)에,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요17:11-12)에,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정한 이름을 아는 것도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도 예수 이름을 부르며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도 예수 이름을 부르며 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를 부르며 백날 기도하여야 그 기도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예수께 상달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란 어떠한 절대적인 존재 이 세상 인간사의 모든 것과 천지의 자연법칙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힘(Power)을 가진 존재를 가르키는 것으로 한국어의 “하나님”이란 단어 자체가 옛 우리말 “하느님”에서 온 것으로 소위 천지신명이란 개념에서 온 것이지요.
그리하여 각 민족마다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 지칭하였던 강력한 힘을 갖인 초자연적인 존재를 가르켜 하나님이라고 칭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름과 단어는 각각 다르나 그 개념은 거의 동일하였습니다. 다신교 사회나 유일신교 사회나 마찬가지로 신(神)이란 영어에서는 god, 라틴어 계통은 dios, 아랍족들은 allah, 옛날 구약시대의 중동지방의 민족들은 주로 그 하나님이 발신(Baal)이었고 고대 애굽 에서는 Amun(태양신) 로마제국의 으뜸신은 Mithra(태양신)신 등등 어느 민족에게나 다 있는 단어입니다.
그 “하나님”이란 낱말은 의미가 막연하고 애매하여 각 사람들의 신앙에 의해 그 대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란 단어는 엄밀히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고 섬기는 유일신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속 하시고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시며 그 심판날에 우리를 부활시키시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주시는 그 분 그 절대적인 존재를 가르키는 유일신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분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그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참 목자는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이다.
하나님에게서 온 참목자는 성령의 9 가지 은사중 지혜나 지식의 은사를 (고전12:8) 받은 은사자들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의 에봇을 말합니다.
성경 안에 있는 비유의 말씀들은 지혜의 말씀 은사나 지식의 말씀 은사를 받은 은사자들이 (고전12:8) 성령의 가르침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은사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선지자가 되는데 그 기름부음이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요일2:27).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그러므로 어떠한 신학교에서 혹은 어떠한 유명한 신학자들이나 부흥사들이나 혹은 어느 교파의 조직신학이나 교리들을 배운 목사들이 우리에게 올바른 참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Holy Spirit)이 직접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그 기름부음을(the Annointing of the Knowledge) 받은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목회자(목사) 지망생들이나 일반 교인들이 신학교 수업을 하고 여러가지 기독교 신앙에 관련된 제반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수련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데 더욱더 도움이 되고 또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모세와 바울 같이 일반학문에도 능통한 석학자가 되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유명한 신학자들의 교리와 조직신학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리와 반대되거나 어긋나는 이론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조직신학 중에서 대부분은 일반적인 성경의 진리를 말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 보다 핵심적인 교리에 있어서는 비성경적인 비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구원론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론들은 하나님의 이론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어낸 그 신학자 개인의 이론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탄의, 뱀의 이론들입니다.
하와를 거짓말로 속여서 범죄하게 만들었던 뱀의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뱀들의 거짓 복음들을 분별하여서 골라내고 배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기름에 대하여 그 영적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은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레3:16-17)에,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레7:23-25)에,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기름을 달리는 쓸 것이나 결단코 먹지 말 것이요, 사람이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의 기름을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출29:36)에,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그 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
(출40:13)에,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레2:1)에,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레2:5)에, 번철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울지니.
(삼상9: 16)에,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 지도자를 삼으라.
(왕상19:16)에,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이와 같이 기름은 선지자, 제사장, 왕에게 부어서 거룩하게 하여 그 직분을 위임할 때에 쓰였으며, 희생의 제물을 드릴 때에 그 위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고 그 희생의 기름은 희생과 함께 다 불살랐으며 소제의 예물제사를 드릴 때에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섞어서 드렸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를 보면 모든 동식물제사에 기름을 붓거나 섞거나 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그 구절들이 무수히 나옵니다.
정한 짐승의 제물과 곡식제물은 하나님의 말씀 또는 기도와 예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나 하나님 말씀 증거할 때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 가르침이나 지시를 받은 진리의 교리로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은사 받은 선지자들의 설교나 그 은사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교사들의 (고전12:28) 교리로,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만 한다 이말입니다.
하나님이 왜 가인의 제물은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았을까요?
가인은 그 곡식을 기름과 함께 드리지 않았고 아벨은 양의 제물과 그 기름으로 드렸기 때문에 (창4:4) 하나님이 열납하신 것입니다.
즉 아벨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은사를 받아서 선지자가 되어 성령의 진리말씀의 교리로 예배를 드린 것이고 가인은 자기 자신의 인간이 만든 사람의 교리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선지자였었느냐?
그렇습니다.
(눅11:50-51)에,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아벨을 선지자라고 지칭하셨습니다.
흔히들 선지자는 아브라함부터라 하는데 아벨부터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란 무엇인가?
은사(恩賜)란 옛날에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선물을 말하는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적 능력과 재능을 말합니다.
그리스어로 kharisma 이고 영어로는 spiritual gift , supernatural power 입니다.
만 왕의 왕이신(딤전6:15,계17:14) 예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적 능력인데 하나님의 지식과 믿음이 장성한 자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마귀의 세력들과 싸우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무기입니다.
말씀의 비밀을 모두 알고 심령이 정결하고(마5:8) 믿음의 단계가 매우 성숙하여 하나님의 의(義)가 완성단계에 도달한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성령의 권능의 지팡인데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 받기에 합당한 영적 거물급들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초대교회처럼 많은 은사자들이 출현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세상에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자가 한 사람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어서 하루 빨리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가 많이 출현하여 이 변질된 기독교를 종교개혁 하여야 하는데 아직 전 세계적으로 한 사람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그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아주 많이 있었고 그 지식의 은사를 받은 자들의 교리가 다 동일하여서 다같이 한 교리로 한 성령으로 한 교파로 예수가 승천하시고 약 삼백 년 정도 기간 동안 말씀 전도하며 로마제국의 각 지방으로 퍼지어 나가면서 부흥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무수한 종파와 교파들이 제 각각 다른 교리를 주장하면서 이 목사 저 목사가 제멋대로 자기 사설(私說)들이나 늘어놓는 그러한 혼돈의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지식의 은사는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깨끗히 하여 하나님께 바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다 그 길이 열려져(open) 있습니다.
첫째는 그 마음이 가난하고 둘째는 청결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하는 자라면, 그 그릇에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관유를(the Anointing Oil) 부어주시지 아니하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한 자는 이 세상 아무 것에도 뜻이 없고 오직 그 마음이 천국에 소망은 둔 자이니 이 세상 어떤 것에 마음이 가 있겠습니까?
(마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을 말하는데 은사 받는 단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더럽고 죄가 그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그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전심전력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으면 언젠가는 진리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만나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 눈으로 불 수 있고 기름부움을 받아 사도바울에 하신 것 처럼 성령께서 직접 진리를 가르쳐 주시어 모든 영계의 비밀(靈界秘密)을 다 통달하는 선지자가 (prophet)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29:13).
여러분들도 진리를 깨우치고 그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모든 탐심과 탐욕을 다 버리고 전심전력으로 홰개기도 하면 죄사함 받아 성령을 받고 더 나아가 목적기도(마24:17) 하면 기름부음을 받고 선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아 기도하여 부르심을 받아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세와 같은 능력있는 선지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어서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이 기독교계를 종교개혁 하는데 한 일익을 담당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은사는(Karismata, Spiritual Gift, God’s power) 하나님의 지식과 영이 장성한 자에게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 일 하라고 주시는 영적 무기입니다.
마귀의 권세를 하나님의 권능의 무기로 싸워서 이기라고 주시는 철장을 말합니다 (계2:27).
흔히 많은 교인들이 산기도나 작정기도 하는 중에 체험하는 모든 이상한 영적 현상들은 거의 모두가 마귀의 사악한 거짓 유혹과 장난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의 환상을 보여 준다거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지시를 내린다거나 커다란 빛이 (Light) 가슴으로 들어온다거나 하는 신비한 현상들을 말합니다.
초신자들이나 신앙의 깊이가 얕고 탐욕이 있어 두가지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흔하게 잘 나타나는 귀신들의 속임수입니다.
그러한 귀신의 속임수에 넘어가 자기들이 마치 성령의 은사 체험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영영 구원 받을 길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성령의 참현상들은 아주 거물급 신자들에게 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추어진 성경 지식의 모든 비밀을 다 알고 믿음의 단계가 매우 오래되고 성숙하였을 때 하나님의 복음 사역자로 쓰임 받을 단계에 도달하였을 때 은사의 단계로 나타나는 현상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은 하나님의 지식과 성령이 충만한 믿음이 장성한 자가 은사를 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참 종교 지도자는 반드시 성경을 완전히 해석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신 권능의 역사와 표적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참 종교 지도자들이란 성경안에 감추어진 수수께끼들을 체계적으로 다 풀고 난해한 구절들을 짝을 맞추어 풀어 해석하며 동시에 하나님이 아니고는 행할수 없는 초자연적인 기적들과 기사와 표적들도 같이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로서 그럴듯하게 제멋대로 꾸며 입으로 만 나불거리며 말장난이나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하여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진리의 말씀과 권능의 표적이 동시에 병행해야만 하나님의 사람이요 선지자인 것입니다.
모세 시대에도 그러하였고 초대교회 때도 그러하였듯이 반드시 감추어진 말씀의 비밀해석과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역사가 동시에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롬15:18).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의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4:19-20).
그러니 어떤분들은 그러한 기적들은 옛날에나 있었던 것이지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 무슨 그런 기적이 일어나겠는가?
(히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윈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태초나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말세때나 언제나 동일하시다고 성경이 분명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적들이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옛날에만 있었고 오늘날에는 없다면 성경은 거짓말이 되겠지요. 하나님은 분명히 거짓말을 못하신다 했습니다 (히 6:18).
그러면 우리가 아는한 언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적이 있는가?
없지요 적어도 지난 천몇백 년 동안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까요?
그러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어날까요?
안 일어난다고요?
예,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것도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히2:4)에는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을 나눠 주신 것으로 저희와 함께 증거하였느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때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16:20).
믿지 않는 완악한 자들을 믿게 하려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권능의 이적과 기사들
분명 신약성경에 보면 초대교회 때 예수님도 그의 사도들도 많은 이적을 보이었습니다.
(행4:30-31)에는 손을 내밀어 낫게하옵시며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마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히12:26)에,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반드시 이 늦은비(봄비) 성령시대에는 초대교회보다 더 크고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모세 때나 초대교회 때나 하나님이 큰 이적들을 많이 행하신 이유는 믿지 아니하고 의심하는 자들을 그 기적들을 보고 믿게 하려고 하나님이 전능의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출4:8).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머리숙여 경배하니라(출4:30-31).
많은 사람들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요2:23).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나이다(요3: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라(요6:2).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 하더라 (요6:14).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5:4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 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요10:38).
이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요11:45,47-48).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희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요14:11-12).
사람 마다 두려워 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3,47).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입어 (행4:33).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행6:8).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행9:41-42).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매 수다한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 오더라 (행11:21).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행14:3).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 행하신 표적들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행16:5).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케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가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19:11-12).
예수님 자신과 그의 사역자들이 많은 기적을 행하였는데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들과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을 나누어 주신 것으로 함께 증거 하라 하였습니다 (히2:4).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 하신 것 외에는 내가 말하지 아니 하노라 (롬15:18).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은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후2:12).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내심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2:4).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살전1:5).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4:19-20).
또 교회 지도자들이란 항상 교인들의 죄를 담당하며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복음 사역자들의 협력
우리가 하나님의 전도사역을 할 때는 초대교회의 때처럼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서 한 진리로 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여럿의 선지자들이 서로 도와가며 협력하여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잘못하면 옆에서 다른 선지자가 그 잘못을 지적하고 서로 깨우쳐주며 하나님의 전도사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도사역의 영적 의미가 봉(封)하여져 있는 구절이 있는데 (전11:3)에,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있으리라.
(전4:11-12)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듯 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듯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이 어느 한 교주가 자기 혼자만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는 자들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모세 때에도 출애굽의 역사를 모세 한 사람이 혼자 하지 않했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동역하였고 여호수아와 70 인 장로들이 보좌사역 하였습니다.
