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복음 선교회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 복음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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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교회 지도자들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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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 (the Task that Church Leaders must do)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온 기독교계가 영적 우상숭배로 그 교리들이 변질되고 부패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밝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거짓 교회들 가운데서 진리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이 말세지말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자들이 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을 교인들에게 전하는 것이 교회 지도자들의 사명입니다.

목사들의 설교란 신약시대의 성령의 법(롬8:2), 믿음의 법(롬3:27)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서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교회 목사들의 설교는 그 내용을 사람이 제 임의대로 이것 저것 사람의 교훈과 교리로 만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법(롬3:27)대로 성령의 법(롬8:2)에 맞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그 설교자들에게  직접 그 설교할 말을 가르쳐 준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10:19,20).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눅12:12).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막13:11).

너희에게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눅21:14-15).

 

목사들이 설교할 때에 성경 한두 구절 읽어 놓고는 그 목사 자신의 해석으로 또 자기가 신학교에서 배운 사람의 학문인 신학자들의 조직신학과  여러가지 인간의 지식으로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 한 두 구절 읽어놓고는  자기가 만들은  맨 사람의 소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뒤범벅으로 섞어 만들어  자기 사설(私說)들이나  늘어놓지 않습니까?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설교집에서 조금,  어느 유명한 부흥강사가 목사가 한 설교 중에서 인용하여서 조금,  또 전에 자기가 느끼고 경험하였던 설교 내용에 적합하고 그럴듯한 예화 조금,  어느 소설책에서 철학책에서 위인전에서 석학책에서 조금,  또 자기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교훈 조금,  여기서 저기서 조금씩 얻어다가 짜집기하여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럴듯하게 멋있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만들어 교훈이 되고 은혜가 되고 감동을 주는  설교(제물)를 하지 않습니까?

 

네, 그러다 보면 많은 분들은 그런 설교이면 훌륭한 설교 아닌가?

그러한 것이 설교 아닌가 라고 할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은혜가 되며 하나님을 믿어야겠다는 생각과 동기를 부여하는 설교는 훌륭한 설교 아닌가?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고 선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설교나 도덕적인 가르침은 인간의 철학에도 있고  다른 종교들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고 불교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러한  신앙의 동기부여나 교훈이나 도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설교 안에 있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과 법과  일치하여야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

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

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 (사28:10, 13).

 

어떤 이들은 설교 듣는 교인들이 지루할까봐 양념으로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와 comic 한 말들을 섞어서 교인들을 웃겨가며 하기도 합니다.

그중 어떤 사람은 전문적으로 코메디 부흥설교를 하여 인기가 아주 좋아 돈도 많이 번 사람들이 있지요?

이미 고인이 되신 신영균목사가 대표적인 인물이였지요?

또 많은 부흥사들이 그 목사를 흉내내며 개그맨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장경동 목사 같은 저질 개그맨 목사들도 있습니다.

좀 특색있게 해볼려고 저질스러운 코메디와 익살을 섞어가며 재미있게 설교를 하여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밥벌이 내지는 돈벌이 하는 추악한 목사들도 있습니다.

 

성경구절은 하나님의 소리인데 설교는 진리와 비진리가 섞인 맨 사람의 소리로 뒤범벅하여 비빔밥처럼 이것 저것 막 섞어서 섞은잔을(계18:6) 만들어 저도 먹고 듣는 사람들에게도 먹게 하여 서로 멸망의 풀무불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럴듯한 사람의 소리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저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23:13).

어떤 유명한 철학자는 이렇게 얘기하고,  어떤 석학자는 저렇게 얘기하고,   역대 유명한 장군들 역사가 과학자 정치가들은 이렇게 저렇게 교훈과 명언들을 남기었는데  우리가 그 교훈과 명언들을 본받아야 하고,   웃으면 건강해지고 오래 살며 화를 내면 건강에 해롭고,   예수 잘 믿으면 영육간에 축복 받아 몸 건강하며 돈 많이 벌고 사업 잘 되고 자식들 공부 잘하여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등등…

매주 금, 토요일만 되면 새롭게 이야기를 꾸미고 만들어 그 설교 내용 준비하느라 하루 종일 머리 싸매가며 이 책 뒤지고 저 책 뒤지고 이 사람 저 사람, 이 목사 저 부흥강사, 이 신학자 저 신학자가 한 말들을 찾아서 인용하여 설교 내용을 엮어서 만듭니다.

또 자기 머리 속에서 성경적이고 교훈이 될만한 성경구절들과 그 해석을 저 나름대로 찾아내서 매끄럽고도 설득력 있게  엮어서 여러가지로 설교내용을 설교시간에 유창하게 열변하려고 꾸며서 만들어야  하니 피곤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합니다.

또 어떤 머리 좋고 유능한  말 잘 하는 말쟁이 목사들은 설교 준비 없이 그 즉석에서 자기 말로 거침없이 사설(私說)을 늘어놓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들은 성경에 쓰여 있는 내용을 저 자신들이 각색을 해서 드라마를 연출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브라함은 비겁한 거짓말쟁이인데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애굽에 있는 물자와 재산이 탐이나 애굽으로 건너갔으며 죽을까봐 두려워 아내인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속여 애굽왕 바로에게 보내어 많은 물자와 재산을 받아 마누라를 팔아먹은 사람이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 똑같은 성경구절 하나 읽어 놓고는 각 교파마다 각 교단마다 각 목사마다 성경해석이 다 다르고  제각각이니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거리가 되는 설교와 해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교파 신학교에서 수학하고 같은 조직신학과 교리를 배운 목사들이 설교시간에 똑같은 성경구절 읽어 놓고는 해석과 가르침은 다르게 제멋대로 제심령에서 나오는 설교를 지껄이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의 떡을 사람의 누룩으로 반죽하여 무지(無知)한 양들에게 공급을 하니 그 쑥물을 (계8:11) 먹은 영혼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혼돈이요 언어혼잡(청11:9)이요 바벨론성(계18:2-4)것입니다.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사56:10,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였도다 (렘14:14).

내 말로 도적질하는 선지자 (렘23:30).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니라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겔13:2-7).

그 제사장은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렵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별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겔22:2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15).

이러한 예언들은 구약 당시의 바알신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지금 우리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 당연합니다.

반문하시고 납득할 수가 없다고들 생각하시지요?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겔13:19).

교회목사들이 설교시간에 예배헌금 몇푼 받아낼려고  영적 거짓말을 지어내서 교인들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저 많은 교파들을 보십시요

저마다 제각각 교리가 다 틀리고 같은 교파 안에서도 그 설교하는 목사들마다 똑같은 성경 한 구절 읽어 놓고는 해석은 제멋대로 제마음대로 기독교를 혼돈 속에 빠뜨리고 언어혼잡을 일으키어 바벨론탑을 쌓고 있습니다.

뭐 요한 계시록도 해석하는 것이 이 사람 틀리고 저 사람 다 틀리지요?

성령은 이것이라 하고 저것이라 하고.

복음성가 많이 부르면 성령 충만해진다 하고 방언은 은사의 일종이다 하는 자들도 있고.

어떤 자들은 특히 장로교에서 방언이란 초대교회 때에는 있었는데 지금 시대에는 폐하였다 하고.

심지어 안식일 교파에서는 방언은 개구리 귀신이 떠드는 소리라고 하기까지도 하며.

어떤 순복음교회 목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언소리를 흉내내라고 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순복음 교파에서는 예수 믿으면 건강해지고 물질축복 받아 부자 된다고 하여 예수 믿는 것을 물질축복에 목적을 두고 촛점을 맞추어 기복신앙으로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어 신자들의 돈을 후리어내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들의 생태를 잘 보십시요.

교회와 교회끼리 교파를 막론하고 서로 사업상 경쟁관계에 있으며,  원로목사나 담임목사들은 각 교회마다 절대적인 권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어느 큰 교회들은 왕권과 같은 힘으로 북한의 김일성처럼 세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이루어낸 교회는 자기 개인 재산처럼 운영하며 그 안에서의 각종 금전적인 비리와 여자들과의 스캔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십니까?

추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저 옛날 중세의 카톨릭 교회보다도 영적으로 더 부패하고 타락하였습니다.

교회의 규모가 클수록 그러한 악한 현상이 더 심한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요즈음 한국 교회들에서 많은 추악한 스캔들이 터져나오고. 있지요?

언론에도 자주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잘못 가르치고 설교하는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와  교훈들

현재 목사들이 흔히 가르치고 설교하는 내용 중 잘못된 교리와 성경해석을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믿기로 결심하면 그 즉시로 우리 영혼은 구원을 받았고 성령이 그 즉시로 그 사람에게 임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오늘밤 자다가 죽어도 천국 가고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죽어도 그 즉시 천국 간다고 Billy Graham이 주장하였는데 많은 목사들이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아브라함과 야곱은 거짓말쟁이고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하고.

어떤 가증한 목사들은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모세도 구원 못 받고 지옥 갔다고 떠드는 자들도 있습니다.

요 얼마전 한국 감리교 신학대학 총장처럼 구원은 기독교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다 있다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조용기는 얼마전에 불교모임에 가서 불교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 라고 강연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가증하고 사악한 거짓 목자입니까?

탐욕에 취하여 발람의 술사가 되어 신자들의 영혼과 돈을 후리어내는 용 느브갓네살, 조용기.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미국 하나님성회의 교파에선 우리가 예수 믿기로 한번 결심만 하면 천국 가는 Ticket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고 그 Ticket 안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어 건강 물질축복 등 온갖 축복이 다 있어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 주시며 우리가 죽으면 천국 간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들은 어느 누구나 기독교 복음의 빛을 한번 비추임을 받고 복음이 그 사람에게 전도되기만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 사람이 예수 믿으면서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타락을 하여도 다 용서하시고 죽기 1 초 전에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돌이켜 회개시키어 천국으로 데려간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2000년 전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가 예수 믿고 난 후에 짓는 미래의 죄도 당겨서 이미 다 사해 놓았다고 가르치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칼빈의 예정론이 그렇게 주장을 하지요?

특히 장로교에서 그렇게 주장하지요?

듣는 사람들의 입맛에 꼭 맞는 소리만 마음에 너무 와닿는 소리만 하는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듣기에 좋은 소리입니까?

얼마나 우리에게 가슴 벅차게 감동을 주는 교리입니까?

평일날에는 하고 싶은 짓 다 하고 일요일에 교회 나가서 예배 한 번 보고 기도 한 번 하면 예수께서 다 사해주시는데,  사랑이 차고 넘치는 종교 아닙니까?

그러한 조직신학이  우리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  선민의식을 느끼게 하여  감사와 찬송이 우리 마음에서 절로 나오게 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비성서적이고 성경의 내용과 반대되는 비진리의 거짓말을 한도 없이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도 없이 이 사람 저 목사 저 교파 이 교파 이 신학자 저 신학자마다 성경해석이 제각각이고, 그러한 양상을 지적하면 해석과 교리는 다 틀려고 한 하나님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섦기는 것이니 믿는 교리가 좀 틀리다 해도 한 예수를 믿으니 천국은 간다 라고들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방만한 해석이 더 발전이 되면 자유신학이라고 하여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는 헛소리로 말씀의 진리(truth)를 왜곡하여 심지어는 우주와 천지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저절로 (누가 만든것이 아닌) 생겨나 있었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천주교도 같은 하나님 믿는 교이니 거기에도 구원이 있다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은 예수재림 이후에 백보좌 심판이 있고나서 천년 동안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자들을 위하여 정해진 무서운 고통의 세월이다.

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혼잡한 것입니다.

 

거기가 바로 바벨론성(계17:5)이요 애굽이라고도 하고 소돔이라고도 하는 곳입니다.

뭐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정도로 천태만상으로 엉망진창입니다.

정말 속된 말로  “개판 오분 전 입니다”.

 

그러한 바벨론 상품을 우매한 신자들에게 팔아서 엄청난 치부를 하고 큰 교회 목사들은 돈방석,  금방석에 앉아서 호의호식 하고 있습니다.

발람의 술사들이 되어서 사악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들의 잘못된 가르침들 중 예를 한가지 더 들어보겠습니다.

요즈음 한국에 여러 유명한 목사들이 공공연히 자기네들이 죽으면 장례를 매장(埋葬)으로 아니하고 화장(火葬)으로 할 것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들 중  대표적으로 유명한 목사 곽선희 목사가 있습니다.

이유는 한국국토가 협소하니 국가시책에 협조하는 의미라 하고 또 화장을 하면 썩을 육신이 타서 이 세상에서 없어지니 깨끗하다고들 합니다.

또 교인들에게도 화장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예수 믿는 성도들이 매장을 해야 합니까 화장을 해야 합니까?

여러분들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매장을 해야 한다고요 아니면 화장을 해야 한다고요 아무 것이나 상관없다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예수만 잘 믿으면 된다?

과연 화장하는 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까?

 

소위 목사라 하는 자들이 신학대학에서 수년 간 신학공부도 하고 평신도들 보다는 성경책도 많이 읽었을 것이고 목회생활 하며 두루 주워들은 것도 많이 있을 터인데 성경적으로 한없이 무식한 생각과 행동을 하며 교인들에게도 가르치니 참 가증하고 또 어처구니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 신구약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성경 어느 곳에 어느 구절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화장을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화장하였습니까?

화장이란 인도문화에서 불교문화에서 행하는 가증한 행위인데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절대로 하면 아니되는 행위입니다.

몰렉에게 시신을 내어주는 바알신 숭배자들이 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이방인들의 의식입니다.

 

도대체 성경을 내용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 기독교 안에서 화장을 하라고 교인들에게 목사들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  정말로 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까 아니면 바알신(Baal)의 교회입니까?

이와 같은 성경적으로 가증한 의식과 행위를 저 목사들이 저지르고들 있습니다.

도대체 성경지식의 기본이 전혀 안되있고 성경적으로 무식(無識)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창3:19)에,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으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와 같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육신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라고 분명히 말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며 흙이 아닌 불타버린 연기로 여러분들의 분신이 한줌의 재로 없어진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천사들이 구름 위에서 나팔 불 때에 천사들이 구원 받고 잠자는 성도들의 이름을 부를 때에 당신의 이름이 불리워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어기고 저희들 스스로 암몬과 모압족속들이 행하는 가증한 행위를 저지르며 몰렉에게 자기 영혼을 바치는 가증한 자들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화장을 하였습니까?

예수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그 어느누구도 이스라엘 민족 모두가 다 매장을 하였습니다.

