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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
사도복음 (the Gospel of the Apostles)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죄 없으신 창조주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죽음으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3 일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었지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회개하면 죄사함 받고 영원한 정죄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갈 수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간다.
이와 같은 교리는 이상한 사이비 이단 거짓 기독교 교파들이 가르치는 교리들이 아닌 것 외에는 기본적으로 다 어느 기독교파나 다 가르치는 교리이고 또 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잘 믿어야 하는데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이며, 신약시대 즉 보혜사 성령시대에 어떠한 방법으로 예수를 믿어야 우리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법대로 불법을 행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섦기는 것인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법대로, 방식대로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 신앙은 헛 것이요 그 신앙은 그 대상이 예수가 아니고 다른 신, 다른 주, 다른 하나님, 다른 복음(갈1:8-9)이 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마7:23)에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마13:41-42)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두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불법: 희랍어 성경 원문 – anomian – ἀνομίαν – lawlessness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불법의 단어는 모두가 다 ἀνομίαν로 기록되어 있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위 구절들에서 나오는 “너희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예수를 잘 믿지 아니했던 사람들입니까?
그냥 건성으로 일요일에 교회나 왔다갔다 하면서 예배나 드리며 성경 통독 한번 안해보고 대충 믿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니지요, 오히려 그 본인들 자신이 자기네들은 예수를 아주 잘 믿고 선한 행실도 많이 하여 자기네들은 천국가는 것으로 확신하는 자들(마7:22) 아닙니까?
그 구절을 자세히 보니 그 자들이 그 날에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들을줄 알았는데 오히려 책망을 들으니 의아해 하면서 억울하여 예수님께 항의하며 반문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내쫓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것도 “주의 이름으로” 하였지 않습니까?
그들의 생활을 예수님께 바치면서 열심으로 예수 믿었던 사람들 아닙니까?
권능도 많이 행하였다고 했으니 몸 아픈 병자들의 병도 많이 고쳐주었을 것이고 또 여러가지 신기한 이적같은 현상들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것이고 귀신들도 내쫓았는데.
가난한 사람들 구제도 많이 하고 선행도 많이 하였겠지요.
자기 생활을 하나님께 바치며 주를 위하여 많이 활동하고 권능도 행한 열심당원들인데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셔야 하는데 오히려 책망하시며 불법을 행하였다고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러한 열심을 다한 신자들에게 불법을 행하였다고 정죄하셨을까요?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법이 도데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열심히 예수 믿었던 사람들을 모르신다 하고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물러가라고 책망하신 것일까요?
너무나 기가 막히고 황당하고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면 그 쫓겨난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겠습니까?
예수님이 마태 복음서에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내게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예수 믿고 아무리 선하게 살며 봉사활동 하고 선행을 많이 베풀며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법대로 행하지 않으면 불법을 행한 신자들이 되는데, 다 소용이 없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법대로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헛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라고 열심히 예수를 믿었는데.
여러분 이 수수께끼를 잘 풀어야 합니다.
오늘날 지금 이 세상에 그 많은 기독교인들 중에서 이러한 성경상의 난해한 수수께끼들에 관심이 있어서 연구하는 신학자나 목사나 교인들이 있는줄 아십니까?
(마7:21)에, 나더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한 열성분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하나님의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 복음을 알지 못하여 저희들의 생각대로 교회지도자들이 가르쳐준대로 카톨릭의 교리나 유전을 행하며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같은 슬프고 억울한 종말을 맞는 것입니다.
(롬10:2-3)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불법을 행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예를 들어 말씀하시다.
그러면 어떠한 행위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인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 한가지 예를 들자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대신하여 십계명을 폐하며 불법을 행하는 풍습을 (마15:3-9, 막7:7-13)에서 밝히 증거하셨습니다.
사람이 만든 유전이 요지부동의 교리로 계명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자기네들 부모를 봉양하고 집에 모시기 싫어서 생각해 낸 유전이 있었는데 그 것이 부모를 모시는데 드는 비용을 성전에 “고르반”으로 바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양하는 종교적인 의무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즉 무슨 뜻이냐 하면 부모를 집에 모시고 부양할 때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돈을 그 금액만큼 성전에다 일년에 한 번씩 바치고는 그들의 부모를 실제로 “나 몰라라”하고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공인된 풍습이였다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책망하시기를 사람이 만든 계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 부모를 봉양하는 많큼의 금액을 성전에 바친다해도 그 사람이 부모를 부양하는데 대한 십계명의 의무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유대인이 고르반을 성전에 바치고 나서 그의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범하고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막7:13)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실 때에 다섯번 째 계명을 “부모를 공경하라고”만 하였지 고르반으로 바치면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고르반은 성전에 바치는 성물과 헌금을 말합니다.
