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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로마 카톨릭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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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로마 카톨릭의 작품

 

 

이슬람과 바티칸

7세기 초에  로마 카톨릭은  거의 전 서유럽과 동로마 제국 지역을  바벨론 종교화 하여  자기 세력으로 정복하였는데 유독히 일부 터키지방과 중동지역 그리고 특히 북아프리카에 있었던 초기 기독교인들을 로마 카톡릭의 태양신 교리와 세력으로 포섭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동방 그리스정교 교회와 힘겨운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당시 그지역에서 신앙생활하던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 복음에 충실하여 바티칸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예배일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심끝에 바티칸에서 한가지 계락을 꾸미게 되었다.

아랍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강력한  새로운 바벨론 종교를 창시하여 야만적인 아랍사람들을 충동하여 라이벌인 숙적 그리스 정교와  초대교회 기독교인들과 유태인들을 말살시키는 것이었다.

카톨릭 수녀였던 아라비아 여인 카디자를 통하여 마호멧트라는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를 만들어내고 Islam교라는 달신(세미라미스, 아세라 여신)의 종교를 창조한 것이다.

그리하여 서서히 저 무식하고 무자비한 아랍사람들의 살육, 약탈과 방화 그리고 전쟁에 능숙한 이슬람  무력에 의해 복아프리카 중동지역 그리스와 일부 동유럽과 페르시아와 중앙 아시아까지 초토화  되었다.

서기 300년 초부터 서유럽과 동유럽 지역에서는 로마황제 콘스탄틴으로 부터 생겨난 카톨릭에 의하여 초대교회의 믿음과 교리는  서서히 시간을 두고 바벨론 종교로 완전히 변하여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동방 그리스정교와 그세력안에 있는 동남부 유럽과 그외 여러지역들에 바티칸이 힘을  뻗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일부 터키지역과  중동지역, 북아프리카지역 등지에서 초대교회의 신앙을 지키던 초대교회 기독교 인들을  카톨릭의 바벨론종교 교리로 개종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북아프리카에 있었던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로마 카톨릭에 의하여 성경의 하나님 말씀이 바벨론 종교의 이방신 숭배로 변질된 교리를 배척하였고   예수그리스도의 12 사도들이 전한 초대교회 복음을 충실하게 지키었던 참그리스도인들(True Christians)이었다.

바티칸이  제일 미워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여겼던   기독교인들이 바로 북아프리카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리하여 카톨릭이 이슬람교를 이용하여 초기 기독교인들과 동방졍교회를 이슬람교의 무력으로 무참히 궤멸시키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로마카톨릭이 계획하였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계획은 수세기에 걸쳐서 실현이 되었던 것이다.

서서히 Islam교의 무자비한 전사들에 의하여 초대교회의 신앙을 지키던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거의 다 학살을 당하고 일부 살아남은 교인들은 공포에 떨며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였다.

그리하여 서기 약 640년 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복음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게된다.

서기 1900년까지 1260년간 이 땅위에 완전 영적 가뭄이 들어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바벨론 종교의 우상숭배가 온인류를 지배하게된다.

 

예수께서 마24:20에서 말씀하신 겨울을  가르키는 것이다, “도망하는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방은 기상학적으로 겨울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암8:11에서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을 말하는 것이다.

비가 안내려오는 가뭄의 1260의 겨울이 지나고 서기 1900년에 이르러서야 늦은비 봄비의 성령구원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진리 말씀의 비가 지구상에 1260년 만에 다시 내려오니 성령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후천년(後千年) 천년왕국(계20:6)을 의미한다.

사탄의 역사로 카톨릭이라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마호멧교라는 또 다른 적그리스도를 만들어 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지구상에서 도말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많이 존재하는 역사적인 자료들을 잘 살펴보면 밝히 드러난다.

성령(Holy Spirit)께서 친히 50여년 전에 우리 사도복음 교회에게 (Apostolic Gospel Mission Church) 계시한 비밀이기도 하다.