미리암과 아론도 선지자였습니다.
성경 본문 안에 구원의 진리와 답이 있다.
목사들이나 부흥강사들이 쓴 신앙집이나 간증책 같은 것에 많이 치우치지 마시고 성경본문을 많이 읽고 올바른 사리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목사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성경과 일치하는가 아닌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겠습니까?
반드시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의 내용과 흐름을 어느 정도 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느 누구의 설교도 성경해석도 가르침도 교리도 성경의 내용에 비추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나마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설교나 성경해석도 본인이 스스로 어느 정도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필자) 이 글에서 언급하는 모든 말들과 성경해석이 과연 진리이고 성경에 부합되는가 안되는가도 철저하게 성경의 내용과 비교연구 하면서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 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쫒으리라 하셨으니 (딤전4:1).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사도들)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다른 복음을 받게 할때는 너희가 잘도 용납 하는구나 (고후11:4).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좆음이요 그리스도를 좆음이 아니니라 (골2:8).
여러분들의 영혼은 성령께서 구원하는 것이지 어느 신학자가 어느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칼빈이나 웨슬리나 빌리 그라함이나 여러분들의 교회 담임목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비(非)성서적인 신학에 속지 마십시요.
이와 같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서 떠나서 어떠한 말잘하는 말장이가 지어낸 허탄한 사설(私設)을 철학과 또는 윤리도덕으로 정립(定立)하고 편집하여서 그 교훈과 의미가 같은 성경구절들을 인용하고 짜집기하여서 그럴싸 하게 만들어서 말장난이나 하는 영적 거짓말에 속아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허탄한 소리는 어느 종교에도 다 있는 것으로 다 생명은 없는 율법이고 도덕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敎)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영생(永生)을 사모하는 종교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요일2:27).
너희는 거룩 하신자 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2:20).
그러므로 어떠한 신학교에서, 혹은 어떠한 유명한 신학자 들이나 부흥사들이나 목사들이 우리에게 올바른 참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Holy Spirit)이 직접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고 그렇치 아니하면 그 기름부음을 (the Annointing of the Knowledge) 받은자들 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그 기름부음을 받은자들이 아주 많이 있었고 그 지식의 은사를 받은자들의 교리가 다 동일하여서 다같이 한 교리로 한 성령으로 한 교회로 예수가 승천하시고 약 삼백년 정도 기간 동안 말씀 전도하며 로마제국의 각 지방으로 퍼지어 나가면서 부흥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무수한 종파와 교파들과 제각각 다른 교리를 이 목사 저 목사가 제멋대로 자기 사설(私說)들이나 지껄이는 그러한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방민족중 하나님이 제일 미워한 족속이 있는데 바로 아말렉 족속입니다.
이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 광야를 거쳐 가나안(천국을 비유) 으로 들어갈 때 칼과 창을 들고 나와 가나안으로 못 들어가게 방해한 자들 입니다 (출17:8).
그래서 하나님이 영원히 사하지 아니하시고 (출17:16, 신25:19) 그 후 몇백년이 지나서도 사울왕을 통하여 아말렉을 치고 얼마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지 사람뿐 아니라 살아 숨쉬는 모든 짐승을 다 죽이라고 명하셨지요.
구약의 시편과 예언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방민족들 모압, 암몬, 애굽, 바벨론등에게 다 구원의 손길을 주시나 이 아말렉 족속 만큼은 영원히 사함을 못 받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이 추구하는 최종목표는 천국 가는 것인데 그 길을 막고 거짓말로 성경의 구절들을 자기네가 필요한 그럴듯한 뜻이 애매한 구절들 뽑아서 억지로 꿰어 맞추어 역어 놓은 한사람 내지 몇사람의 두뇌로 만든 교리를 가지고 예수 믿고 천국 가려하는 여러분들을 그 천국 가는 길에서 거짓 날조한 교리로 방해하는 저 아말렉 족속들은 하나님이 영원히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이러한 거짓 교리들에 속지 마시고 올바른 진리를 만나 천국 가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만희와 이재록이 같은 저속한 종교사기꾼들을 경계하십시요.
올바른 하나님의 지식을 성경에서 배우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것 이라 (호4:6).
올바른 하나님의 지식을 알지 못하여 거짓 목자들의 선악과를 먹고 멸망하는 여러분들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을 때 성령 받았다고 가르치는 뱀들에게 속으면 아니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속으면 여러분들은 영혼구원에 반드시 받아야 하는 성령을 받을 길이 묘연해 집니다.
예수 믿을 때 이미 성령은 받았는데 무슨 성령을 또 받아야 하는가?
예수 믿고 천국 가려고 하는 여러분들을 그러한 뱀의 거짓말로 속여 못가게 하는 아말렉족속들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칼빈의 예정설로 여러분들의 영혼을 파멸하는 거짓 목자들에게 속지 마십시요.
장로교의 칼빈의 예정설은 성경과 반대되는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감리교의 Arminianism이 성경적입니다.
우리는 목사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성경과 일치하는가 아닌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비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겠습니까?
반드시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의 내용과 흐름을 어느 정도 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느 누구의 설교도 성경해석도 가르침도 교리도 성경의 내용에 비추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나마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라고 영혼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라고 주신 성경을 한번도 통독 안하고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느 누구의 설교나 성경해석도 본인이 스스로 어느 정도는 성경의 내용과 맞는가 안맞는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교회목사 설교가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어떤 신학자의 소리는 성경의 내용과 부합되는가 어떤 부흥사가 부흥회에서 떠들었던 소리는 성경적으로 올바른 소리를 하였는가를 점검하고 따져봐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시대에 유명한 목사들이 주장하며 떠드는 소리가 과연 성경적인가 아닌가 ?
조사하고 연구하십시요.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아무에게나 어떠한 부흥사나 목사나 신학자나 전도사나 그 누구에게나 쉽게 내맡기면 아니됩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설교나 성경해석들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진리인가 아닌가 우리 자신들이 꼼꼼이 따지고 철저히 연구해야 합니다.
그들의 설교가 성경말씀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확인을 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경 내용을 훤히 알아서 그들의 설교를 성경의 내용과 비교연구 한다면 많은 목사들의 설교가 엉터리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불멸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모든 것보다도 부귀영화보다도 혈육보다도 귀중한 것이 여러분들의 영혼입니다.
그러한 귀하고 하나밖에 또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여러분의 영혼구원을 성경적인 검증 없이 그 누구의 성경해석이나 설교나 교리나 가르침에 쉽게 수긍하고 믿어 자신의 영혼을 내맡기면 안됩니다.
말세지말의 지금 마지막 때 곧 머지 않아 하나님의 종교개혁 역사가 있을 것이다.
우리 말세 때의 늦은비 성령역사는 그 초대교회의 성령역사 와는 비교도 아니될 만큼 강하게 역사할 것이므로 이시대에는 많은 능력의 선지자들 교사들이 출연할 것이고 진리의 복음사역이 민간에 퍼지는 염병(행24:5) 처럼 빠른 시일 내에 세상으로 퍼지며 하나님 나라의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현대의 로마인 미국이 중심지가 되고 미국 사람들이 주동이 되어 현대의 헬라어인 영어로 설교하며 전 세계로 퍼지며 사도행전의 역사와 같이 하루에도 3000명, 5000명이 회개하고 그 제자들의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 몇 백만명 혹은 수천 만명까지 성도의 수가 불어나며서 반드시 많은 선지자들에 의하여 동역자들에 의하여 사역활동을 할 것입니다.
그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본인도 모름니다.
몇년 후에 올지 혹 몇십년 후에 올지 모르나 그리 멀지 않은 것 만은 확실합니다.
초대교회 때 보다 더 강한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수십 년 이상 오랜 기간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온 우주가 없어지는 예수 재림의 심판이 오겠지요.
예수 재림의 세상심판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나 보다 확실한 것은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세대는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 받고 열심히 예수 믿으면 우리의 육신이 죽으나 사나 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바이니 예수께서 언제 재림하시는 것에 대하여 연연하고 깊히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세대에 종말이 온다고 하는 교단들은 다 이단들로서 지나간 종교역사를 보아도 이단들이 종말론을 갖이고 당시 사람들을 현혹하고 들뜨게 만들어 많은 이득을 취했습니다.
하나님 복음 사역자들은 각성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가 이스라엘의 레위 족속 제사장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일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고 그 대가로 십일조와 헌물을 걷우는 것은 마땅이 해야 할 일입니다.
(고전9:11-14),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딤전5:18),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솔로몬같이 하나님의 참진리를 무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아 영육간에 으뜸가는 부자가 되야 하는 것인지 바벨론 상고들처럼 가짜 진리인 바벨론 상품을 팔아 불의한 재물을 모으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조용기처럼 바벨론 상품 팔아 치부하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출30:20-22), “내가 내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갈 때에는 빈손으로 가지 아니 하리니 너희가 애굽사람 물품을 취하리라” 하였습니다.
이번에 있을 종교개혁은 큰 하나님의 능력의 권능의 역사가 있은 후 저 일요일교회가 구교, 신교를 막론하고 지난 1700 년 동안 모아 놓았던 상상을 불허하는 어마어마한 재산과 돈을 12 사도복음 교회에서 몰수히 접수하여 걷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은 성령의 법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성령 모독죄가 어떠한 것인지 사함 받지 못하는 죄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초대교회의 복음으로 거듭 태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의 참다운 복음 사역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역사가 초대교회에서 천주교로 변하고 또 천주교를 개혁하여 개신교가 생기었는데 그 모든 지나간 2000 년의 기독교사를 세밀히 살펴보거나 연구하여 보지도 아니한 채로 천주교가 만든 유전이나 따라하면서 적그리스도 니므롯의 종이 되어 천주교 하수인 노릇하는 개신교 목사들은 자기 반성을 철저히 해야합니다.
기껏 한다는 것이 태양신 숭배하며 바알신 제사장이 되어 수도 없는 많은 영혼들을 바알에게 무릅뀷게 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는 거짓 목자들 삵군 목자들, 철저히 회개하시고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의 진리를 배워서 깨달아 뭇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참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이 참목자 한분을 남겨두셨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이 여호와의 모든 선지자들을 다 죽였는데 나혼자만 살아남았나이다” 라고 하나님께 부르짓을 때에 여호와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자 7000인을 남겨두었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하나님이 남겨두신 하나님의 참목자, ‘사도복음‘의 진리를 전파하는 황익성목사를 소개합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죽양대로 2031번길 18에 소재한 용인 엘림생수 교회의 담임목사 입니다.
고 노관영목사의 제자로서 현재 유일하게 사도복음의 진리가 변질되지 않고 제2 종교개혁의 순수한 사명감으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진리를 전파하는 진리의 사도이십니다.
제 12 장 – 진리의 사도 황익성 목사 Weblink
밑에는 용인 엘림 생수 교회의 You Tube Channel Link, click 하여 보세요.
https://youtube.com/@user-pg5hg1dt9e?si=9Ui6g9niEAcD_IZh
제 7 장 – 십계명
안식일 (the 4th Commandment)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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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하나님의 법 (사1:10, 롬7:25) 중에서 헌법에 해당되는 제일 중요한 법입니다.
십계명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를 막론하고 우리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예수 재림 때 정죄의 심판을 받고 불법을 행하는 불행한 신자들이 (마7:23) 되지 않으려면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 번 계명을 제자들에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마19:17)에,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요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일 2:4)에,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5:2)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
(요일 5:3 )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이 1:4)에,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계 12:17)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4:12)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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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태양신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인 카톨릭이 바벨론의 교리와 사상에 맞게 하나님의 십계명을 변개하였습니다.
십계명 중 5 개를 바꾸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계명은 없애 버리고 자기네들이 만든 가짜 계명으로 교체하였습니다.
