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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하나님의 지식
7 인으로 봉한 성경 (The Bible sealed with 7 seals)
7인으로 완전히 봉한 두루마리 성경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란 (호4:1, 사11:9, 빌3:8, 벧후3:18)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하셨나?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우리 인간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법”은 (롬7:22) 무엇인가?
하나님의 지식을 어떻게 우리가 배울 수 있나?
하나님은 어떻게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가?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 “하나님의 지식”은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지으시고 만물위에 뛰어나게 하셨으며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며 지배하라 하셨습니다 (창1:26-28).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짐승도 같은 흙으로 지었지만 사람은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만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말하였습니다.
아담이 먹지말라는 선악과를 먹었으니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그 아담의 육신을 죽이셨다면 바로 그들의 인생은 끝이 났을 것이고 인류는 소멸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둘의 육체의 생명은 놔두고 코에 불어넣었던 생기만 하나님이 도로 찾아가셨습니다 (전12:7).
그리고 그들의 육체 생명을 유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었을 때 아담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생기가(호흡, Ruach רוּחַ ) 떠났으므로 아담이 영생복락 할 수 있는 영적 생명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 아담 안에 성령이 계셔야 하는데 성령이 떠났으므로 육적 생명은 살아 있었으나 영적 생명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호흡, 생기, 성령, 신, 영은 다 같은 뜻이고 동일한 존재를 가리키는 단어들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은 성령을(Holy Spirit) 말합니다
(요20:22)에,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위 구절의 생기(breath)가 성령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하여 창조하시었고 (사43:21)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영원토록 화목하게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우리 인생이 천사와 같은 신적 존재로 인간의 육체는 영원히 죽지 않았을 것이고 에덴동산에서 영생복락을 누렸을 것입니다.
부활은 죽은 목숨이 다시 산다는 뜻인데 우리 인생들이 회개해서 성령 받으면 그 잃었던 생기를(성령) 다시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계20:6) (계11:11).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요1:18) 또 볼 수도 없는 (요일4:12)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볼 수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신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유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여호와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아담은 영원히 죽지 않을 그의 영육체가 죽게 되며 에덴동산에서 쫒겨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호4:1) 아담의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아담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불행한 우리 인생들이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육간에 고귀하게 지음을 받았던 상태로 우리 인간을 회복하게 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회복하는 종교입니다.
무엇을 회복하냐구요?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실 때 아담의 코로 불어 넣어 주셨던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호흡, 성령을 우리 인간이 회복하는 성령 회복입니다..
예수교는 우리를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에덴동산에 있었던 고귀한 존재, 영생의 영적 존재로 회복시키는 종교입니다.
그 것이 첫째 부활(계20:6) 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하늘에 있는 본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11:16).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 아나니 (고전5:1).
하나님이 그의 성령(神)을 아담의 코로 불어 넣었던 생기(breath of life, ruach ) 즉 성령( Holy Spirit )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했을 때 인간으로부터 떠나갔습니다.
예수교는 (Christianity) 우리가 회개기도 하여서 죄사함 받고 성령세례를 받아서 우리 인간들에서 떠나갔던 성령을 우리 인생들에게 다시 돌아와 임하게 하여 성령회복을 하게 하는 종교입니다.
예수께서 (요3:5)에서 인간의 영혼구원의 길을 말씀하시었고 신약성경 전체에서 성령회복에 관한 지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3:5)에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했습니다.
성경이란 그러한 우리의 성령회복과 영혼구원에 대한 지식을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게 하여 주는 책이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성경 안에 쓰여 있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고 또 그 지식대로 실천을 하여서 영혼구원을 받고 천국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고 천국을 가려면 하나님의 지식을 성경에서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기 위하여 성경을 최대한도로 많이 읽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의 영혼구원의 지식을 알기 위하여 전체적인 성경의 내용과 각 장 구절들의 전후 문맥과 흐름을 훤하게 알기까지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냥 대충 스쳐가며 읽을 것이 아니라 한구절 한구절 정신을 집중하여 정독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의 지식을 성경 안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며 연구해야 합니다.
어떠한 신학자나 어떠한 교파의 신학과 교리나 목사에게 여러분의 영혼을 무방비 상태로 맡기지 마시고 여러분 스스로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현재 기독교 안에는 서로 교리와 뜻이 상반되는 많은 신학과 교리와 성경해석들이 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어지럽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신학이 어떤 교리가 어떤 이론이 성경말씀 내용과 부합을 하는 진리인지 여러분 스스로가 비교연구 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원히 존재할 여러분의 영혼이 어디로 갈 것인지 여러분 자신이 잘 선택을 해야 합니다.
당신의 영혼이 사후에 영생복락으로 가느냐 영벌의 지옥으로 가느냐 하는 중차대한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일부분이 비유의 말씀과 7 인(seal)으로 봉하여져 있다.
성경이란 우리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법을 성경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 역사와 인류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에 관하여 쓰여 있습니다.
거의 전부분의 문장들과 내용이 누구나 읽으면 다 알고 이해하게 쓰여 있습니다.
일반 정통 개신교 교회들에서 많은 하나님의 지식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잘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하나님의 지식은 보편적으로 다 알려져 있습니다.
사이비 기독교 이단 종파들을 제외한 일반 정통 개신교 교단들 안에서는 많은 목사들이 설교할 때 그러한 하나님의 지식을 교인들에게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내용 중 하나님의 인류 구원에 관한 교리에 일부분이 비밀로 가리워져 있어서 그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일부분이 7 인으로 봉하여져 있고 또 적지 않은 구절들과 내용들이 비유의 말씀으로 그 영적 뜻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예언서들에서 그러한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아니했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13: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막4:34).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막4:11-12).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3:16).
(사 29:10-12)에, 대저 여호와께서 깊히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
으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으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책의말이라 (the words of a book that is sealed) 그 것을 글을 아는자 (유식한 자)에
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封,sealed) 못 하
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
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계5:1)에, 내가 보매 보좌의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인(印,seals)으로 봉하였더라(封,sealed).
위의 구절들에 있는 내용과 같이 성경의 일부분은 봉하여져 있고 그 안의 말씀들이 비유로 가리워져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 비유로 설교를 하시고 일반 청중들에게는 그 영적 뜻을 알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성경은 왜 일부분이 일곱 인으로 완전하게 봉하여 (계5:1) 그 안에 있는이면의 영적 뜻을 알 수 없게 되어 있는가?
무슨 이유로 성경을 일곱 인으로 봉하여 그 뜻을 알 수 없게 하시었나?
그 이유는 사탄이 예수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유혹할 때에 반드시 성경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속여서 잘못된 교리로 잘못된 길로 유도하여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의 내용을 가지고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에 성경의 진리를 마귀가 알수 없게 7 인(Seal)으로 완전히 봉해 놓은 것입니다.
성령이 인도하지 않으면 그 봉한 7 인을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감추인 진리를 알 수 없게 되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교 신자들은 열심히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사이비 기독교 이단 종파들이나 정통 개신교의 보편적인 교회들이나 다 그들 안에서 사탄이 하나님과 대적하며 악의 역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또 반문하실 것입니다.
아니! 성경이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게 그 영적 뜻이 봉하여져있다 이말입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나는 도대체 그러한 소리는 금시초문이고 성경이 무슨 봉하여져 있고 그 뜻을 알 수 없게 되어있다니 무슨 해괴한 말인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성경이란 누구든지 읽으면 다 알고 이해하는 것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여라.
예!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의문입니다.
성경 안에 있는 난해한 구절들과 내용들
우리가 성경을 여러번 통독을 하고 한 구절 한 구절 정신을 집중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읽으면 일부 구절들이 내용들이 난해하고 그 의미와 뜻을 풀 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예언서들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다수의 기독교 교인들이 성경을 읽는데 있어서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성경 안에 많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주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성경 안에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그러한 점들에 대하여 전혀 관심도 없고 또 알고 싶어 한다거나 중요시 생각하거나 혹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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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많은 목사들이나 기독교 학자들이 말하기를 성경에 있는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나 난제(難題)들을 알려고 하거나 그 해석을 찾으러 다니면 신앙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신비주의나 사이비 이단교파에 빠지기 쉬우니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들이 흔히 말하기를, 우리가 생선을 먹을 때에 뼈와 지느러미는 먹지 않고 생선의 살고기만 먹는 것처럼 해석하기 어렵고 난해한 구절들과 내용들은 비켜가고 해석하기 용이한 구절들과 내용들만 가지고도 우리가 충분히 기독교의 신앙과 교리와 신학을 세울 수가 있으며 또 교인들에게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있는 그러한 구절들을 반드시 풀어야 하며 또 서로가 그 뜻이 반대이거나 상충(相衝)되는 내용의 구절들을 우리가 풀어 해석하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뜻이 서로 상충하거나 상반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난제(難題)들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성경에 무슨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어디에 있으며 또 뜻이 서로 상충되는 구절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무슨 잠꼬대 같은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라고 할 것입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예를 몇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예 1
(눅14:26)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마19:29)에,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위의 두 구절에서는 자기 가족을 주를 위하여 미워하라 또는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딤전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 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복음서에서는 분명 예수께서 믿음을 위하여는 가족도 미워하고 버리라 하셨는데 바울 사도는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라 하였읍니다.
어느 것이 맞는 말씀이고 진리인가 예수님의 말씀이 맞는가 바울 사도의 말씀이 맞는가?