(고전15:51-53)에, 너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시간에 홀현이 다 변화하리니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입겠고.

(살전5:23)에, 너희의 영과 혼과 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4:16-17)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리니.

 

(신29:4)에,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사42:19)에, 소경이 누구냐 내종(거짓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사56:10)에,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그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소경이고  2000년 전에 예수님이 꾸짓으셨던 뱀, 독사들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하는 기도와 사명

(삼상12:23)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겔4:4-6)에,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 구십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이와 같이 교회 지도자들이란 때로는 교인들이 진 죄를 담당하기도 하고 교인들을 위하여 밤낮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간에 보면 목사들이 맛있는 음식이나 좇아다니며 먹는 것이나 밝히고 쓸데없이 교회예산 낭비하며 세계여행이나 다니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golf를 수시로 치러다니는 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골프 끝나고 나서 저희들끼리 회식하면서 몰래 술판을 벌리는 목사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다 삵군 목자들이고  바리새인들입니다.

중들이 가발 쓰고 룸싸롱 다니는 것과 같지요.

명진 스님도 몇년 전에 룸싸롱 갔던 것 언론에 여러번 보도되었었지요?

 

그러한 자들이 바로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저희보다 배가 더 지옥의 자식이 되게하는 자들입니다.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저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못가게 합니다.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마23:16)

탐욕의 땡초들이 염불에는 관심없고 제밥에만 눈이 쏠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7)

그들 안에는 온갖 탐심과 음욕으로 가득찬 자들입니다.

 

목사들이란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7).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히 1:2-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4 )

나를 보는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 12:46).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9).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아담을 부르시고(창 3:9) 범죄하고 회개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어(창 3:21) 그 멸망할 영혼들을 구원 하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마므리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창 18:1-2) 이시고.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 인에게 보이신 하나님(출 24:9-11).

그 구약의 하나님이 바로 세상에 탄생하시기 전 예수입니다.

 

(요1:18,  요일4:12)에서는 하나님은 본 사람도 없고 사람이 볼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구약성경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진 하나님이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유일신의 종교이지 하나님 아버지 신이  따로 있고 예수의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합니다 (출3:13-14).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가 아니라 예수입니다.

(요5:43)에,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요17:11-12)에,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정한 이름을 아는 것도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도 예수 이름을 부르며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도 예수 이름을 부르며 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를 부르며 백날 기도하여야 그 기도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예수께 상달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란 어떠한 절대적인 존재 이 세상 인간사의 모든 것과  천지의 자연법칙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힘(Power)을 가진 존재를 가르키는 것으로 한국어의 “하나님”이란 단어 자체가 옛 우리말 “하느님”에서 온 것으로 소위 천지신명이란 개념에서 온 것이지요.

그리하여 각 민족마다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 지칭하였던 강력한 힘을 갖인 초자연적인 존재를 가르켜 하나님이라고 칭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름과 단어는 각각 다르나 그 개념은 거의 동일하였습니다. 다신교 사회나  유일신교 사회나 마찬가지로  신(神)이란 영어에서는 god, 라틴어 계통은 dios, 아랍족들은 allah, 옛날 구약시대의 중동지방의 민족들은 주로 그 하나님이 발신(Baal)이었고 고대 애굽 에서는 Amun(태양신) 로마제국의 으뜸신은 Mithra(태양신)신  등등 어느 민족에게나 다 있는 단어입니다.

그 “하나님”이란 낱말은 의미가 막연하고 애매하여 각 사람들의 신앙에 의해 그 대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란 단어는 엄밀히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고 섬기는 유일신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속 하시고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시며 그 심판날에 우리를 부활시키시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주시는 그 분 그 절대적인 존재를 가르키는 유일신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분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그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참 목자는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이다.

하나님에게서 온 참목자는 성령의 9 가지 은사중 지혜나 지식의 은사를 (고전12:8) 받은 은사자들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의 에봇을 말합니다.

성경 안에 있는 비유의 말씀들은 지혜의 말씀  은사나 지식의 말씀 은사를 받은 은사자들이 (고전12:8) 성령의 가르침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은사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선지자가 되는데 그 기름부음이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요일2:27).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그러므로 어떠한 신학교에서 혹은 어떠한 유명한 신학자들이나 부흥사들이나 혹은 어느 교파의 조직신학이나 교리들을 배운 목사들이 우리에게 올바른 참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Holy Spirit)이 직접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그 기름부음을(the Annointing of the Knowledge) 받은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목회자(목사) 지망생들이나 일반 교인들이 신학교 수업을 하고 여러가지 기독교 신앙에 관련된 제반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수련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데 더욱더 도움이 되고 또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모세와 바울 같이 일반학문에도 능통한 석학자가 되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유명한 신학자들의 교리와 조직신학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리와  반대되거나 어긋나는 이론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조직신학 중에서 대부분은 일반적인 성경의 진리를 말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 보다 핵심적인 교리에 있어서는 비성경적인 비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구원론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론들은 하나님의 이론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어낸 그 신학자 개인의  이론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탄의, 뱀의 이론들입니다.

하와를 거짓말로 속여서 범죄하게 만들었던 뱀의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뱀들의 거짓 복음들을 분별하여서 골라내고 배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기름에 대하여 그 영적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은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레3:16-17)에,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레7:23-25)에,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기름을 달리는 쓸 것이나 결단코 먹지 말 것이요, 사람이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의 기름을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출29:36)에,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그 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

(출40:13)에,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레2:1)에,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레2:5)에, 번철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울지니.

(삼상9: 16)에,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 지도자를 삼으라.

(왕상19:16)에,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이와 같이 기름은 선지자, 제사장, 왕에게 부어서 거룩하게 하여 그 직분을 위임할 때에 쓰였으며, 희생의 제물을 드릴 때에 그 위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고 그 희생의 기름은 희생과 함께 다 불살랐으며 소제의 예물제사를 드릴 때에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섞어서 드렸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를 보면 모든 동식물제사에 기름을 붓거나 섞거나 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그 구절들이 무수히 나옵니다.

정한 짐승의 제물과 곡식제물은 하나님의 말씀 또는 기도와 예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나 하나님 말씀 증거할 때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 가르침이나 지시를 받은 진리의 교리로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은사 받은 선지자들의 설교나 그 은사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교사들의 (고전12:28)  교리로,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만 한다 이말입니다.

하나님이 왜 가인의 제물은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았을까요?

가인은 그 곡식을 기름과 함께 드리지 않았고 아벨은 양의 제물과 그 기름으로 드렸기 때문에 (창4:4) 하나님이 열납하신 것입니다.

즉 아벨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은사를 받아서 선지자가 되어 성령의 진리말씀의 교리로 예배를 드린 것이고 가인은 자기 자신의 인간이 만든 사람의 교리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선지자였었느냐?

그렇습니다.

(눅11:50-51)에,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아벨을 선지자라고 지칭하셨습니다.

흔히들 선지자는 아브라함부터라 하는데 아벨부터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란 무엇인가?

은사(恩賜)란 옛날에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선물을 말하는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적 능력과 재능을 말합니다.

그리스어로 kharisma 이고 영어로는 spiritual gift , supernatural power 입니다.

만 왕의 왕이신(딤전6:15,계17:14) 예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적 능력인데 하나님의 지식과  믿음이 장성한 자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마귀의 세력들과 싸우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무기입니다.

말씀의 비밀을 모두 알고 심령이 정결하고(마5:8) 믿음의 단계가 매우 성숙하여 하나님의 의(義)가 완성단계에 도달한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성령의 권능의 지팡인데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 받기에 합당한 영적 거물급들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초대교회처럼 많은 은사자들이 출현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세상에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자가 한 사람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어서 하루 빨리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가 많이 출현하여 이 변질된 기독교를 종교개혁 하여야 하는데 아직 전 세계적으로 한 사람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그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아주 많이 있었고 그 지식의 은사를 받은 자들의 교리가 다 동일하여서 다같이 한 교리로 한 성령으로 한 교파로 예수가 승천하시고 약 삼백 년 정도 기간 동안  말씀 전도하며 로마제국의 각 지방으로 퍼지어 나가면서 부흥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무수한 종파와 교파들이 제 각각 다른 교리를 주장하면서 이 목사 저 목사가 제멋대로 자기 사설(私說)들이나 늘어놓는 그러한 혼돈의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지식의 은사는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깨끗히 하여 하나님께 바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다 그 길이 열려져(open) 있습니다.

첫째는 그 마음이 가난하고 둘째는 청결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하는 자라면, 그 그릇에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관유를(the Anointing Oil) 부어주시지 아니하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한 자는 이 세상  아무 것에도 뜻이 없고 오직 그 마음이 천국에 소망은 둔 자이니 이 세상 어떤 것에 마음이 가 있겠습니까?

(마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을 말하는데 은사 받는 단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더럽고 죄가 그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그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전심전력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으면 언젠가는 진리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만나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 눈으로 불 수 있고 기름부움을 받아 사도바울에 하신 것 처럼 성령께서 직접 진리를 가르쳐 주시어  모든 영계의 비밀(靈界秘密)을 다 통달하는 선지자가 (prophet)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29:13).

여러분들도 진리를 깨우치고 그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모든 탐심과 탐욕을 다 버리고 전심전력으로 홰개기도 하면 죄사함 받아 성령을 받고  더 나아가 목적기도(마24:17) 하면 기름부음을 받고 선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아 기도하여 부르심을 받아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세와 같은 능력있는 선지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어서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이 기독교계를 종교개혁 하는데 한 일익을 담당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은사는(Karismata,  Spiritual Gift, God’s power)  하나님의 지식과 영이 장성한 자에게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 일 하라고 주시는 영적 무기입니다.

마귀의 권세를 하나님의 권능의 무기로 싸워서 이기라고 주시는 철장을 말합니다 (계2:27).

흔히 많은 교인들이 산기도나 작정기도 하는 중에 체험하는 모든 이상한 영적 현상들은 거의 모두가 마귀의 사악한 거짓 유혹과 장난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의 환상을 보여 준다거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지시를 내린다거나 커다란 빛이 (Light) 가슴으로 들어온다거나 하는 신비한 현상들을 말합니다.

초신자들이나 신앙의 깊이가 얕고 탐욕이 있어 두가지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흔하게 잘 나타나는 귀신들의 속임수입니다.

그러한 귀신의 속임수에 넘어가 자기들이 마치 성령의 은사 체험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영영 구원 받을 길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성령의 참현상들은 아주 거물급 신자들에게 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추어진 성경 지식의 모든 비밀을 다 알고 믿음의 단계가 매우 오래되고 성숙하였을 때 하나님의 복음 사역자로 쓰임 받을 단계에 도달하였을 때 은사의 단계로 나타나는 현상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은 하나님의 지식과 성령이 충만한 믿음이 장성한 자가 은사를 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참 종교 지도자는 반드시 성경을 완전히 해석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신 권능의 역사와 표적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참 종교 지도자들이란 성경안에 감추어진 수수께끼들을 체계적으로 다 풀고 난해한 구절들을 짝을 맞추어 풀어 해석하며 동시에 하나님이 아니고는 행할수 없는 초자연적인 기적들과 기사와 표적들도 같이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로서 그럴듯하게 제멋대로 꾸며 입으로 만 나불거리며 말장난이나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하여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진리의 말씀과 권능의 표적이 동시에 병행해야만 하나님의 사람이요 선지자인 것입니다.

모세 시대에도 그러하였고 초대교회 때도 그러하였듯이 반드시 감추어진 말씀의 비밀해석과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역사가 동시에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롬15:18).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의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4:19-20).

그러니 어떤분들은 그러한 기적들은 옛날에나 있었던 것이지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 무슨 그런 기적이 일어나겠는가?

(히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윈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태초나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말세때나 언제나 동일하시다고 성경이 분명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적들이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옛날에만 있었고 오늘날에는 없다면 성경은 거짓말이 되겠지요.  하나님은 분명히 거짓말을 못하신다 했습니다 (히 6:18).

그러면 우리가 아는한 언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적이 있는가?

없지요 적어도 지난  천몇백 년 동안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까요?

그러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어날까요?

안 일어난다고요?

 

예,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것도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히2:4)에는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을 나눠 주신 것으로 저희와 함께 증거하였느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때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16:20).

 

 

 

믿지 않는 완악한 자들을 믿게 하려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권능의 이적과 기사들 

분명 신약성경에 보면 초대교회 때 예수님도 그의 사도들도 많은 이적을 보이었습니다.

(행4:30-31)에는 손을 내밀어 낫게하옵시며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마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히12:26)에,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반드시 이 늦은비(봄비) 성령시대에는 초대교회보다 더 크고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모세 때나 초대교회 때나 하나님이 큰 이적들을 많이 행하신 이유는 믿지 아니하고 의심하는 자들을 그 기적들을 보고 믿게 하려고 하나님이 전능의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출4:8).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머리숙여 경배하니라(출4:30-31).

많은 사람들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요2:23).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나이다(요3: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라(요6:2).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 하더라 (요6:14).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5:4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 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요10:38).

이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요11:45,47-48).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희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요14:11-12).

사람 마다 두려워 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3,47).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입어 (행4:33).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행6:8).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행9:41-42).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매 수다한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 오더라 (행11:21).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행14:3).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 행하신 표적들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행16:5).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케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가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19:11-12).

예수님 자신과 그의 사역자들이 많은 기적을 행하였는데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들과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을 나누어 주신 것으로 함께 증거 하라 하였습니다 (히2:4).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 하신 것 외에는 내가 말하지 아니 하노라 (롬15:18).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은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후2:12).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내심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2:4).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살전1:5).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4:19-20).

 

또 교회 지도자들이란 항상 교인들의 죄를 담당하며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복음 사역자들의 협력

우리가 하나님의 전도사역을 할 때는 초대교회의 때처럼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서 한 진리로 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여럿의 선지자들이 서로 도와가며 협력하여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잘못하면 옆에서 다른 선지자가 그 잘못을 지적하고 서로 깨우쳐주며 하나님의 전도사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도사역의 영적 의미가 봉(封)하여져 있는 구절이 있는데 (전11:3)에,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있으리라.

(전4:11-12)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듯 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듯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어느 한 사람이 어느 한 교주가 자기 혼자만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는 자들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모세 때에도 출애굽의 역사를 모세 한 사람이 혼자 하지 않했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동역하였고 여호수아와 70 인 장로들이 보좌사역 하였습니다.

미리암과 아론도 선지자였습니다.