 

현재 이슬람 과격주의자들로 인하여 세계 곳곳에서 터러와 전쟁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 안에서도 종파분쟁으로 인한 처참한 살인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민족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지진이 있으리니 (마 24:7)

거짓 종교들과 종파들이 서로 저희들끼리 물어뜻어 죽이고 삼키는 것이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계19:17-18)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사21:9)

요즈음들어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에서 사작된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결성한 테러집단 ISIS 군인들이 많은 도시와 지역을 함락하고 니므롯의 후예들이 만들었던 바벨론의 우상 유적들을 파괴하고있다.

 

 

이슬람교와 로마 카톨릭 사이의 암시적인 관계성 및 유사성에 대해 논하면서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전직 예수회 회원이었던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 (Alberto Rivera, 알베르토 만화간증 씨리즈: 생명의 서신 출간)의 증언을 소재한다.
그는 바티칸에서 로마 카톨릭에 대한 가장 깊은 비밀들의 많은 부분을 브리핑 받은 바 있다.
이 내용들 가운데는 아랍인들 가운데서 새로운 종교 운동을 만들어내는 데 바티칸이 연루되어있음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당시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심하게 각축을 벌이던 예루살렘을 획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유대인들 또한 예루살렘에 대한 바티칸의 구상에 있어 주요 장애물이었다.

 

아래에는 이슬람 종교의 기원과 정체를 밝혀주는 참고 자료들

이슬람교의 기원과 정체 (특강) / 노우호 목사

How The Catholics Created Islam By Walter Veith

 


리베라는 그러한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바티칸은 아랍인들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진술한다.


아랍인들이 비록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아니라 해도, 그러한 운동은 로마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 사용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아랍인들을 로마에 귀속시킬 것이다.

마호메트가 25세에 카디자(Khadijah)라 불리는 부유한 과부와 결혼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마호메트보다 거의 15살이나 연상이었다.
마호메트가 부와 영향력을 얻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녀를 통해서였다.
약 40세가 되었을 때 마호메트는 환상을 보았다(그가 동굴에서 환상을 보았다는 것은 흥미롭다).
카디자는 마호메트로 하여금 그가 받은 계시들은 가족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였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첫 개종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리베라는 카디자가 헌신된 로마 카톨릭교도라고 밝혔다.
그녀는 그녀의 재산을 교회에 바치고 수도원에서 살았던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다시금 속세로 내보내졌다.


그녀는 그녀의 재산도 돌려 받고는, 아랍인들의 메시아로서 바티칸에 의해 사용될 수 있는 젊은 남자를 찾도록 보냄 받았던 것이다.


리베라는 또한 카디자의 사촌 바라카(Waraquah) 역시 헌신된 로마 카톨릭교도였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들은 함께 마호메트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마호메트의 추종자들은 또한 로마 카톨릭교도였던 아비시니아(Abyssinia)의 왕에게 지원을 받았다.
이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마호메트의 견해 때문이었다.

마호메트 사후 이슬람 군대는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눈부신 군사적 전진을 이루었다.
리베라는 교황이 이슬람 군대의 장군들에게 북아프리카를 침공할 수 있도록 허락해줌으로써 그들을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제거하고 로마 카톨릭교도와 로마 카톨릭의 성지는 보호하며 바티칸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승리에 들뜬 이슬람교도들이 도리어 로마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슬람교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대 성전이 있던 부근지역에 바위 돔 사원(오마르사원)을 세웠다.
리베라는 이슬람교의 형성과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이슬람교도들의 대단한 증오를 로마 카톨릭의 책임으로 돌렸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Muhammad)에 의해 창시되었고 메카(Mecca)에서 처음으로 세워졌다.
사라센인들(Saracens)과 그 다음에 투르크인들(Turks)을 통하여 거대한 이슬람 제국이 중동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의 상당한 지역을 정복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알라신이 이스라엘과 성경의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 주장이 옳지 않으며, 로마 카톨릭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 역시 바벨론으로부터 유래하였음을 보게 될 것이다.
로마 카톨릭과는 달리, 이슬람교는 바벨론의 가르침과 가증한 행위들이 지니는 모습들을 겉으로는 취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와 이슬람 사이의 유사성은 여전히 인식될 수 있다.