분명 두 말씀이 다 맞는 진리일 터인데 그 뜻이 서로 상충하지 않은가?
왜 그러한 것인가?
예 2
(고전14:19)에,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전14:23)에,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전14:39)에,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위 구절들에서 보는 바와같이 (고전14;19,23)에서는 방언을 자제하라는 듯한 말씀을 하였는데 (고전14:39)에서는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막16:17)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위 구절에서는 믿는 자의 표적이 방언이라고 하였고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받을 때는 반드시 그 받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행 2:4, 10:46, 19:6).
그러면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이 방언을 반드시 해야 합니까?
아니면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입니까?
방언이란 무엇입니까?
대다수 많은 목사들은 방언은 하나님의 은사들 중에 하나이니 꼭 하지 않아도 예수 믿는데 지장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목사들은 방언을 하면 안된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장로교회 목사들과 안식일 교회에서는 초대교회 때에는 성도들이 방언을 하였었는데 그후로는 방언이 폐하였다고들 말합니다.
많은 목사들이 말하기를 방언을 중요시 하거나 강조하면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니 잘못된 이단신앙으로 가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순절 계통의 성령파들은 방언은 성령 받은 표적이니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느 해석의 교리가 맞고 성경의 진리인지?
대다수의 기독 교인들이 아마도 99% 도 더 되는 교인들이 “방언이란 우리가 예수 믿는데 있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예수만 열심히 잘 믿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도 그럴 것입니다.
예 3
(마10:32-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26:74)에,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위의 구절들에서 보면 그리스도를 사람앞에서 부인하면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고 그에 상응한 정죄로 구원을 못 받는 것인데 베드로는 세번이나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고 심지어 맹세까지 하였는데 어찌하여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사도로 복음 전파를 할 수 있었는가?
예 4
구약시대에는 선지자, 왕, 제사장의 직분이 따로 구분이 되어 있었고 한 사람이 세가지 직분을 겸하지 못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사울 왕과 웃시아 왕은 제사장이나 할 수 있는 제사를 직접 드리었다가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진로를 사서 망하였습니다.
웃시아 왕은 이마에 문둥병이 들려서 성전에서 내어쫓기고 죽을 때 열조의 무덤에도 안장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솔로몬은 왕인 동시에 제사도 직접 드렸으며 선지자들이 하는 예언도 하고 하나님과 직접 교통도 하였는데 왜 그럴수 있었는지?
예 5
(마26:52)에,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눅22:36)에,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한 구절에서는 검을 가지지 말라 하셨고 또 나중에 다른 구절에서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사서 가지라 하셨습니다.
이 것이 도데체 무슨 뜻인가 ?
한번은 검을 갖지 말라고 하시고 한번은 검을 가지라 했으니 수수께끼 아닙니까?
예 6
(벧전4:8)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눅12:32)에,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히6:4)에,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히10:26-27)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요일5:16)에,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pray) 하지 않노라.
베드로 사도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였는데 영원히 사함을 못받는 죄들이 있다고 분명히 여러 구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말씀이 맞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라고 하였으니 허다한 죄를 다 용서하지 아니 하시겠는가?
과연 영원히 사함을 못받는 죄가 있겠는가?
예 7
성경의 진리는 장로교회에서 신봉하고 주장하는 칼빈의 예정설입니까 아니면 감리교회에서 주장하는 Arminius 설입니까?
소위 신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칼빈의 예정론의 5대강령 중에 5번째,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인데 하나님이 영원 전에 택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던 안하던 어떠한 믿음생활을 했어도 강하게 참고 기다리며 (堅忍) 구원을 하신다는 이론입니다.
즉 한번 구원받은 성도가 다시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
반면에 아르미니우스 주의의 5번째 강령은 “신앙의 유지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계속 유지할 수 는 없다” 입니다.
즉 한번 구원 받은 성도라도 성경의 하나님 말씀대로 잘 순종하며 신앙생활 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
이 두 이론의 신학적 해석이 정 반대로 갈리는데 어느해석이 맞는지?
이것은 분명 구원론에 관한 교리이고 예수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인데 너무나도 중요한 사항 아닙니까?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구원받고 천국 가려고 믿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구원론은 기독교 교리에서 제일 중요한 교리인데.
어느 이론이 진리이고 진실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우리가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나 그저 아무 교회든지 다니며 예수만 열심히 잘 믿으면 될까요?
과연 예수는 어떻게 믿는 것이 올바로 잘 믿는 것일까요?
예 8
주로 장로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우리가 예배볼 때 꼭 입으로 소리를 내어 되뇌야 합니까?
침례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은 카톨릭이 만든 유물이고 그 내용이 성경과 반대되는 사항들이 몇가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절간의 중들이 불경 읽는 것이나 천주교 성당에서 신부들이 교리문답 되풀이 하는 것처럼 형식적인 것이고 의미 없는 행위와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면 안된다고 하여 저들은 예배 때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습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예배시에 사도신경 암송 안하면 큰 죄 짓는 줄 생각하고 예배 드릴 때 사도신경 암송 안하는 교회는 이단이라고 까지 주장합니다.
그러면 침례교회는 이단 교파입니까?
그러면 어느 교회의 주장이 맞을까요?
예 9
(행2:21)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롬10:9-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요3:5)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행19:2)에,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한 구절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는데 반면에 다른 구절에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 하였습니다.
흔히 목사들이 우리가 주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고백하며 주 이름을 부르고 예수 믿으면 그 즉시로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는 다고 하는데 사도행전에서는 여러 구절들에서 사람이 예수 믿는다고 자동적으로 그 즉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님을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구원을 못받는다 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는 것인지?
단순히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에 믿으면 성령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인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 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흔히 목사들이 가르치기를 예수 믿기 시작하면 즉시 성령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예수 믿으면 무조건 자동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하나?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성령을 받는다라고 가르치는 그 목사들 말을 우리가 아무런 의심과 성경 연구의 노력없이 성경적인 검증 없이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되는가?
그 목사들이 말하는 무조건적인 성령세례가 성경에 쓰여있는 말씀과 부합을 하는가 안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성경에 쓰여 있는 구절들 말씀을 잘 따지고 비교연구 하여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가 살펴보아야 하나?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우리 신도들이 구원을 받는지 못 받는지 천국을 갈 수 있는지 없는지 를 판가름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관한 가장 중요한 예수교의 핵심적인 교리인데 어느 것이 진실이고 진리인가?
목사들의 말인가 아니면 성경 안에 쓰여진 부인할 수 없는 구절들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인가?
많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 중에서 위와 같이 제일 중요하고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교리와 진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교리 중에서 그러한 헷갈리는 알송달송한 문제가 있는 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다 그럴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해석할 수 없는 난해한 구절들과 내용들이 있다.
특히 예언서들 안에 많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 전반에 걸치어 있습니다.그러한 것들이 무엇인지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 1
스가랴서 5 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
5:1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5: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5: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5:4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에바 속의 여인
5: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5:6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5: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5:8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5: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5:10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5:11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위 구절들 안에 나오는 날아다니는 두루마리는 무엇이며 왜 도적의 집에 들어가고 망령되이 맹세하는 집에 들어갑니까?
에바는 무엇이며 그 에바 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은 누구를 가르키며 무엇을 의미합니까?
에바가 시날 땅에 가서 집을 짓는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스가랴서 5장의 전체 문장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정말 알 수 없는 내용들 아닙니까?
명확하게 짝 구절들을 찾아서 믿을 수 있고 납득할 수 있게 세상 어디에 누구 한 사람 시원하게 풀어서 해석하는 사람 있습니까?
이러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어서 정확히 짝 구절들을 찾아서 맞추고 해석을 해야 합니까?
쓸데없이 해석할 필요가 없다.
공연히 해석한다고 잘못 해석하여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
어려운 것은 놔두고 쉬운 것만 다루는 것이 좋다.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을 풀어서 해석 안해도 얼마든지 온전한 신앙과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다.
여러분들 생각도 그렇지요?
예 2
에스겔서 1장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그룹의 형상은 어떻습니까 ?
똑같은 그 그룹의 형상이 요한계시록 4장에도 나오는데 그 그룹 형상의 모양들에 그 무슨 심오한 영적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누가 해석을 할 수 있는지?
그 그룹 형상에서 나오는 사람, 독수리, 소와 사자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날개가 각각 네개, 여섯개가 있고 바퀴와 그 안에 가득한 눈들은 무엇인가?
이러한 성경 안의 난제들을 누가 풀 수 있는지?
그러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지금 세상에서는 아무도 어느 신학자나 목사나 일반 교인이나 이러한 점에 관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는 사람이나 노력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스가랴서에 있는 알 수 없는 예언과 구절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성경 안에는 많은 난제들이 있는데 서로 상충되는 구절들과 내용들이 있습니다.
예 3
여러 가지 수수께끼가 많이 있습니다(삿 14:12, 겔17:2).
(마24:17)에,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이것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그 영적 의미의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지붕이란 기도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행10:9)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하였고.
(신22:8)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구약시대의 (지금도 마찬가지) 유대 지방의 집들은 지붕이 다 평평하여(flat) 지붕을 기도 처소로 사용했습니다.
즉 이 구절의 영적 해석은 목적기도 하는 자가 세상사에 마음이 뺏기어 그 목적기도를 중단하지 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그 목적기도란 무엇입니까?