(출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성경 본문 안에 구원의 진리와  답이 있다.

목사들이나 부흥강사들이 쓴 신앙집이나 간증책 같은 것에 많이 치우치지 마시고 성경본문을 많이 읽고 올바른 사리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목사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성경과 일치하는가 아닌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겠습니까?

 

반드시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의 내용과 흐름을 어느 정도 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느 누구의 설교도 성경해석도  가르침도 교리도 성경의 내용에 비추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나마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설교나 성경해석도 본인이 스스로 어느 정도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필자) 이 글에서 언급하는 모든 말들과 성경해석이 과연 진리이고 성경에 부합되는가  안되는가도  철저하게 성경의 내용과 비교연구 하면서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  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쫒으리라 하셨으니 (딤전4:1).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사도들)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다른 복음을 받게 할때는 너희가 잘도 용납 하는구나 (고후11:4).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좆음이요 그리스도를 좆음이 아니니라 (골2:8).

여러분들의 영혼은 성령께서 구원하는 것이지 어느 신학자가 어느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칼빈이나  웨슬리나 빌리 그라함이나 여러분들의 교회 담임목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비(非)성서적인 신학에 속지 마십시요.

 

이와 같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서 떠나서 어떠한 말잘하는 말장이가 지어낸 허탄한  사설(私設)을 철학과 또는 윤리도덕으로 정립(定立)하고 편집하여서 그 교훈과 의미가 같은  성경구절들을 인용하고 짜집기하여서 그럴싸 하게 만들어서 말장난이나 하는 영적 거짓말에 속아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허탄한 소리는 어느 종교에도 다 있는 것으로 다 생명은 없는 율법이고 도덕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영생(永生)을 사모하는 종교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요일2:27).

너희는 거룩 하신자 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2:20).

그러므로 어떠한 신학교에서, 혹은 어떠한 유명한 신학자 들이나 부흥사들이나 목사들이 우리에게 올바른 참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Holy Spirit)이 직접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고 그렇치 아니하면 그 기름부음을 (the Annointing of the Knowledge) 받은자들 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그 기름부음을 받은자들이 아주 많이 있었고 그 지식의 은사를 받은자들의 교리가 다 동일하여서 다같이 한 교리로 한 성령으로 한 교회로 예수가 승천하시고 약 삼백년 정도 기간 동안  말씀 전도하며 로마제국의 각 지방으로 퍼지어 나가면서 부흥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무수한 종파와 교파들과 제각각 다른 교리를 이 목사 저 목사가 제멋대로 자기 사설(私說)들이나 지껄이는 그러한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방민족중 하나님이 제일 미워한 족속이 있는데 바로 아말렉 족속입니다.

이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 광야를 거쳐 가나안(천국을 비유) 으로 들어갈 때 칼과 창을 들고 나와 가나안으로 못 들어가게 방해한 자들 입니다 (출17:8).

그래서 하나님이 영원히 사하지 아니하시고 (출17:16, 신25:19) 그 후 몇백년이 지나서도 사울왕을 통하여 아말렉을 치고 얼마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지 사람뿐 아니라 살아 숨쉬는 모든 짐승을 다 죽이라고 명하셨지요.

구약의 시편과 예언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방민족들  모압, 암몬, 애굽, 바벨론등에게 다 구원의 손길을 주시나 이 아말렉 족속 만큼은 영원히 사함을 못 받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이 추구하는 최종목표는 천국 가는 것인데 그 길을 막고 거짓말로 성경의 구절들을 자기네가 필요한 그럴듯한 뜻이 애매한 구절들 뽑아서 억지로 꿰어 맞추어 역어 놓은 한사람 내지 몇사람의 두뇌로 만든 교리를 가지고 예수 믿고 천국 가려하는 여러분들을 그 천국 가는 길에서 거짓 날조한 교리로 방해하는 저 아말렉 족속들은 하나님이 영원히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이러한 거짓 교리들에 속지 마시고 올바른 진리를 만나 천국 가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만희와 이재록이 같은 저속한 종교사기꾼들을 경계하십시요.

 

 

 

올바른 하나님의 지식을 성경에서 배우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것 이라 (호4:6).

올바른 하나님의 지식을 알지 못하여 거짓 목자들의 선악과를 먹고 멸망하는 여러분들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을 때 성령 받았다고 가르치는 뱀들에게 속으면 아니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속으면 여러분들은  영혼구원에  반드시  받아야 하는 성령을 받을 길이 묘연해 집니다.

예수 믿을 때 이미 성령은 받았는데 무슨 성령을 또 받아야 하는가?

예수 믿고 천국 가려고 하는 여러분들을 그러한 뱀의 거짓말로 속여 못가게 하는 아말렉족속들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칼빈의 예정설로 여러분들의 영혼을 파멸하는 거짓 목자들에게 속지 마십시요.

장로교의 칼빈의 예정설은 성경과 반대되는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감리교의 Arminianism이 성경적입니다.

 

우리는 목사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성경과 일치하는가 아닌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비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겠습니까?

반드시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의 내용과 흐름을 어느 정도 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느 누구의 설교도 성경해석도  가르침도 교리도 성경의 내용에 비추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나마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라고  영혼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라고 주신 성경을 한번도 통독 안하고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느 누구의 설교나 성경해석도 본인이 스스로 어느 정도는 성경의 내용과 맞는가 안맞는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교회목사 설교가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어떤 신학자의 소리는 성경의 내용과 부합되는가 어떤 부흥사가 부흥회에서 떠들었던 소리는 성경적으로 올바른 소리를 하였는가를 점검하고 따져봐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시대에 유명한 목사들이 주장하며 떠드는 소리가 과연 성경적인가  아닌가 ?

조사하고 연구하십시요.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아무에게나 어떠한 부흥사나 목사나 신학자나 전도사나 그 누구에게나 쉽게 내맡기면 아니됩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설교나 성경해석들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진리인가 아닌가 우리 자신들이 꼼꼼이 따지고 철저히 연구해야 합니다.

그들의 설교가 성경말씀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확인을 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경 내용을 훤히 알아서 그들의 설교를 성경의 내용과 비교연구 한다면 많은 목사들의 설교가 엉터리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불멸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모든 것보다도 부귀영화보다도 혈육보다도 귀중한 것이 여러분들의 영혼입니다.

그러한 귀하고 하나밖에 또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여러분의 영혼구원을 성경적인 검증 없이 그 누구의 성경해석이나 설교나 교리나 가르침에 쉽게 수긍하고 믿어 자신의 영혼을 내맡기면 안됩니다.

 

 
 

말세지말의 지금  마지막 때  곧 머지 않아 하나님의 종교개혁 역사가 있을 것이다.

우리 말세 때의 늦은비 성령역사는 그 초대교회의 성령역사 와는 비교도 아니될 만큼 강하게 역사할 것이므로 이시대에는 많은 능력의 선지자들 교사들이 출연할 것이고 진리의 복음사역이 민간에 퍼지는 염병(행24:5) 처럼 빠른 시일 내에 세상으로 퍼지며 하나님 나라의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현대의 로마인 미국이 중심지가 되고 미국 사람들이 주동이 되어 현대의 헬라어인 영어로 설교하며 전 세계로 퍼지며 사도행전의 역사와 같이 하루에도 3000명, 5000명이 회개하고 그 제자들의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  몇 백만명 혹은 수천 만명까지 성도의 수가 불어나며서 반드시 많은 선지자들에 의하여 동역자들에 의하여 사역활동을 할 것입니다.

그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본인도 모름니다.

몇년 후에 올지 혹 몇십년 후에 올지 모르나 그리 멀지 않은 것 만은 확실합니다.

초대교회 때 보다 더 강한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수십 년 이상 오랜 기간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온 우주가 없어지는 예수 재림의 심판이 오겠지요.

예수 재림의 세상심판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나 보다 확실한 것은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세대는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 받고 열심히 예수 믿으면 우리의 육신이 죽으나 사나 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바이니 예수께서 언제 재림하시는 것에 대하여 연연하고 깊히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세대에 종말이 온다고 하는 교단들은 다 이단들로서 지나간 종교역사를 보아도 이단들이 종말론을 갖이고 당시 사람들을 현혹하고 들뜨게 만들어 많은 이득을 취했습니다.

 

 

 

하나님 복음 사역자들은 각성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가 이스라엘의 레위 족속 제사장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일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고 그 대가로 십일조와 헌물을 걷우는 것은 마땅이 해야 할 일입니다.

(고전9:11-14),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딤전5:18),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솔로몬같이 하나님의 참진리를 무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아 영육간에 으뜸가는 부자가 되야 하는 것인지 바벨론 상고들처럼  가짜 진리인 바벨론 상품을 팔아 불의한 재물을 모으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조용기처럼 바벨론 상품 팔아 치부하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출30:20-22), “내가 내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갈 때에는 빈손으로 가지 아니 하리니 너희가 애굽사람 물품을 취하리라” 하였습니다.

이번에 있을 종교개혁은 큰 하나님의 능력의 권능의 역사가 있은 후 저 일요일교회가 구교, 신교를 막론하고 지난 1700 년 동안  모아 놓았던 상상을 불허하는 어마어마한 재산과 돈을  12 사도복음 교회에서 몰수히 접수하여 걷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은 성령의 법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성령 모독죄가 어떠한 것인지 사함 받지 못하는 죄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초대교회의 복음으로 거듭 태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의 참다운 복음 사역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역사가 초대교회에서 천주교로 변하고 또 천주교를 개혁하여 개신교가 생기었는데 그 모든 지나간 2000 년의 기독교사를 세밀히 살펴보거나 연구하여 보지도 아니한 채로  천주교가 만든 유전이나 따라하면서 적그리스도 니므롯의 종이 되어 천주교 하수인 노릇하는 개신교 목사들은 자기 반성을 철저히 해야합니다.

기껏 한다는 것이 태양신 숭배하며 바알신 제사장이 되어  수도 없는 많은 영혼들을 바알에게 무릅뀷게 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는 거짓 목자들 삵군 목자들,  철저히 회개하시고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의 진리를 배워서 깨달아 뭇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참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이 참목자 한분을 남겨두셨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이 여호와의 모든 선지자들을 다 죽였는데 나혼자만 살아남았나이다” 라고 하나님께 부르짓을 때에 여호와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자 7000인을 남겨두었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하나님이 남겨두신 하나님의 참목자,  ‘사도복음‘의 진리를 전파하는 황익성목사를 소개합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죽양대로 2031번길 18에 소재한 용인 엘림생수 교회의 담임목사 입니다.

고 노관영목사의 제자로서 현재 유일하게 사도복음의 진리가 변질되지 않고 제2 종교개혁의  순수한 사명감으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진리를 전파하는 진리의 사도이십니다.

 

 

제 12 장 – 진리의 사도 황익성 목사  Weblink

 

밑에는 용인 엘림 생수 교회의 You Tube Channel Link,click 하여 보세요.

https://youtube.com/@user-pg5hg1dt9e?si=9Ui6g9niEAcD_IZh

 

 

 

제 7 장은 다음 페이지에 있습니다. >>>>>>>>>>>>>>>

제 7 장 – 십계명

Written by gospel mission

2012/02/18 at 2:29 PM

제 7 장 – 십계명

with 3 comments

안식일 (the 4th Commandment)

Ten Commandments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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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은 하나님의 법 (사1:10, 롬7:25) 중에서 헌법에 해당되는 제일 중요한 법입니다.

십계명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를 막론하고 우리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예수 재림 때 정죄의 심판을 받고 불법을 행하는 불행한 신자들이 (마7:23) 되지 않으려면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 번 계명을 제자들에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마19:17)에,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요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일 2:4)에,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5:2)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

(요일 5:3 )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이 1:4)에,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계 12:17)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4:12)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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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태양신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인 카톨릭이 바벨론의 교리와 사상에 맞게 하나님의 십계명을 변개하였습니다.

십계명 중 5 개를 바꾸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계명은 없애 버리고 자기네들이 만든 가짜 계명으로 교체하였습니다.

네번째 계명을 토요일 안식일에서 태양신의 날 일요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는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아래에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천주교가 변개한 거짓 십계명에 관한  web Link

가톨릭이 고친 십계명

십계명 – 나무위키

 

카톨릭 바꾸어 놓은 하나님의 네 번째 계명을 개신교가 종교개혁한 이후 그대로 카톨릭의 사람들이 만든 거짓 계명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마15:3)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마 15:9)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막7:7)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막7:8)에,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막7:9)에,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약 2:10)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약2:11)에,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야고보서 2 장에서는 십계명 중 한가지를 범하면 십계명 열가지 모두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개신교 교인들은 구약의 바리새인들이나 카톨릭 신자들처럼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면 안되겠습니다.

나중에 그 불법을 행한 죄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흔히 목사들이 잘못 말씀 증거하는  설교나 가르침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지적하자면 사람이 한번 예수 믿기를 시작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천국 간다고 합니다.

또 성령은 예수 믿을 때 벌써 받았다고 하고 우리의 죄는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예수믿기 결심할 때 이미 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어떤 목사들은 우리가 예수 믿기 시작하면 앞으로 미래에 우리가 지을 죄까지도 예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이미 다 사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많은 거짓 교리 중 제일 뚜렷한 것이 십계명 중 네번째 계명의 안식일을 툐요일에서 일요일로 태양신 숭배하는 날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불변의 십계명을 태양신 우상숭배하는 카톨릭이 그들의 교리에 맞게 바꾸어 놓은 가짜 십계명을 개신교가 따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모든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토요일을 성일(聖日)로 지킨 기록이 너무도 뚜렷이 여러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시고 나서 거룩한 날로 정하여 세상 시작한 때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 정해 놓은 불변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 중에 제일 먼저 생긴 법이며 하나님 자신이 먼저 지키시었던 계명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키었고 예수 승천하시고 모든 사도들과 성도들이 지키었던 계명입니다.

주후 약 600년도 말까지 지키었던 계명인데 주후 688년을 전후로 사탄이 로마 카톨릭교를 이용하여 지구를 영적으로 완전히 점령하면서 토요일에서 일요일을 안식일로 바꾸어 놓으면서 기독교의 전통으로 유전으로 굳게 자리잡히면서 사람들의 머리속에 요지부동의 교회유전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주후 300 년이 넘으면서 서서히 일요일이 기독교에 본격적으로 등장을 합니다.