 

 

달(月)

바벨론 종교의 주요 지류는 태양신인 니므롯(Nimrod)과 달의 여신인 세미라미스(Semiramis)로 대표된다.
여신 아스다롯(Astarte)과 이시스(Isis)는 종종 초승달로 상징되었고, 이것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그대로 전수되어 성모 마리아의 상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데에 변형이 생겨남으로 태양과 달의 상징은 뒤바뀌게 되어, 달이 남성적인 신을 대표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니므롯의 아버지인 구스(Cush)는 “메니(Meni)” 혹은 “마나이(Manai)”란 이름으로 숭배되었다.
이는 갈대아어로 “수를 세는 자(The Numberer)”라는 의미이다.

점성술과 별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것은 바벨론 종교 체계의 핵심적인 특징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신들이 산수를 발명해낸 자들로 여김 받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벨사살(Belshazzar) 앞에서 벽에 쓰여졌던 글씨를 주목해보자.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MENE MENE TEKEL UPHARSIN)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MENE)는 하나님께서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단 5:25-26).

하나님께서는 벨사살과 바벨론의 운명을 그들의 종교의 방식을 따라 선언하신 것이었다.

이교도들이었던 색슨인들(Saxons)과 노르만인들(Norsemen)은 매우 유사한 이름으로 달을 숭배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호그메네이(Hogmanay)”라는 스코틀랜드의 축제를 볼 수 있다.
이 이름은 “수를 세는 자를 위한 향연”이라는 의미의 갈대아어 “호그-마나이(Hog-Manai)”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라비아의 시바인들(Sabeans)도 달을 남성 신으로 섬겼다.
그들은 12월 24일을 달신의 탄신일로 경축하였는데, 이는 앵글로-색슨(Anglo-Saxon)인들이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켰던 것과 거의 동일하다.

 

알라

이슬람교도들이 숭배하는 알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견해에도 불구하고, 고대 아라비아에 관한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인 증거들은 그러한 견해와는 모순된다.
마호메트가 출생하기 오래 전에, 아라비아의 부족들은 “알라”라는 이름의 달신을 숭배했다.
초승달의 상징은 이교적인 알라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초승달이 이슬람교의 상징이 된 것이다.
알라는 또한 바벨론의 신 벨Bel에 상응한다.
그는 두바베론의 저자 히슬롭(Hislop)이 구스(Cush) 혹은 달신인 메니(Meni)라고 했던 바로 그 신이다.
이슬람교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들은 대부분이 고대 아라비아의 이교적 의례들과 동일하다.
메카가 이슬람교의 성지이듯이, 또한 메카는 이슬람교 등장 이전에도 아라비아의 이교 종교의 중심지였다.
메카는 쿠라이쉬(Quraysh) 부족의 지배 아래에 있었는데, 바로 이 부족으로부터 마호메트가 출생하게 된다.
이 부족은 특별히 달신 알라에 대한 예배를 주관했다.
알라에게는 세 명의 딸들이 있다고 믿어졌는데 그들은 각각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바벨론 종교에서 여신들이 인간을 위해 중재했듯이, 이교도들은 알라의 세 딸들이 알라와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준다고 믿었다.
메카에서 이교도 예배의 중심에는 카바(Kabah-정육면체를 의미하는 아랍어)라고 불리는 네모반듯한 검은 돌 성전이 있었다.
본래의 건물은 6세기에 다시 세워졌다.
마법의 돌이 지니는 힘에 대한 널리 확산된 믿음에 의하면, 유명한 “검은 돌”이 카바의 벽에 박혀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검은 돌들은 이교적인 중동 지방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슬람교 등장 이전 아라비아의 이교도들은 누구든지 하루 중 규정된 시간들에 맞추어 메카를 향하여 엎드려 기도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더욱이. 그들은 누구든지 일생 동안에 한번은 카바에서 예배하기 위하여 순례를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거기서 카바를 일곱 바퀴 돌고는 검은 돌에 입맞추어야 했다.
그리고 월력(月曆)의 어느 한 달은 금식하는 기간으로 지켜졌다.
이러한 모든 의례들은 이슬람교 안으로 그대로 흘러 들어왔다.