시편과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난해한 구절들, 도저히 풀어지지 않는 구절들과 서로 상충되어지는 내용들을 어떻게 짝을 맞추어 해석을 하나?
그러한 난해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나?
성경의 난해한 구절들과 난제의 내용들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
위에서 서술한 성경 안에 있는 난해한 구절들과 서로 뜻이 상반되는 난제들은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다 알고 풀어야 하는 과제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섬기기 위하여 반드시 배워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것입니다 .
어떠한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도의 교주이시고 맏사도이시며(히3:1)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이신(엡1:22)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섦기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열두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마24:14) 알기 위하여 꼭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추어진 난해한 구절들의 영적 의미를 몰라도 우리가 예수교의 신앙을 갖고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4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은 모든 말씀을 비유만으로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부분을 누구나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직설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일반 청중들에게 하신 명령과 설교들도 직설법으로 하시며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안에 있는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누구나 읽으면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어법으로 직설적인 표현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 일부분이 일반 독자들이 해석할 수 없는 난해한 예언들과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난해한 구절들에 영혼구원론에 관한 핵심적인 영적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법을(사1:10, 롬7:25) 올바로 터득하려면 그 난해한 예언들과 구절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배우면 감추어진 진리를 아는데 절대적인 도움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자연히 하나님의 법인 (롬7:22) 십계명과 성령의 법을 (롬8:2) 알게 됩니다.
우리가 computer의 사용법을 배우지 못하여 computer 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컴맹이라 하지요?
영어로는 computer iliterate 라고 합니다.
글자를 쓰고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하여 글씨를 못읽는 사람들을 가리켜 문맹이라고 하지요?
여기서의 컴맹, 문맹의 맹은 한자로 무엇입니까?
보지 못하는 장님, 소경의 맹(盲, blind)이지요?
이와 같이 성경도 그 안에 있는 봉하여져 있는 구절들의 인을 떼지 못하면 우리가 영적 맹인(靈盲)이 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illiterate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요9:39)에서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함이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이사야의 구절을 인용하시며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소경이라고 꾸짓으셨습니다 (마23:26, 요9:40-41).
그랬더니 바리새인들이 무엇이라고 화를 내며 반발하였습니까?
“우리가 소경인가?” 라고 하였지요?
또 (계3:18)에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15:14)에,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우리가 외국어로 쓰여진 책을 읽고 이해하려면 그 나라 언어의 단어들과 문법을 배우고 공부하여야만 가능하겠지요?
성경이 그와 같습니다.
성경은 비밀로 봉하여진 곳이 많기 때문에 단어들의 영적 의미와 그 구절들을 꿰는 문법을 알지 못하면 일곱 인으로 봉하여진 비밀의 뜻을 풀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은 단어마다 그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절들의 내용 속에 감추어진 영적 뜻이 있는데 그것을 축자영감(蓄字靈感)이라 합니다.
즉 성경에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영감의 영적 의미가 담기어져 있고 그 구절들의 내용 안에 감추어진 심오한 영적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 축자영감설도(verbal inspiration, 逐字靈感說) 신학자들 간에 많이 거론되는 신학의 한 일부분입니다.
“사도복음 교회”가 말하는 축자영감은 逐字靈感說과는 조금 다른 것입니다.
사도복음 교회의 축자영감설은 蓄字靈感입니다.
우리 속담에 “구술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속담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귀하고 좋은 것이라도 잘 다듬고 정리해야 만 값어치가 있는 보배가 된다는 말이지요?
이와 같이 귀하고 좋은 성경말씀도 사방에 흩어져 있는 짝구절들을 찾아서 은혜의 줄로 꿰어야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축자영감의 단어들과 구절들을 서로 맞는 짝들로 찾아서 그 진주구슬 들을 줄로 꿰는 문법으로 풀어서 해석을 해야 난해한 구절들과 일곱 인으로 봉하여진 감추어진 말씀의 비밀을 우리가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또 많은 분들이 반문하기를 그러한 성경상의 난해한 구절들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러한 것들을 몰라도 예수 잘 믿을 수 있고 얼마든지 천국 갈 수 있는데 아니 그러한가?
예, 그러한 생각을 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필자가 주장하는 그 인봉된 성경에 대하여 동감도 할 수 없고 납득도 할 수 없지만은 만에 하나 필자가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라도, 그러한 인봉된 구절들의 영적해석을 우리가 예수 믿는데 꼭 필요합니까 알아야 합니까?
그러한 어려운 내지는 의심스러운 영적해석을 몰라도 예수는 잘 믿을 수 있지 않은가?
예수 믿는 것이 아주 간단한 논리 아닌가?
주일성수 잘 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맡은바 직책을 충실히 하며 모든 이들에게 친절 봉사하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성경말씀 잘 지키며 죄 짓지 아니하고 새벽기도 열심히 나가고 교회목사님 잘 받들고 십일조 잘 내고 열심히 예수 잘 믿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지상에서 복 받고 나중에 천국 가는 것 아닌가?
예, 지극히 맞는 말입니다.
네, 그러한 성경상의 영적 비밀을 몰라도 우리가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믿고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 성령의 9 가지 열매, 그리스도교의 인성교육 등 많은 중요한 예수교의 교리를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우며 많은 하나님의 지식을 터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섦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법을 올바로 지킬 수 없게 되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11:4).
성령의 법을(롬8:2) 모르면 불법을 행하게 되고 불법을 행하면 심판날에 정죄를 받고 영혼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으로 예수를 믿으면 다른 예수를 섬기면서 불법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내게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마7:23).
즉 우리의 구원과 절대적이고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에 우리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불법을 (anomian – ἀνομίαν – lawlessness) 행하지 않기 위하여 알아야 합니다.
열두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알게 되면 그러한 성경의 난제들을 자연히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난해한 예언들은 어떻게 그 짝들을 맞추어 비밀로 감추어진 영적 해석을 하는 것인지 이해를 돕기 위하여 (계11:9)에 있는 구절과 엘리야의 3년 반 가뭄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보겠습니다.
(계11:9)에,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dead bodies)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엘리야가 기도하니 3년 반 동안 땅위에 가뭄이 있었고 또 기도하니 비가 내렸다고 했습니다 (눅:25).
그러면 이 구절들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시체는 무엇이며 사흘 반 동안은 무엇이고 또 장사는(burial)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나옵니다.
여기서 나오는 사흘반 동안은 성경 여러 구절들에 그 짝들이 나오는데 이 구절에 엄청난 인류역사의 비밀이 나옵니다.
그 해답이 엘리야 시대 3년 6개월 동안의 기근입니다.
(눅4:25)에,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해 여섯달을 닫히여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약5:17)에, 엘리야가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단7:25)에,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때와 두때와 반때를 지내리라.
(단9:27)에,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단12:7)에, 강물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기를 반드시 한때 두때 반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러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계8:1)에,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계11:2)에,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11:3)에,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리라.
(계11:11)에,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계12:6)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계12:14)에,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때와 두때와 반때를 양육받으매.
(계13:5)에,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위에 있는 구절들 중에서 및줄이 그어있는 ‘한 때 두 때 반 때’, ‘이레의 절반’, ‘세 해 여섯 달’, ‘삼 년 육 개월’, ‘마흔두 달’, ‘일천이백육십 일’, ‘사흘 반’, ‘삼 일 반’은 다 같은 의미이고 같은 날자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레(week)의 절반과 반 시간은 삼 일 반입니다.
마흔 두 달은 삼 년 육 개월이고 한 때 두 때 반때와 일천이백육십 일도 다 삼 년 반입니다.
3일 반은 성경적으로 환산하면 3년 6개월 즉 1260일을 말하는 데 1260일을 성경적으로 환산하면 1260년이 됩니다.
성경적인 하루는 일 년으로 환산하는데 그 구절들이 (창29:27, 출14:31, 겔4:6)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 구절들에서의 모든 기간들은 1260년(year)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장사(葬事)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롬6:6),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엡4:22),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
그러니까 장사란(berial) 성령세례를 받아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을(요3:3) 의미합니다.
옛 사람이 죽고 성령 받은 새사람이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즉 옛사람의(엡4:22)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계11:9)의 시체는 회개하고 난 후 죽은 옛사람을 말합니다.
시체들을(옛사람) 장사하지 못하게 하니 성령세례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못 받았으니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였으니 영혼구원을 받을 수가 없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9:6)에서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그 날 – 1260년 동안
죽음 – 옛 사람의 죽음
그러니까 서기 688년부터 1948년까지 1260년 동안 회개하고 옛 사람이 죽어야 성령을 받는데 죽음이 사람들을 피하였으니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령 받은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종합적으로 이 구절들의 영적 해석을 하여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rain)로 비유되어 있고(신32:2) 또 비는 성경에 자주 성령으로 비유되어 있는데, 지나간 1260년 기간 동안 이 지구상에 이 땅 위에 영적 비가 내리지 않았던 완전 가뭄의 영적 암흑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엘리야의 삼년 반 가뭄입니다.
기근이란 (암8:11)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 기근이라고 하였지요.
그 영적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 것이 서기 190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 부터입니다.
그 전의 1260년 동안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이 땅 위에 없었습니다.
그 1260년 동안은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던 시기입니다.
태양신 숭배하는 바벨론 종교의 카톨릭이 초대교회 진리의 복음을 말살시키고 온 인류를 우상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의 역사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하나님 말씀의 기근이 1260 년 동안 이 지구상에 있었던 것입니다.