만약에 지금 말세지말 우리시대에 어떤 교회 다니는 예수교 신자가 5번째 계명을 어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처럼 고르반으로 하나님의 5번째 계명, 부모를 공경하라는 법을 범했다면 그 교인은 십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훗날 예수재림 때에 불법을 행한 자로 정죄를 받고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계명은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의 시대나 지금 바로 21세기 우리 시대에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말세지말에 사는 현재의 우리 기독교인들도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십계명을 폐하면서 불법을 행하고 있지 않는지 잘 살피고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불법인지를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십계명 중에 한 가지라도 범하면 십계명 모두를 다 범하는 것이라고 (약2:10-11)에 성경에 분명하게 나와있습니다.
불법을 행한 자들은 예수께서 구원을 안하신다고 여러번 말씀하셨지요?
법과 질서의 하나님
이와 같이 하나님은 법의 하나님이고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우리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법과 규례들이 무엇인지 우리들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또 순종하고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마7:23)에 나오는 불법을 행한자들이 되어 예수님으로 부터 배척을 받고 내어 쫒김을 받아 울며 이를 가는 불행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버림 받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지상의 어느 나라도 어떠한 사회나 조직도 다 법이 있고 규칙이 있습니다.
특히 국가는 헌법이 있어 그 나라의 정체성을(政體) 또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고 운영하는 일반법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도 하나님이 만드신 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 옛날 태초 때에 하나님이 만드신 법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법을 어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아니했습니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신하고 범죄하여 영원히 죽지 않을 인생이 죽게 되는 것 아닙니까?
(호6:7)에,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그리하여 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를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람의 한 일생을 살도록 만들었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한 세상 살면서 밥세끼 편안하게 먹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항상 쪼들리면서 괴롭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질병에 시달리며 불행한 일생을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아담의 원죄 때문에 우리가 이마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수 있고 (창3:19) 정신과 육체가 다 노동하고 수고하여야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 돈 버는 것이 어디 쉽습니까?
어렵지요?
인생이 그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모든 인생이 다 수고와 슬픔뿐인(시90:10)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큰 거물급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죄얼과 고통을 후세의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법이 (사1:10) 있었고 지금 신약시대에는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법이 (롬7:25) 또 따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 잘 알아서 아담처럼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 자기도 망하여 일생 고생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죄와 우를 범하면 아니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법과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시103:17-18).
이 구절에서 보는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시는 자들은 반드시 그 언약과 법도를 지키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데는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이다
성경은 구 언약과 신 언약, Old Testament and New Testament 입니다.
언약(言約) 즉 그 약속이란 하나님이 명한 법과 계명을 잘 지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언약이란 무슨 뜻입니까?
영어로 covenant 하는데 그 뜻이 formal agreement 로 약속 또는 계약이란 뜻이지요?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잘 지키고 순종하면 영생복락의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구원 못받고 대신 영벌을 받는다는 언약 아닙니까?
그러면 신약시대의 우리 성도들은 무슨 법을 지켜야 하는가?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법은 십계명과 613 조의 율법인데 신약시대의 법은 무엇일까요?
그 법은 십계명과 성령의 법을(롬8:2) 가리킵니다.
우리 신약의 보혜사 성령시대에 우리가 순종해야 할 성령의 법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돌아가시면서 지나간 율법은 폐하였다고 (엡2:15) 하였는데 성령의 법은 또 무슨 말인가?
지금 보혜사 성령시대에도 우리가 법 아래 있는가?
예! 의문이 계속 이어지지요?
예수께서 비유로만 말씀하시었다.
(눅8:10)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함이니라.
(마13:34)에,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0 세부터 33세까지 3년 동안 복음을 전하며 공생애를 하실 때에 왜 모든 말씀을 비유로 하시며 그 예수를 쫒아 다니는 수만 명도(눅 12:1) 더 되는 청중들에게 깨닫지 못하는 설교를 하신 것입니까?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아니했다고 성경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거든요 (마13:34).
이러한 아주 중요하고도 또 중요한 난해한 구절들과 수수께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드물지만 안다고 하여도 그 의미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아무도 중요시 생각하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도 애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위에서의 그 비유의 말씀이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하신 것이지 지금 시대의 우리 기독교 교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모든 설교와 교훈은 그 당시의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하신 것입니다.