 

마호메트와 카바의 정화(淨化)

마호메트의 시대 이전에, 쿠라이쉬 부족은 카바에서 온갖 종류의 서로 다른 우상들이 허용되는 것을 보아왔다.
이는 많은 종교들의 중심지로서의 메카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함이었다.
카바에는 대략 360여 가지의 우상들이 있었고, 알라는 그 중의 하나였다.
거기에는 심지어 마리아와 예수의 형상도 있었다.
마호메트는 570년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교적인 신비주의 예술을 업으로 삼는 가정 배경으로부터 성장했다.
마호메트가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던 때가 대략 610년이었다.
이것이 예언자로서의 그의 생애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그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세부적으로 일일이 다 살펴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이 후의 몇 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추종자의 무리들을 자신에게로 끌어 모았다.
이것은 큰 군대로 성장했고, 급기야는 메카와 그 주변의 많은 국가들을 정복하게 된다.
마호메트는 우상들로 가득 찬 메카를 정화하고서는, 달신이었던 알라에 대한 이교적 숭배로부터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슬람교의 가장 거룩한 장소인 카바 안에 지금도 들어있는 것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달신 알라의 형상이 남아있을까?
혹은 카바는 그저 텅 빈 상자와 같은 건물에 불과한가?
이러한 의문들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도저히 물어볼 수 없는 신성모독적인 질문들이다.
로마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는 연구와 양심의 자유를 지켜주는 종교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내부가 신비스럽고 감추어져 있는 카바를 향한 예배 행위가 신비주의와 더불어 주목할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이슬람, 바벨론, 로마의 교리들

로마 종교와 여러 바벨론 종교들과는 달리 우상의 모든 형상들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는 신비주의와 두드러진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알라 숭배의 기원이 이교도적이기에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떠한 특징들은 달신 알라와 바벨론 신비종교의 주류 사이의 상당히 요원한 연결고리로서는 설명되어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교의 가르침은 다양한 출처들의 혼합물이다.
그것들은 620년경 아라비아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던 것들이다.
학자들은 코란이 단지 사바, 유대교, 그리고 생각건대 기독교의 영향뿐만이 아니라, 힌두교와 조로아스터교의 동양적 신비주의로부터도 그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기독교적 영향은 영지주의자들의 이단 작품들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우리가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신비주의의 거짓 종교에 의해 전염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슬람교가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예수는 위대한 예언자일지라도 단지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은 영지주의자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코란이 기독교인들은 “아버지, 어머니(마리아), 아들(예수)”로 구성된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이상하다.
코란의 더 특이한 가르침 중 하나는 마리아가 종려나무 밑에서 예수를 낳았다는 것이다.
신비주의에서는 종려나무(크리스마스 트리의 본래적 형태)가 환생한 니므롯을 상징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은 마호메트가 접촉했던 거짓 기독교의 형태가 사실상 명백히 바벨론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슬람의 구원론은 근원적으로 행위를 통한 구원을 말한다.
이는 신비주의와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코란은 심판의 날에 선행과 악행이 저울에 달아져서 누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를 결정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사실 이슬람교의 천국 개념은 육체적 방종으로 가득 찬 곳이다.
그러한 영원에 대한 속세적 견해는 성경에서의 그것과 첨예하게 대립된다.