서기 600 년대 말경부터 1900 년대 중반까지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았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24:20)에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겨울이 바로 인간에게 영적 구원이 없는 1260년을 가리킵니다.
지리적이나 기후적으로 이스라엘 지방의 겨울은 비가 지금도 내리지 않는 계절입니다.
그러면 그 기간 동안에 살았던 그 많은 인구가 구원을 다 못받았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계9:6),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회개기도 하고 죄사함 받아서 옛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옛 사람이 죽지를 않으니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데 죽음이 사람들을 피하였으니 영혼구원을 받을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홍수 때의 여덟 사람처럼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구원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하십니다.
아무때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 구약시대 때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잘 아시지요?
구약 때의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다른 이방 민족들은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구약 때에는 모든 인류에게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그 1260년 기간 동안에 이 땅 위에 살았던 한국사람들 고구려인 신라인 고려인 조선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퍼져 있었던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없었습니다.
많은 초신자들이 갖는 의문 중에 하나인 수수께끼의 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알고 싶어하기를 “신라시대 조선시대에 살았던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당시에는 한반도에 기독교 교리가 전파가 되지 않아서 그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을 기회가 없었던 것 아닌가?
만약 그 당시에 한반도에도 기독교가 들어왔었더라면 예수 믿고 구원 받을 사람들도 상당히 있었을 터인데 그사람들은 너무 억울하지 않나?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은 분 아닌가?
그 때에도 마음이 선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어 기독교가 전파 되기만 하였으면 예수를 믿을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터인데…… 너무나 아쉽고 억울하다.
그렇게들 생각하는 교인들이 대다수입니다.
그 1260년 기간에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혹 그 기간 동안에 예수교 복음이 전파되었다 해도 성령의 구원사역이 없었던 때이니 복음이 전파되었거나 안 되었거나 어짜피 구원 못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한국 사람들만 해도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또 예수 믿는다는 신자들도 거의 전부가 엉터리로 예수를 믿고 있는데 우리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우리가 무슨 옛날 사람들 걱정하고 신경쓸 계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의 영혼 구원이 먼저이고 또 시급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옛날 사람들 신경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기 1948 년 이후에 살고 있는 지금의 인류는 참으로 복있는 인생들입니다.
그리면 왜 하나님이 그많은 사람들을 인류구원의 역사가 없는 1260의 기간에 태어나게 하셨나?
그 1260년 기간에 이 땅위에 태어나고 죽었던 사람들은 인간세계의 어느 시기에 태어나도 구원을 못받을 사람들이었기에 그 1260년 기간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눅16: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예를 들어 여러분의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죽었던 사람이 다시 세상에 나와서 인간 사후세계의 심판과 지옥에 대하여 간증과 증거를 한다 하여도 그 간증을 듣고도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을 사람은 죄에서 영원히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짜피 구원 못받는 사람들은 어떠한 방법이나 태어나는 시기가 그 사람들에게 별 영향을 못끼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출33:19)에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는 자들이 아니라 (롬9:18)의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강퍅케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왜 지난 세월 1260년 동안 구원의 역사를 아니하셨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다음 기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과 그외 많은 구약의 선지자들 그리고 바울 사도와 그외 초대교회 때 많은 은사자들이 받았던 성령의 지혜의 은사나 혹은 지식의 은사를(고전12:8) 조만간 내가 받거나 어느 누군가가 “지식의 은사”를 받는 성도가 세상에 출현하면 자연히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의 가뭄 126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이 땅위에 다시 역사하시다.
서기 680년말 경부터 서기 1900년 전후까지는 이 지구상에서 방언이(spiritual tongue) 사라졌던 때입니다.
기독교 내에서 1900년 전후까지 초대교회 때에 초대교회 교인들이 하던 방언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언은 초대교회 때에만 있었고 그 후에는 폐하였다고 까지 사람들이 생각을 하였었습니다.
그 사라지고 없었던 방언이 서기 1901년 1월 1일 미국 캔사스주 토페카시에서 벧엘 신학교 학생들이 갖인 기도모임에서 처음으로 1220여년 만에 방언이 그 사람들 입에서 나와 발파(發破)가 되었습니다.
서기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탄에 독립국가를 세우기 수 십년 전에 비로서 방언이 1220여년 만에 지구상에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를 잃고 1900 여년간 세계를 떠돌던 유대민족이 옛 고향땅에 1948 년에 나라를 다시 세우고 독립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이 땅 위에서 구원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신 것입니다.
1260 년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서기 1948 년부터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방언하는 것하고 성령이 역사하는 영혼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성령과 방언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신약시대 즉 보혜사 성령시대에 방언이란 성령세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이 성령활동을 기록한 책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데 바로 맞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을 자세히 살피면 성령세례 받을 때에 방언을 반드시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세한 것은 제 4장, 성령 장(chapter)에서 언급하겠습니다.
방언은 성경상 세가지 종류의 방언이 있습니다.
첫째는 각 민족들이 쓰는 인간의 언어 방언이 (행21:40,계7:9) 있고 성령세례의 방언이 (막16:17, 행19:6) 있고 은사의 방언이 (고전14:14,26) 있습니다.
그러면 또 많은 분들이 묻기를 1200여년만에 지구에 다시 방언이 출현한 서기 1900년에서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도 까지 48년간은 성령없는 방언의 역사였나?
그 답은 다음에 내놓기로 하겠습니다.
7 인으로 봉한 구절들은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 뗄(Open) 수 없다.
여러분들에게 성경에 많은 구절들의 하나님의 말씀이 일곱 인으로 봉하고 감추어져 있다 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앞에서 예로 든 몇 가지 난해한 구절들의 그 영적 비밀의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 구절들의 영적해석도 사람의 지혜나 능력으로는 그 봉한 일곱인을 뗄(open) 수 없는 것입니다.
위에서 몇가지 성경 안에 감추어진 영적비밀의 해석을 짝들을 맞추어 풀어 해석하여 놓은 것을 보니 쉬운 것 같으나 사람의 지혜나 능력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는 짝구절들을 찾아 맞추어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이 그러한 짝 구절들을 찾아내어 맞추고 그럴듯하게 꿰맞추어 해석한 것같기도 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영적해석은 사람의 지혜나 능력으로 알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봉한 것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개봉할 수 없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하고 속이지 못하게 하려고 일곱 인으로 봉하셨습니다.
또 엉터리로 제멋대로 짝들을 맞추고 꿰어서 해석한다면 여호와증인이나 안식일교나 신천지교회처럼 앞뒤 좌우가 엉망이 되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뱀의 거짓말이 되고 선악과가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논술한 엘리야의 3년반 기근에 관한 영적해석을 한 어느 목사나 신학자가 과거에 있었습니까?
또 현재에는 있습니까?
없었지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단 교파들의 특징은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교리와 그 뜻이 반대되는 구절들은 절대로 언급하거나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교리에 필요한 그 뜻이 명확하지 않거나 애매모호한 구절들을 주로 골라 엮어서 해석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과 반대되는 성경구절들을 인용하면 그들의 엉터리 거짓이론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계22:10)에,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이제는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으니 그 인봉을 떼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한 계시록에 있는 예언들은 어떻게 해석하나?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난해한 예언들 중에서 한가지만 예를 들어 풀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대접재앙은(계6:1) 무엇입니까?
여기서의 대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바로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며 특히 그 속이 더러운 목회자들을 가리킵니다.
회칠한 무덤, 겉은 깨끗해 보이나 그 속에는 갖은 더럽고 악한 것들로 가득찬 자들.
그 안에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각종 더럽고 악한 독이(venom) 가득찬 대접을 땅에 쏟으면 요한계시록의 일곱 대접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들의 땅은 무엇입니까?
흙 입니까?
예, 흙은 흙인데 농사짓는 흙입니까?
성경의 흙은 영적으로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각종 더럽고 악한 독(거짓 설교)을 사람들에게 쏟으면 재앙이 되어 사람들의 영혼이 멸망하는 것입니다.
(마 23: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개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였도다 (마23:27).
진노의 일곱 대접을(vials or bowls) 땅에 쏟으라 하더라 (계16:1).
이와 같이 대접, 잔, 그릇 등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vessel)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1).
성령께서 바울을 지칭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vessel)이라(행9:15).
이와 같이 그릇이란 널리 알려지다시피 사람을 가리키지요?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겔2:9,10).
우리가 흔히 성경에 나오는 두루마리는 성경책을 의미한다고 목사들이 말하지요?
그런데 성경은 축복과 구원의 복된 책으로만 알았는데 여기에서 보니 재앙이 가득하다 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그 두루마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여 바르게 가르치지 아니하고 거짓 목자들이 제멋대로 제 생각대로 가감(加減)하여 만들어낸 선악과를 사람들이 먹으면 그 영혼들이 멸망하는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대접재앙이 무슨 흔히들 말하는 백보좌 심판후의 아마겟돈 재앙이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예언들은 거의 모두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보혜사 성령시대에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지 아니하면 전부가 영적 거짓말이 되어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과가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선악과가 되어서 언어혼잡(babel)을 일으키어 그 독사들의 독으로 인류를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그 독사들이 누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까?
바리새인들이였지요.
그러면 그 바리새인들이 오늘날 지금에 와서는 누구들입니까?