네번째 계명을 토요일 안식일에서 태양신의 날 일요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는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아래에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천주교가 변개한 거짓 십계명에 관한 web Link
가톨릭이 고친 십계명
십계명 – 나무위키
카톨릭 바꾸어 놓은 하나님의 네 번째 계명을 개신교가 종교개혁한 이후 그대로 카톨릭의 사람들이 만든 거짓 계명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마15:3)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마 15:9)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막7:7)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막7:8)에,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막7:9)에,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약 2:10)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약2:11)에,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야고보서 2 장에서는 십계명 중 한가지를 범하면 십계명 열가지 모두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개신교 교인들은 구약의 바리새인들이나 카톨릭 신자들처럼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면 안되겠습니다.
나중에 그 불법을 행한 죄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흔히 목사들이 잘못 말씀 증거하는 설교나 가르침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지적하자면 사람이 한번 예수 믿기를 시작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천국 간다고 합니다.
또 성령은 예수 믿을 때 벌써 받았다고 하고 우리의 죄는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예수믿기 결심할 때 이미 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어떤 목사들은 우리가 예수 믿기 시작하면 앞으로 미래에 우리가 지을 죄까지도 예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이미 다 사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많은 거짓 교리 중 제일 뚜렷한 것이 십계명 중 네번째 계명의 안식일을 툐요일에서 일요일로 태양신 숭배하는 날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불변의 십계명을 태양신 우상숭배하는 카톨릭이 그들의 교리에 맞게 바꾸어 놓은 가짜 십계명을 개신교가 따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모든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토요일을 성일(聖日)로 지킨 기록이 너무도 뚜렷이 여러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시고 나서 거룩한 날로 정하여 세상 시작한 때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 정해 놓은 불변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 중에 제일 먼저 생긴 법이며 하나님 자신이 먼저 지키시었던 계명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키었고 예수 승천하시고 모든 사도들과 성도들이 지키었던 계명입니다.
주후 약 600년도 말까지 지키었던 계명인데 주후 688년을 전후로 사탄이 로마 카톨릭교를 이용하여 지구를 영적으로 완전히 점령하면서 토요일에서 일요일을 안식일로 바꾸어 놓으면서 기독교의 전통으로 유전으로 굳게 자리잡히면서 사람들의 머리속에 요지부동의 교회유전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주후 300 년이 넘으면서 서서히 일요일이 기독교에 본격적으로 등장을 합니다.
그 이전에도 태양신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영향에 의하여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사이비 기독교인들이 소수가 있었으나 로마제국 콘스탄틴 황제가 서기 321년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하는 “일요일 휴업령“을 선포하면서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많은 기독교인이 토요일과 일요일을 병행하며 지키다가 서기 688 년경부터는 토요일은 완전히 사라지고 일요일이 예배일로 세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전 인류가 일요일은 휴식하는 날로 정해지면서 옛 무신론자인 공산국가들에서도 일요일은 휴일로 되버린 것입니다.
북한 빨갱이 사회에서도 일요일을 휴일로 지키지요?
이러한 인류 역사적인 사실은 초기 기독교사와 천주교의 유래와 역사를 조금 깊히 찾고 조사하면
누구든지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역사적인 기록의 자료들과 논문들과 책자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관심이 있으면 찾아보세요.
그 역사적인 자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초대교인들이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켰다는 뚜렸한 구절들과 증거들이 많이 있다.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구절들을 유심히 살펴보겠습니다.
(눅4:16)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23:56)에,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행1:12)에,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는 길이라.
이 구절에는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난후 안식일에 가기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감람산을 언급하였는데 제자들이 안식일을 중요시하고 지키었다는 뚜렷한 구절입니다.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었다면 안식일에 가기에 가까운 것을 따질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행13:14)에,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행13:42)에, 사람들이 청할쌔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이 구절에서 보면 바울이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는데 십계명 중 네번째 계명인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말했습니까 아니했습니까?
전혀 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왜 하루가 지난 바로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이 아니고 다음 안식일에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였을까요?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면 안식일에 모여서 복음을 가르쳤으니 바로 그 다음 날인 일요일에도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성경말씀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사람들이 그 다음 날 일요일이 아닌 6일이나 지나야 오는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하라고 했습니까?
이 구절 하나로도 그 당시에 (예수 승천하신 후 30년이 지났음) 일요일에 초대교인들이 모이고 사도들이 복음을 가르쳤다는 사례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여졌습니다.
(행13:44)에,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모이니.
이 구절에서는 안디옥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다 안식일에 모였습니다.
만약에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면 왜 이방인들이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모였을까요?
(행16:13)에,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이 구절에는 바울 일행이 예수의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이방인 도시 빌립보에서 안식일에 예배하고 기도하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왜 바울이 일요일이 아닌 안식일에 기도할 장소가 있는가 하여 찾았습니까?
(행17:2)에,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이 구절을 보며는 (롬7:6, 갈2:12-18)에서 바울이 유대인의 율법을 버리고 믿음의 새로운 법을 성취하라고 가르쳤는데 왜 안식일을 자기의 규례라 하였습니까?
(롬7:6)에,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라.
(갈2:12-18)에,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러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죽기를 마다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많은 고난과 수난을 겪은 (고후11:23-33) 바울이 왜 일요일에 관한 가르침은 신약성경에 없을까요?
신약의 교리를 완성하다시피 한 사도바울이 십계명에 대한 가르침은, 일요일에 대한 가르침은 왜 없을까요?
만일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었다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으뜸 사도인 바울이 그 유대인의 외식인 율법의 유전을 버리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가르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유대인의 율법의 외식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심지어는 (갈2:11)에서 사도 베드로에게도 책망을 하였던 바울이 왜 자기의 규례대로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습니까?
(갈2:11-14)에 자세히 나옵니다.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신약성경 어느 곳에 어느 구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뚜렷한 증거의 구절이 있습니까?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일요일을 주장하는 자들이 인용하는 구절 서너 구절이 있는데 그 내용과 의미가 지극히 애매모호하고 또 전적으로 아전인수격으로 엉터리로 억지로 해석하는 몇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구절들은 곧 토론하겠습니다.
안식일은 외식하는 유대인의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십계명이니 반드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행18:4)에,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왜 바울이 일요일이 아닌 안식일마다 헬라인을 권면합니까?
이쯤되면 사도행전에 일요일 예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도 아주 많이 있어야 하고 일요일 예배가 확실하게 초대교회 사회에 큰 가르침으로 등장을 하여야 하는데 전혀 없습니다.
일요일이 초대교회 당시 복음전도 중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issue)가 되었어야 하는데 일요일 관한 얘기는 신약성경 어디에도 한 군데도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일요일 숭배는 카톨릭이 서기 300 년 초 이후로 도입한 바벨론 종교 교리이기 때문에 신약성경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기 321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 예배를 선포하지 전까지는 초대교회 기독교에 예배일이 토요일이다 일요일다 하는 논쟁이나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안식일은 당연히 토요일이니 십계명을 좇아서 토요일에 교인들이 모이고 예배드리고 성경말씀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였습니다.
신약성경은 요한 계시록이 서기 95년 경에 마지막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 서기 95년 이전에는 모든 초대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을 지켰으니 신약성경에 일요일 얘기가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요일은 그후 한참 세월이 지나서 태양신 숭배하는 이방종교자들에 의하여 서기 300 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기독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모든 초대교회 교인들이 안식일을 십계명으로 지키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지요.
그러니 사도행전에 일요일에 대한 issue가 기록되어 나올 수가 없지요.
(행18:11)에,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이 구절에서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매 안식일마다 1년 6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왜 1 년 6 개월의 긴 기간 동안 일요일이 아닌 안식일에 만 이방인들인 고린도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가르쳤느냐 하는 것입니다.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 한다면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복음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새 신자들인 헬라인에게도 바뀐 계명의 일요일에 대하여 알려주었어야 했지 않았느냐 그 말이지요.
또 반드시 일요일에 모여서 복음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행전에 안식일 토요일에 사람들이 모여서 복음 전도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으니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면 사람들이 일요일에 모였다는 기록도 반드시 사도행전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요일에 모여서 복음 전도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지요?
여러분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 보세요.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이 모든 사도들의 행적은 예수 승천하신 후 삽십 년이 훨씬 지난 후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요일이 예배 드리는 하나님의 성일이 아닌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 주 첫날 일요일에 부활하시었다 하여 일요일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또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지요?
예수께서 명하지도 않은 거짓 계명을 왜 그리스도인들이 지킵니까?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고 예수교는 부활의 종교이니 부활하신 날이 더 중요하니 네번째 계명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어서 예수 승천 후에는 일요일을 지켜야 한다” 라고 하는 유전 자체가 순전히 사람들이 만들은 유전 아니냐 그 말입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일요일이 성일이라는 것은 순전히 카톨릭이 만든 거짓말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일요일 아침 동틀 무렵 바울 일행이 10 시간 이상의 먼 거리를 도보로 여행하다.
(행20:7)에,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모이다.
이 구절에는 드로아 항구에서 안식일을 지키고 첫날 그러니까 해진 후 일요일 첫날인 토요일 밤에 떡을 떼려 즉 저녁식사를 하러 모여서 여러가지 강론을 할 때에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이층 창문에 걸터 앉았다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생깁니다.
토요일 밤이라 함은 하나님의 요일 계산법으로는 한 주가 시작하는 첫날 밤인데 인간의 요일 계산법으로 토요일 밤이 되겠습니다.
그 후로 일요일 아침 동이 틀 때에 (행20:13-14)에서 바울이 드로아에서 출발하여 도보로 걸어서 앗소까지 간 기록이 있습니다.
드로아 항구도시에서 앗소까지는 직선거리로 50 -60 KM 정도 되는 먼 거리입니다.
걸어서 약 10-15 시간 정도 지나야 도착하는 한나절을 꼬박 소비해야 하는 아주 먼 거리입니다.
바울의 다른 일행들은 아소가 드로아에서 너무 머니까 배를 타고 앗소로 이동을 하였는데 바울은 걸어서 앗소까지 갔으며 앗소에서 누가의 일행들과 합류하였습니다.
(행1:12)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안식일에는 걷는 것을 삼가하였는데 바울과 누가의 일행들은 일요일 아침에 여러 시간을 걷기도 하고 배를 타기도 하면서 15시간 정도의 장시간 도보여행을 한 기록이 뚜렷하게 나옵니다.
만일 일요일이 네번째 계명이라면 그들이 일요일 아침에 예배와 기도하지 아니하고 다른 날이 아닌 굳이 일요일에 한나절이 지나고 저녁이 되야 당도하는 거리를 도보로 장시간을 여행했겠는가?
오늘날에도 목사들이 일요일 아침에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교회에서 예배 인도하며 설교하지 않습니까?
어느 목사가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서 예배 인도하지 아니하고 10 시간 이상 소요되는 먼거리를 걸어서 장시간 여행을 하는 목사가 있습니까?
그것도 최고 우두머리급 거물 목사 여러 명이 걸어서 10 시간 이상 되는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합니까?
목사들이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일요일 아침에 설교 안하고 일요일 아침에 출발하여 밤중이나 되어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합니까?
여러분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바랍니다.
아래에 있는 링크와 Bing Map을 클릭하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드로아(Troy, Troas)에서 앗소(Behram, Assos) 까지의 거리 Bing Internet Search
Google Map / 앗소와 드로아의 거리
앗소와 드로아 지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송사할 때 안식일 범한 죄명은 전혀 없었다.
(행23:29)에,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행24:5-6)에,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아오니.
(행25:5)에,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행25:7)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행25:8, 10-11)에,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샤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이 구절들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유대인들이 복음전도 하는 바울을 잡아서 로마 총독들에게 고소할 때에 바울이나 다른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하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안식일을 폐하였다는 송사는 전혀 없었다는 것에주목을 해야합니다.
유대인들이 중요시 하는 계명 안식일을 바울이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범하였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부분에서 당시 초대교회 예배일은 안식일 즉 토요일이고 일요일에 교인들이 모이거나 예배를 드린 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이샤라에 있는 로마 총독부 감옥에 2년이나 갇히여 있으면서 (행24:27) 유대인들이 유대인의 율법에 대하여 온갖 거짓 고소를 다 하였는데 그 중에 안식일에 관한 고소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무어라고 자신있게 증언하였습니까?
바울은 어떠한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로마법을 범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선포하였지 않습니까?