그 이전에도 태양신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영향에 의하여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사이비 기독교인들이  소수가 있었으나  로마제국 콘스탄틴 황제가 서기 321년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하는 “일요일 휴업령“을 선포하면서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많은 기독교인이 토요일과 일요일을 병행하며 지키다가 서기 688 년경부터는 토요일은 완전히 사라지고 일요일이 예배일로 세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전 인류가 일요일은 휴식하는 날로 정해지면서 옛 무신론자인 공산국가들에서도 일요일은 휴일로 되버린 것입니다.

북한 빨갱이 사회에서도 일요일을 휴일로 지키지요?

이러한 인류 역사적인 사실은 초기 기독교사와 천주교의 유래와 역사를 조금 깊히 찾고 조사하면

누구든지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역사적인 기록의 자료들과 논문들과 책자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관심이 있으면 찾아보세요.

그 역사적인 자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일요일 휴업령」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강추)

초대교회의 강력한 라이벌, 미트라교 (강추)

 

 

 

 

사도행전에는  초대교인들이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켰다는 뚜렸한 구절들과 증거들이 많이 있다.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구절들을 유심히 살펴보겠습니다.

 

(눅4:16)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23:56)에,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행1:12)에,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는 길이라.

이 구절에는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난후 안식일에 가기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감람산을 언급하였는데 제자들이 안식일을 중요시하고 지키었다는 뚜렷한 구절입니다.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었다면 안식일에 가기에 가까운 것을 따질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행13:14)에,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행13:42)에, 사람들이 청할쌔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이 구절에서 보면 바울이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는데 십계명 중 네번째 계명인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말했습니까 아니했습니까?

전혀 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왜 하루가 지난  바로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이 아니고  다음 안식일에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였을까요?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면 안식일에 모여서 복음을 가르쳤으니 바로 그 다음 날인 일요일에도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성경말씀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사람들이 그 다음 날 일요일이 아닌 6일이나 지나야 오는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하라고 했습니까?

이 구절 하나로도 그 당시에 (예수 승천하신 후 30년이 지났음) 일요일에 초대교인들이 모이고 사도들이 복음을 가르쳤다는 사례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여졌습니다.

 

(행13:44)에,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모이니.

이 구절에서는 안디옥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다 안식일에 모였습니다.

만약에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면 왜 이방인들이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모였을까요?

 

(행16:13)에,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이 구절에는 바울 일행이 예수의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이방인 도시 빌립보에서 안식일에 예배하고 기도하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왜 바울이 일요일이 아닌 안식일에 기도할 장소가 있는가 하여 찾았습니까?

 

(행17:2)에,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이 구절을 보며는 (롬7:6, 갈2:12-18)에서 바울이 유대인의 율법을 버리고 믿음의 새로운 법을 성취하라고 가르쳤는데 왜 안식일을 자기의 규례라 하였습니까?

 

(롬7:6)에,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라.

(갈2:12-18)에,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러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죽기를 마다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많은 고난과 수난을 겪은 (고후11:23-33) 바울이 왜 일요일에 관한 가르침은 신약성경에 없을까요?

신약의 교리를 완성하다시피 한 사도바울이 십계명에 대한 가르침은, 일요일에 대한 가르침은 왜 없을까요?

만일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었다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으뜸 사도인 바울이 그 유대인의 외식인 율법의 유전을 버리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가르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유대인의 율법의 외식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심지어는 (갈2:11)에서 사도 베드로에게도 책망을 하였던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습니까?

(갈2:11-14)에 자세히 나옵니다.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신약성경 어느 곳에 어느 구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뚜렷한 증거의 구절이 있습니까?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일요일을 주장하는 자들이 인용하는 구절 서너 구절이 있는데 그 내용과  의미가 지극히 애매모호하고 또 전적으로 아전인수격으로 엉터리로 억지로 해석하는 몇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구절들은 곧 토론하겠습니다.

안식일은 외식하는 유대인의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십계명이니 반드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행18:4)에,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바울이 일요일이 아닌 안식일마다 헬라인을 권면합니까?

이쯤되면 사도행전에 일요일 예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도 아주 많이 있어야 하고 일요일 예배가 확실하게 초대교회 사회에 큰 가르침으로 등장을 하여야 하는데 전혀 없습니다.

일요일이 초대교회 당시 복음전도 중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issue)가 되었어야 하는데 일요일 관한 얘기는 신약성경 어디에도 한 군데도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일요일 숭배는 카톨릭이 서기 300 년 초 이후로 도입한 바벨론 종교 교리이기 때문에 신약성경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기 321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 예배를 선포하지 전까지는 초대교회 기독교에 예배일이 토요일이다 일요일다 하는 논쟁이나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안식일은 당연히 토요일이니  십계명을 좇아서 토요일에 교인들이 모이고 예배드리고 성경말씀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였습니다.

신약성경은 요한 계시록이 서기 95년 경에 마지막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 서기 95년 이전에는 모든 초대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을 지켰으니 신약성경에 일요일 얘기가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요일은 그후 한참 세월이 지나서 태양신 숭배하는 이방종교자들에 의하여 서기 300 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기독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모든 초대교회 교인들이 안식일을 십계명으로 지키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지요.

그러니 사도행전에 일요일에 대한 issue가 기록되어 나올 수가 없지요.

 

(행18:11)에,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이 구절에서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매 안식일마다 1년 6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왜 1 년 6 개월의 긴 기간 동안 일요일이 아닌 안식일에 만 이방인들인 고린도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가르쳤느냐 하는 것입니다.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 한다면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복음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새 신자들인 헬라인에게도 바뀐 계명의 일요일에 대하여 알려주었어야 했지 않았느냐 그 말이지요.

또 반드시 일요일에 모여서 복음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행전에 안식일 토요일에 사람들이 모여서 복음 전도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으니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면 사람들이 일요일에 모였다는 기록도 반드시 사도행전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요일에 모여서 복음 전도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지요?

여러분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 보세요.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이 모든 사도들의 행적은 예수 승천하신 후 삽십 년이 훨씬 지난 후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요일이 예배 드리는 하나님의 성일이 아닌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 주 첫날 일요일에 부활하시었다 하여 일요일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또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지요?

예수께서 명하지도 않은 거짓 계명을 그리스도인들이 지킵니까?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고 예수교는 부활의 종교이니 부활하신 날이 더 중요하니 네번째 계명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어서 예수 승천 후에는 일요일을 지켜야 한다”  라고 하는 유전 자체가  순전히 사람들이 만들은 유전 아니냐  그 말입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일요일이 성일이라는 것은 순전히 카톨릭이 만든  거짓말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일요일 아침 동틀 무렵 바울 일행이 10 시간 이상의 먼 거리를 도보로 여행하다.

(행20:7)에,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모이다.

이 구절에는 드로아 항구에서 안식일을 지키고 첫날 그러니까 해진 후 일요일 첫날 토요일 밤에 떡을 떼려 즉 저녁식사를 하러 모여서 여러가지 강론을 할 때에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이층 창문에 걸터 앉았다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생깁니다.

토요일 밤이라 함은 하나님의 요일 계산법으로는  한 주가 시작하는 첫날 밤인데 인간의 요일 계산법으로 토요일 밤이 되겠습니다.

 

그 후로 일요일 아침 동이 틀 때에  (행20:13-14)에서 바울이 드로아에서 출발하여 도보로 걸어서 앗소까지 간 기록이 있습니다.

드로아 항구도시에서 앗소까지는  직선거리로  50 -60 KM 정도 되는 먼 거리입니다.

걸어서 약 10-15 시간 정도  지나야  도착하는 한나절을 꼬박 소비해야 하는 아주 먼 거리입니다.

바울의 다른 일행들은 아소가 드로아에서 너무 머니까 배를 타고 앗소로 이동을 하였는데  바울은 걸어서 앗소까지 갔으며 앗소에서 누가의 일행들과 합류하였습니다.

(행1:12)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안식일에는 걷는 것을 삼가하였는데 바울과 누가의 일행들은 일요일 아침에 여러 시간을 걷기도 하고 배를 타기도 하면서  15시간 정도의 장시간 도보여행을 한 기록이 뚜렷하게 나옵니다.

 

만일 일요일이 네번째 계명이라면 그들이 일요일 아침에 예배와 기도하지 아니하고 다른 날이 아닌 굳이 일요일에 한나절이 지나고 저녁이 되야 당도하는  거리를 도보로 장시간을 여행했겠는가?

오늘날에도 목사들이 일요일 아침에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교회에서 예배 인도하며 설교하지 않습니까?

어느 목사가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서 예배 인도하지 아니하고  10 시간  이상 소요되는 먼거리를 걸어서 장시간 여행을 하는 목사가 있습니까?

그것도 최고 우두머리급 거물 목사 여러 명이 걸어서  10 시간 이상 되는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합니까?

목사들이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일요일 아침에 설교 안하고  일요일 아침에  출발하여 밤중이나 되어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합니까?

여러분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바랍니다.

 

아래에 있는 링크와 Bing Map을 클릭하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드로아(Troy, Troas)에서  앗소(Behram, Assos) 까지의 거리 Bing Internet Search

앗소 ,    드로아

Google Map / 앗소와 드로아의 거리

 

3

앗소와 드로아 지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송사할 때 안식일 범한 죄명은 전혀 없었다.

(행23:29)에,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행24:5-6)에,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아오니.

(행25:5)에,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행25:7)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행25:8, 10-11)에,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샤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이 구절들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유대인들이 복음전도 하는 바울을 잡아서 로마 총독들에게  고소할 때에 바울이나 다른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하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안식일을 폐하였다는  송사는 전혀 없었다는 것에주목을 해야합니다.

유대인들이 중요시 하는 계명 안식일을 바울이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범하였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부분에서 당시 초대교회 예배일은 안식일 즉 토요일이고 일요일에 교인들이 모이거나  예배를 드린 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이샤라에 있는 로마 총독부 감옥에 2년이나 갇히여 있으면서 (행24:27)  유대인들이 유대인의 율법에 대하여 온갖 거짓 고소를 다 하였는데 그 중에 안식일에 관한 고소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무어라고 자신있게 증언하였습니까?

바울은 어떠한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로마법을 범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선포하였지 않습니까?

그 바울의 증언에 반론하는 유대인이 있었습니까?

한명도 없었지요?

 

(행25:7)에, 유대인들이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이 구절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여러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했다고 했는데 그 송사 중에 안식일을 범하고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 드리고 복음을 가르쳤다는 송사가 있습니까?

만일에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이나 초대교인들이 안식일을 범하고 일요일에 모이고 성경을 가르쳤다 한다면 당시 유대인들이 바울을 로마총독에게 고소할 때에 제일 큰  고소거리이고 최고로 중대한 사건이 아니었겠습니까?

바울을 송사할 때에 가장 큰 죄목으로 지적이 되었어야 하는데 사도행전에 그러한 기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행 28:17)에서 바울은 또 한번 선포합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customs)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 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바 되었으니”

이 구절에서도 분명히 바울은 유대인의 규례를 전혀 범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명명백백하게 사도행전은 안식일에 관하여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바울에 대한  송사 사건은 예수 부활하신 다음 30년이 훨씬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부활하신 후 안식일은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교리가 진실이 될 수가 없겠지요?

 

이와 같이 안식일에 사도들과 교인들이 모여서 성경 강론하고 복음을 가르쳤다는 성경의 기록은 그 의미가 뚜렷하여 부인할 수 없는 여러 구절들이 있는데 반하여 일요일에 모여서 성경을 강론하고 복음을 가르쳤다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으나 일요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들고 나오는 구절들이 2-3 가지 있는데 그 구절들에 관하여는 이 장에서 집중적으로 토론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도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고 선행을 행하셨을 때에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예수님을 비난하였는데 만일 초대교인들이 예배일을 안식일에 하지 않고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가르쳤다 하면 그 문제가 얼마나 큰 issue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까요?

만일에 초대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이 안식일을 폐하고 일요일을 성일로 지켰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유대교 정통파 골수분자들이 많은 기독교 교인들을 살해하거나 방화하거나 하여 그 당시의 가장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역사에나 고대 인류역사에도 상당히 큰 사건으로 기록이 되어서 모든 현대인들이 다 알았을 것입니다.

신약성경 어디를 보아도 그러한 사건은 없었으며 초기 기독교사를 아무리 조사하고 연구하여도 그러한 사회적인 문제는 없었으며 네번째 계명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기록은 성경 안에나 밖에나 이 세상 아무데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일요일교회에서 주장하듯이 하나님이 네번째 계명을 일요일로 바꿨다고 한다면 반드시 신약성경 어느 한 곳이나 구절에 기록이 되어야 하고 또 네번째 계명은 일요일로 바뀌었으니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하고 말씀공부 하라고 반드시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것입니다.

또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교인들이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는 기록이 성경에 반드시 뚜렷하게 기록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만약에 하나님의 십계명이 바뀌었다면 예수께서 반드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었을 것이다.

(마15:6-13, 막7:7-13)에서 예수께서 다섯 번째 계명을 가지고 예를 들면서 사람들이 인간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법을 폐한다고 하여 불법을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섯번째 계명은 예를 하나 든 것 뿐이지 그 외에도 불법을 많이 행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불법을 행한 자들은 예수님이 (마7:23)에서 알지 못한다고 하시고 떠나가라 하셨습니다.

(마13:41-42)에서 불법을 행한 자들은 풀무불의 영벌에 (마25:46)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십계명이고  하나님의 법인데 불법을 행하느냐 아니냐 하는 우리의 영혼구원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는 계명 아닙니까?

 

만일에 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면하나님이 신약성경 안에 어느 한 구절에서라도 반드시 명령하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그러한 계명이 바뀐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고 또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성경 안이나 밖이나 세상 어느 곳에 12 사도들초대교인들이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 어디에 있냐는 말이지요.

사도행전에서 보면 앞에서 나열한 것처럼 여러 구절에서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이 안식일에 모여서 예배하고 성경 가르치고 하였지 성경 어디에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 드렸다는 구절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미쁘시다고 성경 여러 구절에서 (신7:9, 사49:7, 호11:12)  하나님 스스로 증거하셨습니다.

 

(암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십계명을 바꾸는 엄청난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12 사도들도 모르게 바꾸었다는 말입니까?