(막13:37)에서 보면 예수께서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3 년 동안의 공생애 목적이 예수께서 직접 일반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예수께서 모든 설교를 일반 청중들이 그 영적 뜻을 알 수 없는 비유로 말씀하시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서 3 년 동안 공생애를 하신 목적은 그 3 년 동안 모든 유대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시기 보다는 그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많은 여러 제자들 중에서 특별히 12 제자들을 택하시었습니다.
당시 예수를 좆아다니던 제자들이 수백 명이었습니다
그 12 제자들을 특별히 “사도”라는 직분으로 임명을 하시고 (눅 6:13) 3 년간 집중적으로 많은 이적들의 산체험을 통하여 일상생활을 같이 하시며 복음을 가르치시고 그 12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자들로 교육하고 훈련하신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Mentoring 교육을 12 제자들에게 행하시었던 것입니다.
왜 그리 하시었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3 년은 사도들을 교육하고 양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10:42)에,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누구의 이름으로?
제자의 이름으로.
이 구절에서 냉수 한 그릇이란 목마를 때 마시는 물 한 그릇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비유한 것입니다 (요4:4).
(잠25:25)에, 먼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이 구절의 먼땅은 에덴동산이고 좋은 기별은 복음, 유앙겔리언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사55:1, 계22:17)의 진리말씀을 알고자 하는 자들이고 냉수는 하나님의 말씀 한구절, (요4:10)의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제자의 이름으로 냉수를 준다 하였지요?
(마14:19)에, 예수께서 떡을(말씀)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이 구절에도 예수께서 직접 떡을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통하여 주었지요?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복음전파를 제자들 즉 사도들을 통하여 전도사업을 하신 것입니다.
떡은 성경에서 무슨 영적 의미로 쓰여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지요?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6:50-51),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어떠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었나?
사도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apos‘tolos 인데 보내심을 입은 자라는 뜻이고 ‘보내다’와 ‘사람’의 두 단어를 합친 합성어로서 영어의 APOSTLE은 영어에는 그에 적합한 단어가 없으니 그리스말에서 빌려와 음역(音譯)을 하여 만든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의 전권대사(Ambassador)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여러번 자기를 가리켜 보내심을 입은 자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요4:43, 요8:42,요7:28, 마15:24).
예수님 승천하시기 전 택함을 받은 11 사도와 나중 제비뽑아 임명한 맛디아와(행 1:26) 성령이 사도로 임명한 두 사람 바울과 바나바(행 13:2) 도합 14명인데 12사도로 통용하는 것은 12 이란 숫자에 깊은 영적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이 14 사도들 외에는 더 이상 사도라고 임명받은 사람들이 없었으며 이 사도들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하라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마28:18).
즉 너희와 같히 모든 족속을 제자의 반열에 서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11 사도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하시었습니다.
또 11 사도들에게 나의 하는 일을 저희도 할 것이요 또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 했습니다 (요 14:12).
당대의 최대 석학이요 성경 대학자인 바울과 성령이 충만한 바나바는 3 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 성령으로부터 직접 진리교육을 받았습니다 (갈 1:16-18).
당시 초대교회의 original 12사도들은 다 이미 세상을 떠나가고 지금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임명한 그 14 사도들 외에는 사도라고 칭함을 받는 사도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 2의 종교개혁을 하여야 한다.
그러면 이제는 어떠한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가?
이제는 그 초대교회 때의 예수그리스도의 12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사도바울처럼 (갈1:12) 성령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전수받은 선지자들이 이 세상에 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 바삐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이(prophets, ministers) 출연하여 우상숭배로 거짓복음으로 더럽혀진 이 기독교를 성경의 가르침으로 초대교회 사도들의 복음으로 돌려놓는 개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회복시키는 제 2의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 그말입니다.
선지자는 구약시대나 있었던 것이지 신약시대에 와서 무슨 선지자 타령을 하는가?
그러나 우리가 신약성경을 자세히 보면 우리 보혜사 성령시대에도 하나님의 도(the Way of God, 행18:26)에 도통한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행13:1, 행21:10, 고전12:28, 엡4:11).
이번의 종교개혁은 첫번째 마틴루터가 했었던 종교개혁보다 더 크고 강하게 이번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권능을 부여받은 여러 선지자들에 의한 크고 놀라운 기적들이 (miracles) 수반되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참된 개혁입니다.
어떠한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많은 숫자의 복음 사역자들이 할 것입니다.
저 사탄의 속임수로 인한 거짓 종교개혁이 아닙니다.
전번에 있었던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신 참된 개혁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희들 스스로 하였던 개혁이므로 올바른 종교개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카톨릭의 모든 악에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초대교회의 복음 진리로 돌아간 것같은데 결국은 카톨릭의 바벨론 교리와 유전을 버리지 못하고 카톨릭과 똑같은 죄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초대교회의 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은 카톨릭의 하수인이 되버리고 만 것입니다.