그 바울의 증언에 반론하는 유대인이 있었습니까?
한명도 없었지요?
(행25:7)에, 유대인들이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이 구절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여러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했다고 했는데 그 송사 중에 안식일을 범하고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 드리고 복음을 가르쳤다는 송사가 있습니까?
만일에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이나 초대교인들이 안식일을 범하고 일요일에 모이고 성경을 가르쳤다 한다면 당시 유대인들이 바울을 로마총독에게 고소할 때에 제일 큰 고소거리이고 최고로 중대한 사건이 아니었겠습니까?
바울을 송사할 때에 가장 큰 죄목으로 지적이 되었어야 하는데 사도행전에 그러한 기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행 28:17)에서 바울은 또 한번 선포합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customs)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 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바 되었으니”
이 구절에서도 분명히 바울은 유대인의 규례를 전혀 범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명명백백하게 사도행전은 안식일에 관하여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바울에 대한 송사 사건은 예수 부활하신 다음 30년이 훨씬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부활하신 후 안식일은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교리가 진실이 될 수가 없겠지요?
이와 같이 안식일에 사도들과 교인들이 모여서 성경 강론하고 복음을 가르쳤다는 성경의 기록은 그 의미가 뚜렷하여 부인할 수 없는 여러 구절들이 있는데 반하여 일요일에 모여서 성경을 강론하고 복음을 가르쳤다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으나 일요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들고 나오는 구절들이 2-3 가지 있는데 그 구절들에 관하여는 이 장에서 집중적으로 토론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도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고 선행을 행하셨을 때에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예수님을 비난하였는데 만일 초대교인들이 예배일을 안식일에 하지 않고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가르쳤다 하면 그 문제가 얼마나 큰 issue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까요?
만일에 초대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이 안식일을 폐하고 일요일을 성일로 지켰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유대교 정통파 골수분자들이 많은 기독교 교인들을 살해하거나 방화하거나 하여 그 당시의 가장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역사에나 고대 인류역사에도 상당히 큰 사건으로 기록이 되어서 모든 현대인들이 다 알았을 것입니다.
신약성경 어디를 보아도 그러한 사건은 없었으며 초기 기독교사를 아무리 조사하고 연구하여도 그러한 사회적인 문제는 없었으며 네번째 계명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기록은 성경 안에나 밖에나 이 세상 아무데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일요일교회에서 주장하듯이 하나님이 네번째 계명을 일요일로 바꿨다고 한다면 반드시 신약성경 어느 한 곳이나 구절에 기록이 되어야 하고 또 네번째 계명은 일요일로 바뀌었으니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하고 말씀공부 하라고 반드시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것입니다.
또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교인들이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는 기록이 성경에 반드시 뚜렷하게 기록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만약에 하나님의 십계명이 바뀌었다면 예수께서 반드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었을 것이다.
(마15:6-13, 막7:7-13)에서 예수께서 다섯 번째 계명을 가지고 예를 들면서 사람들이 인간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법을 폐한다고 하여 불법을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섯번째 계명은 예를 하나 든 것 뿐이지 그 외에도 불법을 많이 행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불법을 행한 자들은 예수님이 (마7:23)에서 알지 못한다고 하시고 떠나가라 하셨습니다.
(마13:41-42)에서 불법을 행한 자들은 풀무불의 영벌에 (마25:46)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십계명이고 하나님의 법인데 불법을 행하느냐 아니냐 하는 우리의 영혼구원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는 계명 아닙니까?
만일에 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면하나님이 신약성경 안에 어느 한 구절에서라도 반드시 명령하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그러한 계명이 바뀐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고 또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성경 안이나 밖이나 세상 어느 곳에 12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이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 어디에 있냐는 말이지요.
사도행전에서 보면 앞에서 나열한 것처럼 여러 구절에서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이 안식일에 모여서 예배하고 성경 가르치고 하였지 성경 어디에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 드렸다는 구절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미쁘시다고 성경 여러 구절에서 (신7:9, 사49:7, 호11:12) 하나님 스스로 증거하셨습니다.
(암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십계명을 바꾸는 엄청난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12 사도들도 모르게 바꾸었다는 말입니까?
이러한 가정은 우리 크리스쳔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지키는 행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은 분이고 거짓말쟁이이고 이율배반한 신으로 규정하며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고 부인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잘 몰라서 개신교인들이 천주교가 그렇게 지켜왔으니까 개신교가 또 천주교를 따라서 루터 종교개혁 후로도 계속 그렇게 지켜온 1700년의 오랜 뿌리깊은 인간의 유전이니까 습관적으로 따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진실을 알았으니 천주교가 만든 사람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 무서운 죄를 더 이상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요일이 안식일이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성경구절들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인용하며 들고 나오는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 1
(행20:7)에,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이 구절을 가지고 떡을 떼다 하였으니 일요일에 모여서 성찬식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합니다.
(행20:11)에,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이 구절에서 “떡을 떼다”라는 것은 식사를 한다는 유대인들의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식사를 하다”는 의미입니다.
(행2:46)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 구절에서 보듯이 모이는 것은 성전에서 모이고, 떡을 떼다는 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위의 두 구절들을 보면 떡을 떼고 나서 말을 밤중까지 하는 중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틀에서 떨어져 죽은 다음 바울이 그 청년을 살려주고 나서 또 올라서 떡을 떼어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행27:33-35)에, 먹지 못하고 주린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떡을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이 구절들에서 보면 “떡을 떼다”는 의미가 배고플 때 밥먹는 것이라고 아주 뚜렷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식사한다는 구절 가지고 성만찬식 하였다고 억지로 우기고 있으며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으니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주장 자체가 억지가 아닙니까?
강론한다는 것은 성경강론일 수도 있고 다른 일반 세상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행20:11)에 오래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이 구절에서 보면 강론하였다는 것이 “이야기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확실하게 (행17:2)에서와 같이 성경강론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떠난다고 했으니 일요일 아침에 날이 밝은 때 떠난다는 것이지요?
(행20:11)에 오래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그런즉 일요일 아침에 떠났는데 일요일이 안식일이라면 사도바울이 떠났겠습니까?
지금 목사들이 일요일 아침에 도보로 15시간의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합니까 안 합니까?
안식일 외에 우리가 예배를 매일 드리면 더욱 좋은 것이고 성경강론도 매일 하면 더 좋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십계명에 하나님이 쉬라고 했으니 우리 육체가 쉬고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며 성경말씀 배우고 우리의 영의 눈을 밝히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안식일에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시었지요.
예수와 그 제자들이 유월절 전날 저녁만찬 식사하실 때에 한 것처럼 성찬식은 일년에 한번 유월전 전날에 유월절 저녁만찬을 먹을 때 한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말세지말에 사는 우리 개신교 교인들도 예수께서 성찬식을 하라고 명령하셨으니 일년에 한차례 유월절에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많이 열거한 구절들을 보면 안식일에 사도들이나 교인들이 모여서 떡을 떼는 의식이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지요.
(행1:1-2)에서 오순절에 12사도들과 120성도가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였을 때 떡을 떼는 성찬식이 있었습니까?
사도행전에서 많이 기록되 있는 사도들의 행적 중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성찬식이 한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성찬식이 예배의 핵심적인 예배의식과 내용이라면 사도들이나 초대교인들이 예배나 기도를 할 때나 복음 증거할 때 떡을 떼는 성찬식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없지요?
매번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하는 것은 카톨릭의 유전으로 영성체(communion)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해 있다고 하여 그 빵 한 조각 먹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교통한다고 합니다.
그 작고 둥근 빵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그같은 주장이 상식적으로 맞는 말입니까?
정말 웃기는 코미디입니다.
천주교에서 행하는 Eucharist는 Mithra교에서 태양신인 Mithra 신에게 충성서약을 하고 난 후 예배의식을 할 때에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던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던 태양신 종교의 유전이었습니다.
카톨릭에서 미사 때 먹는 전병은 옛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늘의 황후에게 바치던 과자입니다.
(렘7:18)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렘44:19)에, 여인들은 가로되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에게 경배하는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늘의 여신은 구약시대의 아세라 여신이고 신약시대에 카톨릭이 숭배하는 성모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부활절에 개신교인들이 지키는 Ishtar여신인데 바로 니므롯의 부인을 가르킵니다.
옛날 바벨론에서 사람들이 니므롯 부인을 숭배하던 관습에서 유래된 여신을 위하여 카톨릭이 도입한 영성체입니다.
카톨릭이 바벨론 종교의식을 기독교에 몰래 가지고 들어와 매번 예배 드릴 때마다 그 우상의 빵 조각을 교인들에게 먹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카톨릭의 미사 의식은 그 과자 한 조각 먹는 것에 제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카톨릭에서 시작한 바벨론 종교의식을 가지고 “떡을 떼었다고 하였으니”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 드렸다고 억지주장 하는 저 개신교 종교 지도자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왜 카톨릭의 유전을 가지고 개신교인들이 우기며 주장을 하는지?
그러니까 개신교는 카톨릭의 하수인이요 대변인인 것입니다.
(행20:7)이 성찬식을 행한 것이라면, 그러면 지금 개신교에서도 매 일요일마다 모일 때 성찬식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까짓 떡이나 떼어 먹으며 그 과자 한 조각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있다고 하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같은 미사 의식을 하는 행위에서 무슨 참다운 예배가 나오겠습니까?
예 2
(막3:27,28)에,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으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또 많은 일요일교회 사람들은 예수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했으니 안식일이 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했습니까?
아니지요, 잘 지키셨을 뿐만 아니라 말세 때에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했습니다 (마24:20).
예수 승천하신 후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 한다면 예수께서 말세 때에 도망하는 일이 일요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해야지 왜 안식일에 일어나지 말도록 기도하라고 하였습니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었으니 우리 성도들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시고 나서 제일 먼저 하신일이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하나님 자신이 처음부터 지키셨던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막1:21)에,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6:2)에,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눅4:16)에, 예수께서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4:31)에,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눅13:10)에,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이 구절들에서 보면 분명히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셨다고 하였습니다.
(마12:11-12)에, 안식일에 양 한마리가 구덩이에 빠지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12:5)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요7:23)에,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마12:7)에,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하나님이 우리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만 하시었지 안식일을 지키지 말라고 아니하셨습니다.
안식일이란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하여야 할 때는 하고 우리의 마음의 병을 고치고 영의 눈이 뜨는 날입니다.
안식일이란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시고 나서 7일 째 되는 날 본인 자신이 쉬시며 천지창조의 기념일로 정하면서 계명으로 우리 인생들에게 지키라고 명하신 날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하루 편하게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우리의 영은 성경말씀 배워서 새롭게 하며 우리의 마음의 병이 고침을 받고 옛사람은 죽고 영의 새사람이 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무엇을 하는 날입니까?
(행15:21)에,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For Moses has been preached in every city from the earliest times and is read in the synagogues on every Sabbath.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 말씀 공부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시었고 사도들도 안식일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 3
(마22:37-40)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들을 인용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이라고 했으니 안식일이 폐하였다고 억지주장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마19:17)에,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요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예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들이 말하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십계명이지요?
예 4
(롬14:5)에,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이 구절 가지고 또 많이 인용하며 안식일을 폐하였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 말하는 의미가 안식일이 폐하였다는 것입니까?
그러면 안식일이 폐하였으면 십계명도 폐하였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법은 십계명이 제일 큰 으뜸법인데 그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는 것이네요.
십계명이 폐하였다면 일요일에도 모일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전혀 앞뒤가 안 맞고 논리가 올바로 성립이 안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일 중 아무날이나 우리 맘대로 안식일을 정하여 지키면 되지 왜 하필 일요일입니까?
일년 중 어느 날이나 다 중요한 것으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 입니다. (살전4:16-18)
그러니까 이 구절의 의미는 예배 드리는 날은 날마다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고 억지춘향이도 이런 것이 또 있을 수 있는지.
왜 하나님이 명령하신 안식일을 놔두고 카톨릭이 가지고 들어온 태양신 숭배일을 그것도 성경적으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게 구태여 지키려 합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하루의 개념인 해질 때부터 그 다음날 해질 때까지가 아닌 사람이 만든 밤 12 시부터 그 다음 날 밤 12시까지를 지키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입니까?