이러한 가정은 우리 크리스쳔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지키는 행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은 분이고 거짓말쟁이이고 이율배반한 신으로 규정하며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고 부인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잘 몰라서 개신교인들이 천주교가 그렇게 지켜왔으니까 개신교가 또 천주교를 따라서 루터 종교개혁 후로도 계속 그렇게 지켜온 1700년의 오랜 뿌리깊은 인간의 유전이니까 습관적으로 따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진실을 알았으니 천주교가 만든 사람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 무서운 죄를 더 이상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요일이 안식일이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성경구절들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인용하며 들고 나오는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 1

(행20:7)에,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이 구절을 가지고 떡을 떼다 하였으니 일요일에 모여서 성찬식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합니다.

(행20:11)에,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이 구절에서 “떡을 떼다”라는 것은 식사를 한다는 유대인들의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식사를 하다”는 의미입니다.

(행2:46)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 구절에서 보듯이 모이는 것은 성전에서 모이고, 떡을 떼다는 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위의 두 구절들을 보면 떡을 떼고 나서 말을 밤중까지 하는 중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틀에서 떨어져 죽은 다음 바울이 그 청년을 살려주고 나서 또 올라서 떡을 떼어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행27:33-35)에, 먹지 못하고 주린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떡을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이 구절들에서 보면 “떡을 떼다”는 의미가 배고플 때 밥먹는 것이라고 아주 뚜렷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식사한다는 구절 가지고 성만찬식 하였다고 억지로 우기고 있으며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으니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주장 자체가 억지가 아닙니까?

강론한다는 것은 성경강론일 수도 있고 다른 일반 세상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행20:11)에 오래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이 구절에서 보면 강론하였다는 것이 “이야기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확실하게 (행17:2)에서와 같이 성경강론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떠난다고 했으니 일요일 아침에 날이 밝은 때 떠난다는 것이지요?

(행20:11)에 오래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그런즉 일요일 아침에 떠났는데 일요일이 안식일이라면 사도바울이 떠났겠습니까?

지금 목사들이 일요일 아침에 도보로 15시간의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합니까 안 합니까?

 

안식일 외에 우리가 예배를  매일 드리면 더욱 좋은 것이고 성경강론도 매일 하면 더 좋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십계명에 하나님이 쉬라고 했으니 우리 육체가 쉬고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며 성경말씀 배우고 우리의 영의 눈을 밝히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안식일에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시었지요.

 

예수와 그 제자들이 유월절 전날 저녁만찬 식사하실 때에 한 것처럼 성찬식은 일년에 한번 유월전 전날에 유월절 저녁만찬을 먹을 때 한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말세지말에 사는 우리 개신교 교인들도 예수께서 성찬식을 하라고 명령하셨으니 일년에 한차례 유월절에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많이 열거한 구절들을 보면 안식일에 사도들이나 교인들이 모여서 떡을 떼는 의식이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지요.

(행1:1-2)에서 오순절에 12사도들과 120성도가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였을 때 떡을 떼는 성찬식이 있었습니까?

사도행전에서 많이 기록되 있는 사도들의 행적 중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성찬식이 한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성찬식이 예배의 핵심적인 예배의식과 내용이라면 사도들이나 초대교인들이 예배나 기도를 할 때나 복음 증거할 때 떡을 떼는 성찬식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없지요?

 

매번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하는 것은 카톨릭의 유전으로 영성체(communion)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해 있다고 하여 그 빵 한 조각 먹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교통한다고 합니다.

그 작고 둥근 빵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그같은 주장이 상식적으로 맞는 말입니까?

정말 웃기는 코미디입니다.

 

천주교에서 행하는  EucharistMithra교에서 태양신인 Mithra 신에게 충성서약을 하고 난 후 예배의식을 할 때에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던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던 태양신 종교의 유전이었습니다.

카톨릭에서 미사 때 먹는 전병은 옛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늘의 황후에게 바치던 과자입니다.

(렘7:18)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렘44:19)에, 여인들은 가로되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에게 경배하는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늘의 여신은 구약시대의 아세라 여신이고 신약시대에 카톨릭이 숭배하는 성모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부활절에 개신교인들이 지키는  Ishtar여신인데 바로 니므롯의 부인을 가르킵니다.

옛날 바벨론에서 사람들이 니므롯 부인을 숭배하던 관습에서 유래된 여신을 위하여 카톨릭이 도입한 영성체입니다.

카톨릭이 바벨론 종교의식을 기독교에 몰래 가지고 들어와 매번 예배 드릴 때마다 그 우상의 빵 조각을 교인들에게 먹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카톨릭의 미사 의식은 그 과자 한 조각 먹는 것에 제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카톨릭에서 시작한 바벨론 종교의식을 가지고 “떡을 떼었다고 하였으니”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 드렸다고 억지주장 하는 저 개신교 종교 지도자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왜 카톨릭의 유전을 가지고 개신교인들이 우기며 주장을 하는지?

그러니까 개신교는 카톨릭의 하수인이요 대변인인 것입니다.

 

(행20:7)이 성찬식을 행한 것이라면, 그러면 지금 개신교에서도 매 일요일마다 모일 때 성찬식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까짓 떡이나 떼어 먹으며 그 과자 한 조각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있다고 하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같은 미사 의식을 하는 행위에서 무슨 참다운 예배가 나오겠습니까?

 

예 2

(막3:27,28)에,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으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또 많은 일요일교회 사람들은 예수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했으니 안식일이 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했습니까?

아니지요, 잘 지키셨을 뿐만 아니라 말세 때에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했습니다 (마24:20).

예수 승천하신 후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 한다면 예수께서 말세 때에 도망하는 일이 일요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해야지 왜 안식일에 일어나지 말도록 기도하라고 하였습니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었으니 우리 성도들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시고 나서 제일 먼저 하신일이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하나님 자신이 처음부터 지키셨던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막1:21)에,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6:2)에,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눅4:16)에, 예수께서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4:31)에,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눅13:10)에,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이 구절들에서 보면 분명히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셨다고 하였습니다.

 

(마12:11-12)에, 안식일에 양 한마리가 구덩이에 빠지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12:5)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요7:23)에,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마12:7)에,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하나님이 우리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만 하시었지 안식일을 지키지 말라고 아니하셨습니다.

안식일이란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하여야 할 때는 하고 우리의 마음의 병을 고치고  영의 눈이 뜨는 날입니다.

안식일이란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시고 나서 7일 째 되는 날 본인 자신이 쉬시며 천지창조의 기념일로 정하면서 계명으로 우리 인생들에게 지키라고 명하신 날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하루 편하게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우리의 영은 성경말씀 배워서 새롭게 하며 우리의 마음의 병이 고침을 받고 옛사람은 죽고 영의 새사람이 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무엇을 하는 날입니까?

(행15:21)에,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For Moses has been preached in every city from the earliest times and is read in the synagogues on every Sabbath.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 말씀 공부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시었고 사도들도 안식일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 3

(마22:37-40)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들을 인용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이라고 했으니 안식일이 폐하였다고 억지주장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마19:17)에,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요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예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들이 말하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십계명이지요?

 

예 4

(롬14:5)에,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이 구절 가지고 또 많이 인용하며 안식일을 폐하였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 말하는 의미가 안식일이 폐하였다는 것입니까?

그러면 안식일이 폐하였으면 십계명도 폐하였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법은 십계명이 제일 큰 으뜸법인데 그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는 것이네요.

십계명이 폐하였다면 일요일에도 모일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전혀 앞뒤가 안 맞고 논리가 올바로 성립이 안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일 중 아무날이나 우리 맘대로 안식일을 정하여 지키면 되지 왜 하필 일요일입니까?

일년 중 어느 날이나 다 중요한 것으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 입니다. (살전4:16-18)

그러니까 이 구절의 의미는 예배 드리는 날은 날마다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고 억지춘향이도 이런 것이 또 있을 수 있는지.

왜 하나님이 명령하신 안식일을 놔두고 카톨릭이 가지고 들어온 태양신 숭배일을 그것도 성경적으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게 구태여 지키려 합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하루의 개념인 해질 때부터 그 다음날 해질 때까지가 아닌 사람이 만든 밤 12 시부터 그 다음 날 밤 12시까지를 지키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입니까?

하루의 기준도 불법으로 행하고들 있지 않습니까?

정말로 심판날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정죄받아 영원한 풀무불에 들어가고 싶어서 그리들 안달을 하는 것입니까?

 

예 5

(고전16:1-3)에,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교회 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많은 일요일 숭배자들이 이 구절들에서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라” 하였으니 매주 첫날, 일요일에 연보를 낸 것이니 일요일에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 드릴 때에 연보를 낸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연보라고 하였는데 그리스 원어나 영문 번역은 collection, gathering 라 하였고 그 의미가 거두는 것을 말하는데   “헌금이나 또는 기부한 모든 금액을 거두어 간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교인들이 모아 놓은 것을 거두다 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예루살렘 지방에 있는 교인들이 기근이 들어 생활이 궁핍하여 형편이 괜찮은 여러 타지방의 교인들이 기부금을 모아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갔었는데 바울이 권면하기를 주 첫날에 각 사람이 기부할 돈을 따로 저축하여 모아 놓으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각 사람마다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날 일요일에 기부할 돈을 따로 떼어서 저축하여 바울이 올 때까지 간수하였다가 바울이 오면 그 모아 놓았던 돈을 바울에게 다 주라고 한 뜻입니다.

그 고린도에 있는 복음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십일조를 바울이 왜 몽땅 걷어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갑니까?

그러면 고린도에 있는 교회는 어떻게 유지를 합니까?

엄밀히 그 문장의 뜻을 분석하면 예배 드릴 때 교회에 바치는 십일조와 일반헌금이 아니라 타 지방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도와주는 기부금을 (donation) 말합니다.

분명히 각자가 일요일에 그 수입대로 돈을 따로 떼어서 모아 놓으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일요일에 교회 가서 예배 드릴 때 십일조와 일반 헌금을 교회에 내지 않고 개개인마다 여러분 각자가 집에 따로 연보돈을 보관합니까?

십일조와 일반헌금은 그 지역 교회에서 시무하는 복음 사역자들의 생활비와 교회의 유지비를 담당하기 위하여 여러분이 속해있는 교회에 내는 것 아닙니까?

예배 드릴 때에 교회에 바치게 되어있지 그 헌금을 교회에 바치지 아니하고 여러분 각자가 개인적으로 각자의 집에 따로 보관합니까?

 

(고전16:1)을 자세히 보면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이라 했습니다.

그 연보가 성도들을 위하는 기부금인 것이지 교회 지도자들의 생활이나 교회 유지를 담당하는 연보가 아닌 것입니다.

(롬15:25-26)에,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후8:3-4)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고후8:20)에,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고후9:1-2)에,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이 구절에서 보니 바울이 아가야의 교인들이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기부금을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고 마게도니야에 사는 교인들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가 빚진 자들이니 그 빚을 갚기 위하여 십일조 바치는 것과 복음전도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의무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야하는 십일조를 일년 전부터 준비를 합니까?

사도바울같은 교회 지도자가 어떤 지방의 교인들이 십일조를 교회에 낸다고 다른 지방 교인들에게 자랑합니까?

(고후9:5)에,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 구절에서의 연보는 그리스 원어나 영역을 보면 선물(gift) 혹은 후한 기부로(bounty)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전 16 장과 고후 8-9 장에 나오는 연보는 한국어 성경에 번역이 잘못되었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고전16:1-3)에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라고만 하였지 모여서 성경말씀을 가르쳤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예배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장입니다.

 

예 6

(골2:16)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 구절은 일요일 숭배자들이 안식일이 폐하였다고  많이 인용하며 들고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는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날에 어떠한 종류의 음식이나 음료를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하여 폄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안식일이나 절기에 어떠한  종류의 음식을 먹든지  어떠한 종류의 음료를 마시든지 그 음식과 음료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이나 종교 절기에 아무 음식이나 음료를 우리가 원하는대로 아무 것이나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은 순전히 음식과 음료을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하여 바울이 말한 것이지 날(day)에 대하여 논란한 구절이 아닙니다.

 

예 7

(엡2:15)에,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 구절이 또 일요일 숭배자들에게 인용하기 좋은 구절이라 많이 인용하며 안식일이 폐하였다 합니다.

그러면 안식일이 폐하였다 하면 십계명도 폐하였다는 의미이고 십계명이 폐하였는데 일요일은 왜 지킬려고 고집을 합니까?

그러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법을 다 폐하였습니까?

아니지요, 신약에 와서도 십계명은 폐하지 않았지요?

이 구절에서 폐하였다는 율법은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이 행하였던 613조의 일반 율법을 말하는 것으로 소나 양같은 희생물로 제사를 드렸던 구약시대 유대인들의 율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해답이 히브리서 9장과 10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히9:3,7,12,24,25,28)에,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10:1,4,10,11,20 )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 니라.

 

예,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구약시대의 모든 짐승 희생의 제사를 폐하셨던 것입니다.

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안식일이 폐하였다는 것은 십계명을 폐하였다는 말과 같습니다.

십계명이 폐하였다면 일요일에는 왜 모여서 주일날이라고 하면서 성일로 지킵니까?

성경 어느 구절에 십계명이 폐하였다고 한 구절이 있습니까?

성경 어느 구절에 네번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하였습니까?

성경 어느 구절에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라고 하였습니까?

 

(요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15:10)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고전7:19)에,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요일2:3-4)에,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5:2-3)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계12:1)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14:12)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예, 그렇습니다.  십계명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지금  말세지말  바로 이 시대를 무론하고 언제나 동일하고 세상 끝날 때까지 불변하는 것입니다.

 

(창1:3)에,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 구절에서 보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온 우주와 그안에 있는 모든 천하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시고 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기념일로,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라는 증표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날입니다.

(출16:23)에,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출16:29,30)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 육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 칠일 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제 칠일에 안식하니라.

(출20:8-11)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구절들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기 시점 이전에 이미 이스라엘 민족들이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이란 여호와의 안식일이고 거룩하고 복된 날입니다.

 

(출31:13)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겔20:12,20)에,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들의 표징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표징을 버리고 바알신의 표를(계16:2) 받으면 어떡합니까?

 

예 8

(계1:10)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의 주의 날이 일요일이라 합니다.

일요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으니 일요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성경 어느 구절에 주의 날이 일요일이라 하였습니까?

순전히 사람들이 임의대로 갖다 붙인 해석이지 일요일이 어떻게 주의 날입니까?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해석 아닙니까?

일요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일요일이 거룩한 날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성경 어디에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언급하였습니까?

성경 안에는 구약이나 신약이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날이라고 한 구절들은 (출20:10)의 여호와의 안식일과 (마12:8)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어떠한 특정한 날을 여호와의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다 라고 한 기록은  이것들 외에는 성경 안에 없습니다.