여러분 깊히 깊히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는 왜 믿습니까?
세상복 받을려구요 아니면 영생의 복을 받을려구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복 받을려고 믿고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영생복락의 구원을 받을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영생의 복은 받지 못하고 세상복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 하여도 결과적으로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하겠습니까?
세상복이야 불과 몇십 년밖에 더 됩니까?
영생의 복은 영원한 것인데.
영생의 복도 받고 세상복도 받는다면 더할나위 없겠지요.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올바로 믿으면 세상복도 영생의 복도 다 받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미혹할 때 반드시 성경을 가지고 그 성경 안에 있는 구절들과 내용들을 가지고 속입니다.
만약에 성경을 봉하지 아니하고 그냥 open 이 되어 있다면 사탄의 장난과 속임수로 아무도 천국으로 갈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7인 (첫번째 인의 흰말은 참성도 그위에 탄자는 예수 그리스도)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4 가지 말 (Horse)
백마 – 하나님의 말, 승리한 말, 구원 받은 성도들.
붉은 말 – 적그리스도, 사도복음에서 나간 자들 (요일2:18). 타락한 계명성 (사14:12), 범죄한 그룹(Cherub) (겔28:16). 성령모독 죄, 짐짓진 죄, 당짓는 죄를 범하여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할 사람들.
검은 말 – 성령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는 개신교 교인들. 목사 노릇, 성도 노릇은 열심히 하는데 은혜 (성령) 받지 못한 말.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 (계3:1).
청황색 말 – 은혜(성령)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안받은 것 같기도 한 말. 두가지 마음을 품고 우왕좌왕 하는 신도들.
구약의 율법 613조와 모든 story는 다 감추어진 영적 뜻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을 올바로 알려면 성경의 66권에 있는 구절들을 모두 다 해석해야 하는 데 신약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는 12 사도들이 전한 ‘사도복음’을 배워야 다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롬15:4) 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아가서는 엄청난 말씀비밀의 창고이므로 아가서의 난해한 구절들을 다 open 해야 하며 성경에 기술된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 하나하나를 다 풀어야 만 하나님에게서 온 진리입니다.
예를 들면 (출3:2)에서 떨기나무의 불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그 곳에서 모세의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은 영적으로 무슨 뜻이, 어떠한 비밀이 있는가?
형제의 이름을 잇지 않는 자나 친족의 기업을 무르지 않는 자들을 성읍장로들 앞에서 그들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그의 집을 신발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하는 (신25:9, 룻4:8) 것은 무슨 영적 의미가 있는지?
구약에 유대인의 제사 절차와 율법은 지금 신약시대 와서는 영적으로 어떠한 뜻이 있는가?
예를 들면 구약에 요제와 거제 (레23:20,레17:32)가 많이 나오는데 왜 제사장들이 양과 소의 앞다리, 뒷다리를 흔들어 요제로 삼았는가?
또 왜 뒷다리를 높이 들어올려서 거제로 삼았는가?
왜 정한(clean) 짐승은 발굽이 갈라지고 새김질을 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모세 오경에 나오는 율법의 613조가 신약시대 와서는 모두 어떠한 영적 의미와 비밀의 뜻이 있나?
율법의 모든 613조가 우리 신약시대에 와서는 어떻게 영적 의미로 상징하는지 그 이해를 돕기위하여 613조 중 한 가지를 예를 들어서 짝구절들을 찿아서 맞추고 구슬을 꿰는 문법으로 꿰어서 그 영적 뜻을 밝혀 보겠습니다.
“정한 짐승은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의 규례에(레11:2-8)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영적의미를 신약시대의 우리에게 주는 것인가?
발은 성경상에서 복음, 기쁜소식으로 (유앙겔리온) 상징합니다.
신발도 마찬가지의 의미로 상징합니다.
(사52:7)에, 좋은 소식을 갖어오며 평화를 공표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구원을 공표하며 ……..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롬10:15)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엡6:15)에,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그러니까 짐승의 발굽이 둘로 갈라졌다는 의미는 복음이 진리와 비진리로 둘로 나누어 구분이 되었다는 뜻인데 비진리는 먹지 않고 진리만 구분하여 골라 먹는다는 뜻입니다.
짐승들이 먹는 양식의 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상징합니다.
(요10:9)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pasture)을 얻으리라.
새김질한다는 것은 그 복음 중에서 진리의 말씀을 골라 먹고나서는 계속하여 그 말씀을 되새기고 묵상하여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어 우리의 심령에 피와 살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발이 안 갈라졌다는 것은 복음이 진리와 비진리가 서로 혼합이 되어 석은잔과(계18:6, 시75:8) 비빔밥이 되어서 초교파(WCC) 그러니까 예수 믿으라고 하는 어떠한 교리와 가르침들 모두를, 어떤 설교든지 상관없이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다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 신학 저 신학, 이 교리 저 교리, 이 목사 저 목사들의 설교 할 것 없이 그 설교와 가르침이 성경과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으며 아무 것이나 무조건 다 상관없이 다 믿고 따른다는 것이지요.
어느 목사나 부흥강사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에 예수 믿으라고 하는 설교는 그 사람들이 말한 내용이 성경의 교리와 같은지 아니 같은지 따지고 헤아려 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아멘 아멘” 하면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요 얼마전 한국 감리교 신학대학 총장이나 조용기 같이 구원은 어느 종교에도 다 있다 라고 하는 뱀의 거짓말도 있었지요?
낙타나 토끼는 새김질은 하는데 그 발이 굽이 안 갈라진 통발내지는 여러개의 발가락으로 나누어졌으니 거짓 교리나 올바른 교리나 올바른 가르침이나 거짓 가르침이나 할 것 없이 마무 것이나 마구잡이로 잡식으로 막 먹고 되새김질하니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변질되고 잘못된 복음을 아무리 되새긴들 무엇합니까?
초교파들의 교리와 성경해석이 (WCC) 하나의 통으로 생긴 발 내지는 여러개의 발가락으로 된 짐승의 발을 영적으로 의미합니다.
뱀의 거짓말이 섞인 선악과인데 선악과가 섞인 섞은잔인데 바벨론 음녀의 가증한 금잔을 들이키면 그 영혼이 어찌 되겠습니까?
짐승의 고기는 우리 인간의 양식이기도 하고 또 성경상에 영의 양식 즉 하나님의 말씀과 제사와 예배로도 자주 상징합니다.
구약의 율법 613조 중 한 가지를 신약시대의 영적의미로 사도 바울이 해석한 것이 (고전9:9-10, 딤전 5:18)에 나오지요?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딤전5:18).
여기서도 보면 구약시대의 그 613조 중에 하나인 소에 대한 규례인데 그 소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구약시대에서는 실질적인 동물의 소를 가리키나 지금 신약시대에는 복음 전도하는 사역자들을 가리키지요?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모든 율법의 규례와 법이 다 그 안에 영적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마5:17-18)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구약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과 예언들 그리고 613조의 율법은 그 안에 감추어 있는 영적 뜻과 의미가 신약시대에 와서 반드시 똑같은 현상이 영적으로 재현이 된다.
구약에서 한 예언은 신약에서 다 이루어지며 율법의 613조는 신약에 와서도 영적으로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눅16:17)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7-18).
성경 안의 난해한 구절들과 내용을 풀어 해석하는 방법
성경의 올바른 해석이란 여호와 증인이나 한국 과천의 신천지 교회처럼 성경 안에 있는 자기네 교리에 필요한 그 뜻이 애매모호한 몇가지 혹은 수십 가지의 구절들을 엉성하게 마구잡이로 추려내어서 자기네식으로 맞게 되는대로 억지로 꿰맞추어 엉터리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 부분을 체계적으로 논리있게 다루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경의 전체적인 구도와 흐름을 잘 알아야 하는데 마치 Jigsaw puzzle 과 같이 올바르게 그 짝들을 연결하여 짝맞는 구절를을 제자리에 갖다 붙이고 맞추어야 만 큰 그림(진리말씀)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한두 piece(성경구절)라도 아무 데나 갖다 붙이거나 서로 다른 짝들을 잘못 연결하고 꿰며는 Jig saw puzzle의 본래의 그림을(말씀진리) 전혀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짝이 없는 것이 없다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영(성령)이 이것들을 모으셨다 (사34:16).
그 짝들이란 성경 어느 권에 한 구절과 다른 권의 한 구절일 때도 있으며 어느 한 구절과 다른 곳의 여러 구절일 때도 있고 또 그 짝들이 여러 구절들끼리 복수로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짝들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되게 감추어 있는 비밀의 말씀들을 찿아내어 진주구슬을(짝구절들, 마7:6, 마13:45-46, 계21:21) 은혜의 줄로(엡4:3, 호11:4) 꿰어서 그 봉한 것을 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라고 있듯이 서로의 맞는 짝들을 찿아 은혜의 줄로 꿰어야만 올바른 참 영적 해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주구슬은 무엇이고 은혜의 줄로 꿰는 것은 또 무엇인가?
성경은 읽어서 이해하고 그 참 뜻을 깨닫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꿰는 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이 무슨 무슨 궤변인가?