하루의 기준도 불법으로 행하고들 있지 않습니까?
정말로 심판날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정죄받아 영원한 풀무불에 들어가고 싶어서 그리들 안달을 하는 것입니까?
예 5
(고전16:1-3)에,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교회 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많은 일요일 숭배자들이 이 구절들에서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라” 하였으니 매주 첫날, 일요일에 연보를 낸 것이니 일요일에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 드릴 때에 연보를 낸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연보라고 하였는데 그리스 원어나 영문 번역은 collection, gathering 라 하였고 그 의미가 거두는 것을 말하는데 “헌금이나 또는 기부한 모든 금액을 거두어 간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교인들이 모아 놓은 것을 거두다 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예루살렘 지방에 있는 교인들이 기근이 들어 생활이 궁핍하여 형편이 괜찮은 여러 타지방의 교인들이 기부금을 모아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갔었는데 바울이 권면하기를 주 첫날에 각 사람이 기부할 돈을 따로 저축하여 모아 놓으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각 사람마다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날 일요일에 기부할 돈을 따로 떼어서 저축하여 바울이 올 때까지 간수하였다가 바울이 오면 그 모아 놓았던 돈을 바울에게 다 주라고 한 뜻입니다.
그 고린도에 있는 복음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십일조를 바울이 왜 몽땅 걷어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갑니까?
그러면 고린도에 있는 교회는 어떻게 유지를 합니까?
엄밀히 그 문장의 뜻을 분석하면 예배 드릴 때 교회에 바치는 십일조와 일반헌금이 아니라 타 지방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도와주는 기부금을 (donation) 말합니다.
분명히 각자가 일요일에 그 수입대로 돈을 따로 떼어서 모아 놓으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일요일에 교회 가서 예배 드릴 때 십일조와 일반 헌금을 교회에 내지 않고 개개인마다 여러분 각자가 집에 따로 연보돈을 보관합니까?
십일조와 일반헌금은 그 지역 교회에서 시무하는 복음 사역자들의 생활비와 교회의 유지비를 담당하기 위하여 여러분이 속해있는 교회에 내는 것 아닙니까?
예배 드릴 때에 교회에 바치게 되어있지 그 헌금을 교회에 바치지 아니하고 여러분 각자가 개인적으로 각자의 집에 따로 보관합니까?
(고전16:1)을 자세히 보면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이라 했습니다.
그 연보가 성도들을 위하는 기부금인 것이지 교회 지도자들의 생활이나 교회 유지를 담당하는 연보가 아닌 것입니다.
(롬15:25-26)에,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후8:3-4)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고후8:20)에,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고후9:1-2)에,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이 구절에서 보니 바울이 아가야의 교인들이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기부금을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고 마게도니야에 사는 교인들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가 빚진 자들이니 그 빚을 갚기 위하여 십일조 바치는 것과 복음전도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의무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야하는 십일조를 일년 전부터 준비를 합니까?
사도바울같은 교회 지도자가 어떤 지방의 교인들이 십일조를 교회에 낸다고 다른 지방 교인들에게 자랑합니까?
(고후9:5)에,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 구절에서의 연보는 그리스 원어나 영역을 보면 선물(gift) 혹은 후한 기부로(bounty)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전 16 장과 고후 8-9 장에 나오는 연보는 한국어 성경에 번역이 잘못되었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고전16:1-3)에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라고만 하였지 모여서 성경말씀을 가르쳤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예배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장입니다.
예 6
(골2:16)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 구절은 일요일 숭배자들이 안식일이 폐하였다고 많이 인용하며 들고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는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날에 어떠한 종류의 음식이나 음료를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하여 폄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안식일이나 절기에 어떠한 종류의 음식을 먹든지 어떠한 종류의 음료를 마시든지 그 음식과 음료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이나 종교 절기에 아무 음식이나 음료를 우리가 원하는대로 아무 것이나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은 순전히 음식과 음료을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하여 바울이 말한 것이지 날(day)에 대하여 논란한 구절이 아닙니다.
예 7
(엡2:15)에,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 구절이 또 일요일 숭배자들에게 인용하기 좋은 구절이라 많이 인용하며 안식일이 폐하였다 합니다.
그러면 안식일이 폐하였다 하면 십계명도 폐하였다는 의미이고 십계명이 폐하였는데 일요일은 왜 지킬려고 고집을 합니까?
그러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법을 다 폐하였습니까?
아니지요, 신약에 와서도 십계명은 폐하지 않았지요?
이 구절에서 폐하였다는 율법은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이 행하였던 613조의 일반 율법을 말하는 것으로 소나 양같은 희생물로 제사를 드렸던 구약시대 유대인들의 율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해답이 히브리서 9장과 10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히9:3,7,12,24,25,28)에,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10:1,4,10,11,20 )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 니라.
예,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구약시대의 모든 짐승 희생의 제사를 폐하셨던 것입니다.
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안식일이 폐하였다는 것은 십계명을 폐하였다는 말과 같습니다.
십계명이 폐하였다면 일요일에는 왜 모여서 주일날이라고 하면서 성일로 지킵니까?
성경 어느 구절에 십계명이 폐하였다고 한 구절이 있습니까?
성경 어느 구절에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하였습니까?
성경 어느 구절에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라고 하였습니까?
(요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15:10)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고전7:19)에,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요일2:3-4)에,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5:2-3)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계12:1)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14:12)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예, 그렇습니다. 십계명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지금 말세지말 바로 이 시대를 무론하고 언제나 동일하고 세상 끝날 때까지 불변하는 것입니다.
(창1:3)에,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 구절에서 보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온 우주와 그안에 있는 모든 천하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시고 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기념일로,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라는 증표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날입니다.
(출16:23)에,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출16:29,30)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 육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 칠일 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제 칠일에 안식하니라.
(출20:8-11)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구절들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기 시점 이전에 이미 이스라엘 민족들이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이란 여호와의 안식일이고 거룩하고 복된 날입니다.
(출31:13)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겔20:12,20)에,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들의 표징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표징을 버리고 바알신의 표를(계16:2) 받으면 어떡합니까?
예 8
(계1:10)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의 주의 날이 일요일이라 합니다.
일요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으니 일요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성경 어느 구절에 주의 날이 일요일이라 하였습니까?
순전히 사람들이 임의대로 갖다 붙인 해석이지 일요일이 어떻게 주의 날입니까?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해석 아닙니까?
일요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일요일이 거룩한 날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성경 어디에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언급하였습니까?
성경 안에는 구약이나 신약이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날이라고 한 구절들은 (출20:10)의 여호와의 안식일과 (마12:8)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어떠한 특정한 날을 여호와의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다 라고 한 기록은 이것들 외에는 성경 안에 없습니다.
일요일이, 주 첫번째 날이 여호와나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지칭한 구절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일요일이 주의 날이라고 주장하는 자체가 성경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임으로 갖다 붙인 것입니다.
태양신 숭배하는 천주교가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어디 반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너무나도 명백한 진실이요 사실 아닙니까?
이 계시록의 구절을 가지고 일요일교회 사람들은 ‘주의 날’이 일요일이라고 주장을 하고 안식일교 사람들은 ‘주의 날’이 안식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둘다 다 틀렸습니다.
이 구절의 주의 날은 사도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바로 그 날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계시를 하시고 요한계시록을 쓰라고 명령한 날을 말합니다.
일요일 교회 사람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칭하는데 그 유래는 수천 년 전 옛 페르시아와 로마제국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던 Mithra교 숭배자들이 Mithra신에게 숭배하고 제사하는 일요일(Sun-day)을 자기네들의 신인 태양신 Mithra의 날이라고 ‘주의 날’이라고 부르던 태양신 종교의 오랜 유전입니다.
태양신 숭배하는 Mithra신 종교인 카톨릭교회에서 Mithra교 유전을 좆아서 일요일을 그들이 섬기는 태양신의 제사날이라고 하여 ‘주의 날’이라고 칭한 것을 천주교의 하수인들인 개신교 사람들이 천주교의 유전을 충성스럽게 지키느라 일요일(Sun-day)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니 참으로 슬프고도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종교개혁을 하고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개신교가 초대교회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는 명확하고 뚜렷하게 증명하는 성경 안에 쓰여진 많은 구절들과 정황을 다 무시하고 부정하며 지극히 모호하고 애매한 증명할 수 없는 구절 2-3 개를 가지고 4번 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태양신 숭배하는 이방종교 카톨릭의 유전을 지켜야 하는지 참으로 Mystery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유의 깊게 자세히 읽으면 초대교회 교인들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면서 예배 드리고 성경공부 하였던 아주 명확한 구절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구절들에 비하여 지극히 모호한 명확하지 않은 두세개 구절들을 가지고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 보고 성경공부 했으니 네번째 계명은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천주교와 개신교 교리를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조금만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와 연구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진실을 수십 억명의 사람들이 묻어버리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는 명백한 진리를 외면하고 성경에 전햐 근거가 없는 바벨론종교 태양신의숭배일을 고집하는 수십 억명 영혼들,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사람이 만든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지 사탄의 역사가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조화라고 밖에는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막7:6-9, 7:13).
사탄의 악한 역사로 수십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이란 함정에 빠져 멸망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관한 교리 한 가지로 그 많은 영혼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섭고도 경악할 현실입니다.
매주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불법을 행한 자들“이 되어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정죄를 받고 어두운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슬픈 종말을 맞는 불행한 영혼들이 되는 것입니다.
(약2:10-11)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십계명 중 하나를 범하면 십계명 전체를 다 범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4번째 계명인 안식을 범하면 십계명 모두를 다 범한자가 됩니다.
십계명 6, 7번 째의 살인하는 죄나 간음하는 죄와 똑같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십계명을 범하면 (마7:23)의 불법을 행한 자가 되어 (마13;41-42)에서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였습니다.
아래에는 일요일은 하나님 계명의 안식일이 아니다. 링크
그리스도의 안식일은 토요일인가, 일요일인가?일요일이 지켜지기까지의 역사
로마 미트라교(태양신 교)의 제일(祭日)이었던 일요일(Sunday)이 기독교에 유입된 역사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많은 이유는?
안식일-하나님의교회 말씀과 진리요일 제도의 기원과 안식일
안식일이 바뀐 경위 – 안식일 진리안식일은 토요일이다 – ::::::::: 은혜교회 :::::::::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사람들의 유전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막7:9)에서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마15:1-9)에서 십계명 중 다섯번째 계명을 예를 들어가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지 밝히 증거하셨습니다.
(마7:23)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13:41-42)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천주교가 만들어낸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네번째 계명을 폐하는 불법을 개신교인들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15:1-9)에서 사람을 유전을 지키려고 다섯번째 계명을 폐하는 불법행위와 똑같은 방식으로 네번째 계명을 어기는 불법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실 때에 네번째 계명을 토요일이라고만 하시었지 성경 어디에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하셨습니까?
성경 어느 곳에 신구약을 막론하고 네번째 계명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도들이 일요일을 네번째 계명으로 지키었다고 기록된 구절이나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기독교사를 깊히 연구한 분들은 일요일이 예수교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서기 321년에 로마황제 콘스탄틴의 일요일 휴업령에서부터 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사를 기록한 많은 문헌들이나 자료를 조사 연구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internet에도 많은 자료들이 있습니다.
필자가 20여 년 전부터 많은 역사적인 기록들과 자료들을 찾아서 조사하였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많은 수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internet에도 조사하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자료들이 있습니다.
그 internet 자료들이 다 정확하게 맞거나 옳은 것은 아니나 상당 부분이 진실이고 참고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site들이 무수히 있습니다.
전에는 일일이 큰 도서관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시간 투자와 노력을 했었는데 요즈음 인터넷 발달로 많은 자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 많은 internet site를 이 글과 같이 수록해 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칠일에는 쉬라 네소와 나귀가 쉴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출23:12).