루터의 개혁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게 카톨릭의 온갖 가증한 악에서 돌이켜 초대교회의 성경진리로 다 돌아간 것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니 여전히 카톨릭이 행하는 바벨론교리를 그대로 이어받고 구교의 똘만이가 되어서 영적으로 더 무서운 악행을 저지르며 수도 없이 많은 영혼들을 멸망의 구렁으로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전번의 종교개혁은 말짱 도루묵이 되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12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복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나?
성경 본문 안에서 찾는 것이고 성경 본문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깊히 관찰하고 연구하면 그 안에 12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가 부흥사가 신학자가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성경 본문을 많이 읽고 성경 안에 있는 내용을 훤히 알 수 있을 때까지 수십 번 수백 번이라도 성경을 통독하십시요.
성경의 내용을 훤하게 알 때까지 성경을 많이 많이 읽으십시요.
우리가 성경의 내용을 훤히 알아야 그 어느 누구의 성경해석과 신학도 옳고 그른가를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되면 자연히 성경의 본문에서 많은 구절들과 내용이 이해할 수 없고 애매하며 서로 이 구절 저 구절 상충되는 난해한 부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특히 예언서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요한처럼 그 봉하여진 말씀을 알고자 울며 기도하고 애를 쓴다면(계 5:4),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찿는다면(렘 29:13) 봉한 책의 인봉을(사 29:11,12) 떼어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자 많이 기도하세요.
12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어야 그리스도의 진리이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대로 풀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보내심을 입은 즉 지혜의 말씀의 은사나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고전12:8) 받은 선지자들로부터 (행15:32, 엡4:11)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반드시 12사도들이 전한 복음이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봉한 7 인를 뗄 수 있는 선지자들이나 그 선지자들로부터 배운 교사들이(고전 12:28) 가르치는 교리대로 풀어야 하는데 그 선지자들이란 성령의 9 가지 은사 중 지혜의 말씀이나 혹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은사자들을 가리킵니다.
반드시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선지자들, 복수의 사람들, 복음사역자들입니다.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이 직접 그의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전수받은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고전 12:28-31)에서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진리를 선지자에게서 배운 제자들) 그 다음은 능력(기적) 행하는 자들이요(miracle doers)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를 받은 자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를 주셨으니 (엡 4:11).
히브리서에는 (히 3:1) 예수가 우리의 믿는 도의 큰 사도라(Apostle)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그 어떠한 직분보다도 사도들의 직분이 먼저요 으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적 형제가(마13:55) 넷이나 있었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그들이 다 교회의 감독과 장로들이 되어서 복음전파 하는 귀한 사역을 담당하며 예수님으로부터 크게 쓰임을 받았으며 신약성경의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썼지만 사도라는 칭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12 사도들의 맏형이 되시고 예수가 그 12 사도들의 머리가(계 1:5) 되시어서 우리들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가 믿는 도의 교주가 되시며 우리를 친히 성령으로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 12 사도들의 머리가 되시어서 지상에서의 공생에 3 년 동안 친히 일상생활을 같이 기거하시며 가르치시고 12 제자들을 훈련하고 연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는 어떠한 인간들의 교리나 혹 천사들의 교리라도 거짓이요 저주받은 가르침입니다.
(갈1:7-9)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여기서의 “우리”는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사도들을 지칭합니다.
또 (살후 3:6)에는 사도들에게서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떠나라 하였고, (살후 2:15 )에는 사도들에게서 받은 가르침과 유전을 굳게 지키라 하였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사도들의 유전이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이 만든 유전입니까 아니면 천주교가 만든 유전입니까?
아니지요, 12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성경에 쓰여 있는 교리를 말하지요?
우리는 천주교가 만든 유전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또 우리 개신교인들이 모르고 천주교가 만든 유전을 지키고 있는지 잘 따져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들의 유전을 지켜야지 그 유전들을 버리고 천주교의 유전을 따라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천주교에서 빠져나왔다는 개신교인들이 그 천주교의 유전을 따라하면서 짐승의 표나(계16:2) 받아야 하겠습니까?
(고후11:4)에,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사도들)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는 잘 용납하는구나.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고전11:2).
너희가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15:2).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살후2:15).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살후3:4).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고후5:20).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사도들)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8).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4:9).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우리에게서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살후3:6).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를 하나님이 명하신 것 외에 사람이 임으로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성경에 기록하고 후세에 전한 진리의 내용 외에 사람이 더하거나 빼면 아니됩니다.