과연 그러한 성경해석 법이 있는 것인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예, 당연합니다
구슬을 꿰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출10:13-15 )의 메뚜기재앙은 (욜1:14)의 메뚜기재앙과 (암7:1-2)의 황충재앙과 (계9:11)의 황충(locust)과 연결된 짝들인데 이 메뚜기는 영적 해석으로 거짓 선지자, 거짓 목자들을 가르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 예언, 거짓 가르침으로 인간의 영혼들을 몰살시키는데, (욜1:4)에는 한 거짓 선지자 무리들이 먹고 남은 것을 또 다른 거짓 선지자들이 먹고 그리고도 조금 남은 것을 또 다른 거짓 무리들이 먹어치우며 싹슬이 하고 있는 현 기독교계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메뚜기들이 지면에 있는 풀과 나무잎과 곡식을 모조리 핥아서 전멸을 시키는데 성경에서 풀과 곡식과 나무들은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출10:13-15)에 나오는 열 가지 재앙 중의 하나가 메뚜기인데 그 메뚜기 재앙이 지금 우리 시대 사람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 당연한 질문입니다.
우리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고 그 메뚜기 뿐만 아니라 출애굽 당시의 모든 열 가지 재앙이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영적으로 내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출애굽 열 가지 재앙들의 짝이 요한계시록에 다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러한 소리를 하는가?
성경에 기록 되어있는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은 그 당시에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인데 그 사건 하나하나가 다 후일에 영적으로 그대로 재현되어 일어날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우리들에게 거울로 혹은 교훈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8:7)에는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쏱아지매 땅의 삼 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1/3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여기에 나오는 땅, 수목, 풀은 다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땅이나 흙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흙으로 빚어 만들었기에 흙으로 비유하는데 성경에 보면 그러한 비유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그런 비유단어들의 영적 의미를 모르면 해석할 수 없는 구절들이 성경에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자주 많은 구절들에서 흙, 땅, 섬들이 나오는데 “땅” 하니까 지구 표면의 땅바닥만 생각을 하니까 올바른 영적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41:1, 5)에,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고 말하라 우리가 서로 재판 자리에 가까이 나아가자.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의 구절들의 섬들은 뭇 인생들을 가리킵니다.
특히 예언서들에는 그러한 난해한 구절들이 많이 나오므로 그 구절들의 단어의 이면적인 영적 뜻을 모르면 도저히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황충(메뚜기, 계9:3, 9:18)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거짓 가르침, 선악과) 인하여 사람 1/3이 죽임을 당하더라 하였으니 여기서 말하는 수목과 풀은 사람 즉 예수 믿으려 하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렘5:14 )에,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라.
(시114:4, 사40:6)에, 모든 육체는 풀이라.
계시록의 1/3 이란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이지 세개 중에 하나라는 수학적인 개념의 숫자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많은 부분이 그 영적 뜻이 감추어진 비유와 수수께끼로 되어 있으므로 예수께서도 모든 말씀을 일반 청중들이 깨닫지 못하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지요.
계시록에 나오는 삼분의 일이라는 숫자는 글자 그대로(literally) 셋 중에 하나 즉 0.3333… 혹은 33.333…% 이라는 수학적인 뜻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계시록에 나오는 아라비아 숫자들은 우리 인간이 양적(quantity)으로 세는(count) 수학적인 숫자가 아니라 다 상징적으로 풀어야 하는 감추어진 숫자입니다.
그 유명한 계시록의 숫자, 이마에 인 맞은 구원받은 144,000 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원리들을 모르니 혹자는 구약 때 유대인들 중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이다 (조용기 해석).
어떤 자들은 천국의 지배계급의 숫자이다 (여호와증인 해석).
이만희의 신천지교회는 현재 지상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이다 등등 거짓해석을 하며 제각각 언어혼잡(babel)을 일으켜 자기 해석을 제멋대로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만희는 그러한 숫자 144,000 명을 채워서 자기를 숭배하게 하려고 그 악하고 더러운 무지렁이 뱀의 혀를 놀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사이비 이단 종파들에서 언급하는 144,000은 여호와 증인 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이마에 표는 무엇을 말합니까?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의 표, 계시록에 나오는 144,000 인의 이마의 표는 무엇을 말합니까?
현재 전세계적으로 신학적으로 풀지 못하는 성경의 3대 의문의 수수께끼 중 하나가 바로 가인이 받은 표입니다.
궁금하십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낱말들과 구절들, 역사적인 사건들, 예언서와, 교훈들은 그 모두가 하나님의 지혜로 완전하게 선지자들의 손을 빌려 기록한 것인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똑같은 내용을 두번 세번 반복하여 기록된 것은 그많큼 더 중요하기에 강조하기 위하여 그리한 것이지요.
그들 중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역사 story 들은 반드시 후세에 똑같은 현상과 사건들이 일어날 것을 영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이 너무도 잘 아는 출애굽 이후 40년의 광야생활은 그 영적 의미가 우리들에게 거울로 보여준다 하였지요 (고전10:5-6).
그러므로 우리가 더 깊히 파헤치고 들어가면 깜짝 놀랄 엄청난 사실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무엇인가?
차차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목사들의 설교나 신학자들의 가르침이 성경의 교리와 맞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우리는 목사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성경과 일치하는가 아닌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비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겠습니까?
반드시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을 어느 정도 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느 누구의 설교도 성경해석도 가르침도 교리도 성경의 내용에 비추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나마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설교나 성경해석도 본인이 스스로 어느 정도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필자) 이 글에서 언급하는 모든 말들과 성경해석이 과연 진리이고 성경에 부합되는가 안 되는가도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아무에게나 어떠한 부흥사나 목사나 신학자나 전도사나 그 누구에게나 쉽게 내맡기면 아니됩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설교나 성경해석들이 틀림없는 진리인가 아닌가 우리 자신들이 꼼꼼이 따지고 철저히 연구해야 합니다.
그들의 설교가 성경말씀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확인을 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경 내용을 훤히 알아서 그들의 설교를 성경의 내용과 비교연구 한다면 많은 목사들의 설교가 엉터리 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들의 설교 중에 50%는 저희들이 스스로 만들고 지어낸 내용들이 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음녀의 섞은 잔입니다(계18:6) .
성경진리 40% + 바벨론종교 교리 10% + 바리새인의 누룩 50% = 음녀의 섞은 잔 .
(겔13:3)에 자기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렘23:30), 내 말로 도적질하는 선지자.
(렘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였도다.
(겔13:13),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그러므로 성경 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훤하게 알 때까지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목사들이 하는 설교들을 잘 분별하여서 그 중에서 성경적으로 맞는 말은 취하시고 비성경적인 내용의 말은 다 골라내어 배척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이유로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여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정결한 짐승들은 발굽이 둘로 갈라져 있고 되새김질을 하였습니다.
그 영적해석을 이 장 앞에서 하였지요?
되새김질한다는 것은 그 난잡한 복음들 중에서 진리와 비진리의 말씀을 구별하여 성경적인 진리만 골라 먹어야 하고 먹고난 후에는 계속하여 그 말씀을 되새기고 묵상하여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어 우리의 심령에 피와 살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영원불멸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모든 것보다도 부귀영화보다도 혈육보다도 귀중한 것이 여러분들의 영혼입니다.
그러한 귀하고 하나밖에 없는 여러분의 영혼, 그리고 또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여러분의 영혼구원을 성경적인 검증 없이 그 누구의 성경해석이나 설교나 교리나 가르침에 쉽게 수긍하고 믿어 내맡기면 안 됩니다.
훗날 그러한 여러분의 영혼이 잘못된 교리들로 인하여 구원을 못받고 어두운 밖으로 내어 쫓겨나서 영원한 고통의 지옥형벌에 떨어진다고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너무도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하여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마13:42).
(마13:41)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나님 말씀이 수도 없이, 서로 다른 많은 교리들과 성경해석의 언어들로 혼잡한 바벨론
Babel 즉 바벨이란 낱말의 어원이 무엇인지 다들 아시지요?
언어혼잡.
예!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대언할 때는 혼잡한 바벨론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말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창세기 때에 하나님이 아담과 대화하실 때에 쓰시었던 말, 언어 히브리어 즉 아담과 하와가 사용하였고 에녹과 노아가 사용하였던 고대 히브리어 바로 그것입니다.
노아홍수 이후로 노아와 그 가족들이 퍼트린 언어인데 노아의 장자 셈의 족보를 따라 셈의 네번째 손자인 벨렉시대까지, 바벨탑이 무너진 시기까지 약 100여년간 온 세상의 언어가 다 히브리어였었고 그 후 계속되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까지 전승되어진 언어입니다.
노아가 홍수 이후로 350 년을 더 살며 야곱이 성년이 되기까지 살아 있으면서 그 셈족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이 지나간 세월 행하신 모든 산역사를 증언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흔히 언어학자들이 히브리말은 아람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아람어가 히브리어에서 파생된 것이지요.
그러면 고대에 한 구음이었던 히브리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진리를 말합니다.
다시 영적으로 말하자면 저마다 각각 다른 사람들이 지어낸 사람들의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진리의 말씀, 12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천국복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를 전해야지 이 사람 저 사람 제각각 중구남방으로 자기들의 심령에서 만들어 낸 사람의 소리로 떠들어 언어혼잡을 일으켜 바벨론 음녀의 가증한 바리새인의 금잔을(요17:4) 마시면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겔13:3)에, 자기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성경 본문들의 많은 수수께끼(삿14:12)들, 의심에 또 의심(히 25:22)을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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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쓰고 있는 이 글의 내용도 성경에 비추어서 맞는 올바른 소리인가 아닌가?