일요일이, 주 첫번째 날이 여호와나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지칭한 구절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일요일이 주의 날이라고 주장하는 자체가 성경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임으로 갖다 붙인 것입니다.

태양신 숭배하는 천주교가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어디 반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너무나도 명백한 진실이요 사실 아닙니까?

이 계시록의 구절을 가지고 일요일교회 사람들은  ‘주의 날’이 일요일이라고 주장을 하고 안식일교 사람들은  ‘주의 날’이 안식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둘다 다 틀렸습니다.

 

이 구절의 주의 날은 사도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바로 그 날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계시를 하시고 요한계시록을 쓰라고 명령한 날을 말합니다.

일요일 교회 사람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칭하는데 그 유래는 수천 년 전 옛 페르시아와 로마제국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던 Mithra교 숭배자들이 Mithra신에게 숭배하고 제사하는 일요일(Sun-day)을 자기네들의 신인 태양신 Mithra의 날이라고 ‘주의 날’이라고 부르던 태양신 종교의 오랜 유전입니다.

태양신 숭배하는 Mithra신 종교인 카톨릭교회에서 Mithra교 유전을 좆아서 일요일을 그들이 섬기는 태양신의 제사날이라고 하여 ‘주의 날’이라고 칭한 것을 천주교의 하수인들인 개신교 사람들이 천주교의 유전을 충성스럽게 지키느라 일요일(Sun-day)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니 참으로 슬프고도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종교개혁을 하고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개신교가 초대교회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는  명확하고 뚜렷하게 증명하는 성경 안에 쓰여진 많은 구절들과 정황을 다 무시하고 부정하며 지극히 모호하고 애매한 증명할 수 없는 구절 2-3 개를 가지고 4번 째 계명이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태양신 숭배하는 이방종교 카톨릭의 유전을 지켜야 하는지 참으로 Mystery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유의 깊게 자세히 읽으면 초대교회 교인들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면서 예배 드리고 성경공부 하였던 아주 명확한 구절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구절들에 비하여 지극히 모호한 명확하지 않은 두세개 구절들을 가지고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 보고 성경공부 했으니 네번째 계명은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천주교와 개신교 교리를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조금만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와 연구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진실을 수십 억명의 사람들이  묻어버리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는 명백한 진리를 외면하고  성경에 전햐 근거가 없는 바벨론종교 태양신의숭배일을 고집하는 수십 억명 영혼들,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사람이 만든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지 사탄의 역사가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조화라고 밖에는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막7:6-9, 7:13).

사탄의 악한 역사로 수십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이란  함정에 빠져 멸망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관한 교리 한 가지로 그 많은 영혼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섭고도 경악할 현실입니다.

매주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불법을 행한 자들“이 되어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정죄를 받고 어두운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슬픈 종말을 맞는 불행한 영혼들이 되는 것입니다.

 

(약2:10-11)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십계명 중 하나를 범하면 십계명 전체를 다 범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4번째 계명인 안식을 범하면 십계명 모두를 다 범한자가 됩니다.

십계명 6, 7번 째의 살인하는 죄나 간음하는 죄와 똑같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십계명을 범하면 (마7:23)의 불법을 행한 자가 되어 (마13;41-42)에서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였습니다.

 

 

아래에는 일요일은 하나님 계명의 안식일이 아니다. 링크

그리스도의 안식일은 토요일인가, 일요일인가?일요일이 지켜지기까지의 역사

로마 미트라교(태양신 교)의 제일(祭日)이었던 일요일(Sunday)이 기독교에 유입된 역사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많은 이유는?

안식일-하나님의교회 말씀과 진리요일 제도의 기원과 안식일

안식일이 바뀐 경위 – 안식일 진리안식일은 토요일이다 – ::::::::: 은혜교회 :::::::::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사람들의 유전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막7:9)에서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마15:1-9)에서 십계명 중 다섯번째 계명을 예를 들어가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지 밝히 증거하셨습니다.

(마7:23)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13:41-42)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천주교가 만들어낸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네번째 계명을 폐하는 불법을 개신교인들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15:1-9)에서 사람을 유전을 지키려고 다섯번째 계명을 폐하는 불법행위와 똑같은 방식으로 네번째 계명을 어기는 불법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실 때에  네번째 계명을 토요일이라고만 하시었지 성경 어디에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하셨습니까?

성경 어느 곳에 신구약을 막론하고 네번째 계명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도들이 일요일을 네번째 계명으로 지키었다고 기록된 구절이나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기독교사를 깊히 연구한 분들은 일요일이 예수교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서기 321년에 로마황제 콘스탄틴의 일요일 휴업령에서부터 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사를 기록한 많은 문헌들이나 자료를 조사 연구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internet에도 많은 자료들이 있습니다.

필자가 20여 년 전부터 많은 역사적인 기록들과 자료들을 찾아서 조사하였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많은 수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internet에도 조사하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자료들이 있습니다.

internet 자료들이 다 정확하게 맞거나 옳은 것은 아니나 상당 부분이 진실이고 참고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site들이 무수히 있습니다.

전에는 일일이 큰 도서관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시간 투자와 노력을 했었는데 요즈음 인터넷 발달로 많은 자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  많은  internet site를 이 글과 같이 수록해 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칠일에는 쉬라 네소와 나귀가 쉴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출23:12).

 

예,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우리의 육체가 일주일에 한번 휴식을 취하면서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천지창조 후 제칠일에 쉬시었고 우리에게도 쉬라고 명령을 하시였으니 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지키었고 아담도 지키었고 에녹과 노아도 지키었던 하나님의 계명인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수천년 전부터 지켜오던 하나님의 법이고 세상 끝날까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법으로서 하늘나라 안에도 (계11:19) 법궤 안에 들어있는 십계명으로 세상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친히 지키셨고 초대교회 모든 사도들과 성도들이 지켰던 것입니다.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4:4,9,10).

이와 같이 안식일이란 하나님이 천지창조후 창조기념을 하고 거룩하게 하시었다 하였고 (창2:3) 또 세상심판 이후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가 지상에 있을 때에 나중에 있을  천국에서 영생복락의 영원한 안식을 매주 경험하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눅18:34)에,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눅19:42)에,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여러분들이 사도행전이나 신약성경을 많이 읽었는데 앞에서 인용한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이 안식일을 규례로 지키며 복음전도 하는 구절들도 많이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러한 구절들은 읽었으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며 그 구절들에서 안식일이 불변의 네번째 계명인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감추어 있고 말씀의 진리가 여러분의 눈에 숨기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겔 20: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겔20:20)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네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의 성도들 사이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표인 것입니다.
안식일에 관하여는 성경적으로나 기독교 역사학적으로나 조사 연구 해보지도 않은채 모든 기독교가 천주교나 개신교가 다 일요일을 지키니까, 교회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치니까 일요일은 하나님의 성일이라고 움직일 수 없는 요지부동의 교리로 유전으로 여러분들의 심령에 너무도 깊히 뿌리가 박히어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그 잘못된 생각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과  말씀으로 검증하지도 않은채 습관적으로 따라하는 개신교인들. 

앞으로는 하나님이 권능의 사역자들을 세상에 보내어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단9:19)  하나님의 법을, 계명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자!  이와 같이 일요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키었다는 뚜렷하게 기록되 있는 구절들은 다 부정을 하며 그 뜻이 애매하고 합당하지 않는 구절들을 들추어 내서 일요일을 억지로 주장하는 행태가 많은 역사적인 증거들과 문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로 떼쓰며 우기는 일본사람들과 너무도 똑같습니다.

육이오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조잡하게 날조하여 우기는 북한 빨갱이들과 너무도 똑같습니다.

 

 

 

 

안식일이 폐해질 수 없는 이유

은혜 시대에 폐해져서 지킬 필요가 없는 율법은 모세의 율법입니다. 예를 들어 제사법, 각종절기, 결례법, 민법, 형법 등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율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완성하시고 폐하신 그림자요 모형인 것입니다(골2:14, 히9:10, 10:1).

그러나 십계명은 여전히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도덕법입니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전7:19, 참고 요일5:2-3).

 

바울 사도는 율법의 폐지를 가장 강력히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그리고 그의 서신을 살펴보면 그는 많은 반대와 핍박 속에서도 율법이 폐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계명은 지켜야 한다고 또한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십계명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율법은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지만 십계명은 여전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안식일의 계명이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이 바뀔 수 있다면 다른 계명도 바뀌거나 폐하여 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성경에서는 십계명 중 단 한 계명만 범한다 하더라도 모두 범한 것이 되므로 한 계명 한 계명 성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 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2:10-11).

 

그러므로 십계명은 한 계명이라도 결코 폐해질 수 없으며 성도가 지켜야 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바울 사도는 또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이곳에서의 율법은 십계명의 율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계명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던가 혹은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인간의 무능력 때문에 이를 다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속죄를 통하여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에 폐하여 진 것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율법은 성도들에게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마22:36-40), 선악을 알게 하여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도록 하실 목적으로 계속 유효한 것입니다(롬7:7). 다만 율법 아래서와 같이 구원의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행동의 기준과 상급의 기준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시대라고 해서 이 십계명 중 한 계명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굳게 세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철저히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계명을 폐하게 되면, 계명을 다 못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계명을 폐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결과가 오게 됩니다(계22:18-19).

폐하지 않고 굳게 세운 후 지키려고 노력하되 지키지 못한 부분은 십자가의 은혜로 회개하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에 십계명에 있는 안식일을 지킨다고 해서 결코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분명히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4:16).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행17:2).

이곳에서 볼 수 있듯이 너무도 명백히 예수님과 바울 사도가『자기의 규례대로』안식일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시대 초기부터 구원은 은혜로 얻되 구원의 유지는 모세 율법을 준수하고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최초의 기독교 이단입니다.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행15:1).

이에 대해 바울은 그들의 주장을 강력히 반박했으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도 회의를 통해서 모세 율법은 폐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행15:10-11).

율법 준수에 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바울 사도가 어찌하여 자기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켰겠습니까?

그들은 그 당시 일요일 준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오직 계명에 따라 안식일을 충실히 지켰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바울 사도의 충실한 동역자인 누가에 의해서 씌여진 것으로 당시에 십계명과 안식일의 준수가 철저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 재림 때까지 지켜져야 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0-21).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예언하시며, 동시에 말세에 있을 최후의 대환난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대환난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말세가 되기까지 안식일은 변함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어야 했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십계명의 안식일은 제7일에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주(週)의 첫날로 바꿔져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파에서는 십계명의 안식일을 폐하고 일요일을 안식일 대신 지키라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십계명을 폐한 책임을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폐한 죄도 엄청난 것인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앞장서서 안식일을 폐했다고 주장하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결코 안식일을 폐하려고 했거나 일요일을 주일로 정하여 지킬 것을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정신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표현인 십계명을 지키고 안식일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의 당연한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십계명을 굳게 세우고 힘써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라』(요일5:3).

 

 

 

제 칠일 예수 재림교회의 안식일 교회는 참교회인가?

그러면 많은 분들이 안식일교회가 (정식명칭-제칠일 예수 재림교회) 진리의 교회인가 라고 반문을 할 것입니다.

대답은 아주 명확하게 아닙니다.

안식일교회는 그들이 주장하는 안식일 하나만 옳은 진리이고 나머지는 너무나도 비성서적인 교리들을 주장합니다.

 

첫째, 저들은 지옥이 없다고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지옥에 대하여 기록이 되어 있는데 제일 부인할 수 없이 뚜렷한 곳이 (막9:47-49)에 있습니다, 두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

(마5:22)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18:9)의 지옥불,  (마25:41)의 영영한 불, (마25:46)의 영벌, (마23:33)의 지옥의 판결, (막9:43)의 꺼지지 않는 지옥불을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을 다 부인합니다.

(눅12:5)에,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요5:29)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마43:41-42)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안식일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은 그 존재가 다 없어지고 사멸된다면 저들이 울며 이를 갊이 있겠습니까?

(눅16:20-31)에 나오는 거지와 나사로의 얘기는 어떻게 부정을 할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신 말씀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성경 어느 구절이나 어느 말씀보다 우선이 되야 하고 창조주 바로 그 분의 말씀입니다.

(요5:39)에서 모든 성경이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부정하면 그 종교는 이미 예수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사후에 지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수를 믿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살아 생전에 힘들게 하고 싶은 짓 못해가며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절제해가며 괴롭게 어렵게 생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싫컷 하고 싶은 짓 다 하다가 죽으면 그 뿐인데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왜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 하느냐”라고 물으면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기 때문에 잔인하게 사람을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다 합니다.

세상에 이러한 그럴듯한 사람들의 생각과 논리로 성경과 전혀 상반(相反)되는 거짓말을 날조하여 여러분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안식일 교회가  여호와 증인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교파라고 말합니다.

안식일 교회 교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호와 증인 교파 교리와 거의 똑같습니다.

지옥이 없다는 “무지옥론“도 여호와 증인 교리에서 배운 것입니다.

다른 점은 안식일을 예배일로 지킨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예수님의 신격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교회 교인들이 들으면 원한을 살 얘기지만 안식일교회 창립자 (Founder) 엘렌 지 화이트 라는 여자는 악령이 그 안에서 역사하였던 사람입니다.

그 여자의 외모도 귀신들린 모습이였습니다.

그까짓 안식일 하나만 계명으로 지킨다 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종파 중에서 최고로 악한 종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안식일파의 안상홍의 “하나님 교회”입니다.

제칠일 예수 재림교에서 갈라져 나온 사교(Cult)인데,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키는 종교이며 안상홍이 천지를 청조하였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사악한 이단 종파입니다.

문선명의 통일교나 신천지의 이만희 보다도 더 사악한 종자들입니다.

 

그리고 장길자라는 한 여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있다.

천지창조를 하였다고 가르치는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장길자는 하나님의 아내 여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그 옛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렇게 끈질기게 섬기던 니므롯의 바알신을  남신으로 (male god) 숭배하고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를 아세라 여신으로(female god) 숭배하던 바벨론종교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재현한  코미디 같은  저질스러운 거짓 종교입니다.

코미디도 이런 저질 코미디가 없으며 “개그”도 이런 막장 개그가 또 세상 어디에 존재할까요?