예,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우리의 육체가 일주일에 한번 휴식을 취하면서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천지창조 후 제칠일에 쉬시었고 우리에게도 쉬라고 명령을 하시였으니 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지키었고 아담도 지키었고 에녹과 노아도 지키었던 하나님의 계명인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수천년 전부터 지켜오던 하나님의 법이고 세상 끝날까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법으로서 하늘나라 안에도 (계11:19) 법궤 안에 들어있는 십계명으로 세상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친히 지키셨고 초대교회 모든 사도들과 성도들이 지켰던 것입니다.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4:4,9,10).
이와 같이 안식일이란 하나님이 천지창조후 창조기념을 하고 거룩하게 하시었다 하였고 (창2:3) 또 세상심판 이후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가 지상에 있을 때에 나중에 있을 천국에서 영생복락의 영원한 안식을 매주 경험하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눅18:34)에,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눅19:42)에,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여러분들이 사도행전이나 신약성경을 많이 읽었는데 앞에서 인용한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이 안식일을 규례로 지키며 복음전도 하는 구절들도 많이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러한 구절들은 읽었으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며 그 구절들에서 안식일이 불변의 네번째 계명인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감추어 있고 말씀의 진리가 여러분의 눈에 숨기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겔 20: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겔20:20)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네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의 성도들 사이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표인 것입니다.
안식일에 관하여는 성경적으로나 기독교 역사학적으로나 조사 연구 해보지도 않은채 모든 기독교가 천주교나 개신교가 다 일요일을 지키니까, 교회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치니까 일요일은 하나님의 성일이라고 움직일 수 없는 요지부동의 교리로 유전으로 여러분들의 심령에 너무도 깊히 뿌리가 박히어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그 잘못된 생각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과 말씀으로 검증하지도 않은채 습관적으로 따라하는 개신교인들.
앞으로는 하나님이 권능의 사역자들을 세상에 보내어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단9:19) 하나님의 법을, 계명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자! 이와 같이 일요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키었다는 뚜렷하게 기록되 있는 구절들은 다 부정을 하며 그 뜻이 애매하고 합당하지 않는 구절들을 들추어 내서 일요일을 억지로 주장하는 행태가 많은 역사적인 증거들과 문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로 떼쓰며 우기는 일본사람들과 너무도 똑같습니다.
육이오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조잡하게 날조하여 우기는 북한 빨갱이들과 너무도 똑같습니다.
안식일이 폐해질 수 없는 이유
은혜 시대에 폐해져서 지킬 필요가 없는 율법은 모세의 율법입니다. 예를 들어 제사법, 각종절기, 결례법, 민법, 형법 등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율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완성하시고 폐하신 그림자요 모형인 것입니다(골2:14, 히9:10, 10:1).
그러나 십계명은 여전히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도덕법입니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전7:19, 참고 요일5:2-3).
바울 사도는 율법의 폐지를 가장 강력히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그리고 그의 서신을 살펴보면 그는 많은 반대와 핍박 속에서도 율법이 폐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계명은 지켜야 한다고 또한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십계명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율법은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지만 십계명은 여전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안식일의 계명이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이 바뀔 수 있다면 다른 계명도 바뀌거나 폐하여 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성경에서는 십계명 중 단 한 계명만 범한다 하더라도 모두 범한 것이 되므로 한 계명 한 계명 성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 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2:10-11).
그러므로 십계명은 한 계명이라도 결코 폐해질 수 없으며 성도가 지켜야 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바울 사도는 또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이곳에서의 율법은 십계명의 율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계명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던가 혹은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인간의 무능력 때문에 이를 다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속죄를 통하여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에 폐하여 진 것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율법은 성도들에게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마22:36-40), 선악을 알게 하여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도록 하실 목적으로 계속 유효한 것입니다(롬7:7). 다만 율법 아래서와 같이 구원의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행동의 기준과 상급의 기준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시대라고 해서 이 십계명 중 한 계명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굳게 세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철저히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계명을 폐하게 되면, 계명을 다 못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계명을 폐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결과가 오게 됩니다(계22:18-19).
폐하지 않고 굳게 세운 후 지키려고 노력하되 지키지 못한 부분은 십자가의 은혜로 회개하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에 십계명에 있는 안식일을 지킨다고 해서 결코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분명히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4:16).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행17:2).
이곳에서 볼 수 있듯이 너무도 명백히 예수님과 바울 사도가『자기의 규례대로』안식일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시대 초기부터 구원은 은혜로 얻되 구원의 유지는 모세 율법을 준수하고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최초의 기독교 이단입니다.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행15:1).
이에 대해 바울은 그들의 주장을 강력히 반박했으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도 회의를 통해서 모세 율법은 폐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행15:10-11).
율법 준수에 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바울 사도가 어찌하여 자기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켰겠습니까?
그들은 그 당시 일요일 준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오직 계명에 따라 안식일을 충실히 지켰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바울 사도의 충실한 동역자인 누가에 의해서 씌여진 것으로 당시에 십계명과 안식일의 준수가 철저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 재림 때까지 지켜져야 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0-21).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예언하시며, 동시에 말세에 있을 최후의 대환난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대환난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말세가 되기까지 안식일은 변함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어야 했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십계명의 안식일은 제7일에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주(週)의 첫날로 바꿔져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파에서는 십계명의 안식일을 폐하고 일요일을 안식일 대신 지키라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십계명을 폐한 책임을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폐한 죄도 엄청난 것인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앞장서서 안식일을 폐했다고 주장하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결코 안식일을 폐하려고 했거나 일요일을 주일로 정하여 지킬 것을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정신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표현인 십계명을 지키고 안식일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의 당연한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십계명을 굳게 세우고 힘써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라』(요일5:3).
제 칠일 예수 재림교회의 안식일 교회는 참교회인가?
그러면 많은 분들이 안식일교회가 (정식명칭-제칠일 예수 재림교회) 진리의 교회인가 라고 반문을 할 것입니다.
대답은 아주 명확하게 아닙니다.
안식일교회는 그들이 주장하는 안식일 하나만 옳은 진리이고 나머지는 너무나도 비성서적인 교리들을 주장합니다.
첫째, 저들은 지옥이 없다고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지옥에 대하여 기록이 되어 있는데 제일 부인할 수 없이 뚜렷한 곳이 (막9:47-49)에 있습니다, 두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
(마5:22)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18:9)의 지옥불, (마25:41)의 영영한 불, (마25:46)의 영벌, (마23:33)의 지옥의 판결, (막9:43)의 꺼지지 않는 지옥불을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을 다 부인합니다.
(눅12:5)에,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요5:29)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마43:41-42)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안식일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은 그 존재가 다 없어지고 사멸된다면 저들이 울며 이를 갊이 있겠습니까?
(눅16:20-31)에 나오는 거지와 나사로의 얘기는 어떻게 부정을 할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신 말씀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성경 어느 구절이나 어느 말씀보다 우선이 되야 하고 창조주 바로 그 분의 말씀입니다.
(요5:39)에서 모든 성경이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부정하면 그 종교는 이미 예수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사후에 지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수를 믿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살아 생전에 힘들게 하고 싶은 짓 못해가며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절제해가며 괴롭게 어렵게 생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싫컷 하고 싶은 짓 다 하다가 죽으면 그 뿐인데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왜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 하느냐”라고 물으면 하나님은 사랑의 신(神)이기 때문에 잔인하게 사람을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다 합니다.
세상에 이러한 그럴듯한 사람들의 생각과 논리로 성경과 전혀 상반(相反)되는 거짓말을 날조하여 여러분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안식일 교회가 여호와 증인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교파라고 말합니다.
안식일 교회 교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호와 증인 교파 교리와 거의 똑같습니다.
지옥이 없다는 “무지옥론“도 여호와 증인 교리에서 배운 것입니다.
다른 점은 안식일을 예배일로 지킨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예수님의 신격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교회 교인들이 들으면 원한을 살 얘기지만 안식일교회 창립자 (Founder) 엘렌 지 화이트 라는 여자는 악령이 그 안에서 역사하였던 사람입니다.
그 여자의 외모도 귀신들린 모습이였습니다.
그까짓 안식일 하나만 계명으로 지킨다 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종파 중에서 최고로 악한 종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안식일파의 안상홍의 “하나님 교회”입니다.
제칠일 예수 재림교에서 갈라져 나온 사교(Cult)인데,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키는 종교이며 안상홍이 천지를 청조하였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사악한 이단 종파입니다.
문선명의 통일교나 신천지의 이만희 보다도 더 사악한 종자들입니다.
그리고 장길자라는 한 여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있다.
천지창조를 하였다고 가르치는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장길자는 하나님의 아내 여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그 옛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렇게 끈질기게 섬기던 니므롯의 바알신을 남신으로 (male god) 숭배하고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를 아세라 여신으로(female god) 숭배하던 바벨론종교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재현한 코미디 같은 저질스러운 거짓 종교입니다.
코미디도 이런 저질 코미디가 없으며 “개그”도 이런 막장 개그가 또 세상 어디에 존재할까요?
인류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사악한 종교 사기집단 “일명 안상홍의 증인회(안증회)” (당당 뉴스) Web Link
아래에는 Ellen G. White에 관한 동영상
false prophet Ellen G White
토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교단들은 거의가 다 지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교단들이 영혼사멸을 주장할 때에 주로 들고 나오는 성경구절이 (말4:1)인데 그 구절의 의미가 지극히 애매모호합니다.
(말4:1)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이 구절의 의미는 악인은 그 영혼이 멸망한다는 비유의 표현인데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뜻이 분명한 지옥과 영벌에 관한 구절들은 다 부정하고 그 뜻이 지극히 애매한 구절 하나 가지고 지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지요?
사도들과 초대교회 교인들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분명한 구절들을 다 부정하고 그 뜻이 지극히 애매하고 합당하지 않는 구절들 몇개 가지고 일요일을 주장하는 카톨릭이나 그 하수인 개신교 일요일교회는 어떻습니까?
안식일 교인들하고 아주 비슷하지 않습니까?
둘다 다 억지를 쓰는 것이 코메디 아닙니까?
두번째 성령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도데체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으며 방언도 부정하는데 심지어 방언이란 개구리 귀신들이 아우성 치는 소리라고 합니다.
보혜사 성령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성령과 방언을 부정하며 모독하는 자들입니다.
안식일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로서 안식일만 잘 지키면 예수 잘 믿는줄 아는 맹물단지같은 사람들입니다.
안식일을 또 하나의 우상으로 섦기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만 잘 지키면 예수를 아주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안식일하면 제칠일 예수 재림교회를 떠올리는데 사실은 제칠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교단이 전 세계적으로 약 500개도 더 됩니다.
그 중에는 침례교 계통의 안식일 교회도 있고 하나님 성회 계통의 안식일 교회도 있으며 오순절 계통의 안식교도 있습니다.
내가 지난 20년 이상을 전 세계에 있는 안식일 교파들을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거의 모든 안식일 교파들이 안식일만 중요시 하며 강조하는데 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법은(롬3:27) 전혀 깜깜하기만 합니다.
그들 중 오순절 계통의 안식일교파들이 조금 나은 것 같으나, 성령과 방언을 중요시하며 가르치기는 하는데 성경의 감추어진 말씀비밀의 해석은 전혀 하나도 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자들도 역시 지옥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단순히 방언과 안식일에 관한 것은 맞는데 성경 안에 감추어진 중요한 성령의 법은 전혀 모르는 맹물단지들입니다.
거의 모든 안식일 교파들은 지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개중에는 참예수교회 라는 교파가 있는데 1917년에 중국에서 시작하여 여러나라로 전파가 되었고 한국에도 약 6000명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안식일, 성령, 방언등 진리의 기본지식에는 충실한데 감추어진 성경의 진리 비밀은 전혀 모르는 엉터리 교리들로 범벅이 되있습니다.
일반 일요일 교회들의 이론과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참예수교회 사이트 – weblink
수년전부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일이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란 것을 깨달은 여러 개신교 목사들이 펼치고 있는 하나님의 4번째 계명을 회복시키는 운동이 현재는 미미하지만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안에 감추어진 진리의 비밀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고 안식일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비진리의 맹물들입니다.
“진찾사” 라고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하는 단체인데 주로 제칠일 예수 재림교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모임인데 초대교회 사도들의 진리는 전혀 모르는 맹탕들끼리 모여서 진리를 찾는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겨우 안식일이란 진리 하나만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진리를 찾는다고 하니 정말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참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아마겟돈성경연구회권혁황목사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켜야 한다.