연구하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교회목사 설교가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어떤 신학자의 소리는 성경의 내용과 부합되는가 어떤 부흥사가 부흥회에서 떠들었던 소리는 성경적으로 올바른 소리를 하였는가를 점검하고 따져봐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시대에 유명한 목사들이 주장하며 떠드는 소리가 과연 성경적인가 아닌가 ?
조사하고 연구하십시요.
사탄이 말세에 예수 믿고 천국 가려고 하는 자들을 거짓 교리로 속이는데 반드시 성경을 가지고 속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선지자가 사용하면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의의 쟁기가 되고 악한 거짓 선지자가 이용하면 영혼을 죽이는 흉기가 됩니다.
(삼상 21:9)에,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가지고 가라 다윗이 가로되 그 같은 것이 없으니 내게 주소서.
칼은(히4:12)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인데 골리앗(사탄, 거짓목자)이 사용하면 살육하는 무기(흉기,선악과)가 되고 다윗(참목자, 하나님의 선지자)이 사용하면 영혼을 구하는 생명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진리의 정의
누구든지 자기자신을 깨끗이 하여 하나님께 바치고 기도하며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요8:32)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14:6)에,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16:13)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진리(眞理)란 무엇입니까?
The Truth (veritas, Emet אמת, aletheia Αλήθεια)란 무엇인지 정의(定意)해 보세요.
The definition 을 진술해 보십시요.
진리란 하나님의 입(The Mouth)에서 나오는 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십계명(the Commandments),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법, 예수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 그의 사도들에게서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리입니다.
성령의법이(롬8:2) 진리입니다.
(마28:20)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commanded)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잠 2:6)에,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16).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4: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 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59:21).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렘1:9).
(요17:17)에,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가 흔히 목사들이 설교하는 것을 대언(代言, Prophesy)한다고 하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 사도들의 입에서 나온 말 은사의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교인들에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심령에서 만들어 낸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 (겔13:3).
이와 같이 입이란 단어에는 큰 비밀이 있는데 사람의 인체 중에서도 제일 성(聖)스러운 곳이 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입을 조심해야 하며 입술을 신중하게 놀리어 부정(不淨)하고 사악한 것은 멀리하여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입은 아주 중요한 영적의미가 봉(封)하여져 있습니다.
(요16:13)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목사들이 혹은 어떠한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기름부음이(요일2:27)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7).
누구든지 심령을 깨끗케 하고 (마5:8) 기도하며 구하면 (마7:7) 성령의 은사를 (고전12:8) 받고 그 기름부음이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빌3:8) 기름부음이 (고전12:8, 요일2:27) 가르쳐 주는 것이지 무슨 신학교나 신학자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기름부음을 받고자 기도하며 노력하여 지식의 은사를(고전12:8) 받으면 모든 영계비밀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수도 없이 많은 기름부움을 받은 선지자들이 이 말세지 말에 출현하여 그리스도의 진리를 회복하는 제 2의 종교개혁이 빨리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세에 진리를 믿는 진실한 기독교인이 과연 있겠는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약 22억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22억 인구 중 상당수는 엉터리 기독교 교회가 많이 있는데, 카톨릭교회와 동방정교 교회 그리고 남미의 토속종교와 혼합된 사이비 카톨릭신자들과 개신교 중 통일교와 신천지같은 사이비 이단 종파들을 모두 다 합친 숫자가 22억 명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거론할 가치의 대상이 되는 개신교인들 중에서 보수적인 개신교 종파들을 추리어내서 열심히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잘 살펴 분석해 봅시다.
그 보수적인 개신교인들 중 그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기독교신앙을 자기 일상생활에 반영하여 철두철미하게 믿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신앙을 죽기살기로 지키면서 성경을 한 번 이상 통독하고 성경의 내용을 잘 아는 기독교인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한 10% 정도 될까요?
만일 그숫자가 10% 라 하면 그 10% 가운데서도 자기 인생을 그리스도를 위햐여 죽든지 살든지 철두철미하게 성경의 신앙 대로 일상생활을 살며 성경을 매일 읽고 성경 안에 있는 여러 난해한 구절들과 또 서로 상충돼는 내용들을 알고자 애쓰며 기도하는 자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러면 또 반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데 있어서 꼭 성경의 내용을 잘 알아야 하나?
그러한 성경상의 난해한 구절들을 꼭 알아야 될 필요가 있는가?
그러한 것들을 다 몰라도 예수 잘 믿을 수 있고 얼마든지 천국 갈 수 있는데……
예, 그러한 생각을 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 대부분의 신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성경상의 난해한 구절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또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며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맹목적으로 습관적으로 그저 교회나 왔다 갔다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읽으라고 주신 성경을 통독 한 번 안해보고 교회 목사들 부흥사들 설교나 듣고 감동되어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성경적으로 맞는지 아니 맞는지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알려고도 생각지도 아니하고 그저 “아멘 아멘” 하며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그러한 어리석고 나태한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천국 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천국 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 하였고 (막 10:24-25).
인자가 올 때에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시었지요 (눅 18:8).
노아 홍수 때에 구원 받은 사람들이 몇 명이며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40년 간 유리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 몇 명입니까?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 말씀처럼 올바른 믿음이 과연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과연 예수가 말씀하시는 말세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천국을 갈 수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사탄은 예수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나 비기독교인들을 또 기독교인들까지도 미혹할 때에 무슨 불교경전 등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방종교의 추종자로 만들거나 무신론자로 만들거나 아니면 토속신앙이나 샤마니즘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은 이미 지옥가기로 작정이 되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악령들이 구태어 힘들여서 악의 역사를 행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미 자기네들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구태여 사탄이 힘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사탄의 target 는 오직 예수 믿고 천국 갈려고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천사들과 악령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지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제외된 사람들입니다.
(계11:2)에,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계22:15)에,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예수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마귀의 수하들이기 때문에 이미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고 싶어하는 여러분들에게 악령들이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겠다고 하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갖은 악한 생각과 유혹과 거짓 교리들로 유혹하고 속이어 그 영혼들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영한 불(마 25:41) 지옥으로 갈 때에 될 수 있으면 최대한도로 더 많이 함께 데리고 가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리는 것입니다.
이미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성경을 가지고 거짓교리로 엉터리 성경해석으로 하나님의 법을 바꾸고 십계명을 바꾸고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교리와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 내려오면서 전통이 되어 버린 교회유전들로 망하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그럴듯한 철학과 교훈과 도덕적인 논리의 누룩으로 섞어서 보리떡처럼 반죽하여 사람들의 인분불에(겔4:12) 구어 가지고 선악과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공급하여 그 선악과를 먹은 영혼들을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의 비유 구절들과 예언서를 이용하여 많은 영혼을 후리고 있는 사이비 이단 종파들
그러고 보면 또 많은 분들이 반문하기를 현재 많은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그와 같이 주장하지 않는가?
네 그렇습니다.
현재 많은 사이비 기독교 이단 종파들에서 성경의 비유 구절들과 예언서들을 해석한다고 하면서 많은 선량한 기독교인들을 거짓 복음과 교리로 속이고 유혹하여 그들의 영혼과 삶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이단 종파의 거짓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현재 이만희의 신천지교와 같은 여러 이단 종파들에서 그러한 성경 안에 있는 비유의 말씀과 구절들을 제멋대로 자기네 교리에 맞게 엉터리로 해석하고 가르치며 많은 기독교인들을 사이비 기독교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소위 비유풀이 한다고 하면서 그 이단 교주들을 신으로 섬기게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이비 이단 종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고 그 종파의 교주들을 섬기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완전히 다른 교리이고 이론입니다.
그 이론들 자체가 너무나 저속하고 유치합니다.
왠만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교리가 기독교의 교리가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현재 전세계에 있는 모든 사이비 기독교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와 이론들은 성경에 쓰여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두지 않고 그 교주들이 만들어 낸 교리와 이론을 성경보다 우선시 합니다.
그 교주들이 쓴 책들(경전) 안에 있는 내용과 이론에 절대적인 권위와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네가 주장하는 이론에 도움이 되는 성경에 있는 그 뜻이 애매모호한 그럴듯한 구절들을 몇개 뽑아서 악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네들 교리에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려고 들러리로 이용하는 것 뿐입니다.
사이비 이단의 원조인 로마 카톨릭, 통일교, 안식일교, 안상홍의 하나님 교회, 천부교, 신천지, 몰몬교, 여호와 증인, 워치만 니 등 모든 이단 종교가 다 그들의 경전이 따로 있습니다.
성경은 뒷전이고 그 이단 교회 창교자들이 만든 거짓 이론에 신도들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충성을 합니다.
그들의 종교는 사교(邪敎)입니다.
Heretical sect 또는 Cult 라고 하겠습니다.
몇가지 성경구절들을 이용하여 사기 행각을 벌이는 종교 야바위꾼들입니다.
특히 이만희의 신천지가 그렇습니다.
이만희는 차선녀라는 무당에게서 신내림 받은 무당입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도 못받은 무식한 무지렁이인데 한국에서 최고로 더럽고 사악한 이단 종파들만 골라서 종교생활 하였습니다.