이슬람교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특별한 위치를 부여한다.
이것이 로마 카톨릭의 지도자들에게 잘 알려진 것이라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마리아에 대한 코란의 가르침은 교황권에서의 그것과 두드러진 유사성을 지닌다.
이것은 이슬람교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로마 카톨릭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순수한 이슬람교의 입장에서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지 않는다.
성(聖)과 속(俗)의 결합은 정확히 로마 카톨릭과 병행한다.
로마 교황은 종교와 통치하는 왕조 모두의 머리이다.

로마와 이슬람 교리의 공통된 특징은 플라톤의 제자였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 원인이 있다.
브리태니카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세기를 걸쳐서 중세 기독교도들(가령 로마 카톨릭교도)과 이슬람의 스콜라 철학 모두에 대하여 기반이 되고 매체가 되었던 지적 체계를 구축한 사람이었다.”
성서에 담겨진 진리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가들이 저항했던 대상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였던 것이다.
로마 카톨릭과 이슬람교의 최종적인 유사성은, 그것들 모두가 처음에는 유대인들을 그 다음에는 성경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는 사실이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어떻게 이교도주의와 기독교를 융합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융합의 과정은 로마에 의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또한 관찰해야만 하는 것은 212년에 유대인들이 완전히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세기 후 콘스탄티누스 치하의 제국이 명목상으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을 때, 유대인들에 대한 관용은 중지되었고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로마 카톨릭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유대인 박해의 오랜 역사의 시작이었다.
마찬가지로 마호메트는 자신의 사역 초기에 유대인들을 공격하고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군대는 또한 로마의 주요 라이벌인 정교회의 힘을 상당히 무력화시켜 주었다.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교회였다.

 

 

십자군

이슬람교도들의 뛰어난 정복 사업 이후 이어지는 몇 세기 동안, 이슬람교도들의 지도자들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의 다른 지역들을 방문하는 데 있어 안전한 통행을 허가해주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마뉴는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Haroun al Raschid)와 직접적으로 협약을 맺었고, 그 결과로 칼리프는 로마 카톨릭의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했다.
그러나, 11세기 후반에 중앙 아시아의 초원 지대로부터 투르크인들이 침공해옴으로써 이러한 상황은 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비잔틴(동로마) 제국은 혼돈스럽고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된다.
교황 우르반 II세가 로마 카톨릭교를 위해 예루살렘과 “성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십자군을 일으킨 것이 1095년의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 역시 바티칸의 세력권을 더욱 확장하기 위하여 계산된 것이었다.

그 다음 200년 이상 십자군 전쟁으로 알려진 많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들이 일어났다.
그러한 행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일이었다.
기독교인들이 예배하기 위한 장소로서의 “성지”를 얻으려 한다는 개념은, 전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에는 적합하지 않는 것이다.
이슬람교도들과 로마 카톨릭교도들이 공동으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음은 물론이고, 십자군에 의한 잘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들이 있다.
바티칸이 가르치는 반(反)셈족주의를 신봉하는 십자군은 상당한 수의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또한 십자군은 1204년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면서, 정교회들을 유린하고 파괴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은 결국 13세기 말에 이르러 중동에서 십자군을 몰아냈다.
리베라는 바티칸과 이슬람교의 지도자들 사이에 비밀 협상이 있었다고 보도한다.
이슬람교도들은 터키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고(이것은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제국이 파괴되는 것을 정당화한다), 거짓 기독교인들은 레바논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리베라는 로마와 이슬람은 그들의 공동의 적을 공격하는 데 서로 합의하였다고 진술한다.
그들의 적이란 바로 성경이 말하는 참 복음을 믿고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로마와 이슬람 사이의 이러한 오히려 희박해 보이는 연관성이 겉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20세기의 어떤 사건들을 설명해준다.
우리는 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볼 것이다.

 

템플 기사단

우리사 살펴보아야 할 십자군 전쟁의 또 다른 국면은 군인들의 수도사적인 체제이다.
특별히 흥미로운 점은 1118년에 조직된 템플 기사단의 체제이다.
그들의 공식 명칭은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기사들”이었다.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본부는 성전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 “솔로몬의 성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그들의 “군주”를 선출하였고 그들의 유일한 지도자는 교황이었다.
그들은 거룩한 묘지와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었다.