여러분, 이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를 믿으세요.
지나간 세월 누가 한 사람 가르쳐 주는 사람 하나 없고 온 기독교가 일요일을 지키니까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의 오래된 유전으로 덩달아 안식일을 범하고 계명을 범하였으나 이제는 알았으니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십시요.
그것도 성경상의 하루로 지켜야 합니다.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입니다.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키고 일요일에도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죄가 아니요 하나님도 좋아하십니다.
일요일 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매일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 드리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안식일은 하나님의 계명이니 반드시 지켜야 하고 우리 몸이 하루 휴식을 취하며 성경말씀 깨우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거룩하고 복된 날입니다.
사탄이 이 네번째 계명 하나 가지고도 거의 전 인류를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서 하루 바삐 능력있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출연하여 철장으로 사탄의 공중권세를 질그릇 부수듯이 부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부디 철장을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이 땅위에 회복시키는 복음의 사역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있을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십계명부터 회복하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제 8 장은 아래에 있는 링크에 있습니다. >>>>>>>>>>>>>>>>>>
제 8 장 우리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누구인가?
영적 거짓말 하는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무리이다 (Pharisees who tell spiritual lies are brood of vipers)

(전도서10:11)에, “방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무용하니라”
위의 구절이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는지 아십니까?
물론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그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알려고 하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뱀을 잡는 자를 한국에서는 땅군이라 하지요?
그 땅군이 실수나 혹은 뱀잡는 훈련이나 기술이 부족하여 뱀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독사에게 물려 죽으면 그 땅군의 구실과 임무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뱀은 그 영적의미가 무엇입니까?
거짓말로 하와와 아담을 속인자들이지요?
(마23:33)에서 예수님이 누구들을 가리켜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셨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였지요?
(마3:7)에서 세례요한도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러면 그 영적 뱀들은 그 당시에만 있었고 지금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께서 뱀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 무리들로서 그 당시에는 가장 성경에 능통하고 성경지식이 풍부한 자들이고 유대 율법과 관습에 정통하고 가장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며 또 일반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신앙의 교육자들이고 교회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그들을 뱀이라고 지칭하셨나요?
거짓말로 하와를 속인 것처럼 거짓 교리와 거짓 하나님 말씀으로 교인들을 속이기 때문에 뱀이라고 요한이 부른 것입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복음서 여러구절들에 나와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23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롬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여러분들은 바리새인들이야 2000년 전 예수님 당시 때의 사람들이라 생각하겠지요.
지금 우리 시대의 기독교 안에 무슨 바리새인이 있겠는가?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그 옛날 바리새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별 미친 헛소리를 다 한다고 할 것입니다.
당시 예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짓었던 그 바리새인들은 위선자들이고 교만한 자들이니까 요한이 책망한 것이지 우리시대 기독교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여러분들은 반드시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왜 당신은 뱀에 대하여 언급을 하며 위의 구절을 인용하는가?
그러면 그 뱀들은 누구를 가리키나?
그 이유를 말해보라 라고 역정을 낼 겁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경에 기록되 있는 전에 있었던 사건들이나 사실들은 후세에 반드시 영적으로 다른 형태나 모습으로 재현이 되고 또 이루어진다고 앞에서 여러번 언급하였지요?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구약시대에 있었던 모든 사건 하나하나가 다 후세에 와서 영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고 하였지요?
우리가 흔히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다 라고들 말하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도 그들이 그 바리새인들과 뱀들이 존재하는데 그 숫자와 힘이 어마어마하고 그 조직들 또한 거대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도 없는 거대한 난공불락의 바벨론성인 것입니다.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자가 여자의 후손인데 (창3:15)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요?
그 뱀들의 머리를 때려 부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맨손으로 때려 부술 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는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예수께서 직접 그 권능으로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수천 년 전에 솔로몬 선지자가 아직 하나님의 능력도 없고 아직 보내심을 입지도 못한 풋내기 내지는 돌팔이 복음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의 은사를 받기 전에는 경솔하게 나서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교훈으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한 교훈입니다.
아직 영적으로 믿음과 신격이 완성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은사도 받지 못했는데 괜히 어설프게 나서다가 뱀들에게 당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뱀들에게 물려 죽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보다도 더 무모한 짓일 것입니다.
우리가 철장이 (rod of iron, 철로 만든 지팡이) 있어야 그 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수가 있는데, (계2:26-27, 12:5, 시2:9)에 나오는 철장입니다.
이 철지팡이 없이는 저 많은 뱀들을 때려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옛날 모세가 출애굽 할 때에 전무후무한 기적들을 많이 행하였는데 그는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의 권능의 기적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때 사용했던 지팡이는(출 14:16, rod ) 나무로 만든 것이니 그 지팡이가 철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힘과 능력이란(단2:40)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하는데 (고전 12:10)에 있는 능력(miracle)을 행하는 은사를 말합니다.
즉 모세가 행하였던 이적기사,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은사입니다.
엄청난 숫자의 군인들과 무기로 무장한 바벨론의 군대, 바리새인의 군대
(나3:2-3)에 획획하는 채찍소리 굉굉하는 병거바퀴소리 뛰는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같은 창.
이 구절은 엄청난 숫자와 자금으로 조직되어 있는 앗시리아의 군대, 바벨론의 군대, 바로의 군대를 상징합니다.
마병대의 군대, 니므롯의 군대는 그 수자가 이만만이라 했습니다. (계9:6)
2 억명라는 뜻입니다.
2 라는 수자는 성경에서 대적을 의미하는 수자인데 10,000이 두번이나 붙었으니 완전 대적의 극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죽어서 악령들을 통솔하며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 니므롯과 니므롯의 군대를 말하는데 지상에서 니므롯의 하수인 노릇하는 바리새인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수십년 간 말과 언변으로 훈련하고 다지어진 저 말쟁이들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고 자기 자신의 불의와 싸워 이기는 자들에게는 모든 대적을 이기는 지혜와 언변을 주신다 했습니다.
(눅21:15)에,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mouth) 지혜를(wisdom)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언변과 이적의 능력으로 저 말쟁이들을 다 이길 수 있는 것이지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내심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2:4).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살전1:5).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4:19-20).
어느 누구도, (계2:26-27)에서 이기는 자는 철장을 부여받는다 했으니, 그 누구도 나도 또 여러분들 중의 그 누구도 한국사람이든지 혹 미국사람이든지 어느 민족의 사람이든지 그 철장을 부여받으면 그 무기는 수소폭탄이 되어 한방에 그 많은 마귀 군대 영적 빨갱이 군대를 다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철장으로 니므롯의 머리를 부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니므롯 군대와 싸우려면 니므롯 보다도 더 강하고 힘있는 하나님이 주신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철장입니다.
돈과 명예를 좋아하는 탐욕의 가증한 바리새인들
잔과(cup) 대접의(platter)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23:25)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눅11:39)
(눅16:14)에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막12:40)에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막12:40)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23:16).
삵군은 목자도 아니요 (요10:12).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15).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마3: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23:13,23:33).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눅11:52).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기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23:15).
바리새인들이 사방으로 휘젓고 다니며 교인수자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러한 바리새인들에게 걸린 교인들은 그 바리새인들 보다도 배나 지옥자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회칠한 무덤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눅6:14).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15:6).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15:9).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15: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니 (요10:1).
나보다 먼저 온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요10:8).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막7:9,마15:3).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단9:27)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24:15,16).
이 구절의 멸망의 가증한 것은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는데 바리새인들이 교회 강단위에서 중구난방으로 자기네가 만들은 사설을 지껄이는 것을 뜻합니다.
산으로 도망하라는 의미는 진리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의 교회로 도망가라는 뜻입니다.
얖장에서 성경에 산은 교회를 뜻한다고 하였지요?
(단9:27)과 (마24:15)에 나오는 미운 물건과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 동일한 존재를 말하는데 히브리, 헬라 원어나 영어성경을 보면 abomination of desolation 으로서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빈들이나 광야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즉 성령이 없는 가증한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그릇(대접)처럼 겉과 속이 달라서 겉은 깨끗해 보이는데 그 안은 모든 욕심과 위선과 교만과 불의로 가득차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오시기는 커녕 악령이 들어와 영적으로 온갖 악한 짓을 일삼으며 영적 거짓말과 비진리로 수많은 생명들을 지옥으로 보내며 돈은 돈대로 빼았으니 예수님이 강도의 소굴(마21:13)이라 하였고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대접재앙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했지요?
그 계시록의 대접재앙이 바로 바리새인의 재앙을 영적으로 계시한 것입니다.
진리의 올바른 영적해석을 하면 이와 같은 숨겨진 비밀이 나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롬2:22)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바리새인의 대표입니다.
(막12:4)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탐욕의 이리, (눅16:14) 돈을 좋아하는 늙은 뱀, 신자들의 영혼을 삼키는 용 느부갓네살 조용기.
요즈음 들어 특히 한국 개신교 목사들의 교회돈 횡령과 도적질 그리고 간음죄로 범벅이 된 추악한 죄악상이 자주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조용기 목사입니다.
신전(교회) 물건을 도둑질 하는 조용기 강추
어디 조용기 뿐입니까,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 거의 다 도둑들이지요.
고 한경직목사와 옥한음목사를 제외하고.
간혹 심령이 깨끗한 목사들도 있기는 합니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하나님의 말씀이 혼합된 개신교
우리가 흔히 목사들이 설교하는 것을 대언(代言, Prophesy) 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 사도들의 입에서 나온 말, 은사의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교인들에 전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성경에 있는 말씀에 위배되거나 성경에 없는 자기 스스로 심령에서 만들어 낸 엉터리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사45: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사59: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5:2),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마13: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행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엡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계1: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앞장에서 입은 문(door)을 영적으로 상징한다고 밝혔지요?
(겔13:3),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를 전해야지 이 사람 저 사람 제각각 중구난방으로 자기들의 심령에서 만들어 낸 사람의 소리로 떠들어 언어혼잡을 일으켜 바벨탑을 쌓으면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겔13:3)에 자기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렘23:30), 내 말로 도적질하는 선지자.
(렘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였도다.
(겔13:13),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
지금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누구인가?
여러분, 우리 시대에 바리새인들이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지칭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회칠한 무덤인데 그 속이 악하고 더러운 대접을 땅에 쏟으면 (계16:2) 대접재앙이 됩니다.
짐승의 표 받은 사람들을 독종재앙으로 (출9:10)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독사들이 나팔을 부니(계8:7)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져서 나팔재앙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그 우박재앙으로(출9:24) 수목의 삼분의 일을 태워 죽이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하기를 출애굽기의 열가지 재앙이 요한 계시록에 다 있다고 하였지요?
그 요한 계시록에 있는 모든 재앙들과 예언들은 다 지금 우리 시대에 바로 이 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하였지요?
땅이나 수목은 영적으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하였지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대접재앙과 나팔재앙을 거의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이 예수 재림 때 세상 심판 이후에 있을 재앙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들은 대접재앙과 나팔재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재앙들은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눈먼 장님들이라 하신 것입니다.
나팔 부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사58:1)에서 보면 목사들의 설교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제발 대접재앙과 나팔재앙으로, 독종재앙과 우박재앙으로 멸망하는 여러분들이 되지 말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눈이 열려서 그러한 악한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여서 그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배척하시고 태양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짐승의 표를 받지 마시길 바랍니다.
전에는 개신교 안에 숨어 들어와 있는 바벨론의 사탄의 교리들을 모르고 행하였으나 이 글에서 여러 가지가 밝히 들어났으니 이제는 카톨릭이 만든 모든 바벨론의 유전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그 귀신의 처소, 각종 더러운 영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인 모인 바벨론 성에서(계18:2) 나오세요.