이만희가 그 교주들 특히 유재열 밑에서 갖은 충성을 다하며 신임을 얻고 “장막성전”의 유재열, 문선명, 박태선이와 같은 유명한 성공한 사이비 종교 교주들의 종교운영 수법을 (knowhow) 수십년간 학습하여 습득을 하고 그 비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거짓 이론들을 자기가 개발한 논리와 섞어서 잡탕으로 하나의 새로운 종교이론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의 삶과 영혼을 썩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문선명이나 박태선과 같은 최악의 종교 사기꾼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그 종교의 교주들을 이만희나 이재록이나 문선명 같은 영적 사기꾼들을 숭배하게 하기 위하여 그 교주들이 성경에 있는 구절들을 몇개 이용하여 조잡하게 만들어낸 저질 이론이고 사상입니다.
사이비 이단들이 주장하는 이론들의 특징은 성경 전체를 다루지 않고 극히 성경의 일부분만 인용합니다.
기독교 전문가들이 그들의 교리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모든 이단 종파들의 교리들은 여러 타 이단 종교 이론들을 성경에 있는 내용 일부와 같이 섞어서 엉성하게 엮어 만든 잡탕 이론들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논리적으로 잘 이해가 안되는 유치하고도 저질스러운 이론들이 대분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닌 그 종파 교주들을 신으로 섬기게 하는 사이비 기독교 종파들에서는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사상에 반대되는 많은 성경구절들은 절대로 언급하거나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구절들을 언급하면 그 교주들을 섬기게 하는 교리와 사상을 논리적으로 정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한국에 있는 신흥종교들의 교리를 조사 연구하여 보면 그 이론들이 너무도 질서가 없어서 논리적으로 잘 성립이 안되어 있습니다.
이론들을 엉터리로 억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요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교주들을 우상숭배화 하기 위하여 억지로 만든 교리이니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될 수가 없을 뿐더러 이론의 논리가 체계적으로 설 수가 없지요.
한국에서 번성하였던 모든 사이비 이단 종파들은 그 교리들과 이론이 1940 년대와 1950 년대에 경기도 파주에서 활동하였던 “이스라엘 수도원”의 김백문에게서 전수받은 것들입니다.
문선명, 박태선, 김종규, 유재열, 나운몽, 정명석, 조희성, 이만희, 권신찬, 박옥수, 김기동, 박윤식, 안상홍 등등 기라성 같은 이단 교주들이 다 김백문이가 집필한 “기독교 근본원리” 라는 경전에서 이론과 아이디어를 계승한 것들입니다.
김백문은 한국 토종 사이비 이단 원조인 김성도의 인류의 음란 원조죄와 한국의 모든 추잡한 토종 사이비 이단 이론들을 다 모아서 집대성 한 자입니다.
지옥에서 적그리스도의 수괴 “니므롯”이 큰 공로 훈장을 김백문에게 수여했을 겁니다.
그외 작은 이단 집단을 이루며 교주 노릇하는 조무래기 이단종파들도 다 위에서 열거한 유명한 이단 종교들에서 나와서 가지치기하여 따로 새로운 종파를 창업하고 구멍가게들을 이루며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백문의 이론은 모두가 다 1920년도와 1930 년도에 북한 지방에서 발생한 한국 이단 종교의 원조인 신비주의계 사이비 기독교 소종파들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김성도, 유명화, 황국주, 백남주, 정득은 등등이 있는데 모두가 다 뱀과 하와가 간음을 했다는 간음의 원죄, 신비주의, 피가름, 입신체험 등 무당들이 행하는 무속신앙과 비슷하고 또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 아니면 영생주, 이긴자, 재림주, 감람나무, 보혜사 성령 등이라고 주장하며 수많은 무지몽매한 영혼들을 후렸습니다.
저희들끼리 합쳤다가 또 갈라지기를 계속 반복하면서 교리와 이론도 저희들 끼리 서로 주고받으며 이어받고 또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추가하기도 합니다.
이만희의 이론은 주로 유재열과 김풍일의 것을 이어받고 박태선과 문선명의 것도 조금 추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만희는 그들의 이단 종교 운영 수법과 비법을 배워서 그대로 따라하여 대성공을 하였습니다.
한국 신흥종교의 교리들은 모두가 다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 사상과 별 차이가 없는 우스꽝스러운 것들입니다.
개그맨들이 “개그” 하는 것과 별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 그 허위가 쉽게 드러나는 것을 그 많은 사람들이 믿고 추종을 하니 기가막힐 일입니다.
그 사이비 교주들을 행태를 보면 거짓이고 사기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예수교의 가르침인 사랑과 구제와 선행과 인격수양과 봉사와 헌신과는 정반대의 악한 행태를 보이는 사기꾼들에게 자기들의 인생을 바치고 저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저속하고 유치한 이론들에 세뇌가 되어서 수백 명, 수천, 수만 명씩 몰려다니며 그 교주들에게 물심 양면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은 도데체 어떤 두뇌를 가진 자들인지 신기할 뿐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거의 200만 명이 200여종의 사이비 이단 신흥종교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그 사이비 이단 종파들 중에서 교주가 자신이 재림예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120명 정도 되는데 그들 중 70명 넘는 교주들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충청남도 계룡산에는 자칭 재림예수라고 떠들고 다니는 종교 사기꾼들이 수십명인데 그 중에는 여자도 몇명 있다고 합니다.
여자가 예수가 될 수 있을까요?
이단 사이비 종교들의 특징은 다 똑같습니다.
그 교주들이 신도들을 끊임없이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하나의 왕국을 만들어서 왕과 같은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며 여신도들을 성적 노리개로 삶으며 그 “왕노릇의 재미와 쾌감을” 누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들은 신도들의 돈과 영혼을 갈취하고 물심양면으로 뺏아 가지만 하지 신도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은 절대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경전 안에는 그리스도교의 덕목인 사랑, 인격수양, 봉사, 구제와 선행에 관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신약성경 안에 쓰여 있는 그러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저들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저들의 목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요.
저들의 목적은 오로지 신도들을 영적 노예로 삶아 신도들의 돈과 노동과 성을 착취하는데 있습니다.
저 사이비 거짓 종파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반박하고 깨부술 수 있는 성경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짓 교리와 반대가 되는 의미의 구절들이 성경 안에 많이 있고 우리가 얼마든지 저들의 거짓 교리를 성경적으로 구절들을 인용하며 쉽게 논리 정연하게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저들의 논리가 속임수이고 허위라는 것을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성경을 여러번 통톡하여 성경의 전체 내용을 훤하게 알면 저들이 엉성하게 엮은 어설픈 저질 사기에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본문을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그들의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저질 논리에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단 종파 중에서 최고로 악한 종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안식일파의 안상홍의 “하나님 교회”입니다.
제칠일 예수 재림교에서 갈라져 나온 사교(Cult)인데,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키는 종교이며 안상홍이 천지를 창조하였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사악한 이단 종파입니다.
김백문이의 제자 문선명의 통일교나 박태선이나 신천지의 이만희 보다도 그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더 악한 종자들입니다.
그리고 장길자라는 한 여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있다.
천지창조를 하였다고 가르치는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장길자는 하나님의 아내 여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뒤에서 조종하며 떼돈을 벌며 실속을 챙기는 자가 김주철입니다.
그 옛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렇게 끈질기게 섬기던 니므롯의 바알신을 남신으로 (male god) 숭배하고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를 아세라 여신으로(female god) 숭배하던 바벨론종교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재현한 코미디 같은 저질스러운 거짓 종교입니다.
인류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사악한 종교 사기집단 “일명 안상홍의 증인회(안증회)” (당당 뉴스) Weblink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일반 보편적인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대상을 섦기라고 가르치지는 않지요?
일반 보편적인 기성 기독교 교회 안에서는 바리새인들이 단상에서 성경진리와 바벨론 교리와 바리새인의 누룩이 섞인 엉터리 설교를 하기는 하나 그래도 예수를 섦기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많은 바리새인들, 목사들 중에는 진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섞인 잔을 저희도 마시고 또 교인들에게 마시게 하는 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영적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사이비 이단 종교들에서는 그 종교 교주들을 섦기라고 가르치니 그 사악한 정도가 일반 기성교회들 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훨씬 더 악합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이 반문하기를 이글은 쓴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이 논술하는 난해한 성경구절 비유풀이와 사도복음의 교리는 믿을 수 있는 진리인가?
반드시 필요한 의문입니다.
결론은 본 Website “사도복음 선교회” 전장들의 글 전체를 다 읽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들이 전한 신약성경의 “사도복음”은 오로지 성경만이 유일한 신앙의 교리로 진리로 믿으며 그외에 세상에 어떠한 종교나 사람의 이론을 따르지 않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신 예수 그리스도만 섦기는 교회입니다.
구약 때는 여호와 하나님, 인자시대에는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섦기는 교회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나 천사나 어떠한 피조물도 숭배의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천하 없는 신학자나 어떠한 사람이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성경 안에 없는 이론을 가르쳐도 우리는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사도들) 너희에게 전한 복음 (사도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8-9).
우리가 제일 많이 속고 있는 것이 성령에 관한 교리이다.
성령(Holy Spirit)에 관한 교리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우리 보혜사 성령시대에 제일 중요한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우리 개신교 신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우리의 영혼구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대다수의 많은 개신교 교단들이 성령에 관한 하나님의 지식을 정확히 그리고 올바르게 모르고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성령의 법(롬8:2)이 무엇인지 배워서 잘 알고 깨달아서 올바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어 구원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4 장은 아래에 있는 Link에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