 

인류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사악한 종교 사기집단  “일명 안상홍의 증인회(안증회)”  (당당 뉴스) Web Link

 

                                                              위의 사진은 장길자와 안상홍

 

아래에는 Ellen G. White에 관한 동영상

false prophet Ellen G White

 

 

 

토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교단들은 거의가 다 지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교단들이 영혼사멸을 주장할 때에 주로 들고 나오는 성경구절이 (말4:1)인데 그 구절의 의미가 지극히 애매모호합니다.

(말4:1)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이 구절의 의미는 악인은 그 영혼이 멸망한다는 비유의 표현인데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뜻이 분명한 지옥과 영벌에 관한 구절들은 다 부정하고 그 뜻이 지극히 애매한 구절 하나 가지고 지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지요?

 

사도들과 초대교회 교인들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분명한 구절들을 다 부정하고 그 뜻이 지극히 애매하고 합당하지 않는 구절들 몇개 가지고 일요일을 주장하는 카톨릭이나 그 하수인 개신교 일요일교회는 어떻습니까?

안식일 교인들하고 아주 비슷하지 않습니까?

둘다 다 억지를 쓰는 것이 코메디 아닙니까?

두번째 성령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도데체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으며 방언도 부정하는데 심지어 방언이란 개구리 귀신들이 아우성 치는 소리라고 합니다.

보혜사 성령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성령과 방언을 부정하며 모독하는 자들입니다.

안식일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로서 안식일만 잘 지키면 예수 잘 믿는줄 아는 맹물단지같은 사람들입니다.

 

안식일을 또 하나의 우상으로 섦기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만 잘 지키면 예수를 아주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안식일하면 제칠일 예수 재림교회를 떠올리는데 사실은 제칠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교단이 전 세계적으로 약 500개도 더 됩니다.

그 중에는 침례교 계통의 안식일 교회도 있고 하나님 성회 계통의 안식일 교회도 있으며 오순절 계통의 안식교도 있습니다.

내가 지난 20년 이상을 전 세계에 있는 안식일 교파들을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거의 모든 안식일 교파들이 안식일만 중요시 하며 강조하는데 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법은(롬3:27) 전혀 깜깜하기만 합니다.

그들 중 오순절 계통의 안식일교파들이 조금 나은 것 같으나, 성령과 방언을 중요시하며 가르치기는 하는데  성경의 감추어진 말씀비밀의 해석은 전혀 하나도 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자들도 역시 지옥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단순히 방언과 안식일에 관한 것은 맞는데 성경 안에 감추어진 중요한 성령의 법은 전혀 모르는 맹물단지들입니다.

 

거의 모든 안식일 교파들은 지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개중에는 참예수교회 라는 교파가 있는데 1917년에 중국에서 시작하여 여러나라로 전파가 되었고 한국에도 약 6000명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안식일, 성령, 방언등 진리의 기본지식에는 충실한데 감추어진 성경의 진리 비밀은 전혀 모르는 엉터리 교리들로 범벅이 되있습니다.

일반 일요일 교회들의 이론과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참예수교회 사이트 –  weblink

참예수교회는 구원받는 유일한 교회이다 20180929 김세한 목자 –  Weblink

 

 

수년전부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일이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란 것을 깨달은 여러 개신교 목사들이 펼치고 있는 하나님의 4번째 계명을 회복시키는 운동이 현재는 미미하지만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안에 감추어진 진리의 비밀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고 안식일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비진리의 맹물들입니다.

 

“진찾사” 라고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하는 단체인데 주로 제칠일 예수 재림교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모임인데 초대교회 사도들의 진리는 전혀 모르는 맹탕들끼리 모여서 진리를 찾는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겨우 안식일이란 진리 하나만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진리를 찾는다고 하니 정말 웃기는 사람들입니다.

참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아마겟돈성경연구회 Weblink

아마겟돈성경연구회권혁황목사

아마겟돈성경연구회권혁황목사

안식일을 지키는 장로교목사 소개합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진찿사)

한성호 목사 – 일요일예배 성경에 있는가?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켜야 한다.

여러분, 이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를 믿으세요.

지나간 세월 누가 한 사람 가르쳐 주는 사람 하나 없고 온 기독교가 일요일을 지키니까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의 오래된 유전으로 덩달아 안식일을 범하고 계명을 범하였으나 이제는 알았으니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십시요.

그것도 성경상의 하루로 지켜야 합니다.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입니다.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키고 일요일에도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죄가 아니요 하나님도 좋아하십니다.

일요일 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매일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 드리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안식일은 하나님의 계명이니 반드시 지켜야 하고 우리 몸이 하루 휴식을 취하며 성경말씀 깨우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거룩하고 복된 날입니다.

 

사탄이 이 네번째 계명 하나 가지고도 거의 전 인류를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서 하루 바삐 능력있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출연하여 철장으로 사탄의 공중권세를 질그릇 부수듯이 부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부디 철장을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이 땅위에 회복시키는 복음의 사역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있을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십계명부터 회복하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제 8 장은 아래에 있는 링크에 있습니다. >>>>>>>>>>>>>>>>>>

제 8 장 – 우리시대의 바리새인들은 누구인가?

Written by gospel mission

2012/02/18 at 2:22 PM

제 7 장 - 십계명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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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우리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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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거짓말 하는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무리이다 (Pharisees who tell spiritual lies are brood of vi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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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10:11)에,  “방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무용하니라”

 

위의 구절이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는지 아십니까?

물론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그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알려고 하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뱀을 잡는 자를 한국에서는 땅군이라 하지요?

그 땅군이 실수나 혹은 뱀잡는 훈련이나 기술이 부족하여 뱀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독사에게 물려 죽으면 그 땅군의 구실과 임무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뱀은 그 영적의미가 무엇입니까?

거짓말로 하와와 아담을 속인자들이지요?

(마23:33)에서 예수님이 누구들을 가리켜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셨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였지요?

(마3:7)에서 세례요한도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러면 그 영적 뱀들은 그 당시에만 있었고 지금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께서 뱀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 무리들로서 그 당시에는 가장 성경에 능통하고 성경지식이 풍부한 자들이고 유대 율법과 관습에 정통하고 가장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며 또 일반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신앙의 교육자들이고 교회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을 뱀이라고 지칭하셨나요?

거짓말로 하와를 속인 것처럼 거짓 교리와 거짓 하나님 말씀으로 교인들을 속이기 때문에  뱀이라고 요한이 부른 것입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복음서 여러구절들에 나와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23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롬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여러분들은 바리새인들이야  2000년 전 예수님 당시 때의 사람들이라 생각하겠지요.

지금  우리 시대의 기독교 안에 무슨 바리새인이 있겠는가?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그 옛날 바리새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별 미친 헛소리를 다 한다고 할 것입니다.

당시 예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짓었던 그 바리새인들은 위선자들이고 교만한 자들이니까 요한이 책망한 것이지 우리시대 기독교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여러분들은 반드시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왜 당신은 뱀에 대하여 언급을 하며 위의 구절을 인용하는가?

그러면 그 뱀들은 누구를 가리키나?

그 이유를 말해보라 라고 역정을 낼 겁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경에 기록되 있는 전에 있었던 사건들이나 사실들은 후세에 반드시 영적으로 다른 형태나 모습으로 재현이 되고 또 이루어진다고 앞에서 여러번 언급하였지요?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구약시대에 있었던 모든 사건 하나하나가 다 후세에 와서 영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고 하였지요?

우리가 흔히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다 라고들 말하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도 그들이 그 바리새인들과 뱀들이 존재하는데 그 숫자와 힘이 어마어마하고 그 조직들 또한 거대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도 없는 거대한 난공불락의 바벨론성인 것입니다.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자가 여자의 후손인데 (창3:15)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요?

그 뱀들의 머리를 때려 부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맨손으로 때려 부술 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는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예수께서 직접 그 권능으로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수천 년 전에 솔로몬 선지자가 아직 하나님의 능력도 없고 아직 보내심을 입지도 못한 풋내기 내지는 돌팔이 복음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의 은사를 받기 전에는 경솔하게 나서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교훈으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한 교훈입니다.

아직 영적으로 믿음과 신격이 완성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은사도 받지 못했는데 괜히 어설프게 나서다가 뱀들에게 당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뱀들에게 물려 죽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보다도 더 무모한 짓일 것입니다.

우리가 철장이 (rod of iron, 철로 만든 지팡이) 있어야 그 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수가 있는데,  (계2:26-27, 12:5, 시2:9)에 나오는 철장입니다.

이 철지팡이 없이는 저 많은 뱀들을 때려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옛날 모세가 출애굽 할 때에 전무후무한 기적들을 많이 행하였는데 그는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의 권능의 기적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때 사용했던 지팡이는(출 14:16, rod ) 나무로 만든 것이니 그 지팡이가 철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힘과 능력이란(단2:40)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하는데 (고전 12:10)에 있는 능력(miracle)을 행하는 은사를 말합니다.

즉 모세가 행하였던 이적기사,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은사입니다.

 

 

 

엄청난 숫자의 군인들과 무기로 무장한  바벨론의 군대,  바리새인의 군대

(나3:2-3)에 획획하는 채찍소리 굉굉하는 병거바퀴소리 뛰는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같은 창.

이 구절은 엄청난 숫자와 자금으로  조직되어 있는 앗시리아의 군대, 바벨론의 군대,  바로의 군대를 상징합니다.

마병대의 군대, 니므롯의 군대는 그 수자가 이만만이라 했습니다. (계9:6)

2 억명라는 뜻입니다.

2 라는 수자는 성경에서 대적을 의미하는 수자인데  10,000이 두번이나 붙었으니 완전 대적의 극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죽어서 악령들을 통솔하며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 니므롯과 니므롯의 군대를 말하는데 지상에서 니므롯의 하수인 노릇하는 바리새인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수십년 간 말과 언변으로 훈련하고 다지어진 저 말쟁이들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고 자기 자신의 불의와  싸워 이기는 자들에게는 모든 대적을 이기는 지혜와 언변을 주신다 했습니다.

(눅21:15)에,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mouth) 지혜를(wisdom)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언변과 이적의 능력으로 저 말쟁이들을 다 이길 수 있는 것이지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내심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2:4).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살전1:5).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4:19-20).

 

어느 누구도,  (계2:26-27)에서 이기는 자는 철장을 부여받는다 했으니, 그 누구도 나도 또 여러분들 중의 그 누구도 한국사람이든지 혹 미국사람이든지 어느 민족의 사람이든지 그 철장을 부여받으면  그 무기는 수소폭탄이 되어 한방에 그 많은 마귀 군대 영적 빨갱이 군대를 다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철장으로 니므롯의 머리를 부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니므롯 군대와 싸우려면  니므롯 보다도 더 강하고 힘있는  하나님이 주신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철장입니다.

 

 

 

돈과 명예를 좋아하는 탐욕의 가증한 바리새인들

잔과(cup)  대접의(platter)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23:25)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눅11:39)

(눅16:14)에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막12:40)에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막12:40)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23:16).

삵군은 목자도 아니요 (요10:12).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15).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마3: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23:13,23:33).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눅11:52).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기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23:15).

바리새인들이 사방으로 휘젓고 다니며 교인수자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러한 바리새인들에게 걸린 교인들은 그 바리새인들 보다도 배나 지옥자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회칠한 무덤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눅6:14).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15:6).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15:9).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15: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니 (요10:1).

나보다 먼저 온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요10:8).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막7:9,마15:3).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단9:27)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24:15,16).

이 구절의 멸망의 가증한 것은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는데 바리새인들이 교회 강단위에서 중구난방으로 자기네가 만들은 사설을 지껄이는 것을 뜻합니다.

산으로 도망하라는 의미는  진리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의 교회로 도망가라는 뜻입니다.

얖장에서 성경에 산은 교회를 뜻한다고 하였지요?

(단9:27)과 (마24:15)에 나오는 미운 물건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 동일한 존재를 말하는데 히브리, 헬라 원어나  영어성경을 보면 abomination of desolation  으로서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빈들이나 광야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즉 성령이 없는 가증한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그릇(대접)처럼 겉과 속이 달라서 겉은 깨끗해 보이는데 그 안은 모든 욕심과 위선과 교만과 불의로 가득차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오시기는 커녕 악령이 들어와 영적으로 온갖 악한 짓을 일삼으며 영적 거짓말과  비진리로 수많은 생명들을 지옥으로 보내며 돈은 돈대로 빼았으니 예수님이 강도의 소굴(마21:13)이라 하였고 세례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대접재앙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했지요?

그 계시록의 대접재앙이 바로 바리새인의 재앙을 영적으로 계시한 것입니다.

진리의 올바른 영적해석을 하면 이와 같은 숨겨진 비밀이 나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롬2:22)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바리새인의 대표입니다.

(막12:4)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탐욕의 이리, (눅16:14) 돈을 좋아하는 늙은 뱀, 신자들의 영혼을 삼키는 용 느부갓네살 조용기.

요즈음 들어 특히 한국 개신교 목사들의 교회돈 횡령과 도적질 그리고 간음죄로 범벅이 된 추악한 죄악상이 자주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조용기 목사입니다.

신전(교회) 물건을 도둑질 하는 조용기 강추

어디 조용기 뿐입니까,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 거의 다 도둑들이지요.

고 한경직목사와 옥한음목사를 제외하고.

간혹 심령이 깨끗한 목사들도 있기는 합니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하나님의 말씀이 혼합된 개신교

우리가 흔히 목사들이 설교하는 것을 대언(代言, Prophesy) 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에서 나온 말, 예수님의 에서 나온 말, 사도들의 입에서 나온 말, 은사의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교인들에 전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성경에 있는 말씀에 위배되거나 성경에 없는 자기 스스로 심령에서 만들어 낸 엉터리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사45: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사59: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5:2), 예수께서 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마13: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행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엡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계1: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앞장에서 입은 문(door)을 영적으로 상징한다고 밝혔지요?

 

(겔13:3),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를 전해야지 이 사람 저 사람 제각각 중구난방으로 자기들의 심령에서 만들어 낸 사람의 소리로 떠들어 언어혼잡을 일으켜 바벨탑을 쌓으면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겔13:3)에 자기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렘23:30), 내 말로 도적질하는 선지자.

(렘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였도다.

(겔13:13),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

 

 

 

지금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누구인가?

여러분, 우리 시대에 바리새인들이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지칭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회칠한 무덤인데 그 속이 악하고 더러운 대접을 땅에 쏟으면 (계16:2)  대접재앙이 됩니다.