그러나 템플 기사단은 동양 신비주의의 많은 관례들을 채택했고 신비에 기초한 비밀 단체들에 의존하였다.
그들은 또한 이슬람 신비주의 집단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그 중엔 자신들의 종교 행위의 한 부분으로서 인신(人身) 제사의 형태로 희생자들을 죽이는 “아사신(암살자들-Assassins)”이 있었다.
템플 기사단이 다른 십자군과 함께 중동으로부터 철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따로 유럽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비밀스런 활동들은 급속히 권력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14세기 초반에는 결국 쇠퇴하게 되었다.
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비밀 조직은 그들이 이해한 대로 계속해서 신비의 비밀들을 확장시켰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조직은 결국에는 후대에 프리메이슨(Freemasonry)으로 발전하게 된다.
파티마(Fatimah)

 

이슬람에 관한 주제를 마무리하기 전에, 끝으로 20세기에 벌어진 최근의 사건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한 국면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카톨릭 과부 수녀였던 카디자는 마호메트에게서 네 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여자가 바로 마호메트가 가장 사랑했던 파티마였다.
마호메트는 그녀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이후 가장 축복 받은 여인으로 여겼다.

8세기에 이슬람 군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포함한 유럽의 일부분을 정복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포르투갈의 한 작은 산지 마을을 마호메트가 가장 사랑했던 딸을 기리기 위하여 “파티마(Fatima)”라 이름하였다.

여러 세기 후 1917년에 파티마 마을에서 성모 마리아의 소문난 환상이 나타났다.
그 환상에서 전해진 말들은 미래에 러시아가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할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된 것이었다.
1453년 이슬람 세력이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이래, 로마의 주요 라이벌이었던 정교회는 러시아 차르Czars의 보호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소문난 예언은 유럽 전역에 걸쳐 상당한 파급 효과를 가져다 주었지만, 그 결과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는 “우리의 여인 파티마”에 대한 환상은 예수회(Jesuits)에 의해 조심스럽게 계획된 것이었다고 폭로했다.
이는 러시아와 동유럽의 정교회를 파멸시키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마호메트가 사랑했던 딸의 이름을 빌려 이슬람교도들을 로마 카톨릭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의 여인 파티마”가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에 나타나서 러시아가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

 

중동의 유목민 아랍인들을 집단으로 뭉치게 하려고 카톨릭 수녀였던 카디자를 한 젊은 청년 마호메트와 결혼시킨 후, 카디자의 삼촌인 카톨릭 신자로부터 마호메트를 교육시켜 중동을 집결하기 위해 마호메트를 일으켰으나, 마호메트는 코란경을 기록하면서 그 스스로 이슬람 종교를 창출하며 교황과 약속을 저버렸고, 그것을 다시 끌어들이려고 예수회는 파티마 거짓말을 작업했다.
그리고 1917년은 파티마 환상이 만들어지면서 예수회의 레닌이 러시아 정교회를 파괴하려는 공산혁명을 일으켰으나, 정교회 최고 사제의 지략으로 황제의 황금과 교환조건으로 오늘의 러시아 정교회는 남게되었다.
그러나 예수회는 반드시 정교회를 종교재판하게 될 것인데 그것이 세르비아 정교도 학살인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래에는 참고가되는 사이트들의 Links가 있으니 클릭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슬람은 태양신교, 이슬람은 로마카톨릭이 만들었다

 

이슬람과 로마카톨릭의 여신숭배

 

 

바티칸이 만든 종교 … 이슬람

 

 

How the Vatican created Islam

 

 

Who was Alberto Rivera? (Wiki백과)

 

 

How the Vatican Created Islam!

 

 

 

The Roman Catholic and Islamic Connection

 

 

Quran & Bukhari prove Rome created Islam

 

Hadith & Qur’an PROOF the Vatican created Islam

 

 

Written by gospel mission

2015/05/23 at 4:16 PM