그 귀신의 처소 바벨론 성에서 나온 여러분들을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로(슥3:10) 초대하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복음의 진리로 인치움 받아 영혼 구원 받고 영생의 복락을 누리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장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
제 9 장 –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회복
제 10 장 결론
결론 (Conclusion)
노아홍수와 바벨론탑 시기부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시대 까지 인류의 종교사를 전반적으로 역사적인 사실과 기록에 기반을 두고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노아홍수 이후 지나간 세월 4000여 년의 인류역사 속에서 사탄이 언제부터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의 역사를 시작였는지에 관하여 다루어 보았습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하나님 교회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기며 우상숭배를 하였는지도 탐구하여 보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와 바벨론종교 교리를 비교 연구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복음을 전반적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구절들을 짚어가며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인지 분별하여야 합니다.
하와와 같이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먹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분들이 나는 하나님의 지식을 알고 있다고 자부할 것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천국가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우리의 죄는 이미 사함을 받았으며, 만일 네가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요3:1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13).
위의 구절들과 같이 예수 믿는 것이 간단하고도 쉬운 것인데 무얼 그리 복잡하게 성경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졌다고 하고 니므롯, 태양신, 바벨론종교, 천주교, 뱀, 바리새인, 안식일, 하나님의 법, 성령의 법, 생명과와 선악과 등 장황하게 늘어놓았는가?
생전 듣어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엉뚱하고 이상한 소리만 진술하였는데 그러한 것들이 다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러한 것들은 다 당신이 지어낸 당신의 사설(私設) 아닌가, 궤변아닌가?
예, 당연하고도 당연한 반문이십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영혼을 쉽게 아무에게나 내어 맡기면 아니됩니다.
영혼은 불멸이라 우리의 육신이 죽은뒤 그 영혼의 세계는 영원하기 때문에 어떠한 교리가 진리인지 거짓인지 세밀이 따져서 분별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그 분별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첫째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안에 있는 내용을 어느정도 훤하게 알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사람의 영혼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하지 아니합니까?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부귀영화보다도 혈육보다도 사랑하는 연인보다도 더 귀하지 아니합니까?
우리는 이 귀중한 우리의 영혼을 우리 스스로가 노략질 하는 이리들로부터, 영혼 빼앗고 돈 뺏아가는 거짓 무리들로부터 여리고의 강도들로부터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16:26).
개신교 안에 들어와 있는 니므롯의 바벨론 종교 교리들
이 글의 제 1장에서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하는 때부터 현재 말세지말의 바로 지금 이 시간까지 사탄의 악령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며 바벨론 종교의 거짓복음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유혹하였는 것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그 죽은 니므롯과 그의 아내 붉은 빛 짐승을 탄 음녀가(계17:3) 죽어서도 구교와 신교 안에서 악한 역사를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악한 영들이 우상숭배로 온 인류를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태양신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 로마 카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개신교 안에도 니므롯을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의 교리와 유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구교인 천주교와 그의 자매 개신교의 영적 간음에 관하여 에스겔 23장 에 자세히 영적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오홀라는 로마 카톨릭을 가리키고 오홀리바는 개신교를 말합니다.
이제 이 타락하고 부패한 전세계 기독교를 제 2의 종교개혁으로 바로잡아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로 돌이켜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복음에서 변질된 뱀의 거짓말로 속이는 바리새인들에게 더이상 농락당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이 역사하신 참개혁이 아니라 사탄의 속임수였습니다.
사탄이 달의 여신 세미라미스의 교리와 토속신앙을 혼합하여 만들어낸 이슬람 종교처럼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태어난 개신교는 태양신의 교리와 하나님을 말씀을 섞어 혼합한 또 다른 바벨론 종교입니다.
천주교는 90%가 바벨론종교 교리이고 10%가 성경말씀인데 반하여 개신교는 10%가 바벨론교리이고 40%가 성경말씀이며 50%가 바리새인의 누룩인 혼합종교입니다.
천주교 = 바벨론 교리 90% + 성경말씀 10%.
개신교 = 바벨론 교리 10% + 성경말씀 40% + 바리새인 누룩 50%.
즉 바리새인 누룩이 반이상 섞인 섞은 잔인데 (계18:6)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와 바리새인 누룩과 음녀의 더러운 물이 섞인 선악과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는 반드시 정결하고 흠없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누룩이 반이요 태양신의 쑥물이 섞인 악하고 더러운 제물을 드리면 하나님이 열납을 하시겠습니까?
바리새인의 누룩은 무엇을 말합니까?
거짓 목자들이 강대상에서 자기 생각대로 제멋대로 하나님 말씀을 바벨론 상품과 자기 사설(私設)과 섞어서 반죽하여 멋있고 설득력 있는 상품으로 포장하여 뱀의 선악과를 만들어 중구남방으로 떠들어대는 사람의 소리 아닙니까?
바벨론 상품을 사고팔고 하니 성경에 그곳을 장사하는 땅이라 하였고 바벨론성이라 한 것입니다 (겔16:29, 17:4).
어떻게 보면 바벨론 교리보다 더 더럽고 악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또 어떤 분들은 천주교는 바벨론 교리가 90% 인데 개신교는 10% 밖에 안되니 개신교가 천주교보다는 좀 낫지 않겠느냐 라고 할 것입니다.
예,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누룩이 반 이상을 차지하니 전혀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훤하게 알 때까지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목사들이 하는 설교들을 잘 분별하여서 그 중에서 성경적으로 맞는 말과 그리스도의 진리는 마음으로 취(取)하시고 비성경적인 내용의 말과 바리새인의 누룩과 바벨론종교 교리는 다 골라내어 배척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있을 종교개혁은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기 688년 경에 지상에서 소멸하였던 초대교회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개신교의 뿌리인 천주교에서 물려받은 바벨론종교 교리를 우리는 이제 밝히 알고 깨달아서 그 모든 이방종교의 교리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모든 바벨론 종교의 교리와 이론과 유전에서 완전히 단절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앙과 말씀의 뿌리를 바벨론 종교 카톨릭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말씀의 내용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직접 가르치고 훈련하신 12 사도들이 성경에 기록한 초대교회 복음을 우리는 밝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보혜사 성령시대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법이 무엇인지 알아서 성령의 법대로 올바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였고 (롬8:9) 예수를 주라 부를 수 없다 하였습니다 (고전12:3).
여러분 모두가 초대교회 복음의 참 진리를 깨달아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복음의 진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성령의 법을 따라서 올바른 신앙으로 승리하고 구원 받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
태초에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였을까요?
널리 알려진 바와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였지요?
이 백성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라 (사43:21).
새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시40:3).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양할때는 수금과 비파로 찬양을 하였는데 신약시대에는 무엇으로 우리가 찬양을 해야 하는지 알아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새 노래인(계14:3) 하늘나라의 언어로 성령의 영기도로 찬양하십시요.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로(계15:3)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바알에게 무릅꿇지 않은 7000 인과 남은 자들
(롬9:15,17,18)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율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느니라.
(출33:19)에,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롬9:27)에,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
(사10:20-22)에,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 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롬11:4,5)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부디 여러분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인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자가 되어 구원을 받는 복있는 천국백성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글로서 남기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읽게 허락이 아니되어 있습니다.
제물은 반드시 그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먹게 되어 있습니다 (고전10:18).
믿음은 들으면서 나나니 (롬10:17).
반드시 말로 설교하고 듣는 자가 귀로 듣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원칙을 어기어 가며 이 글을 쓴 나에게 하나님의 책망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 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 (시90:4-12).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1:24,25).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6,17).
예,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덧없는 것이니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영생의 복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다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도복음 선교회
강 마이크 선교사 2012년 2월
이 사도복음 선교교회 글은 2012년 2월에 쓰였으며 그후로 글 내용을 조금 보완하였고 일부 수정하였음.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됨을 우리가 알리라 (사41:21,22)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찿으리라 (전11:1). 아멘
(전11:1)해석 – 너는 네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라 그러면 세월이 흐른 후에 그 말씀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리라.
이 글과 함께 참고가 되는 여러 개의 internet site 들을 blogroll 안에 수록하여 놓았으니 찾아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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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DEEP STATE – 카자르 유태인
사도복음의 진리를 전파하는 전세계 유일한 참목자가 한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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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사도 – 황익성 목사 (용인 엘림 생수 교회) Weblink
현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도복음’ 진리를 전파하는 진리의 사도, 용인 엘림생수 교회 황익성 목사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면서
올해는 종교개혁 500 주년의 해이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바벨론종교 카톨릭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성경에 쓰여 있는 초대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돌아가자고 생겨난 개신교(Protestantism, Reformed Church).
과연 그 종교개혁은 성공하였는가?
잘못된 카톨릭의 기독교 교리를 성경의 진리로 돌이켰는가?
마틴루터를 위시한 여러 성직자들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하나님의 역사였는가?
중세의 가증한 카톨릭보다 더 타락하고 부패한 현재의 개신교.
요즈음 많은 사회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지각이 있고 양심 있는 많은 종교단체에서 말하기를 특히 한국 개신교는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언론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사회적 이슈이다.
많은 일반인들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그러한 거짓교회를 강도의 굴혈이라고 말씀하시었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바벨론의 영적 거짓말로 영혼 빼앗고 돈 뺏어가니 강도들의 소굴이라 지칭하셨지 않나.
기독교사 2000년 동안 하나님에 의한 참역사의 종교개혁은 아직 일어난 적이 없다.
이제는 참종교개혁이 일어날 시기가 무르익었다.
엘리야의 3년반 기근이 서기 1900년 전후로 끝나면서 늦은비 봄비의 성령의 역사가 이 지구위에 내리고 있다.
1900년 이후로 1260년의 가뭄이 가시고 난 지금은 봄비의 아주 미약한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해갈은 되고 있지 않다.
어서 이 땅위에 진리의 말씀이, 성령의 소낙비가, 장마비가 내리기를 간구하며 기도하자. (슥10:1, 겔34:26)
(슥10:1)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겔34:26)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신32: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
(계11: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암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60년 동안 이 지구상에 성령의 진리 말씀의 비가 내리지 않았던 영적 기근이 있었다.
서기 640년 – 서기 1900년. 엘리아의 3년반 기근.
(계11:1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계11:6)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바알신을 숭배하는 바벨론종교가 사탄이 행한 악의 역사가 1260년간 지구위에 하나님 말씀의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였다.
성경의 하루는 영적으로 1년.
어찌 금이 그 빛을 잃었는가?
아! 슬프다. 떨어진 샛별이여.
늦은비 봄비 후천년왕국 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렵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지식의 은사자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실패한 선지자가 되었는가?
어찌하여 범죄하고 하나님이 주신 크신 주의 능력을 땅에 쏟아 버리고 하나님의
인류 구원 역사를 오랜 세월 수십년을 뒤로 후퇴하게 하였는가.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성읍에 있는 자들은 칼과 기근과 염병에 삼키우고 남은자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구나.
예수님, 老종(the late old servant) 노관영 목사가 못다한 꿈을 내가 이루게 하소서.
나는 사울왕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버림 받는 실패한 복음사역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다윗왕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게 하소서.
실패한 노종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시고 엘리야와 모세처럼 영원히 성공하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나를 보내시고 모세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소서.
내가 전심전력으로 노력하겠나이다.
이 타락하고 변질된 기독교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진리로 종교개혁을 하게 하소서.
저 귀신의 처소 바벨론성을 멸하시고 태양신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 말씀의 진리를 이 지구위에 회복하게 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어 주소서.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애 5: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열조와 조상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이제는 노종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그 진노와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노종이 세상을 떠난지가 30년이 지났나이다.
우리 후손들에게 긍훌을 베풀어 주시어 영육간에 형통함을 주시옵소서.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리스도의 진리로 인도하게 하소서.
아멘.
이사야를 보내셨던 하나님 나를 보내소서.
바벨론신, 바알신 우상 숭배하는 저 완악하고 패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깨우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나에게 모세의 능력을 입히우소서.
아멘
어서 이 궁핍과 비천에서 나를 건져 내시고 길을 열어 주소서.
아멘

아래는 타락한 개신교에 관한 링크
한국 교회,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 :: 물병자리 시대의 여명
“개신교 역사상 한국 교회 가장 타락”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F.G. : (뉴스) “개신교 역사상 한국 교회 가장 타락”
아래는 제 2의 종교개혁에 관한 링크







위의 사진은 장길자와 안상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