짐승의 표 받은 사람들을 독종재앙으로 (출9:10)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독사들이 나팔을 부니(계8:7)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져서 나팔재앙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우박재앙으로(출9:24)  수목의 삼분의 일을 태워 죽이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하기를 출애굽기의 열가지 재앙이 요한 계시록에 다 있다고 하였지요?

그 요한 계시록에 있는 모든 재앙들과 예언들은 다 지금 우리 시대에 바로 이 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하였지요?

땅이나 수목은 영적으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하였지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대접재앙과 나팔재앙을 거의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이 예수 재림 때 세상 심판 이후에 있을 재앙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들은 대접재앙과 나팔재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재앙들은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눈먼 장님들이라 하신 것입니다.

 

나팔 부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사58:1)에서 보면 목사들의 설교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제발 대접재앙나팔재앙으로,  독종재앙우박재앙으로 멸망하는 여러분들이 되지 말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눈이 열려서 그러한 악한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여서 그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배척하시고 태양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짐승의 표를 받지 마시길 바랍니다.

전에는 개신교 안에 숨어 들어와 있는 바벨론의 사탄의 교리들을 모르고 행하였으나 이 글에서 여러 가지가 밝히 들어났으니 이제는 카톨릭이 만든  모든 바벨론의 유전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그 귀신의 처소, 각종 더러운 영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인 모인 바벨론 성에서(계18:2) 나오세요.

그 귀신의 처소 바벨론 성에서 나온 여러분들을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로(슥3:10) 초대하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복음의 진리로 인치움 받아 영혼 구원 받고 영생의 복락을 누리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장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

제 9 장 –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회복

Written by gospel mission

2012/02/18 at 1:51 PM

제 10 장 결론

with 2 comments

결론 (Conclusion)

 

 

노아홍수와  바벨론탑 시기부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시대 까지  인류의 종교사를  전반적으로 역사적인 사실과 기록에 기반을 두고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노아홍수 이후 지나간 세월 4000여 년의 인류역사 속에서 사탄이 언제부터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의 역사를 시작였는지에 관하여 다루어 보았습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하나님 교회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기며 우상숭배를 하였는지도 탐구하여 보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와 바벨론종교 교리를 비교 연구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복음을 전반적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구절들을 짚어가며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인지 분별하여야 합니다.

하와와 같이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먹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분들이 나는 하나님의 지식을 알고 있다고 자부할 것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천국가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우리의 죄는 이미 사함을 받았으며,  만일 네가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요3:1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13).

위의 구절들과 같이 예수 믿는 것이 간단하고도 쉬운 것인데 무얼 그리 복잡하게 성경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졌다고 하고  니므롯,  태양신,  바벨론종교,  천주교,  뱀,  바리새인,  안식일, 하나님의 법,  성령의 법,  생명과와 선악과 등  장황하게 늘어놓았는가?

생전 듣어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엉뚱하고  이상한 소리만 진술하였는데 그러한 것들이 다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러한 것들은 다 당신이 지어낸 당신의 사설(私設) 아닌가, 궤변아닌가?

예, 당연하고도 당연한 반문이십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영혼을 쉽게 아무에게나 내어 맡기면 아니됩니다.

영혼은 불멸이라 우리의 육신이 죽은뒤 그 영혼의 세계는 영원하기 때문에 어떠한 교리가 진리인지 거짓인지 세밀이 따져서 분별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그 분별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첫째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안에 있는 내용을 어느정도 훤하게 알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사람의 영혼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하지 아니합니까?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부귀영화보다도 혈육보다도  사랑하는 연인보다도 더 귀하지 아니합니까?

우리는 이 귀중한 우리의 영혼을 우리 스스로가 노략질 하는 이리들로부터,  영혼 빼앗고 돈 뺏아가는 거짓 무리들로부터 여리고의 강도들로부터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16:26).

 

 

개신교  안에  들어와  있는 니므롯의  바벨론  종교  교리들

이 글의 제 1장에서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하는 때부터 현재 말세지말의 바로 지금 이 시간까지 사탄의 악령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며  바벨론 종교의 거짓복음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유혹하였는 것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그 죽은 니므롯과 그의 아내 붉은 빛 짐승을 탄  음녀가(계17:3) 죽어서도 구교와 신교 안에서 악한 역사를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악한 영들이 우상숭배로 온 인류를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태양신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 로마 카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개신교 안에도 니므롯을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의 교리와 유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구교인 천주교와 그의 자매 개신교의 영적 간음에 관하여 에스겔 23장 에 자세히 영적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오홀라는 로마 카톨릭을 가리키고 오홀리바는 개신교를 말합니다.

 

이제  이 타락하고 부패한 전세계  기독교를 제 2의 종교개혁으로  바로잡아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로 돌이켜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복음에서 변질된 뱀의 거짓말로 속이는 바리새인들에게 더이상 농락당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이 역사하신 참개혁이 아니라 사탄의 속임수였습니다.

사탄이 달의 여신 세미라미스의 교리와 토속신앙을 혼합하여 만들어낸 이슬람 종교처럼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태어난 개신교는  태양신의 교리와 하나님을 말씀을  섞어 혼합한 또 다른 바벨론 종교입니다.

천주교는 90%가 바벨론종교 교리이고 10%가 성경말씀인데 반하여 개신교는 10%가 바벨론교리이고 40%가 성경말씀이며 50%가 바리새인의 누룩인 혼합종교입니다.

천주교 =  바벨론 교리 90% + 성경말씀 10%.

개신교 =  바벨론 교리 10% +  성경말씀 40% + 바리새인 누룩 50%.

 

즉 바리새인 누룩이 반이상 섞인 섞은 잔인데 (계18:6)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와 바리새인 누룩과 음녀의 더러운 물이 섞인 선악과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는 반드시 정결하고 흠없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누룩이 반이요 태양신의 쑥물이 섞인 악하고 더러운 제물을 드리면 하나님이 열납을 하시겠습니까?

바리새인의 누룩은 무엇을 말합니까?

거짓 목자들이 강대상에서 자기 생각대로  제멋대로 하나님 말씀을 바벨론 상품과 자기 사설(私設)과 섞어서 반죽하여 멋있고 설득력 있는 상품으로 포장하여 뱀의 선악과를 만들어 중구남방으로 떠들어대는 사람의 소리 아닙니까?

바벨론 상품을 사고팔고 하니 성경에 그곳을 장사하는 땅이라 하였고 바벨론성이라 한 것입니다 (겔16:29, 17:4).

어떻게 보면 바벨론 교리보다 더 더럽고 악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또 어떤 분들은 천주교는 바벨론 교리가 90% 인데 개신교는 10% 밖에 안되니 개신교가 천주교보다는 좀 낫지 않겠느냐 라고 할 것입니다.

예,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누룩이 반 이상을 차지하니 전혀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훤하게 알 때까지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목사들이 하는 설교들을 잘 분별하여서 그 중에서 성경적으로 맞는 말과 그리스도의 진리는 마음으로 취(取)하시고 비성경적인 내용의 말과 바리새인의 누룩과 바벨론종교 교리는 다 골라내어 배척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있을 종교개혁은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기 688년 경에  지상에서 소멸하였던 초대교회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개신교의 뿌리인 천주교에서 물려받은 바벨론종교 교리를 우리는 이제 밝히 알고 깨달아서 그 모든 이방종교의 교리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모든 바벨론 종교의 교리와 이론과 유전에서 완전히 단절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앙과 말씀의 뿌리를 바벨론 종교 카톨릭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말씀의 내용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직접 가르치고 훈련하신 12 사도들이 성경에 기록한 초대교회 복음을 우리는 밝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보혜사 성령시대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법이 무엇인지 알아서 성령의 법대로 올바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였고 (롬8:9) 예수를 주라 부를 수 없다 하였습니다 (고전12:3).

여러분 모두가 초대교회 복음의 참 진리를 깨달아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복음의 진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성령의 법을  따라서 올바른 신앙으로 승리하고 구원 받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

태초에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였을까요?

널리 알려진 바와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였지요?

이 백성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라 (사43:21).

새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시40:3).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찬양할때는 수금과 비파로 찬양을 하였는데 신약시대에는 무엇으로 우리가 찬양을 해야 하는지 알아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새 노래인(계14:3)  하늘나라의 언어로  성령의 영기도로  찬양하십시요.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로(계15:3)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바알에게  무릅꿇지 않은 7000 인과 남은 자들

(롬9:15,17,18)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율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느니라.

(출33:19)에,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롬9:27)에,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

(사10:20-22)에,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 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롬11:4,5)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부디 여러분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인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자가 되어 구원을 받는 복있는 천국백성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글로서 남기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읽게 허락이 아니되어 있습니다.

제물은 반드시 그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먹게 되어 있습니다 (고전10:18).

믿음은 들으면서 나나니 (롬10:17).

반드시 말로 설교하고 듣는 자가 귀로 듣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원칙을 어기어 가며 이 글을 쓴 나에게 하나님의 책망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 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 (시90:4-12).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1:24,25).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6,17).

예,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덧없는 것이니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영생의 복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다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도복음 선교회

강 마이크 선교사       2012년 2월

사도복음 선교교회 글은 2012년 2월에 쓰였으며  그후로 글 내용을 조금 보완하였고 일부 수정하였음.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됨을 우리가 알리라 (사41:21,22)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찿으리라 (전11:1).   아멘

(전11:1)해석 – 너는 네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라 그러면 세월이 흐른 후에 그 말씀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리라.

이 글과 함께 참고가 되는 여러 개의 internet site 들을 blogroll 안에 수록하여 놓았으니 찾아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밑에 있는 Link 클릭하여 제 11 장을 읽어보세요

제 11 장:  DEEP STATE – 카자르 유태인

 

 

사도복음의 진리를 전파하는 전세계 유일한 참목자가 한분 계십니다.  

밑에 있는 Link 에서 찾아보세요.

 

진리의 사도 – 황익성 목사 (용인 엘림 생수 교회) Web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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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도복음’ 진리를 전파하는 진리의 사도, 용인 엘림생수 교회 황익성 목사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면서

올해는 종교개혁 500 주년의 해이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바벨론종교 카톨릭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성경에 쓰여 있는 초대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돌아가자고 생겨난 개신교(Protestantism, Reformed Church).

과연 그 종교개혁은 성공하였는가?

잘못된 카톨릭의 기독교 교리를 성경의 진리로 돌이켰는가?

마틴루터를 위시한 여러 성직자들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하나님의 역사였는가?

중세의 가증한 카톨릭보다 더 타락하고 부패한 현재의 개신교.

 

요즈음 많은 사회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지각이 있고 양심 있는 많은 종교단체에서 말하기를 특히 한국 개신교는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언론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사회적 이슈이다.

많은 일반인들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그러한 거짓교회를 강도의 굴혈이라고 말씀하시었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바벨론의 영적 거짓말로 영혼 빼앗고 돈 뺏어가니 강도들의 소굴이라 지칭하셨지 않나.

 

기독교사 2000년 동안 하나님에 의한 참역사의 종교개혁은 아직 일어난 적이 없다.

이제는 참종교개혁이 일어날 시기가 무르익었다.

엘리야의 3년반 기근이 서기 1900년 전후로 끝나면서 늦은비 봄비의 성령의 역사가 이 지구위에 내리고 있다.
1900년 이후로 1260년의 가뭄이 가시고 난 지금은 봄비의 아주 미약한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해갈은 되고 있지 않다.

어서 이 땅위에 진리의 말씀이, 성령의 소낙비가, 장마비가 내리기를 간구하며 기도하자. (슥10:1, 겔34:26)

(슥10:1)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겔34:26)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신32: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

(계11: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암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60년 동안 이 지구상에 성령의 진리 말씀의 비가 내리지 않았던 영적 기근이 있었다.
서기 640년 – 서기 1900년. 엘리아의 3년반 기근.

(계11:1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계11:6)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바알신을 숭배하는 바벨론종교가 사탄이 행한 악의 역사가 1260년간 지구위에 하나님 말씀의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였다.

성경의 하루는 영적으로 1년.

 

 

어찌 금이 그 빛을 잃었는가? 

아!  슬프다.  떨어진 샛별이여.

늦은비 봄비 후천년왕국 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렵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지식의 은사자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실패한 선지자가 되었는가?
어찌하여 범죄하고 하나님이 주신 크신 주의 능력을 땅에 쏟아 버리고 하나님의
인류 구원 역사를 오랜 세월 수십년을 뒤로 후퇴하게 하였는가.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성읍에 있는 자들은 칼과 기근과 염병에 삼키우고 남은자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구나.

 

예수님, 종(the late old servant) 노관영 목사가  못다한 꿈을 내가 이루게 하소서.

나는 사울왕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버림 받는 실패한 복음사역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다윗왕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게 하소서.
실패한 노종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시고 엘리야와 모세처럼 영원히 성공하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나를 보내시고 모세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소서.

내가 전심전력으로 노력하겠나이다.

이 타락하고 변질된 기독교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진리로 종교개혁을 하게 하소서.
저 귀신의 처소 바벨론성을 멸하시고 태양신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 말씀의 진리를 이 지구위에 회복하게 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어 주소서.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애 5: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열조와 조상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이제는 노종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그 진노와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노종이 세상을 떠난지가 30년이 지났나이다.
우리 후손들에게 긍훌을 베풀어 주시어 영육간에 형통함을 주시옵소서.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리스도의 진리로 인도하게 하소서.
아멘.

 

이사야를 보내셨던 하나님 나를 보내소서.
바벨론신, 바알신 우상 숭배하는 저 완악하고 패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깨우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나에게 모세의 능력을 입히우소서.
아멘

어서 이 궁핍과 비천에서 나를 건져 내시고 길을 열어 주소서.
아멘

 
 
 
노관용 장로
 
1987 년에  운명하신   故 노관영 목사
 
 
 
 
 
 

아래는 타락한 개신교에 관한 링크

한국 교회,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 :: 물병자리 시대의 여명

개신교 역사상 한국 교회 가장 타락”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F.G. : (뉴스) “개신교 역사상 한국 교회 가장 타락

 

 

아래는 제 2의 종교개혁에 관한 링크

종교개혁 기획① “한국교회, 제2의 종교개혁 필요하다” – 크리스천노컷

‘한국교회 ‘제2의 종교개혁‘해야’ | 연합뉴스

한국교회언론회 “제2의 종교개혁 필요” – 노컷뉴스

행사 설교 – mission –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빛과 흑암의 역사: 제2의 종교개혁을 꿈꾸며

 

Written by gospel mission

2012/02/18 at 1:45 PM

제10 장 - 결론에 게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