현재 기독교 교리와 교회 유전들 안에는 사람들이 임으로 더하거나 뺀 거짓 진리와 거짓 교리와 거짓 유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이 명하거나 말씀하신 것 외에 사람들이 추가로 만들어 놓은 교리와 유전은 다 거짓이고 비진리이며 뱀의 거짓말입니다.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 선악과입니다.
뱀이 하와를 거짓말로 속여서 먹게한 선악과와 똑같은, 사람의 영혼을 멸망케하는 비진리요 거짓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이 임으로 가감한 모든 거짓 교리와 유전을 다 골라내어 배척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신4:2)에,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계22:18)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 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다른 복음, 다른 예수와 바리새인의 누룩
복음은 한 복음이어야 하는데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서 벗어나 사도들이 전하지 않은 교리나 유전 또는 성경에 기록되 있지 않은 교리와 사상과 관습과 유전으로 사람이 가감하거나 자기의 생각과 이념을 집어 넣어서 그럴듯하게 짜집기하면 곧 다른 복음이(고후11:4, 갈1:6)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다른 복음에서 예수를 믿으면 우리가 다른 예수(고후11:4)를 섬기거나 다른 영(고후11:4) 즉 귀신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만든 누룩으로 반죽하여 만든 떡은 사도들의 복음에서 변질되어서 사탄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 누룩은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16:6)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마16:12)에,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삼가해야 합니다.
그러한 바리새인의 변질된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양식 즉 선악과입니다.
그러한 선악과를 먹고 여러분들의 영적 살이(flesh) 썩어 영적 문둥이가 되고 장님이 되고 벙어리가 되고 절름발이가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문둥병자를 속량하는 제사의 예식이 여러 곳에 나오지요?
그 구약의 문둥병자들이 그 시대에는 육적 문둥병자를 가르키나 우리시대의 신약시대에는 영적 문둥병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바리새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들이 우리가 살고있는 21세기에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오늘날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어떠한 사람들일까요?
분명 신학을 전공하고 성경지식이 풍부한 일반 교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종교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나 교회지도자들이겠지요.
그러면 과연 그자들이 누구일까요?
양의 탈을 쓴 이리 거짓 목자들이겠지요?
강대상에서 영적 거짓말을 섞어서 설교하는 목사들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문하기를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 다른 모든 교인들이 하는대로 따라하면서 예수를 믿으면 되는 것이지 무얼 그렇게 따지고 여러가지로 어렵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법도 모든 개신교인들이 지키는대로 지키면 되는 것 아닌가?
다수가 하는 것에 진리가 있는 것 아닌가?
수십 억 인구가 믿고 행하는 교리와 사상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이 꼭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찾아서 믿어야 하는 것인가?
현재 전세계적으로 개신교회에서 행하는 교리와 신앙이 12 사도들인 전한 복음이 아니란 말인가?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면 누가 그같이 어려운 예수를 믿겠는가?
그러한 예수는 당신이나 혼자 실컷 믿어라.
“너나 그렇게 실컷 믿으세요” 라고 하겠지요.
당신이 주장하는 ‘사도복음’이 참 진리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증명해 보아라.
그리고 개신교의 어떠 어떠한 점이 12 사도들의 복음과 다른 것인지 확실하게 납득이 가도록 진술해 보아라 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거의 대다수일 것입니다.
예, 차차 증명해 보겠습니다.
좁은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입이다.
(마7:13-1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눅13:2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이 구절에서는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문(門)은 성경에 그 영적 뜻이 사람의 입을 상징합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진리를 가리킵니다.
좁은 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입, 사도들의 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좁은 문을 찾아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 , 12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의 진리를 찾아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요10:7)에서 예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삸꾼목자들의 넓은 문을 찾지 마시고 양의 좁은 문을 찾기 바랍니다.
흔히들 좁은 문이란 교회를 의미하고 넓은 문이란 세상을 의미한다고 말하지요?
넓게 해석하면 맞는 말이나 보다 올바른 영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을 말합니다.
쉽게 믿는 예수는 많은 사람들이 믿으나 참 진리의 예수는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주 드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이 진실이요 사실이니 어찌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우리 ‘사도복음’의 진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입니다 (고후13:8).
12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아닌 것은 (갈1:8)에 다른 복음이라 했습니다.
참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으로 교육받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입니다.
신약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과 내용들만 우리가 배우고 실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교리와 유전들을 교회가 만든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교리와 유전들을 우리가 따라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밝히 알아서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이 기독교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돌이키는 제 2 의 종교개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가 올바른 진리를 깨달으시고 이제 앞으로 있을 종교개혁에 모두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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